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두군혜 여사 두군혜 여사
▲ 두군혜 여사 두군혜 여사
ⓒ (사)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

관련사진보기

흔히 독립운동가나 혁명가들은 '철의 심장'을 갖고 사랑이나 애정 따위는 무관심한 냉혈한인 것처럼 인식된다. 먹고 입고 자는 일상도 뛰어넘는 초인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들도 사람이다. 누구보다 가슴이 뜨겁고 정열이 넘친다. 그래서 범인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독립운동과 혁명가의 길을 걷게 된다.

김성숙이 중산대학에 적을 두고 항일운동을 전개할 때 중국인 엘리트 여성이 나타났다.

1927년이면 그의 나이 29살, 한창 청춘의 피가 끓을 연치였다. 그동안 국내는 물론 망명지를 떠돌며 학업과 독립운동을 하느라 곁눈을 팔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아직 젊은 나이지만 그동안 보고 듣고 탐구한 견문과 지식이 쌓였다. 대학에서 아직 숫자는 적어도 개화된 신여성을 만나게 되고 전통적인 구여성들도 지켜봤다.

그는 1927년 9월 말, 당의 지침에 따라 교도단과 함께 남하하여 10월 경 광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중산대학에 들어가 마치지 못한 학업을 계속한다.

이때 광동성 출신으로 이 학교에 다니는 두군혜(杜君慧)를 만났다. 광동성 광주시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두군혜는 광동성 최초의 여대생 중 한 명이었다. 대단히 지적이고 혁명정신에 투철했던 그는 중국공산당에 입당하고 중산대학에 다니고 있었다.

광저우 봉기가 실패하고 난 거의 직후에 저녁 무렵, 두군혜에게 일어과외를 해주던 한국 청년이 불쑥 그녀의 집에 찾아왔다. 얼굴이 먼지투성이에 초췌한 모습이었지만 차분했다. 그는 바로 광저우 봉기에 참여한 한국인 연결책 지도원이자 공산당원 김성숙이었다. 

그는 공안국에서 철수한 후 에움길을 돌아 찾아온 것이었다. 그는 두군혜에게 친필로 쓴 한국어 공책을 주면서 안전한 곳에 보관해달라고 부탁하였다.

왜냐면 그 노트에 기록한 것은 광저우 봉기에 대한 상세한 경과였기 때문이었다. 아울러 중산대학교 기숙사 안에서 위기에 처한 일부 학우들에게 피신하라고 전해달라고도 부탁하였다.

두군혜의 어머니는 밤을 세워가며 이 한국 청년을 위해 호복 상의(중국식 상의)를 만들어 주면서 돈 10원을 함께 넣어주었다. 다음날 아침, 김성숙의 임무를 도와주기 위해, 두군혜는 위험을 무릅쓰고 그와 함께 길을 떠났다. (주석 1)


한국의 망명청년과 중국의 엘리트여성은 공동의 과제인 일제타도와 사회혁명에 쉽게 뜻이 모아지고, 인텔리청년과 엘리트 여성의 시국토론에서 합치되는 대목이 많았다. 김성숙의 훤칠한 키에 수려한 면모는 미모의 광동 여성을 사로잡는데 모자라지 않았다. 한국청년과 중국처녀의 사랑은 국경을 넘어섰다.

1927년 늦여름에 김충창은 연애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였다. 첫사랑이면서도 격심한 연애였다. 상대 아가씨는 중산대학에 다니는 아름다운 광동 아가씨로, 대단히 현대적이었으며 부르조아였다. 김충창은 오성륜과 내가 자기를 배반자로 생각한다고 느끼고 있었지만 자기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자네가 연애를 한다면 나보다도 훨씬 나쁠 걸세. 전에 중이었던 녀석이 어떻게 되는지 자네는 알겠지? 도저히 돌이킬 수가 없네 그려." 하고 그는 괴로워하며 내게 말하였다.

오성륜과 나는 북경에서 김충창 자신이 진단한대로 이 연애병이 저절로 치유될 것을 기대하였지만 도대체가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를 않았다.

김충창은 전과 다름없이 열심히 활동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반대자들은 낭만적이라고 하여 그를 비난하였다. 그는 매일같이 이 아가씨를 데리고 '72열사의 광장'이 있는 공원에 갔다. 나를 제외하고는 그의 친구들 모두가 이 아가씨와 손을 끊기를 바랬다.  

나는 그의 '멍청한 짓거리'를 지지하였으며 힘닿는 한 이 연인들을 도와주었다. 나는 김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반박하였다.

"혁명가도 역시 남자이고 인간이다. 어찌되었든 이 연애는 진행될 것이다. 너희들에게 반하는 아가씨가 아무도 없기 때문에 너희들이 모두 질투하고 있는 것이다." (주석 2)

주석
1> 『여성운동이론 연구의 선구자 - 두군혜』, 7쪽, 상해시 여성연합회 여성운동가 자료팀, 1984.
2> 님 웨일즈, 앞의 책, 128~129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운암 김성숙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