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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호남 의병의 선구자 고광순 의병장은 매천 황현 선생과 함께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의 대표 인물로 선정됐습니다.

광복 제74주년의 해를 맞이해 재방송 중인 tvN 드라마 <미스터션샤인>을 다시 시청하면서 의미를 되새겨여 할 대사가 떠올랐습니다.

"임진년에 의병이었던 자의 자식들은 을미년에 의병이 되죠. 을미년에 의병이었던 자의 자식들은 지금 뭘 하고 있을까요?"

<미스터선샤인>의 대사처럼 임진년 의병이었던 고경명 의병장의 혈손인 고광순 의병장은 을미년에 의병을 일으켰고 정미년에 구례 연곡사에서 일본군에 맞서 싸우다 순국하셨습니다.

구례 지리산역사문화관에는 고광순 의병장이 지리산 피아골 연곡사에서 의병 항쟁의 이야기를 간략하게나마 요약해 놓았습니다.
 
 구례 지리산역사문화관 내부
 구례 지리산역사문화관 내부
ⓒ 임세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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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사업본부는 제74주년 광복절을 맞아 우리 민족의 얼과 자주독립의 염원이 깃든 태극기를 담은 '역사 속 태극기' 16종을 담은 기념우표를 발행했습니다. 고종이 외교 고문인 미국인 오언 데니에게 하사한 현존 가장 오래된 '데니 태극기', 3.1 운동 당시 승려들이 의병활동을 하며 사용한 '진관사 소장 태극기' 등과 함께 고광순 의병장이 가슴에 품고 다녔던 '불원복 태극기'도 선정됐습니다.
 
 제74주년 8·15 광복절을 맞아 우정사업본부에서 발행하는 '역사 속의 태극기' 기념우표 16종
 제74주년 8·15 광복절을 맞아 우정사업본부에서 발행하는 "역사 속의 태극기" 기념우표 16종
ⓒ 임세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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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고광순 의병장이 '不遠復' 세 글자를 수놓아 만든 불원복 태극기는 지금의 표준 태극기와 괘의 위치와 태극이 많이 다지만 '머지않아 돌아오리라'라는 국권 회복을 향한 강한 신념이 담겨 있습니다.
 
 독립기념관에 보관 중인 ‘不遠復(불원복) 태극기’
 독립기념관에 보관 중인 ‘不遠復(불원복) 태극기’
ⓒ 임세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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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피아골 연곡사에 거점을 마련하고 장기항전 태세를 구축한 고광순 의병장은 1907년 10월 16일 새벽, 연곡사를 포위한 일본군의 공격에 맞서 싸웠지만 워낙 전력 차이가 커 의병장 고광순과 부장 고제량 이하 의병이 연곡사 일대에서 장렬히 전사 순국했습니다.

고광순 의병장이 순국한 지 며칠이 지나서 우국 시인이자 당대의 기록자인 매천 황현은 연곡사를 찾아갔고 고광순 의병장 무덤의 봉분을 돌보면서 의사의 죽음을 애도하며 다음과 같은 추모시 한편을 남겼습니다.
 
연곡의 수많은 봉우리 울창하기 그지없네.
나라 위해 한평생 숨어 싸우다 목숨을 바쳤도다
전마(戰馬)는 흩어져 논두렁에 누워 있고
까마귀떼만이 나무 그늘에 날아와 앉는구나
나같이 글만 아는 선비 무엇에 쓸 것인가
이름난 가문의 명성 따를 길 없네
홀로 서풍을 향해 뜨거운 눈물 흘리니
새 무덤이 국화 옆에 우뚝 솟았음이라

1958년 선생이 순국한 구례 피아골 연곡사의 소요대사탑 근처 동백나무숲 아래에는 선생을 기리는 순절비가 세워졌고 정부는 1962년 선생의 공훈을 기려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습니다.
 
 구례 연곡사 의병장고광순순절비
 구례 연곡사 의병장고광순순절비
ⓒ 임세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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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 심은 데 콩 나듯 의병 집안에 의병 난다"는 말처럼 대를 이어 의병 항쟁에 선봉에 섰던 고광순 의병장은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과 광복 제74주년의 해를 맞이해 꼭 기억해야 할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31운동100주년 #임시정부수립100주년 #고광순의병장 #의병장고광순순절비 #구례 #연곡사 #광복74주년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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