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성산리 산성 주거지 모습 (사진제공=금강문화유산연구원)
 성산리 산성 주거지 모습 (사진제공=금강문화유산연구원)
ⓒ 박경미

관련사진보기

 
고대면 성산리와 석문면 통정리를 경계로 하는 성산리 산성이 한성백제 시대 당시 축조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이 산성은 백제가 고구려와의 전쟁을 대비해 쌓은 군사기지일 가능성이 새롭게 제기됐다.

성산리 산성은 성산리와 통정리 경계에 위치한 해발고도 67m의 야산 정상부에 자리하고 있다. 길이 239m의 소규모 테뫼식 산성(산 정상부를 둘러서 쌓은 산성)으로, 지난 4월부터 금강문화유산연구원에서 산성의 정확한 구조와 축성기법, 축조시기 등을 파악하기 위한 발굴조사를 진행해왔다.

지난 1일 금강문화유산연구원은 발굴현장에서 발굴조사 성과를 발표했다. 발굴현장에서는 삼족기, 굽다리접시, 시루 등 취사 및 생활용으로 사용한 토기류와 쇠도끼 등 유물이 약 200여 점 출토됐고, 성 내부에는 총 6기의 주거지가 확인됐다.

금강문화유산연구원은 "삼족기, 굽다리접시와 장란형 토기 등은 기존의 한성백제 유적에서 출토되는 유물들과 일치한다"며 "주거지는 한성백제 군사들의 군막으로 사용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성산리 산성은 성벽 축조방법과 출토유물을 통해 아산만 초입의 군사적 요충지에 자리한 한성백제의 최전방 전초기지였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특히 이 산성은 고구려와의 전쟁을 대비해 축조한 것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존에는 한성백제기 지방 산성들은 한성백제 세력이 마한의 여러 소국을 병합해 세력화 하는 과정에서 축조한 것으로 여겨졌다.
 
 성산리 산성에서 출토된 유물들 (사진제공=금강문화유산연구원)
 성산리 산성에서 출토된 유물들 (사진제공=금강문화유산연구원)
ⓒ 박경미

관련사진보기

 
그러나 성산리 산성에서 출토된 유물은 그 연대가 4세기 후반에서 5세기 전반으로 추정되는 만큼, 광개토대왕 재위기(391~412)를 전후해 고구려와의 전쟁에 대비, 전략적으로 축조한 해안 방어기지의 하나일 가능성이 새롭게 제기된 것이다.

이외에도 산성의 성곽은 나무기둥을 박아 고정시키고 흙을 번갈아 쌓는 목심 성토기법을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를 통해 금강문화유산연구원에서는 "성산리 산성은 전체적으로는 토성이지만 성벽 중심에는 석축을 구축해 석성에 비견될 정도로 짜임새 있고 견고하게 축성됐다"며 "백제시대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성곽 축조기법의 발달과정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볼 수 있다"고 전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당진시대>에도 실립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안녕하세요. 당진시대 박경미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