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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린사회희망연대는 독립운동가였던 김명시 장군의 후손을 찾는 광고를 신문에 냈다.
 열린사회희망연대는 독립운동가였던 김명시 장군의 후손을 찾는 광고를 신문에 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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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몸으로 중국 일대에서 항일무장투쟁에 앞장서고 하얼빈의 기차역과 경찰서, 일본영사관을 습격했던 김명시(金命時, 1907-1949년) 장군의 친족을 드디어 찾았다.

14일 열린사회희망연대는 "김명시 장군의 친족을 찾았다"고 밝혔다. 김명시 장군의 외사촌 동생 김필두(81)씨가 그 주인공이다.

열린사회희망연대는 지난해 말부터 "사람을 찾습니다. '백마 탄 여장군' 김명시 장군의 형제자매 후손(친족)을 찾습니다"는 내용으로 홍보 활동을 벌였고, 이는 <오마이뉴스>를 통해 알려지기도 했다.

열린사회희망연대는 "김필두씨가 김명시 장군의 외사촌이라고 알려와 그동안 호적부 등 자료를 통해 확인 과정을 거쳤다"고 밝혔다. 김필두씨는 창원 마산합포구 양덕동에 살고 있다.

김필두씨는 광복절인 15일 오후 창원시 마산합포구 오동동문화광장 무대 뒤편에 있는 김명시 장군의 생가를 찾아 소감 등을 밝힐 예정이다.

김명시 장군은 언니와 오빠(金炯善, 1904~1950), 남동생(김형윤), 여동생(김복수)이 있었지만, 후손의 행방이 알려지지 않았다.

열린사회희망연대는 지난 해 말 오동동 문화광장에 김명시 장군의 흉상(동상)을 세워야 한다고 창원시에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당시 열린사회희망연대는 "중국 화북지방에서 조선의용군 지휘관으로서 일본군과 총을 들고 싸운 '백마 탄 여장군'으로 불렸던 게 김명시 장군이다"며 "이곳에 기념조형물을 세우는 일은 이 광장에 역사성을 부여하고 공간 미학적으로도 광장과 어울릴 것"이라 주장했다.

이 단체는 국가보훈처에 김명시 장군의 서훈 추서 신청을 하기도 했다. 사회주의계열의 독립운동을 벌인 김명시 장군은 아직 정부 추서를 받지 못하고 있다.

마산공립보통학교를 나온 김명시 장군은 조선의용군으로 항일무장투쟁에 앞장섰고 '백마 탄 여장군'이라 불리었다. 김명시 장군은 "정말 여성으로서는 초인적인 의지와 기개", "불굴의 독립투쟁을 펼쳐나간 당대 최고의 여투사", "여성임에도 직접 조선의용군의 선봉에서 항일무장투쟁을 용감하게 이끌었던 여장부"라는 평을 들었다. 

김명시 장군은 1925년 오빠가 가입해 있던 '고려공산청년회'에 들어가 활동하였고, 그 뒤 모스크바 동방노력자공산대학 유학생으로 가서 공부하다 1927년에 상해로 파견되었다. 이후 중국 일대에서 항일무장투쟁에 앞장섰으며 하얼빈 기차역과 경찰서, 일본영사관을 습격했다.

1932년 신의주에서 일본경찰에 체포된 김명시 장군은 징역 7년을 살고 1939년 신의주형무소에서 만기 출소했다. 이후 만주로 건너가 조선의용군 여자부대 지휘관으로서 항일무장투쟁에 나섰다.

열린사회희망연대 김영만 고문은 "김명시 장군이 해방 이후 서울로 돌아오자 시민들이 몰려와 '김명시 장군 만세'를 연호할 정도였다고 한다"며 "김명시 장군의 후손이 있는지, 무덤은 어디에 있는지조차 몰랐다. 이번에 친족을 찾게 되어 다행이다"고 했다.

<관련기사>
"'백마 탄 여장군' 김명시 장군의 후손을 찾습니다" (2018년 12월 13일)
독립운동가 김명시 장군, 이번에 서훈 받을 수 있을까 (2019년 1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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