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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카서스 3국 여행 내내 즐거웠다. 사막·초원·삼림생태계 등 다양한 생태계가 수시로 바뀌는 것이 신기했다. 드넓은 호수, 만년설, 푸른 초원 등 자연 풍광이 아름다웠다. 바쿠와 같이 제2의 두바이를 꿈꾸며 다양한 현대 건축양식을 뽐내는 도시가 있는가 하면, 오랜 역사를 간직한 교회, 사원의 모습에서 과거와 미래를 함께 볼 수 있었다. 비록 때때로 좀 짜기는 했지만 풍성한 식탁과 각종 음료도 여행을 즐겁게 했다. 무엇보다 순박하고 친절한 사람들이 좋았다.

이처럼 웃음 가득한 여행이었지만 딱 한 번 울컥했던, 심란한 마음을 금하지 못한 순간이 있었다.
  
 아르메니아 학술 추모탑
 아르메니아 학술 추모탑
ⓒ 이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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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의 '학살 추모관'을 방문했을 때다. 사실 여행 전까지만 해도 아르메니아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지진'과 '학살'이라는 단어뿐이었다. 그 세세한 내용은 알지도 못했고, 관심도 없었다. 그런데 '학살 추모관'에서 접한 진실은 너무도 충격적이었다.

아르메니아 대학살은 2차에 나눠 진행됐다. 1차는 1894년 무슬림과 아르메니아인과의 대규모 충돌 때 당시 아르메니아를 지배하던 오스만 정부가 군대를 동원해 진압하는 과정에서 아르메니아인 2만 명이 넘는 희생자가 나온 사건을 말한다.
  
 터키에 의해 자행된 아르메니아 학살 사건 관련 사진, 만평 자료가 학살 추모관에 전시되어 있다.
 터키에 의해 자행된 아르메니아 학살 사건 관련 사진, 만평 자료가 학살 추모관에 전시되어 있다.
ⓒ 이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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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보통 아르메니아 대학살은 다음의 2차 학살을 지칭한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오스만 제국은 러시아와 싸웠다. 그런데 독립을 희망한 아르메니아인 수천 명이 러시아군으로 참가하거나,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게릴라전을 전개해 무슬림 마을을 습격, 오스만 제국의 무슬림 신도들을 살해하기도 한다.

이에 대한 반격으로 오스만 제국은 1915년 4월 24일 수도 이스탄불에 거주하던 아르메니아 지식인 수백 명을 잡아들여 처형했다. 그리고 18~50세 모든 아르메니아 남성을 강제 징집해 혹독한 군사훈련과 노동을 시키면서도 식량 공급은 제대로 하지 않아 죽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여성과 어린이들도 강제로 시리아로 이주시키는데 그 과정에서 대부분이 추위와 굶주림으로 사망함으로 사실상 살해당했다 볼 수 있다. 그 수가 무려 많게는 150만 명이라는 주장이 있다. 이는 20세기 최초의 조직적 인종 학살로 기록되고 있다.
  
 아르메니아 대학살로 인해 아르메니아 공동체는 철저히 붕괴되었다.
 아르메니아 대학살로 인해 아르메니아 공동체는 철저히 붕괴되었다.
ⓒ 이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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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미네소타 대학 '홀로코스트 및 제노사이드 연구센터'에 따르면, 대학살 이전 오스만 제국의 영토에 거주하던 아르메니아인은 모두 213만 명에 이르렀다. 그러나 학살 이후인 1922년에는 48만여 명에 불과했던 것으로 집계된다.

이러한 설명을 들으며 봉오동 전투, 청산리 전투 등 독립투쟁에 대한 분풀이로 일본이 조선인 마을에 대한 무참한 학살 사건이 떠올랐다.

뿐만 아니라 관동대지진 당시 일제가 자행한 일본 거주 조선인에 대한 학살 사건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면서 왜 인류는 이처럼 끔찍한 학살을 저지를 수밖에 없는가? 이념, 종교, 민족, 자본의 논리가 무엇인데 귀한 사람의 생명이 무참히 희생되어야 하는지 그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져 참 힘든 시간이었다.

일본이 과거 한국에 저질렀던 각종 만행들도 문제지만 그 일을 인정하고, 사죄하고,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상처에 대한 치유 노력을 한다면 그나마 아픈 마음은 덜할 것이다.

그러나 일본 극우 정권은 자꾸 과거 침략을 정당화하고, 그리고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보통 국가 추진에 매달리고 있다. 말이 보통국가이지 사실 그들이 꿈꾸는 것은 동아시아를 평정했던 일본제국주의 부활이기에 아르메니아 대학살을 인정하지 않는 터키가 자꾸 일본과 다를 바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2018년 6월 개봉된 <아일라>를 통해 6.25전쟁에 참전한 터키 병사의 한국 어린이에 대한 보살핌으로 큰 감동을 주었다.
 2018년 6월 개봉된 <아일라>를 통해 6.25전쟁에 참전한 터키 병사의 한국 어린이에 대한 보살핌으로 큰 감동을 주었다.
ⓒ (주)영화사 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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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나라가 바로 터키라는 점이 곤혹스럽다. 터키는 6.25 전쟁 당시 한국을 도운 참전국이 아닌가?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부터 이른바 '형제의 나라'라는 이유로 터키와 우리나라는 밀월관계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터키는 아르메니아 대학살에 대해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다. 우선 150만 명이라는 학살자 수에 대해 30만 명 수준이라고 낮춰 이야기한다. 그 뿐만 아니라 현 터키 정부는 오스만 제국을 무너뜨리고 세운 새로운 정부이므로 그 당시 벌어진 일에 대해 책임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학살이 아닌 전쟁 중 우연히 벌어진 비극적 참사에 불과하며, 터키 측에서도 다수 희생자가 발생했으며, 종교 갈등에 기인한 측면도 있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아르메니아 학살 추모관' 관장이자 역사학자인 하익 데모얀은 다른 분석을 내놓았다. 터키의 건국 영웅 케말 파샤와 그가 활동했던 민족주의 성향의 정치세력인 '젊은 터키당'이 '민족적으로 동질적인 터키'를 건설하기 위해 아르메니아인 등을 대상으로 '전쟁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터키는 현 자신들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대학살을 절대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터키의 주장은 마치 일본이 식민 지배는 정당한 절차에 따라 진행됐으며, 오히려 조선을 근대화하는 데 공헌했다는 주장과 다를 바 없다. 그 뿐만 아니라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서도 일본은 자발적 성매매라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펼치고 있지 않은가?

현재 터키에 의한 아르메니아 인종 학살을 공식 인정한 국가는 프랑스와 러시아, 그리스, 아르헨티나, 벨기에, 캐나다, 이탈리아, 우루과이 등 22개국이다.

그 명단에 홀로코스트의 희생자인 이스라엘도, 세계 최강대국 미국도 그리고 일제의 만행을 겪은 대한민국도 빠져있다.

거기에는 역사적 진실보다 국가적 이해관계가 더 우선이라는 냉혹한 현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르메니아와 적대 관계인 아제르바이잔의 석유에 의존하는 이스라엘, 터키를 러시아 견제 또는 극단적 이슬람 세력과의 싸움에서 교두보로 삼아야 하는 미국은 각자의 국익 때문에 눈감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터키와 역사적 관계, 그리고 아르메니아에 비해 터키가 갖는 월등한 무역 규모 등 국가 이익 앞에서 역사적 진실은 일단 뒤로 미뤄두고 있는 것이 불편한 진실이다.

아르메이아 학살 추모관에서 거창에서 온 중학교 선생님은 "여긴 다른 민족이 학살을 했지만 거창에서는 국군이 양민을 죽인 거 아닙니까?" 라며 우리 민족의 아픈 상처를 꺼내들었다.

거창 양민 학살 사건은 1951년 2월 10일, 6.25 전쟁 중에 공비 토벌작전 중이던 제11사단 9연대 군인들이 빨치산과 내통했다는 죄목으로 무고한 신원면 주민 570여 명을 다이너마이트와 총살로 학살한 사건을 말한다.

그러자 또 다른 대구에서 온 한 사장님은 노근리양민학살사건은 알고 있었는데 거창 양민 학살 사건은 처음 알았다고 했다.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을 다룬 영화 '작은 연못'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을 다룬 영화 "작은 연못"
ⓒ (유)노근리프로덕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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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근리양민학살사건은 1950년 7월 26일 미국 제1기병사단 제7기병연대 예하 부대가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경부선 철도 위에 한국인 양민 300여 명에게 기관총을 발사해 200여 명 이상이 숨진 사건이다.

이처럼 세계 곳곳 전쟁의 현장에서 결국 안타깝게 희생당하는 것은 민중들이기에, 그러한 비극을 막기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필요하다.

단지 힘을 길러 철저히 응징해야 한다는 논리는 또 다른 희생자를 낳는 악순환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과거사는 잊고, 현실의 이익을 생각해 미래로 나아가자 역시 무책임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최소한 진실을 규명하는 일, 그리고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는 일 그 후 무엇보다도 평화 공존을 합의하고 함께 만들어가는 일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형제국의 잘못을 잘못이라 말하고, 상처 입은 자를 위로하며, 진실 규명을 향해 연대하는 성숙한 대한민국을 희망한다.

덧: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종군기자로 산내학살현장을 방문해 영국 일간지 <데일리 워커>에 '나는 한국에서 진실을 보았다(I saw the truth in Korea)'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던 앨런 위닝턴(Alan Winnington, 1910~1983)의 부인 에스터 여사의 한국방문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70년만의 나들이>(감독 정진호)가 제작, 상영된다는 소식이다. 이 다큐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후원으로 제작됐으며, 유튜브 채널 '아는것이힘이다'를 통해 무료로 일반에 공개될 예정이다. 이러한 시민들의 노력이 전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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