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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한민국에 대한 요구들이 많아지고 있다. 일본은 '강제징용 판결 이전으로 되돌아가라'고 요구하고, 미국은 반대급부도 없이 '동맹의 의무를 늘려달라'고만 요구하고, 북한은 '민족공조와 9·11 군사합의를 준수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 이란도 가세했다. 11일 자 <연합뉴스>에 따르면, 세예드 압바스 무사비 이란 외교부 대변인은 현지 시각으로 지난 10일 이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일본 등이 호르무즈해협 문제에 중립을 지켜줄 것'을 당부했다. 이란·이라크·사우디·쿠웨이트·바레인 등의 석유 수송로인 호르무즈해협 통항권을 확보하고자 미국이 결성하는 '호르무즈 호위 연합'에 한국이 불참해줄 것을 주문한 것이다.

'한국이 호위 연합에 참여하면, 한국 유조선이 호르무즈해협을 지날 때 위험해지느냐?'는 질문에 대해 이란 외교부 대변인은 "긴장이 더 고조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고 모두가 손해를 입기 때문에 그런 긴장을 피하려 하고, 그래서 한국·일본 등이 중립을 지키길 바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반도 평화와 한·일 대치 국면에서 미국의 지지가 필요한 한국으로서는 미국의 제안을 거절하기 어렵다는 점을 아느냐?'는 질문에는 "이란과 한국의 관계가 제3국의 영향을 받지 않았으면 한다"는 대답이 나왔다.

미국이 호르무즈 해협을 민감하게 여기는 이유
 
 호르무즈해협.
 호르무즈해협.
ⓒ 구글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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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9일 호르무즈해협에서 영국 유조선이 이란 정규군 중 하나인 혁명수비대에 억류되자, 미국은 항행 안전을 명분으로 호르무즈 호위 연합을 추진했다. 이번달 5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일본·한국처럼 이 지역 내 이해관계가 있고 물품과 서비스, 에너지를 통과시키는 나라들이 자국 경제의 이익을 보호하는 방식으로 참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며 한국의 참여에 대한 희망을 표시했다.

금요일인 지난 9일에는 마크 애스퍼 국방장관이 정경두 국방장관에게 '호르무즈해협에서 항행의 자유를 위해 국제사회의 협력을 기대한다'는 뜻을 전달했다. 국내 언론은 이날 미국의 파병 요청이 있었다고 보도했지만, 국방부는 협력 요청이 있었을 뿐이라며 의미를 축소했다. 파병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더라도, 국무장관이 아닌 국방장관이 협력을 구했다면 파병 요청으로 비쳐지는 것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파병 요청이든 아니든 미국이 한국의 참여를 요청하는 상황에서, 이란 외교부가 한국 유조선이 입을 손해까지 암시하면서 중립을 당부하고 있다. 광해군이 처했던 것 이상으로 한국이 곤란한 처지에 빠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란 핵문제와 연결되는 호르무즈해협 문제는 한국이 처한 여타 현안보다 덜 중요하게 생각될 수도 있다. 하지만 제3자 시각에서는 북·미 핵문제 이상으로 중요한 문제일 수도 있다. 북·미 핵문제에는 핵과 동북아 패권이 걸려 있다. 그에 비해 호르무즈해협 문제에는 핵 및 중동 패권 외에도 석유 패권까지 달려 있다.

석유는 핵무기와 더불어 세계 지배권을 좌우하는 핵심 쟁점이다. 이것은 달러를 중심으로 하는 세계 금융체제와도 직결된다. 1971년 8월 15일의 이른바 '닉슨 쇼크'에서 드러난 것처럼, 미국은 달러의 가치를 금으로써 보증해줄 능력도 의지도 없다. 대신 미국은 금 대신 석유를 내세워 달러의 가치를 유지하고 있다. 산유국들이 석유 거래를 달러로만 하도록 강제함으로써 달러의 존재의의를 지키고 있다.

그런데 이란과 베네수엘라는 '달러로만 석유거래를 하라'는 미국의 말에 순종하지 않았다. 그래서 미국이 이 나라들을 집중 공략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정도로 석유는 달러 체제 및 세계 금융과도 직결돼 있다. 그래서 미국이 중동 석유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면 달러의 가치 또한 영향을 받을 것이다.

미국이 호르무즈해협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하면 중동 석유에 대한 통제권도 자연히 잃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한미동맹의 관점에만 치우쳐 호르무즈해협 문제를 바라볼 수는 없다. 지금 당장에는 미국과 동맹하는 편이 석유 수급에 유리하지만, 미국이 이란의 핵 보유를 막지 못하거나 호르무즈해협에 대한 통제권을 잃게 되면 중동 석유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이 급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우려를 갖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이란과의 대결에서 미국의 힘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시소의 한쪽 편이 땅바닥에 거의 닿아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것이 점점 더 공중으로 뜨고 있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만 해도 영국과 더불어 미국은 중동 산유국인 이란·이라크·사우디를 안정적으로 통제했다. 이 중에서 사우디는 가장 '모범적'인 친서방의 길을 걸어왔다. 이라크의 경우에는 1990년 걸프전쟁과 2003년 이라크전쟁을 통해 반서방 태도가 억눌려졌다.

그러나 이란은 다르다. 이란은 미국과 영국을 상대로 가장 격렬하게 대항해왔다. 미국이 세계 최강으로 등극하기 직전인 1943년, 이란의 석유 생산량은 중동 전체의 절반을 상회했다. <중동연구> 제32권 제2호에 실린 최영철 서울장신대 교수의 논문 '걸프지역 석유자원과 제2차 걸프전쟁(1990-1991)'에 인용된 통계 자료에 따르면, 1943년에 중동 전체 생산량 1억 2097만 배럴의 62%인 7532만 배럴이 이란에서 생산됐다. 영국이 설립한 앵글로-이란 석유회사에 의해 생산되는 물량이었다.

그런데 이란에서는 일찍부터 반외세 운동이 고조됐다. 이 분위기는 1951년에 모하마드 모사데크 총리가 앵글로-이란 석유회사를 국유화하는 단계로 발전했다. 수익 절반과 경영권 참여를 요구하는 이란 정부의 요청을 이 회사가 거부한 데 대한 대응이었다.

모사데크 내각은 1953년 미국과 영국의 지원 하에 벌어진 쿠데타로 몰락했다. 이란 석유에 대한 지분이 미국·영국한테 각각 40%, 네덜란드·프랑스한테 20% 배분되는 것으로 이 상황은 종결됐다.

기세 등등해진 이란, 그리고 미국의 '석유 패권'
 
 무하마드 모사데크.
 무하마드 모사데크.
ⓒ 위키백과(퍼블릭 도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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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26년 뒤 상황이 역전됐다. 1979년 이란 혁명으로 호메이니 정권이 수립되면서, 이란 석유에 대한 통제권은 미국과 서방의 손을 떠났다. 미국은 1980년부터 8년간 벌어진 이란·이라크전쟁에서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을 지원했지만, 이란 정권을 무너트리지 못했다. 중동, 특히 호르무즈해협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은 이로써 한층 더 약화됐다.

그런데 21세기 들어 이란 쪽의 기운이 상승하고 있다. 2002년부터는 이란의 핵개발 정황이 국제적으로 알려졌다. 그런데도 17년이 흐른 지금까지 미국은 이란 핵개발을 포기시키지 못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의 긴장 관계를 줄이는 방법으로 이란 핵문제에 대한 대응력을 높이려 하고 있지만, 이란도 북한 못지않게 기세가 등등해지고 있다.

이란이 재래식 무기에만 의존할 때도 미국은 이란을 제지하지 못했다. 이는 이란 핵개발이 진행되는 지금 단계에서는 미국의 통제력이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호르무즈해협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1950년대 이래 미국의 석유 전략은 중동 석유가 자국과 유럽 및 일본에 안정적이고 저렴하게 공급되도록 하는 것이었다. 위 최영철 논문은 "석유 산업과 관련하여 미국 외교정책의 목표가 첫째, 제2차 세계대전 전후 복구와 경제성장을 지속시키기 위하여 미국이 유럽과 일본에 석유를 온당한 가격에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란 핵개발 추진과 함께 호르무즈해협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이 한층 더 약해지고 있다. 이는 앞으로는 미국에 의존해 석유를 확보하는 나라들이 그만큼 어려워질 것임을 의미한다.

물론 현재까지는 미국의 영향력이 이란을 능가하지만, 미국이 이란 핵개발을 끝내 막지 못한다면 이 지역 석유자원에 대한 미국의 접근권도 장담할 수 없게 된다. 미국의 통제력이 추락하게 되면 그것은 미국의 석유 패권, 나아가 세계 패권의 종말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한국은 중립을 지켜달라'는 이란 외교부 대변인의 당부를 그냥 흘려버릴 수 없는 이유다. 또 일본과의 무역관계뿐 아니라 석유 수급과 관련해서도 중장기 대책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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