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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집에선 엄마, 밖에선 교사다. 교사 정체성만 갖고 있을 땐 도도하고 당당했다. 무슨 일을 시켜도 하면 되지 세상에 어려울 것 없었다. 결혼은 27살에 하고 아이는 5년 후에 가졌다. 결혼해서 겨우 자유로워졌는데 아이가 생겨 얽매이기 전에 맘껏 자유를 만끽하며 놀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엄격해서 대학 때도 밤 9시가 통금이었다. 집에서 탈출하려고 결혼한 건 아닌데 결혼하니 자유를 얻은 건 맞았다. 딱 아이가 태어나기까지만 그랬다. 출산 휴가가 끝나고나서부터 직장에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서럽고 좀 억울했으나 표현하지는 못했다. '다 그러고 살아, 유난스럽게 굴지마'라는 말이 어디선가 들렸기 때문이다.

아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게 되었을 때는 담임을 맡게 될까 봐 미리 학교에 앓는 소리를 해야 했다. 고등학교에 근무할 당시 담임은 아침 자습과 야자(야간 자율학습) 감독을 해야 했는데 특히 3월엔 분위기를 잡아야 한다고 당번 없이 매일 10시까지 남아 지도했다. 담임 빼달라는 말을 하는 게 구차하고 모자란 사람이 된 것 같아 자존심 상했지만 도도하게 굴었다간 일상이 망가지게 생겼는데 어쩔 수 없었다.

아들이 4살인 2007년엔 토요일에도 학교에 수업이 있었다. 어린이집이 끝나 아들을 데리러 가보면 우리 아들만 등원해서 선생님과 둘이 있었다. 간식이라며 전날 먹다 남은 딱딱한 백설기 덩어리를 쪽쪽 빨아 녹여먹는 걸 보고 눈에 불이 번쩍 켜졌지만 대안이 없었다. 따졌다가는 빈정 상한 어린이집에서 토요 등원인원이 적어 운영을 안 하겠다고 하면 곤란한 건 나뿐이니까.

엄마이자 교사라 나는 자주 모순과 혼란 속에 빠졌다. 직장인이니까 아이를 일찍 맡길 수 있고 늦게 데려올 수 있는 보육과 교육기관이 필요했지만 그곳이 내 학교라면 얘기가 달랐다. 학교가 일찍 시작하고 늦게 끝나면 내 아이 돌보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대학 선배가 자기가 KBS뉴스에 나왔다며 자랑을 하기에 찾아 본 일이 있다. 서울의 어느 초등학교가 돌봄 방과후를 밤 9시까지 운영한다는 보도기사였다. 맞벌이 부부인데 늦은 시간까지 어린 자녀를 안심하고 맡길 수 있게 되어 기쁘다며 자기 아이를 덥석 안아 올려 환하게 웃는 선배 얼굴이 클로오즈업 되었다.

나는 선배와 같이 웃을 수 없었다. 직장이 일찍 끝나면 될 텐데 학교가 늦게까지 업무를 늘려야 하다니 앞뒤가 바뀐 것 아닌가. 전국의 직장을 다 일찍 끝내게 하려면 오래 걸리겠지만 학교가 늦은 방과 후를 운영하면 실적도 되고 부모들은 당장엔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학교에서 '돌봄 방과 후 9시' 업무는 엄마교사가 맡기 너무 부담스런 일이다. 나머지 교사도 좋아할 리 없다. 그러니 동료의 눈치를 보며 미안해하는 일도, 사정을 구구절절 설명하며 아쉬운 소리하는 구차함도 엄마교사의 몫이 된다.

학생들에게 낮 동안 친절하게 상담하고 가르치다 집에 오면 에너지가 고갈되어 내 아이가 묻는 말에는 짜증과 신경질을 내며 함부로 대할 때가 많다. 내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는데 직장에서 힘을 다 쏟고 왔으니 집에 오면 넉다운 상태인 건 당연했지만 아이한테 미안하고 남의 자식 잘 키우려다 내 자식은 뒷전인 것 같아 씁쓸했다.

새 학년 첫 시험을 앞둔 반 아이들을 응원하고 싶어 '시험 잘 보는 약봉투'를 만들기도 했다. 색색의 젤리와 약국에서 주는 칸막이 약봉투를 사서 칸마다 젤리를 나눠 담고, 포장해서 복약지도까지 적어 넣었다. "하루에 한 봉씩 복용할 것. 효과를 믿는 사람에게만 효험이 나타남. 기억력 쑥쑥약, 찍으면 다 맞는 약, 스트레스 풀리는 약 등등" 반 아이들에게 쏟는 정성의 반만이라도 아들에게 전해줬으면 세상 다정한 모자간이 되었을 텐데. 아들과 내가 필요한 말만 하는 무뚝뚝한 사이인 게 내 책임 같다.

자식 또래의 아이들과 늘 생활한다는 특수성 때문에 엄마교사는 교사로서 하는 행동을 자식 대할 때와 자동 비교하기 쉬운 환경에 놓여있는 것 같다. 같은 행동을 학생이 했을 때 내게 일어나는 감정과 아들이 했을 때 생기는 감정이 다를 때면 나는 죄의식을 느낀다. 내 자식과 남의 자식에게 느끼는 심정이 같지 않은 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하다가도 내 자식은 귀하게, 남의 자식은 소홀히 여기는 것 같아 교사로서 죄악이라는 마음이 든다.

가령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내 인생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상관 말라면서 탱자탱자 노는 학생을 보면 안타깝기는 하지만 그래 네 인생이지 하며 마음이 쉽게 놓인다. 같은 반응이 내 아이에게서 나오면 불안과 걱정이 화학 반응하여 화로 폭발한다.

때로는 엄마의 강한 애착이 오히려 아이를 망치기도 한다는 걸 알지만 학생들에 대해 애착이 약한 건 교사로서 자격 미달이라는 생각도 함께 있다. 엄마들이 학교에 인사 와서 '자식처럼 생각해주세요' 한다거나 옆 반 담임 선생님이 자기반 애들을 '아들~, 딸~'로 호칭할 때면 나는 우리 반 애들을 자식처럼 느끼고 있나? 아니라면 교사자격이 없는 건 아닐까? 의심했다가 그런 논리에 반발심이 들었다가 널을 뛰었다.

엄마와 교사. 두 역할은 서로 다르고도 같아 겹치고 엇갈리면서 엄마 역할, 교사 역할이 분리되지 않는 데서 오는 괴로움까지 얹혀 있다. 돌봄 노동이 여자에게 기울어져 부과되는 문제, 노동 시간이 과다해 가족과 함께 하는 저녁이 없는데 책임은 각자 개인이 져야하는 우리나라의 노동현실 속에 상대적으로 애 키우기 좋다고 알려진 엄마 교사도 예외일 수 없다.

아빠 교사는 어떨까? 학교에서 아침 일찍 시작하거나 밤늦게 끝나는 업무가 주어질 때 '육아' 때문에 곤란하다고 얘기하는 아빠 교사를 본 일이 별로 없다. 아빠 교사의 집에서 돌봄의 몫은 여전히 여자 쪽으로 기울어 있음을 보여준다.

아이 키우는 워킹맘이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겪는 어려움과 고통은 직종을 가리지 않고 융탄 포격을 맞는다. 엄마 교사는 출퇴근 시간과 육아휴직 후 돌아올 자리가 지켜진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여건이 낫다. 더 열악한 상황에 있는 워킹맘들에게는 엄마 교사의 애환을 드러내는 일이 배부른 소리로 들리지 않을까 조심스럽다.

힘들어도 힘들다고 얘기하는 일이 나보다 더한 누군가를 떠올리면 미안해진다. 미안한 건 사실이지만 감정과 분리해서 좀 더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적정 근무시간을 지키고, 필요할 때 육아휴직을 하는 것은 권리이자 인권이다. 특권이 아니라 공공재이다. 더 많은 노동자들이 눈치 보지 않고 권리를 편안하게 누릴 수 있게 바뀌는 것이 우리가 가야할 방향이 아닐까.

여유와 틈이 많은 사회를 상상해본다. 아빠도 엄마만큼 육아에 책임감을 갖고 정성을 다하는 모습이 자연스러운 문화, 아이들 등하교(등하원) 시간이 부모의 출퇴근 시간과 같게 제도화된 나라, 저녁이면 상점이 다 문을 닫아 누구나 집에서 충분히 쉰 다음 일을 시작하는 나라를. 단지 나만의 상상으로 끝나기 않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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