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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글('친일파' 비판이 억울? 자업자득이다)에서는 토지 수탈 문제, 쌀 수탈 문제, 노동자 강제동원 문제 등 경제문제를 중심으로 <반일 종족주의>를 검토했다. 이번에는 위안부 문제를 중심으로 책의 내용을 살펴본 다음 '반일 종족주의'라는 신조어에 대해 종합적으로 평가해 본다. 원래는 독도 문제와 관련한 내용도 함께 검토하려고 했으나 글이 길어지는 바람에 부득불 제외하기로 했다... 필자 주


위안부 문제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책의 나머지 부분에서 다루는 다른 주제 이야기를 잠깐 하자. 거기서는 위안부 문제와 독도 문제 외에 청구권 협상 문제, 지원병 문제, 고종 평가 문제, 을사오적 문제 등 다양한 주제들이 다뤄지고 있다. 저자는 이영훈 교수 외에 주익종, 정안기, 김용삼 등이다. 

여기서 드러나는 한 가지 특징은 이영훈 교수 등이 이미 역사의 상식으로 자리 잡은 여러 가설을 모조리, 또 완전히 뒤집어엎는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것 몇 가지만 소개하자(괄호 안은 책 페이지를 가리키며, 표현에 사소한 수정은 있었다). 군데군데 부조적(浮彫的)인 방법을 사용하는 것은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한결같이 일본 극우세력 친화적인 주장들
 
 이영훈 전 교수 등이 펴낸 <반일 종족주의> 325페이지. 이 전 교수는 "위안부 생활은 '위안부 생활은 어디까지나 그들의 선택과 의지에 따른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이영훈 전 교수 등이 펴낸 <반일 종족주의> 325페이지. 이 전 교수는 "위안부 생활은 "위안부 생활은 어디까지나 그들의 선택과 의지에 따른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 이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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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조선 여인들을 전선으로 끌고 가 위안부로 삼은 사례는 단 한 건도 보고된 바가 없다. (309쪽) 
위안부 생활은 어디까지나 그들의 선택과 의지에 따른 것이었고, 위안부는 위안소라는 장소에서 영위된 위안부 개인의 영업이었다. (325쪽)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증명하기 위해 국제사회에 제시할 증거는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169쪽)
- 이상 이영훈의 주장

한국은 일본과의 청구권 협상에서 애당초 청구할 게 별로 없었다. (122~123쪽)
학도지원병은 일제의 기만과 선동에 넘어간 바보천치도, 강제로 일본군에 끌려간 강제동원 피해자도 아니었다. (112쪽) 
을사조약의 책임을 이완용과 을사오적에게 돌리는 것은 옳지 않다. 조약 체결은 고종의 결정이었다. (204쪽)
- 이상 주익종 등의 주장

이영훈 교수 등은 자신들이 이처럼 파격적인 주장을 한다고 해서 거기에 무슨 이해관계가 걸린 것도 아니고 정치적 동기가 있는 것도 아니며, 오로지 연구자의 직분에 충실하고자 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사실 그들이 어떤 동기로 이런 연구를 하게 됐고 무슨 목적으로 책을 냈는지 확인할 길은 없다. 혹시 기존의 고정관념을 의심하고 새로운 사실을 밝히는 것을 일종의 소명으로 여기는 지식인의 속성이 발휘됐는지도 모른다. 연구 과정에서 우리 사회의 오랜 '금기'를 깬다는 쾌감을 느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정황상 그들을 그처럼 순수하게 보아주기는 어려울 듯하다. 이영훈 교수 등이 끌어내는 '전복적' 결론들은 한결같이 일본 극우 세력이 주장해 왔거나 그들이 반길 내용이라서 하는 말이다. 일본 극우 세력이 싫어할 방향으로 기존의 가설을 뒤집은 게 하나라도 있다면 달리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영훈 교수 등에게 먼저 한 가지 묻고 싶다. 당신들의 머릿속에서 한국 사람들은 어찌 그리 온통 엉망이고, 일본 제국주의는 모든 면에서 어찌 그리 반듯한가? 혹시 가해자와 피해자를 뒤바꿔 놓고 생각하는 건 아닌가? 스스로가 편향된 사고방식에 젖어 있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는가?

그나저나 만일 위에서 소개한 주장들이 진실이라면, 큰일이 생긴 셈이다. 한국 국민은 수십 년 동안 엄청난 '거짓말'에 속아 살아온 바보천치들이고, 그런 '거짓말'을 '지어낸' 한국 학자들은 몽땅 사기꾼 중의 사기꾼이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본군 위안부제가 공창제의 일환이라고?

이제 위안부 문제로 넘어가 보자. 앞에서 밝힌 대로 필자는 위안부 문제를 사료 검토를 통해 직접 연구한 적이 없으므로, 주로 사료 활용 등 연구 방법이나 논리 전개에 초점을 맞추어 비평할 것이다. 과연 이영훈 교수는 위안부에 관해 전복적 견해를 주장하면서 올바른 논리 전개와 연구 방법을 구사하고 있을까?

이영훈 교수는 일본군 위안부제의 본질을 민간의 공창제가 군에 의해 동원되고 편성된 것으로 파악한다. 그에 따르면 위안부제는 마른하늘에 벼락 치듯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아주 옛날부터 존재했던 매춘업이 전시를 맞아 일본군 가까이에까지 확장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제도를 파악한다는 명목하에 조선 시대의 기생제와 1916년 이래 시행된 공창제의 역사를 소개한다. 그뿐이 아니다. 일본군 위안부제 뒤에 등장하는 한국군 위안부와 미군 위안부, 그리고 민간 매춘업의 실상까지 제법 소상하게 정리한다. 이렇게 일본군 위안부제를 한국 사회 매춘업의 장기 역사 가운데 위치시키고는, 그동안 1939~45년의 역사만 달랑 떼서 일본군의 전쟁범죄라고 몰아붙였던 직업적 운동가들의 '오류'를 엄중하게 질타한다. 

이와 같이 이영훈 교수가 제도의 장기 역사를 정리하고 통계까지 제시하면서 실상을 소개하니 그럴싸해 보일지도 모른다. 이런 연구도 없이 '공명심을 충족하기 위해, 직업적 일거리를 잇기 위해' 위안부 피해자들을 앞세운 시위를 줄기차게 벌여온 운동가들이 한심해 보일 수도 있다. 이처럼 국민의 생각이 동요하는 것, 바로 그것이 이 교수가 노리는 바다. 

이영훈 교수가 일본군의 전쟁범죄를 호도하기 위해 오랫동안 경제사 연구를 하며 익힌 '현란한' 기법을 활용하고 있음에 유의하라.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자. 위안부로 끌려가기 전의 조선 여성이 조선 시대 기생제와 무슨 관련이 있는가? 또 공창제와는? 해방 후 한국군·미군·민간 위안부가 그 순진한 여성의 미래라도 된다는 말인가? 

일본군 위안부제를 매춘업의 장기 역사 가운데 위치시키는 것은 한 가지 중대한 전제를 받아들이는 것과 같다. 바로 '일본군 위안부 = 매춘부'라는 인식이다. 위안부로 끌려가기 전의 여성이 매춘부가 아니었다면, 일본군 위안부제는 당연히 따로 떼어서 파악해야 한다. 주지하다시피 '일본군 위안부 = 매춘부'라는 주장은 다름 아닌 일본 극우 세력의 단골 메뉴다. 일본군 위안부를 기생제나 공창제, 그리고 해방 후 위안부와 연결 짓는다는 소리에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억장이 무너진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영훈 교수가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제도적 접근 또는 역사적 접근이 이처럼 터무니없이 활용되다니 어이가 없다.
 
 이영훈 서울대 명예교수가 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심재철 의원이 주최한 대한민국 건국 70주년 세미나에서 '건국 70주년 대한민국의 성취와 상실'에 대해 발제하고 있다.
 <반일 종족주의> 저자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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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제가 일본군의 책임이 아니라고?

일본군 위안부제가 공창제의 일환이었다는 말은 민간 매춘업자의 영업장을 일본군이 활용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위안소 운영에 대해 일본군이 세밀하게 통제하기는 했으나, 위안부의 모집과 위안소의 운영은 어디까지나 민간 주선업자와 민간업주의 책임 아래 이뤄졌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민간업주들은 위안소 경영권을 사고 팔기까지 했다고 주장한다. 만일 이 주장이 맞다면, 일본군의 책임은 크게 경감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위안부 모집과정인데, 이영훈 교수는 그것이 주선업자와 보호자 사이의 합의로 이뤄졌다고 본다. 그에 따르면 민간 주선업자가 여인을 모집할 때 보호자의 취업승낙서가 필요했는데(이는 확인이 필요한 사항이다), 그들이 가난한 호주들을 만나서 감언이설로 유혹하며 약간의 전차금(前借金)을 지급하면 호주들은 마지못해 또는 얼씨구나 하고 딸이나 동생을 위안부로 넘겼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일본군 위안부는 일본군이 강제로 끌고 간 것이 아니라 못난 아버지들이 사악한 주선업자에게 딸을 팔아넘긴 경우에 해당한다는 것이 이영훈 교수의 생각이다. 이렇게 되면 일본군은 위안부제에 대한 책임을 완전히 면제받는다. 

이영훈 교수는 이렇게 일본군의 책임을 덜어주고 난 다음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일본군을 미화하기까지 한다. 해방 후 사창가의 여인들에 비하면 일본군 위안부의 사정이 나았다고 하면서 이는 일본군의 보호 덕분이었다는 것이다. 일본군은 민간업주가 중간착취를 못하도록 엄격하게 관리하기도 했고 위안부가 성병에 걸리지 않도록 보호하기도 했다고 하는데, 이 정도라면 일본군은 악덕 민간업주에게서 위안부를 지키는 흑기사 같은 존재로 격상하는 것 아닌가?

이런 인식에 도달한 다음, 이 교수는 "위안소는 위안부의 입장에선 수요가 확보된 고수익의 시장"(304쪽)이었다든가, "위안부들 역시 전쟁 특수를 이용하여 한몫의 인생을 개척한 사람들이었다"(320쪽)고 하는 등 패륜적인 주장을 쏟아낸다. 

이영훈 교수의 주장은 사료적 근거를 가지고 있을까?

위안부에 관한 종래의 상식을 완전히 뒤집어버리는 이영훈 교수의 이런 주장은 그에 합당한 사료적 근거를 가지고 있을까? 아니, 그렇지 않다. 책을 자세히 살피면, 그는 일본군 위안부가 강제연행되지 않았다는 주장을 앵무새처럼 반복하지만 이를 입증하는 사료는 하나도 제시하지 않는다. 위안부 모집과 배치, 관리 등에 일본군이 어떻게 개입하고 지시했는지에 관한 내용은 왜소화시키고 위안부가 얼마나 비참한 처지에 있었는가에 대해서도 눈을 애써 감고 있다. 반면 자신의 주장에 조금이라도 유리해 보이는 내용은 과도하게 부각시키고 사료가 말하지 않는 부분까지 상상으로 추론하기도 한다. 

예컨대 이영훈 교수는 위안부 모집과 관련하여 단 두 가지의 논거만 제시하는데, 하나는 요시다 세이지(吉田淸治)라는 일본인이 <나의 전쟁범죄>라는 책에서 했던 '부하 6명과 함께 단추공장에서 일하던 여인 16명을 위안부로 끌고 갔다'고 한 증언이 거짓말이라는 주장이고, 다른 하나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구술 증언이 오염·조작되었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이영훈 교수는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 내용이 시간이 가면서 달라진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일본군에게 노예사냥을 당하듯 끌려갔다는 증언은 대부분 조작된 것이라 해도 좋다고 강변한다. 이영훈 교수 자신에게 유리한 사례로 간주하여 소개하는 문옥주라는 여인의 회고록에 헌병에 잡혀갔다는 구절이 나오지만, 이 교수는 단칼에 믿을 수 없다고 잘라 버린다. 

일본군 위안부제의 핵심 사안에 대한 종래의 통설을 그렇게 과격하게 뒤집으면서 이처럼 취약한 증거밖에 제시하지 않았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2004년 나눔의 집 방문했던 이영훈 교수 지난 2004년 9월 6일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가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에 대한 발언과 관련 직접 사과하기 위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생활하고 있는 경기도 광주군 '나눔의 집'을 방문했지만 할머니들로부터 '진솔한 사과가 없다'는 항의만 받고 돌아서야 했다.
▲ 2004년 나눔의 집 방문했던 이영훈 교수 지난 2004년 9월 6일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가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에 대한 발언과 관련 직접 사과하기 위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생활하고 있는 경기도 광주군 "나눔의 집"을 방문했지만 할머니들로부터 "진솔한 사과가 없다"는 항의만 받고 돌아서야 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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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라이트 대부인 안병직 선생조차 강제동원이라는데?

사료 문제와 관련하여 한 가지 아이러니한 일이 있다. 2013년에 안병직 선생 이름으로 <일본인 위안소 관리인의 일기>라는 책이 번역·출간되었다. 1940년대 말에 버마와 싱가포르에서 위안소 관리인으로 근무했던 박치근이라는 인물의 2년 간 일기인데, 위안부 모집과정과 위안소 실태를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라고 한다. 책 표지에는 안병직 선생이 번역하고 해제를 붙였다고 되어 있지만, 이영훈 교수도 안병직 선생과 함께 일기 발굴과 번역에 관여했다고 한다. 

이 책에는 일본군이 조선인 위안부를 조직적으로 동원하고, 위안소 운영을 주도했다는 사실이 명백히 드러나 있다. 안병직 선생은 해제에서 이 책의 의의를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실체는 일본군 위안부의 동원이 전시동원체제의 일환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있는 것"(41쪽)임을 지적했다. 뿐만 아니라 위안부는 일본군 편제의 말단조직으로 편입되어 군부대와 같이 이동할 수밖에 없었고, 폐업도 어려워서 '성적 노예상태'에 머물러 있었다는 매우 중대한 의견도 함께 제시했다. 

그러나 이영훈 교수는 <반일 종족주의>에서 이 책의 내용을 적극 활용하면서도 안병직 선생이 지적한 중대한 사실을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고는 위안부업은 위안부 개인의 영업이었으며 위안부는 성노예가 아니었다는 결론을 도출한다. 자신이 번역과 출간 과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책의 내용까지도 무시해 버리는 것을 보면, 이영훈 교수가 얼마나 부조적 수법에 능한지 알 수 있다. 

1400회나 수요 집회를 이어오며 치열한 삶을 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증언을 오염됐다며 무시하는 것도 부족했을까? 이영훈 교수는 8월 12일 SBS-TV와 가진 인터뷰에서 위안부 피해자 개인의 인생사와 역사적 제도를 구분하고, 역사학자는 양자가 충돌한다고 해서 전자에 구애받아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역사적 사건을 직접 체험한 당사자 따로, 제도 따로 취급하면서 당사자의 경험은 무시해도 된다는 뜻인데, 이 무슨 해괴한 논리인가? 

이영훈 교수 등이 세밀한 실증으로 우리가 믿고 있던 역사적 상식을 뒤집었다고 해서 걱정하는 분들이 있을 줄 안다. 듣기에는 분명 말도 안 되는 주장 같은데, '객관적인' 통계와 자료로 분석한 결과라고 하니 당황할 수도 있고 심지어 현혹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시라. 이영훈 교수 등의 분석은 합당한 근거를 갖추지 못한 과장이며 편향된 억측일 뿐이다.  
 
 반일종족주의
 반일종족주의
ⓒ 이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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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일 종족주의 때문에 온통 거짓말이 난무한다고?

이영훈 교수 등은 한국인들이 가진 역사 인식은 대부분 거짓말이라고 믿는다. 거짓말은 역사 인식에 국한되지 않고 정치, 사법, 문화까지 잠식해서 나라가 온통 거짓말에 물들어 있다고 진단한다. 

이명박 정부 당시 광우병 파동도 거짓말 때문에 일어났고, 세월호 사건도 거짓말 때문에 지금까지 사회를 어지럽히고 있고, 박근혜 전 대통령도 "세월호가 침몰하는 그 시간에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미용 수술을 했느니, 마약을 했느니 애인과 밀회를 즐겼느니 등등 터무니없는 거짓말" 때문에 탄핵당했다고 생각한다(박근혜 탄핵 사유는 국정농단이었음을 모르는 걸까, 알고도 거짓말을 하는 걸까?). 이들에게 촛불혁명은 필시 거짓말에 취한 대중의 난동쯤으로 여겨질 것이다. 

이영훈 교수 등은 현재의 한일 무역분쟁도 위안부 문제에 관한 거짓말과 징용 노동자들이 재판과정에서 한 거짓말로 촉발되었다고 믿을 것이다. 이 모든 거짓말의 배후에 하나의 강력한 집단 심성이 있으니, 바로 '반일 종족주의'다. 이영훈 교수 등은 반일 종족주의를 옛날 미개한 종족을 사로잡던 샤머니즘과 동일시한다. 여기에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개인이란 범주는 존재하지 않으며, 이웃을 세세의 원수로 느끼는 적대 감정만이 횡행한다. 반일 종족주의에는 종족을 결속하는 토템(totem)도 있는데 소녀상이 대표적이다. 

이영훈 교수는 대한민국이 자유인의 공화국으로 세워졌으나 지난 30년간 반일 종족주의 때문에 정신문화는 갈수록 퇴락했고, 그로 인해 마침내 망국을 예감하기에 이르렀다고 토로한다. 이 교수의 생각에 현 정부는 헌법에서 자유를 삭제하자고 주장하는 세력이 장악하고 있어서 망국의 경향을 되돌리기는커녕 도리어 촉진할 듯하다.

책을 마지막까지 읽어가면 말미에 흘러넘치는 비장함 때문에 잠시 숙연해지기도 하고, "우리의 본향은 자유입니다,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이 평생을 걸었던 순례의 그 길입니다"고 한 마지막 문장에서는 '거룩한' 분위기까지 느낀다. 하지만 잠시만 생각하면 겉으로 느껴지는 분위기 때문에 착각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반일 종족주의는 전형적인 허수아비치기

반일 종족주의와 거짓말이 나라를 망하는 길로 내몰고 있다는 이영훈 교수의 주장은 전형적인 허수아비치기다. 개인주의가 너무 강해져서 오히려 걱정스러운 판에 자유롭고 독립적인 개인이 존재하지 않는다니! 우리를 식민지로 지배한 가해자를 당당하게 대하는 것을 두고 중국과 미국한테는 안 그러면서 왜 유독 일본에게는 적대감을 드러내느냐니! 부패하고 무능한 정권을 지극히 평화적인 방법으로 타도한 것을 두고 거짓말의 광란이라니! 

<반일 종족주의>에서는 우리 사회 곳곳에 거짓말이 횡행하고 있다고 했지만, 내 눈에는 오히려 이영훈 교수 등이 하는 많은 진술이 거짓말로 보인다. 이 교수 등은 우리 사회에 반일 종족주의가 만연하고 있다고 개탄했지만, 내가 보기에 오히려 그들이 '혐한 종족주의'를 유포하고 있다(이 책 때문에 필자도 졸지에 토템을 숭상하는 미개한 종족의 일원으로 전락하고 말았으니 억울한 마음이 없지 않다). 

그러면서 웬 자유 타령으로 책을 마무리하는지 알 수가 없다. 이영훈 교수의 자유는 어떤 자유인가? 이 교수는 이승만이 쓴 <독립정신>을 읽고 그의 '자유' 사상에 흠뻑 빠진 것 같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기에 이승만에게 자유란, 전시에 시민을 버리고 혼자 내뺄 자유, 정적을 제거할 자유, 헌정을 유린할 자유, 독재할 자유, 부정 선거 할 자유, 꽃 같은 청춘들에게 발포할 자유에 지나지 않았다. 

필자가 말해봤자 귓등으로도 안 듣겠지만, 이영훈 교수 등에게 권면한다. <반일 종족주의>에서 사용한 부조적 방법과 허수아비치기를 내려놓고 그 책의 모든 주제를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정상적인 연구 방법에 따라 다시 분석해보라. 그랬는데도 똑같은 결론에 도달한다면, 필자부터 기꺼이 지지하겠다. 금기를 깨는 것만이 지식인의 임무라 여기지 말라. 이미 진실로 판명이 난 상식을 견고하게 지키는 것도 지식인이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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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가톨릭대학교 경제금융부동산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헨리 조지 포럼 공동대표를 맡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