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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 주재한 나경원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26일 오전 국회에서 원내대책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회의 주재한 나경원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26일 오전 국회에서 원내대책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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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31일 오후 1시 57분]

친일청산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려는 이들이 적지 않다. 사활을 걸고 친일청산에 제동을 걸다가도, 이따금 엉뚱한 사안을 들고 나와 '이것도 친일 아니냐?'며 따지는 이들이다.

25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내표도 그런 사람들로 비칠 만한 발언을 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가 친일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2020년 총선을 위한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저희가 묻고 싶어요. 친일파 후손들은 민주당에 더 많더라구요. 한번 쭉 불러볼까요? 제가 이름을 다 불러드리고 싶지만, 한번 찾아보십시오. 우리 자유한국당에는 이런 친일파 후손이라고 불릴 만한 분들이 없으시고요. 찾아보면 아마 숫자로 10:1 정도 될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 부분, 또 문재인 대통령, 그렇게 따지면 친일파 후손의 재산환수 소송, 국가를 상대로 한 재산환수 소송 변호사도 하셨더라고요. 아마 우리 쪽의 어느 의원이 그랬으면, 지금 그분은 친일파로 매장돼서 국회의원 출마도 못하실 거예요."

국가를 상대로 재산환수 소송를 제기한 친일파 후손을 문재인 대통령이 변호한 일이 있으므로, 문재인 정부도 친일 문제에 약점이 있는 게 아니냐는 발언이다.

나경원 발언의 기원, 곽상도 발언
 
'김학의 사건' 수사외압 행사 의혹받는 곽상도 의원 박근혜 정부 시절 민정수석이었던 곽상도 자유한국당 의원이 2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 참석해 나경원 원내대표의 공개발언을 듣고 있다.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는 전날 '김학의 전 차관 성범죄 의혹 사건'과 관련해 김 전 차관의 수뢰 혐의와 박근혜정부 청와대의 수사외압 의혹에 대한 재수사를 권고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문재인 대통령 친일 연루" 발언의 근원은 곽상도 의원이다. 사진은 지난 3월 원내대책회의에 참석해 나 원내대표의 발언을 듣고 있는 곽 의원의 모습.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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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방송에서 나경원 원내대표는 그 친일파가 누구인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에 관한 구체적 발언은 지난 3월 15일 자유한국당 의원총회 때 곽상도 의원한테서 나왔다. 곽상도는 이렇게 말했다.

"동양척식주식회사 직원으로 입사해서 부를 축적한 김지태의 유족들이 1987년 국가 상대로 제기한 법인세 취소소송에서 문재인과 노무현 대통령이 나서 전부 승소하여 국가로부터 117억 원 돌려받았다. 친일파 재산은 국고로 환수해야 하는데 국가가 졌다. 유족들이 상당한 도움을 받지 않았겠나. (...중략...) 노무현 대통령, 문재인 비서실장 재직 시절 김지태를 친일·반민족 행위자 명단에서 빼줬다. 누가 친일파인지 모르겠다."

곽상도가 말한 '법인세 취소소송'은 실은 '상속세 부과 취소소송'이다. 또 '1987년'이 아니라 '1984년'이다. 그의 주장을 사실에 입각해 정정하면, '친일파 김지태 유족이 1984년에 제기한 상속세 부과 취소소송에서 노무현·문재인 변호사가 소송대리인으로 나서서 상속세 117억 원을 납부하지 않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는 것이 된다.

여기 거명된 김지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인생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인물이다. 소년 노무현에게 장학금을 주었을 뿐 아니라 존경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유시민 전 장관이 정리한 노무현 자서전 <운명이다> 제1부에 '은인 김지태 선생'이란 소제목이 있다.
 
"나는 부일장학회를 운영한 부산일보 사장 김지태 선생을 평생 존경했다. 그는 무려 25년 동안 부산상고 동창회장을 맡아 모교 발전과 인재 양성에 헌신했다. 나는 중학생 때 부일장학금을 받았고 부산상고에서도 동창회 장학금을 받았다. 둘 다 김지태 선생이 만든 장학회였으니 그분이 내 인생에 디딤돌을 놓아준 은인이었던 것이다."
 
소년 노무현이 존경한 김지태가 친일파였다는 주장이 곽상도 의원의 발언의 근간이다. 그리고 그 발언을 이어받아 나경원 원내대표가 '친일파 후손의 재산환수 소송을 문재인 대통령이 변호했다'는 말을 했던 것이다.

친일인명사전에도 없는 입증되지 않은 주장

그런데 김지태가 친일파였다는 주장은 입증되지 않았다. 일제 강점 2년 전인 1908년 부산 좌천동에서 출생한 그가 부산공립보통학교 및 부산제2상업학교(지금의 부산상고)를 졸업한 뒤, 곽상도 의원의 말대로 동양척식주식회사에 입사했던 것은 사실이다. 이 부분에 관해 2004년 5월 10일자 <부산일보> 기사 '[부산 경제 야사] <23> 인물편 김지태 ① 광복 이전 기업 활동'은 이렇게 설명한다.
 
"1927년 그의 나이 20세 때 동양척식주식회사(이하 '동척') 부산시점에 입사했다. 그 시절 그는 정공단(鄭公壇) 옆에 부산정묘학교란 야간학교를 설립하여 불우청소년들을 모아 교사 노릇을 하기도 했다. 그때 과로한 탓이었을까. 동척 재직 중 폐결핵에 걸려 5년 만에 회사를 그만두면서 그 회사 울산농장의 땅 2만 평을 10년 분할상환 조건으로 불하받았다. (...중략...) 2년여에 걸친 투병 생활 끝에 병세가 호전되자, 이 농장을 바탕으로 1934년 부산진직물공장을 인수하여 기업인으로서 첫 출발을 했다."
 
동양척식주식회사는 일본이 조선을 착취할 목적으로 1908년 설립한 회사다. 김지태가 출생한 해에 세워졌던 것이다. 그는 만 19세 되던 해에 이 회사 부산지점에 입사해 5년 뒤 퇴직했다.

그가 졸업한 부산제2상업학교는 지금은 고등학교이지만 당시에는 중학교였다. 당시로서는 약간 높은 학력의 소유자인 중학교 졸업자가 만 19세에 동척 부산지점에 입사했다. 동척 간부가 아니라 하급 직원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동척은 우리 민족을 착취한 기구였다. 의식이 있는 청년이었다면 들어가지 않았을 회사다. 하급 직원으로 일했다 해도 떳떳한 일은 못 된다. 하지만 떳떳하지 못하다 하여 곧바로 친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동척 근무 자체가 지금 우리 사회가 말하는 '친일'의 범주에 들어가지는 않기 때문이다.

김지태란 이름은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도 없고,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자 1006인 명단'에도 없다. 이는 그가 친일 지도자 위치에 있지도 않았고, 적극적 친일행위를 하지도 않았음을 의미한다. 우리 사회의 친일청산 요구가 향후 어떤 수준으로 발달할지 아직 확단할 수 없지만, 적어도 현재까지의 국민감정으로 볼 때 그는 친일파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다.

김지태는 현재까지의 친일파 범주에 들지 않을 뿐 아니라, 친일행위로 부를 축적하지도 않았다. 곽상도 의원은 그가 '동척 직원으로 입사해 부를 축적했다'고 말했지만, 사실이 아니다. 공공기관 말단 직원이 5년 만에 정상적 방법으로 부를 축적할 수 있는 사회는 이 지구상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봉급 생활자한테 그런 행운이 쉽게 주어지겠는가.

그가 부자로 살 수 있었던 것은 위 <부산일보> 기사처럼 동척 퇴직 뒤 사업을 경영했기 때문이다. 사업을 통해 본인이 불린 재산이 그의 부를 이루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재산과 관련된 소송에 변호인으로 참여했다고 해서, 그것을 친일로 몰아세우는 것은 별로 타당하지 않다. 

한국당이 먼저 입증해야 할 2가지
 
 '국가정보원 과거사 진실규명위'의 우선조사 대상에 포함된 '부일장학회 강제헌납 및 경향신문 강제매각 사건(정수장학회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40여년간 뛰어왔던, 고(故) 김지태(당시 부일장학회 이사장)씨의 장남 김영우씨가 2005년 2월 3일 오후 서울의 한 사무실에서 작고한 아버지의 흉상을 바라보고 있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 40여년간 뛰어왔던, 고(故) 김지태(당시 부일장학회 이사장)씨의 장남 김영우씨가 지난 2005년 2월 3일 오후 서울의 한 사무실에서 작고한 아버지의 흉상을 바라보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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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재산과 관련된 소송이 친일과 연관된다고 주장하려면, '김지태가 친일파'라는 것과 '김지태가 친일행위로 돈을 벌었다'는 두 가지가 우선 입증돼야 한다. 곽상도 의원의 주장에서도, 나경원 원내대표의 주장에서도 그런 입증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사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김지태를 친일파로 몰아세우는 것은 너무 심한 일이다. 왜냐하면, 한국당의 뿌리를 파고 들어가면, 이 당이 김지태에게 크나큰 채무를 지고 있기 때문이다.

1960년 5·16 쿠데타 직후 박정희 군사정권은 김지태가 소유한 부산일보와 한국문화방송 주식을 빼앗고 그가 설립한 부일장학회를 5·16장학회로 바꾸었다. 5·16장학회는 나중에 박정희의 '정'과 육영수의 '수'를 딴 정수장학회로 개칭됐다. 이 장학회 자금 일부가 박정희당으로 들어가고, 그것이 10·26 사태 이후 그 자녀들에게 넘어갔다는 점은 잘 알려진 일이다.

김지태는 부정축재자로 몰려 부일장학회 등을 빼앗겼다. 박정희 정권의 피해자였던 것이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자기 당의 뿌리인 박정희 정권한테 피해를 입은 김지태를 친일파로 몰아세우는 것은 적반하장이라고 평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당 의원들이 부일장학회 문제의 가해자이자 진짜 친일파인 박정희의 친일행위는 문제 삼지 않으면서, 피해자이자 비(非)친일파인 김지태를 친일파로 몰아세우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다. 이는 자유한국당이 친일청산에 대한 의지가 없음을 보여준다. 그런 의지도 없으면서 '김지태 친일'을 운운한다면, 그 동기가 다른 데 있다는 판단이 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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