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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지인의 시아버님의 장례식에 다녀왔다. 비통하지 않을 리 없지만, 가족들은 애써 담담하게 장례를 치르고 있었다. 조문객으로서 고인에 대한 예를 갖춘 뒤 자리에 앉자, 이내 육개장, 편육 등 상이 차려졌다. 상주인 지인은 그 와중에도 고기를 먹지 않는 내가 먹을 것이 없다며 미안해 했다.

나는 괜찮다고, 이만하면 충분하다며, 보란듯이 홍어회무침을 집어들었다. 최근 들어 고기뿐만 아니라 해산물도 섭취하지 않는 쪽으로 식단을 바꿔나가는 참이었지만, 아직 완전히 끊지는 않은 터였다. 이 정도는 내가 할 수 있는 배려고 예의라고 생각했다. 

그때, 우리의 대화를 들은 또 다른 지인이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 쟤. 걱정하지마. 물에서만 산다면 사람 고기라도 씹어먹을 텐데 뭘."

이건 또 무슨 소린가. 나의 섭식이 대체 무슨 피해를 주었기에 이런 말을 들어야 하는가. 나는 당황했고 또 화가 났다. 얼굴을 붉힐 자리가 아니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넘어갔지만 속은 편치 않았다. 돼지 머리고기 한 접시를 싹 비운 그녀에게는 그게 유쾌하고 재치있는 농담이었는지 몰라도.

사람 덕분에 행복하다가도 잊을 만하면 복병이 나타나 우리를 괴롭게 한다. 사람 때문에 웃지만, 사람 때문에 고통스럽다. 순전히 인간관계 때문에 전학이나 퇴사를 결심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나 또한 누군가를 괴롭히는 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가끔은 완벽한 혼자가 되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잘 알고 있다. 불가능한 공상이라는 것을. 기왕 어울려 살아야 하니, 이세상 살아가는 한 사람 때문에 괴로울 수밖에 없다고, 타인은 지옥이란 현자의 말을 곱씹어가며 그 괴로움 수용하는 것만이 삶의 지혜이고 정답일까. 

<인간 본성의 법칙>의 저자 로버트 그린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인간 행동의 뿌리를 이해하면 인생의 부정적 패턴을 깨고 완전히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 본성의 법칙> 책표지
 <인간 본성의 법칙> 책표지
ⓒ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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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로 인해 불행할 때마다 타인을 비정상으로 몰거나 불운을 탓하며 넘어가긴 쉽다. 그러나 이 방식은 어떤 것을 이해할 수도 없으며, 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을 막을 수도 없다. 저자는 우리가 인간 본성을 이해해야 타인의 조종에 말려들거나 잘못된 길로 가지 않을 수 있으며, 부당한 권력을 뺏을 수 있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인간 본성을 이해해야 나 자신의 행동도 이해할 수 있다. 내 감정의 출처가 어디인지, 나의 욕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의 본성을 낱낱이 알면 삶에서 보다 많은 주도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본성의 수동적 노예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그것을 바꾸는 주체가 될 수 있다.

인간에게는 500만 년에 걸쳐 진화하는 동안 생성된 본성이 있고, 그 발현은 개인의 성향과 상황에 따라 달라지지만 패턴이 정해져 있어서 파악이 가능하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그 '인간 본성의 법칙' 18가지와 이를 극복하는 핵심 문장은 다음과 같다.

1. 비이성적 행동의 법칙 - 나를 지배하는 감정을 극복한다
2. 자기도취의 법칙 - 자기애를 타인에 대한 공감으로 바꾼다
3. 역할 놀이의 법칙 - 가면 뒤에 숨은 실체를 꿰뚫는다
4. 강박적 행동의 법칙 - 성격의 유형을 파악한다
5. 선망의 법칙 -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욕망의 대상이 되라
6. 근시안의 법칙 - 사건을 뒤흔드는 더 큰 흐름을 주시한다
7. 방어적 태도의 법칙 - 상대를 긍정해서 저항을 누그러뜨린다
8. 자기훼방의 법칙 - 태도를 바꾸면 주변이 변한다
9. 억압의 법칙 - 내 안의 어둠을 직시한다
10. 시기심의 법칙 - 상대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는다
11. 과대망상의 법칙 - 나의 한계를 현실적으로 평가한다
12. 젠더 고정관념의 법칙 - 나에게 맞는 성 역할을 창조한다
13. 목표 상실의 법칙 - 인생의 소명을 발견하고 지침으로 삼는다
14. 동조의 법칙 - 집단의 영향력에 저항하라
15. 변덕의 법칙 - 권위란 따르고 싶은 모습을 연출하는 기술이다
16. 공격성의 법칙 - 상냥한 얼굴 뒤의 적개심을 감지한다
17. 세대 근시안의 법칙 - 시대의 흐름에서 기회를 포착한다
18. 죽음 부정의 법칙 - 인간의 운명인 죽음을 생각한다

저자는 먼저,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가 아님을 설명한다. 이성은 훈련과 연습을 통해서 습득하는 능력이지, 모두가 타고난 성품이 아니라는 것이다. 훈련이 된 이성적인 사람은 감정의 영향력을 자각하고 경계할 수 있지만, 비이성적인 사람은 자기 성찰이나 학습이 불가능하다. 

감정적 자아를 없앨 필요는 없지만 잘 제어해야 한다는 것이 책의 주장이다. 이성과 비이성의 조화로운 공존을 이뤄야 정신적인 여유를 가지며 보다 수월한 삶을 살 수 있다. 책은 뇌 과학, 심리학, 행동 연구는 물론 철학자의 통찰까지 총망라하여 인간 본성을 설명하고 이를 승화시키는 방법을 제시한다. 

저자는 인간이 모두 나르시시스트라는 것을 주지시킨다. 우리는 태어난 순간부터 타인의 관심을 받아야 생존할 수 있게 설계되었다. 그러나 끊임없는 관심과 인정은 불가능하기에 자아를 만들어냈다. 취향과 의견, 세계관, 가치관으로 구성된 자아는 우리의 에너지가 내부로 향하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한다. 자기를 사랑하기 때문에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을 좋아하고 아첨에 약하다. 이는 정상 범주의 자기 도취로서, 문제가 없다. 다만 건강한 자기도취자가 되기 위해서는 현실적이고 온전한 자기애를 갖고, 타인을 향한 공감 능력을 개발해야 한다는 것.

또한, 소수의 심각한 자기도취자들은 피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인간을 도구로 이용하는 유해한 자기도취자들은 상대에게 죄책감을 느끼게 하고 시기심에 불타올라 주변을 위험에 빠뜨린다. 저자는 이들을 잘 구분하고 제대로 다룰 줄 아는 것이 전 사회를 위해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각 법칙마다 우리가 피해야 할 파괴적 유형의 사람들이 상세하게 설명된다. 가령 강박의 법칙에서는 지나친 완벽주의자, 그칠 줄 모르는 반항아, 인신공격을 퍼붓는 사람, 드라마 퀸, 구원자 등이 그렇다. 이들을 알아보기 위해, 저자는 사람을 자세히 관찰하고 비언어적 신호를 파악할 것을 권한다. 

미안하게도 몇몇 지인을 떠올렸던 나는, 잠시 동작을 멈췄다. 내게도 분명, 나와 남을 갉아먹는 부정적 태도가 있다는 깨달음 때문이었다. 나는 왜 의미없는 타인의 말에 연연하는가. 나의 옹졸함엔 문제가 없는가. 그때마다 나의 해결책은 바람직했나. 누구나 자신을 '비교적 평화롭고 유쾌한 사회 구성원'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은 나를 뜨끔하게 했다. 

그러므로 저자는, 무엇보다 우리가 스스로를 관찰하고 자기 자신에 대해 완전히 솔직해져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인간은 자기 자신에게조차 스스로의 사악한 면을 속이고 정당화하려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어두운 면도 인정해야 그 파괴력을 없앨 수 있다는 저자의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책은 거침없다. 때로는 진정성도 연기해야 한다며 우리 삶에 필요한 전략과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이것은 단지 현실을 약삭빠르게 살기 위함이 아니다. 타인의 방어적 태도를 무너뜨리기 위해 공감능력을 개발하고, 보다 깊고 진실한 인간관계를 맺고 싶어지도록 설득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 본성의 법칙을 알게 되었을 때 도달하는 최종 단계로, 저자는 자신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더 높고 이상적인 자아에 도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최종 단계는커녕 1단계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그 방향성만큼은 주효했다.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방대한 분량은 지레 겁을 먹게 만들지만 난해한 대목은 없어 책장은 술술 넘어간다. 또한 톨스토이, 리처드 닉슨, 코코 샤넬 등 각 본성을 설명하는 상징적 인물들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수록되어 있어 책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읽기 그 자체로서의 즐거움도 놓치지 않은 영리한 책이고 무엇보다 실용적이다.

한 술의 밥이 당장 내 몸을 바꾸지는 않지만 분명 영향을 미친다고 믿는다. 책도 그럴 것이다. 당장 내 삶을 바꾸진 않지만, 읽기 전의 나로 돌아갈 수는 없다. 본성에 휘둘리지 않고 보다 건강한 관계들로 내 삶을 채우리라, 다짐해 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타인이 아닌, 나의 태도다. 그렇게 앞으로는 더 행복해질 것이라고, 명랑한 낙관을 해 본다. 이 낙관, 근거는 있다. 

인간 본성의 법칙

로버트 그린 (지은이), 이지연 (옮긴이), 위즈덤하우스(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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