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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광복 74주년이 되는 날이다. 수많은 날 동안 역사 문제는 늘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해 왔다. 울분과 분노, 그리고 속상함이 지속되는 시간이었지만, 그 속에서도 우리에게 따듯한 손길을 내밀어 준 이들이 있었음을 기억하고자 한다.

지난 편에서는 이케부쿠로의 상재사에 세워진 후세 다쓰지 변호사의 현창비를 소개했다(관련기사 : 한국의 독립운동가를 변호한 일본인). 이번 편에서는 마쓰오카 미도리(松岡みどり)씨를 소개하고자 한다. 마쓰오카씨는 70세 중반에 이르는 나이 지긋한 노배우시다.

이케부쿠로에 남겨진 두 번째 역사의 흔적, 릿쿄대학

상재사에서 서북쪽으로 약 19분 정도 걸으면 릿쿄대학(立教大学) 이케부쿠로 캠퍼스가 나온다. 이케부쿠로역 C3출구에서는 약 3분 정도 걸린다. 릿쿄대학은 윤동주 시인이 다녔던 미션스쿨(mission school, 선교를 목적으로 설립한 학교)로, 그의 흔적이 곳곳이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의 역사가 서려 있는 릿쿄대학에서 나는 특별한 인연을 만났다.
 
릿쿄대학 전경 .
▲ 릿쿄대학 전경 .
ⓒ 김보예(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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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늬는 자라 무엇이 되려니'

내가 마쓰오카씨를 처음 만난 뵌 곳은 '시인 윤동주를 기념하는 릿쿄회'(詩人尹東柱を記念する会, 이하 '릿쿄회')에서 오픈한 부스였다. 그날은 릿쿄대 졸업생을 위한 홈커밍 파티가 열린 날이었다.
 
 ‘시인 윤동주를 기념하는 릿쿄회’ 부스 .
▲ ‘시인 윤동주를 기념하는 릿쿄회’ 부스 .
ⓒ 김보예(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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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릿쿄회'는 릿쿄대 졸업생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단체로 알고 있는데, 마쓰오카씨는 릿쿄대 졸업생이 아니셨다. 어떠한 계기로 '릿쿄회' 활동을 하시게 됐는지 여쭈어보자, 그녀는 윤동주의 시 '아우의 인상화(印象畵)'가 그녀의 궁금증을 자극해 '릿쿄회'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고 하였다.
 
붉은 이마에 싸늘한 달이 서리어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발걸음을 멈추어
살그머니 앳된 손을 잡으며
『늬는 자라 무엇이 되려니』
                ×
「사람이 되지」
아우의 설흔 진정코 설흔 대답이다.

슬며-시 잡았던 손을 놓고
아우의 얼굴을 다시 들여다본다.

싸늘한 달이 붉은 이마에 젖어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창작년도 : 1938.9.15/게재 및 발표지 : 『窓』,『朝鮮日報』(1938.10.17)
- 참고문헌 : 최동호 엮음(2010)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육필원고 대조 윤동주 전집-> 서정시학

그녀는 만 59세에 영화 촬영감독 홋타 야스히로(堀田泰寛)씨와 결혼했는데, 남편의 책장에 윤동주 시집이 꽂혀 있었다고 한다. 무심히 윤동주 시를 읽던 그녀는 '아우의 인상화'의 한 구절에 깊은 의문을 느끼게 되었다.
 
'늬는 자라 무엇이 되려니' '사람이 되지'
이미 사람이 이거늘. 왜 동생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을까?
   
'아우의 인상화'는 1938년에 쓰였는데, 1938년은 제3차 조선교육령이 공포돼 '조선어 수업'이 금지된 해였다. 또한 일상생활에서도 조선어 사용을 금지하고 일본어 상용화 정책이 실시된 해이기도 하다. 아우의 대답 속에는 본래 인간이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인권이 말살된 역사의 아픔이 녹아있음을 그녀는 깨닫게 되었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

결혼 후 이듬해, 40년간 병으로 고생하던 그녀의 어머니가 숨을 거두셨다.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그녀는 <반일감정-한국·조선인과 일본인>「反日感情―韓国·
朝鮮人と日本人―」(高崎宗司·1993)이라는 책을 발견했다. 책 속에는 도쿄여자대학교에서 열리는 '1995년도 하계 특별 강좌 수강증'이 끼워져 있었다. 류머티즘성 관절염으로 걷는 것조차 힘겨워하셨던 어머니가 아픈 몸을 이끌고 근대 역사를 공부하러 다니셨다는 사실이 그녀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어머니가 남긴 흔적들을 읽어내려가면서, 역사에 사죄하고자 했던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었다. 그녀는 어머니의 마음을 이어 나아가고자 근대 역사를 더욱 명확히 배우기로 결심하였다.

그녀가 처음으로 역사를 배우기 위해 찾아간 곳은 도쿄에 있는 아리랑 문화센터였다. 그녀는 히토쓰바시 대학(一橋大学)에서 정년으로 퇴임하신 강덕상(姜徳相, 1932년2월15일생~)교수님께 위안부 문제 등 근대 역사가 가진 수많은 아픔을 배워나갔다. 역사를 배우면 배울수록, 늘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던 말이 그녀의 가슴을 깊게 파고들었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
(天は人の上に人を造らず、人に下に造らず)

그녀의 어머니는 경성(식민지 조선)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과 학창 시절을 조선에서 보내셨는데, 조선에서 생활하는 동안 조선인 차별을 몸소 경험하신 것 같다고 했다. 그  때문에 자신에게 그토록 이 말을 강조하신 듯하다고 했다. 그 뒤 그녀는 역사를 배우는 것뿐만 아니라, 한국인 아이들을 돌보는 것 또한 역사에 사죄할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해, 릿쿄대로 유학 온 한국인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2007년부터 2017년까지 홈스테이를 운영하기도 했다.

'풀뿌리 교류가 국가를 움직일 거야'

마쓰오카씨를 비롯해 그날 내가 만난 '릿쿄회' 분들은 역사를 바로 보고자 노력하는 분들이었다. 시인 윤동주의 가슴 아픈 생애뿐만이라, 마라톤 손기정 선수가 베를린 올림픽에서 금매달을 땄지만 태극기를 가슴에 달지 못한 비통한 사건 등에 대해서도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릿쿄회' 분들은 역사 속 당사자로서 우리가 그토록 듣고 싶었던 사과를 해 주셨다.

1945년 2월 16일은 윤동주 시인이 29세의 나이로 하늘의 별이 된 날이다. 매년 이맘때쯤 주말에는 릿쿄대학에서 '시인 윤동주 추모회'가 열린다. 마쓰오카씨는 그곳에서 만난 이은정씨(일본어 강사, 번역가)와 지속적인 인연을 맺어가며, 함께 시인 윤동주를 추모하고 변함없이 역사를 직시했다. 그녀는 자신과 이은정씨가 맺은 작은 교류가 역사를 둘러싼 한일 관계에 큰 변화를 줄 거라는 확신하고 있었다.
 
'풀뿌리 교류가 국가를 움직일거야'
(草の根の交流は国を動かすだろう)

그녀의 말처럼 나 또한 풀뿌리 교류가 국가를 움직일 거라고 믿는다. 그녀의 소박하지만 위대한 발걸음이 민들레 홀씨처럼 펴져 나아가길 기대해 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광양시민신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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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여행에서 1시간만 마음을 써 주세요” 일본의 유명 관광지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우리의 아픈 역사가 깃든 장소가 많습니다. 하지만, 정보 부족과 무관심으로 인해, 추도 받아야 할 장소에는 인적이 드물다는 현실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많은 분들이 역사에 관심을 가져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사(칼럼)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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