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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이 참을 수없이 메스꺼울 때가 있다. 지구상에 인간만큼 파괴적이고, 욕심 많고, 염치없고, 잔인한 동물이 또 있을까? 인간이란 모순 덩어리다. 똑똑한 것 같으면서도 멍청하고, 아름다우면서도 추하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나만 보더라도 그렇다. 내 안에는 적어도 수십 개의 자아가 있는 듯하다. 그중 어떤 것은 나를 좋은 쪽으로 끌고 가기도 하지만, 어떤 것들은 나를 주저 앉히고, 모든 걸 엉망으로 망쳐버리기도 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나는 과연 누구인가. 이 질문은 오랫동안 내 머릿속에 똬리를 틀고 괴롭힌다. 내가 나를 이렇게 괴롭히는데, 타인이야 말할 것도 없다. 사는 동안 항상, 매일, 사람에게 상처받고, 스트레스 받는다. 나도 인간이지만, 인간이란 참으로 알 수 없는 존재이기에, 인간을 다룬 글들은 언제나 나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내가 소설을 읽는 이유이기도 하다. 소설 속에는 현실에서는 가까이 들여다볼 수 없는 다양한 인간 군상이 있고, 그 인간들을 관찰하는 작가의 관점이 있다. 작가가 묘사한 소설 속의 인물들을 보면서 그들의 감정과 행동을 이해하고, 그 속에서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렇게 인간을 이해하는 법을 배운다.

최근에 꽤 묵직한 책을 한 권 읽었다. 분량이 920페이지에 이르는 '벽돌책'이다. 요즘같이 짧고 가벼운 글을 선호하는 시대에 이런 중량감 넘치는 책이라니. '무슨 할 말이 이렇게 많았을까. 이걸 언제 다 읽지.'

읽기 전의 마음은 무거웠으나, 한편으로는 반드시 읽어내고 싶다는 마음도 들었다. '이 두꺼운 책을 다 읽고 나면 엄청 뿌듯할 거야. 1000쪽에 가까운 책을 읽어내면 이제 웬만큼 두꺼운 책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게 되겠지?' 무엇보다 제목이 <인간 본성의 법칙>이지 않나. 읽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인간 본성의 법칙>, 로버트 그린 지음, 이지연 옮김, 위즈덤하우스(2019)
 <인간 본성의 법칙>, 로버트 그린 지음, 이지연 옮김, 위즈덤하우스(2019)
ⓒ 박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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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본성의 법칙>은 버클리의 캘리포니아 대학교와 위스콘신 대학교에서 고전학을 전공한 로버트 그린의 신작이다. 그의 전작 <권력의 법칙>, <유혹의 기술>, <전쟁의 기술>은 모두 전 세계적으로 200만 부 이상 판매된 베스트셀러다. 이번에 나온 <인간 본성의 법칙> 그의 전작들을 아우르는 근원적인 주제로, '철저한 증거에 기초한 500만 년에 걸쳐 형성된 인간 본성에 관한 완벽한 탐구서'다.

로버트 그린은 <인간 본성의 법칙>에서 인간의 본능적인 특성을 18가지로 분류하고 풍부한 역사적 인물들의 사례를 들어 '특정 행동의 패턴을 만들어내는 우리 내면의 법칙'을 설명한다. 심한 자기도취자의 특징을 보여준 톨스토이 부부와, 시기심이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많이 바꿔놓는지를 보여주는 <프랑켄슈타인>의 작가 메리 셸리의 이야기가 특히 흥미롭다.

우리는 모두 자신이 남들보다 이성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의 말에 따르면 인간은 기본적으로 감정적인 동물이고, '이성'은 우리 안에 있는 본성이 아니라 끊임없는 훈련과 연습을 통해 습득하게 되는 능력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우리가 '비이성적'이라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 나의 부정적인 감정들이 폭발했던 상황들을 떠올려 보고, 나의 이런 '심리적 방아쇠'가 무엇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지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인간이 이토록 진보했으니 그 과정에서 어떻게든 이 감정적 자아를 잘 길들이지 않았겠냐고 믿고 싶은 사람도 많을 것이다. 어쨌거나 우리가 선조들만큼 폭력적이거나 육욕에 휘둘리거나 미신을 믿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착각이다. 진보나 기술이 우리의 본성을 바꿔놓지는 않았다. 기술과 진보는 그저 감정의 형태와 그에 따른 비이성적 행동의 유형을 바꿔놓았을 뿐이다. (50쪽)

한 인터뷰에서 로버트 그린은 '당신은 인간의 본성이 기본적으로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우리는 우리가 인간이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우리가 실제로 동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동물적인 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간이 되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깊게 묻혀 있고, 뿌리 깊은 동물적인 본능을 극복해야 인간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이 본능은 우리가 자신의 감정을 통제할 수 없는 것처럼, 통제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는 이 책에서 지난 100년간 축적된 방대한 심리학 자료, 과학 분야와 철학자들의 연구, 소설가들의 통찰 등을 한데 모아 '인간이라는 종을 잔인할 만큼 현실적으로 평가'한다. 나를 피곤하게 하는 사람들의 숨겨진 의도와, 때때로 그들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파멸로 이끌기도 하는 본질적인 성격적 특징과 행동 패턴을 파악해 그들로부터 나를 지키는 법을 제시한다.

저자가 이 책에서 제시하는 방법들은 굉장히 실용적이어서, 우리도 일상에서 충분히 연습해 볼 만하다. 저자도 반복해서 강조했듯이 인간의 본성을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나와 타인에게 적용하는 연습이 중요한 것이다. 운동하는 방법을 담은 책을 읽는다고 나의 근육이 단련되는 것이 아니라, 책에서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몸을 움직여 꾸준히 운동을 해야 근육이 단련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책의 저자 역시 통제 불가능한 반복적인 패턴에서 자유롭지 않은 인간이다. 그는 책을 쓸 때마다 항상 자기 자신과 약속을 한다고 한다. '이번에는 정말 짧게 써야지. 건강을 해치지 말아야지. 연구에 너무 몰입하지 말아야지.' 하지만 그 역시 항상 같은 과정을 반복했고, 그 패턴을 깨뜨릴 수가 없었다고 한다.

이런 성격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DNA에 내재된 것일 수도 있고, 성장해가면서 선생님이나 멘토 등 우리가 우리 자신을 바라보는 특정한 인식을 만드는데 영향을 미친 다양한 사람과의 관계에서 형성되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실처럼 얽힌 여러 요소들을 하나하나 풀어나가는 것은 어쩌면 평생이 걸릴지도 모를 숙제가 될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중간중간, 책장을 덮고 '나는 어떤 사람인가' 깊이 생각해보는 시간이 많았다. 불쑥 불쑥 튀어나오는 나 자신의 이해되지 않는 행동들, 통제하기 힘든 부정적인 감정들은 어디서부터 나오는 걸까. 나는 언제 화가 나는가? 사람들로부터 관심과 인정을 받고 싶은 이 끝없는 갈증은 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나를 지배하는 주된 감정은 무엇인가. 생각보다 쉽지는 않았다. 괴롭기도 했다. 하지만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과정일 테다.

오늘부터 당장 노트에 '감정 일기'를 적어보기로 했다. 오늘 하루 동안 나를 지배한 감정은 무엇인지, 그 감정은 나의 어떤 성격에서 기인한 것인지 최대한 솔직하게 적어보려 한다. 가능하다면 주변 사람들이 보이는 감정을 관찰해 기록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기록이 쌓이면 나에게 꽤 의미 있는 데이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저자의 말대로 '인간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우리의 목표는 그저 상대의 입장을 더 잘 이해하는 것이다. 이 연습은 마치 근육과 같아서 연습을 하면 할수록 더 강한 힘을 낼 것이다.' <인간 본성의 법칙>은 만만치 않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막힘없이 술술 읽힌다. 로버트 그린의 매끄러운 문장들 속에는 '번쩍' 하고 뇌리에 꽂히는 깊은 통찰이 담겨 있다.

짧은 글에 익숙해진 독자들은 이 책의 두께가 부답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문장이 난해하지 않고 흥미로운 인물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들도 가득 담겨있으니 한 번쯤 여유를 갖고 천천히 읽으며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겠다.
 
광기를 저지르고 싶은 이 갈망은 우리와 평생을 함께한다. 바닷가 열길 낭떠러지 위에서 혹은 고층 빌딩 위에서 함께 서 있던 누군가를 갑자기 밀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자책이 따라올 것을 알면서도 사랑하는 이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또 어떻고? 우리의 존재 자체가 내 안의 어두운 힘에 대항하는 투쟁에 다름 아니다. 산다는 것은 가슴과 영혼 속 거인들과의 전쟁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해 찧고 까부는 일이다. (383쪽, 헨리크 입센의 말 재인용)
 

인간 본성의 법칙

로버트 그린 (지은이), 이지연 (옮긴이), 위즈덤하우스(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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