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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운상가를 보면 거대한 루빅 큐브가 떠오른다. 겨우 한 면을 맞췄다 싶으면, 배열이 흐트러진 면을 발견하게 되고, 그 면들을 맞추려면 앞서 겨우 맞춘 배열을 다시 뒤섞어야 한다. 도시재생 4년, 나름 애써 맞춘 면을 내세우고 싶기도 한데, 지난 7월 30일 JTBC 뉴스룸에서 맞춰지지 않은 면들을 들추는 보도가 나왔다.

'다시 뜨는 세운상가의 속사정(링크)'이란 제목으로 기자는 세운상가 1단계 구간(종로에서 을지로 구간)의 여러 상인의 육성을 전했다. 요약하면 몇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도시재생을 한다지만 기존 상인들은 장사가 안 된다. 수많은 공실이 이를 증명한다. 둘째, 청년들은 저렴한 임대료를 지원받지만, 기존 점포는 임대료가 올랐다. 셋째, 시니어 기술자들의 기술이 홀대받는다. 그런데 지원받은 청년들 또한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다. 넷째, 협업이 많이 이뤄지지만 성과는 확실치 않다. 다섯째, 유명해진 식당으로 인해 주변에 불편을 끼치는 경우도 있다. 여섯째, 문전성시를 이룬 가게 옆엔 수도가 없어서 공실로 남아 있는 곳도 있다.
 
뉴스룸 방송 화면 지난 7월 30일 JTBC 뉴스룸에서는 '다시 뜨는 세운상가의 '속사정''이라는 제목으로 세운상가를 다뤘다
▲ 뉴스룸 방송 화면 지난 7월 30일 JTBC 뉴스룸에서는 "다시 뜨는 세운상가의 "속사정""이라는 제목으로 세운상가를 다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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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를 반박할 생각은 없다. 그보다는 모두 제각각인 것 같은 주장들이 어떻게 세운상가라는 루빅 큐브를 이루고 있는지, 그 헝클어진 단면들은 무엇을 맞추려다 틀어진 것인지, 이 단면을 맞추기 위해서는 또 어떤 단면을 건드려야 하는지 돌아보고자 한다. 가령 수도 설치 한 가지 이슈에도 다른 현안들이 얽히고설켜 있다. 가히 수도의 역학이라고 할 정도다. 대체 수도 놓는 일이 뭐 그리 대수라고 뉴스에 실리는 걸까?

수도가 놓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건물마다 편차가 있지만 주상복합인 세운상가군(세운, 청계, 대림상가)은 대체로 4, 5층부터는 아파트로 지어져 상하수도가 설치되어 있다. 반면 그 아래층은 상가로 이런 시설이 없다. 50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간간이 배관시설을 갖추고 음식점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지금 3층의 카페와 음식점이 바로 그런 곳으로 대략 7, 8곳에 불과하다. 그 외 3층의 업종은 음향기기 수리점이나 고무 바킹과 같은 재료상, 부품상들이 주를 이룬다. 3층 보행로 개선이 이뤄지고 최근 들어 이곳 음식점들이 성황을 이루자 부쩍 수도 설치에 대한 요구가 늘고 있다.

상상해 보자. 이곳에 수도가 놓인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3층에 자리한 고무 바킹과 음향 장비 관련 업소들은 조만간 카페에 밀려날 것이다. 당연히 이 문제에 대한 임대인과 임차인의 의견이, 고층부 아파트와 저층부 상가 상인회의 입장이 엇갈린다. 수도 설치 논의가 내부에서 탄력을 받지 못하는 이유다.

다시세운 프로젝트 내내 보행로 개선으로 과연 보행자가 얼마나 늘었냐는 질문을 수없이 받았다. 이를 생각하면 3층에 집객효과가 높은 업종으로 전환을 유도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그것이 기존 상인을 내모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으므로 신중할 필요가 있다.
   
뉴스룸 방송 화면 수도가 놓이면 업종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은 임차인의 의견이라고 보기 힘들다. 물론 자가소유 상인의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수도 설치는 대다수 임차인에게는 득보단 실이 많은 이슈다.
▲ 뉴스룸 방송 화면 수도가 놓이면 업종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은 임차인의 의견이라고 보기 힘들다. 물론 자가소유 상인의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수도 설치는 대다수 임차인에게는 득보단 실이 많은 이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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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실'이라도 괜찮다?

그렇다면 기사에 소개된 공실이 있는 3층의 임대료를 살펴보자. (아래 표 1 참조) 평당환산보증금으로 비교하면 음식점군의 임대료가 음향시설 점포를 웃도는 것으로 나온다.

그러나 한두 평의 소규모 점포들을 제외하면 대체로 비슷한 범위 안에 놓인다고 할 수 있다. 음식점들 대부분이 보행자가 크게 늘기 전에 들어섰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 임대료와 최근에 매물로 나온 공실들을 살펴보면 차이가 확연하다.
 
표1 공중 보행로와 맞붙은 3층 동쪽 점포 중 음식점과 음식점 인근의 타 업종 점포의 임대료를 비교해 보았다. (환산보증금 = 임대료x100+보증금) (조사 황예지)
▲ 표1 공중 보행로와 맞붙은 3층 동쪽 점포 중 음식점과 음식점 인근의 타 업종 점포의 임대료를 비교해 보았다. (환산보증금 = 임대료x100+보증금) (조사 황예지)
ⓒ 최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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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당환산보증금 비교 대체로 음식점의 임대료가 높은 것으로 보이지만, 2.5평 이하의 소규모 점포를 제외하면 기존에 있던 음식점과 음향시설 점포의 임대료는 비슷한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 평당환산보증금 비교 대체로 음식점의 임대료가 높은 것으로 보이지만, 2.5평 이하의 소규모 점포를 제외하면 기존에 있던 음식점과 음향시설 점포의 임대료는 비슷한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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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에 나온 공실에서 다시 10여m를 가면 20평 규모의 공실이 있다. 현재 이곳의 호가는 보증금 2000만원에 임대료 250만원이다. 평당환산보증금으로 치면 1350만원으로 다른 점포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수개월째 공실로 있던 이곳에 지난달 대기업 의류 매장이 입점하려고 했고, 소통방(도시재생지원센터)에서는 높은 호가가 실거래가가 되는 순간 초래될 상황에 대한 우려를 가감 없이 전했다. 결국 대기업은 입점을 철회했지만, 곧 다른 개인에게 임대되어 현재 인테리어 중이다.

공실일 망정 일단 호가를 높여 부르고, 무리한 호가에도 기어이 입점하려는 이들은 앞으로 더 많아질 것이다. 그리고 그 호가가 실거래가가 되면서 주변의 시세를 끌어올릴 것이다. 모순된 상황이지만 대부분 젠트리피케이션을 앓고 있는 지역이 보인 전조 현상이다. 그나마 '아직은'이라 할 수 있는 이유는 수도가 없기 때문이고, 누군가에게 불황의 상징처럼 보인 공실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로선 공실이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유력한 안전핀 구실을 하는 셈이다.

젠트리피케이션 대응이 젠트리피케이션을 부추겼다

도시재생은 임대인들의 기대심리를 부추기기에 알맞은 토양을 제공하고 있다. 워낙에 침체했던 곳이기에 달라진 환경 하나하나가 임대료를 올릴 핑계가 된다. 새로 생긴 엘리베이터도, 깨끗해진 화장실도 호가를 끌어올린다. 데크 보행로 위에서 옥외 영업을 할 수 있다는 미끼로 임대료를 올려 부르는 이들도 있다. 당연히 거짓이다.

관리청인 중구 외에는 누구도 그걸 허용할 권한이 없다. 심지어는 젠트리피케이션을 막기 위한 '소통방'의 활동이 부메랑이 되기도 한다. 기사에 손님이 많아 '옆 가게 입구'까지 침범하는 것으로 소개된 식당이 그런 예다.
 
뉴스룸 방송 화면 인터뷰엔 이웃의 성황을 함께 기뻐한다는 내용이 실렸다. 함께 고생한 동료로서의 의식일 것이다.
▲ 뉴스룸 방송 화면 인터뷰엔 이웃의 성황을 함께 기뻐한다는 내용이 실렸다. 함께 고생한 동료로서의 의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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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음식점은 왜 보도됐는지 모르겠다. 입구를 점유 당한 점포 사장님도 흔쾌히 이웃의 흥행이 기쁘다고 하지 않나? 사실 이곳의 오래된 상인들은 모두 내 일처럼 이곳의 흥행을 기뻐한다. 50년 세운상가 부침을 함께한 동료의식일 것이다. 그 어두운 시기를 견디고 도시재생으로 조금 허리를 펴나 싶었던 올 초, 이 음식점은 쫓겨날 위기에 처했고, 소통방이 임대인과 임차인을 중재해서 계약을 3년 연장할 수 있었다.

물론 대가는 비쌌다. 임대료를 두 배로 올려야 했다. 하지만 20년 전 세운상가가 잘 나갔던 시절에 비하면 딱 절반 수준이다. 무엇보다 지금 이곳은 세운상가를 대표하는 식당이 되어 충분히 감당할 만한 여력이 있다. 문제는 어떤 임대인들에게는 20년 전 시세를 되살릴 수 있다는 신호도 된다는 점이다. 둥지내몰림을 막기 위해 나선 결과가 다시 임대료 상승을 부추기고 있던 셈이다.

도시재생은 도시의 생태를 배우는 과정

종종 다시세운프로젝트의 중간 정산을 요구받으면 답하기 곤란한 이유가 이 때문이다. 공과 과의 경계, 시행착오와 통과의례의 경계에서 장담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지금은 모두가 도시의 생태를, 세운상가의 생태를 배워가는 중이다. 세운상가의 구성원들과 환경과 산업 그리고 도시가 어떻게 연결되어 서로 얼마나 영향을 주고받는지 배워가는 중이다. 행정과 센터의 활동가들만이 아니라 기존의 세운상가의 구성원들도 마찬가지다.

협업도 마찬가지다. 협업은 당사자들이 서로 어떤 역량이 있는지, 신뢰할 만한지 파악되어 있어야 가능하다. 도시재생 사업과 함께 젊은 기술자들을 세운상가로 초대한 지 이제 2년도 안 되지만 그사이 신구 기술인들은 서로에 대한 이해를 쌓아나가고 있다. 기사에 스치듯 지나갔던 메이커스 파티도 그런 시도의 일환이다. 월 1회, 신구 기술인, 상인, 예술인들이 스스로 마련한 메이커스 파티가 벌써 20회다. 그사이 모임에 참여한 이들은 '세운공장'이라는 협동조합 설립을 앞두고 있다. 시니어 장인들이 결성한 '수리수리 협동조합'에 이은 두 번째다.
 
메이커스 파티 홍보물 도시재생 사업으로 입주한 청년 스타트업들과 시니어 기술진, 예술인들의 모임이 매달 정기적으로 열리고 있다. 지난 7월로 벌써 20회에 접어든 메이커스 파티를 통해 친밀해진 이들은 '세운공장'이란 협동조합 결성도 앞두고 있다.
▲ 메이커스 파티 홍보물 도시재생 사업으로 입주한 청년 스타트업들과 시니어 기술진, 예술인들의 모임이 매달 정기적으로 열리고 있다. 지난 7월로 벌써 20회에 접어든 메이커스 파티를 통해 친밀해진 이들은 "세운공장"이란 협동조합 결성도 앞두고 있다.
ⓒ 최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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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불만 아래 도사린 불안

모든 사안에 대해 정산을 유예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비싼 과태료를 물지 않기 위해 지금 살펴야 할 고지서들도 있다. 기사에 등장한 상인들의 '불만' 아래에 비치는 '불안'이 그렇다. 어차피 기존에는 없던 지원들이다. 그 지원책이 새로 입주한 청년들에게 향하는 것에 불만과 박탈감을 느끼는 근원엔 도시재생이 새롭게 정의한 공간의 정체성에서 소외된 데에서 오는 상인들의 불안이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한다.

다시세운프로젝트는 '메이커 시티'를 표방하며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세운상가군의 업종을 조사하면 가전 등을 파는 유통이 70%를 넘는다. 그럼에도 20%에 불과한 기술인들에 밑줄을 그은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세운상가의 역사를 한국 메이커 문화의 원류로 봤고, 두 번째는 이미 온라인이 오프라인을 압도한 시장 상황에서 유통보다는 기술을 산업 재생의 주력으로 삼아야 한다는 포석이기도 했다. 한편 청계천 을지로 재개발로 새삼 그 가치가 부상된 을지로 제조업까지 고려하면 당연한 선택이었다. 현재 청계천 을지로 제조업 소공인들의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하는 것도 도시재생으로 초대한 젊은 기술자들이다.
 
뉴스룸 방송 화면  세운상가 전면엔 '메이커시티 세운' 글자가 선명하게 이곳의 비전과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다.
▲ 뉴스룸 방송 화면  세운상가 전면엔 "메이커시티 세운" 글자가 선명하게 이곳의 비전과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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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은 타당했지만, 문제는 대다수 상인은 새롭게 부여된 공간의 정체성이 전자 상가라는 수십 년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불안의 실체는 사실 없다. 지금까지 지원된 예산을 따져봐도 딱히 청년 기술인들에게 집중되었다는 근거도 없다. 상인들의 일상은 선풍기 박스 더미 사이에 촘촘히 박혀 있는데, '메이커 시티'라는 이상은 이들에게 너무 멀리 있지 않나 하는, 나의 기우다.

아직은 기우지만, 음식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임대료가 오르고, 결국 도시재생으로 발생하는 편익을 이들이 누리지 못하게 된다면 그 불안은 현실이 되고 말 것은 확실하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한 의도로 포장되어 있다

다시세운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4년이 지났다. 그 사이 어느 정도 성과도 있지만, 그 성과에 못지않게 해결해야 할 문제도 적지 않다. 그리고 그 문제들엔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얽혀 있다. 이해관계자 모두 제각각 나름의 맥락에서 선의와 욕망을 깔고 있다. 그 선의와 욕망이 결국 세운상가에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 그나마 반짝인 재기의 빛을 사그라지게 할 것인지는 누구도 선뜻 재단할 수 없다.

행정도 마찬가지다. 합리한 근거를 가진 기획이라고, 선한 의도에서 비롯된 기획이라고 과정과 결과를 담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배우고 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한 의도로 포장되어 있다고 하지 않나? 우리가 당면한 현실은 의도로 변명이 되지 않는다.

다양한 불만을 해소하는 길은 엉킨 실타래를 풀듯이 한 가닥 한 가닥씩 풀 수밖에 없다. 얼마가 걸릴지 모르지만, 그 지난한 시간을 견디게 하는 것은 신뢰뿐이다. 행정이 설정한 콘셉트를 도그마로 삼지 않으며, 도시재생을 정해진 시한을 채우는 프로그램, 프로젝트로 치르지 않으며, 콘셉트에 맞는 주민과 비주민을 나누지 않겠다는 신뢰가 있어야 저 다양한 불만들 아래 도사린 불안도 해소가 될 수 있겠다.

다시세운프로젝트를 비롯해 우리나라의 도시재생은 그 자체로 거대한 실험이다. 이 실험이 우리 사회에 지혜를 남기게 하기 위해서라도 이런 신뢰를 구축할 수 있는, 이런 경험을 축적할 수 있는 민관의 체계에 대한 고민도 함께 진행되었으면 좋겠다. 거기에는 언론이나 시민들의 역할도 중요하다.

도시재생의 성과로 통행량이 얼마나 늘었냐를 묻다가, 또 언젠가는 왜 기존 가게가 쫓겨났냐고 묻기도 했다. 그보다는 도시의 맥락과 시간표를 함께 고민할 수 있기를 바란다. 부끄러운 속내를 드러내면서도 이 글을 쓰는 이유도 그 고민을 함께 나누기 위해서다. 이번주 열리는 다시세운 시민협의회에서는 수도 설치 건이 안건으로 올라온다고 한다. 세운의 구성원들이 어떤 지혜로운 결정을 내리는지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

[관련기사] 을지로 LA갈비 골목에 무슨 일이 있었나(http://omn.kr/1jyo4)

*'다시세운 시민협의회'는 '17년 11월에 결성된 상인, 주민, 기술인 협의체이다. 다시세운 프로젝트의 주요 안건들을 서울시, 협업지원센터와 함께 논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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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은대학연구소 5소장. 도시재생 현장에서 코디네이터로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