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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린
 하린
ⓒ 이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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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갇혀 있다
내가 나를 본다
죽어간다. 내가
슬프고 비참한데
끝까지 눈, 감을 수 없다

- 하린 디카시 <수족관 몽夢>
 
자연이나 사물에서 스마트폰 디카로 시적 형상을 포착하고 언술하는 데 있어서 영상과 문자의 관계성이 텍스트성을 구축한다. 수족관에 죽어가는 물고기를 보면서 화자는, 아니 시인은 물고기에게서 시인 자신의 실존을 직시한다.

수족관에 갇혀 죽음을 기다리는 물고기는 지구별 속으로 던져진 화자 자신을 투영하는 것이다. 수족관에 갇힌 물고기와 그것을 응시하는 화자 혹은 시인은 더 이상 구분되지 않는다. 화자의 말은 물고기의 그것이고 물고기의 말은 화자의 그것이다.

이런 전제 하에서 이 디카시의 언술은 대단히 패러독스해진다. "내가 갇혀 있다"는 언술은 물고기와 화자의 똑같은 실존이다. 화자와 물고기가 동일성을 획득하고 있기에 물고기와 화자를 구분할 수 없지만, "내가 나를 본다"라는 언술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이 언술은 화자가 물고기를 본다는 의미다. 화자는 화자 자신의 실존인 물고기의 비참한 처지를 직시한다. 이 진술에서 화자는 수족관의 갇힌 물고기의 실존이 바로 자신의 그것임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내가 나를 본 결과 내가 죽어간다는 것이다. 죽어가는 내가 슬프고 비참하지만 끝까지 눈을 감지 않고 정면 대응하는 것이다.

이 디카시의 제목은 '수족관 몽夢'이다. 왜, 수족관 꿈이라고 했을까. 드넓은 바다에서 어쩌다 포획당하여 수족관으로 옮겨져 누군가의 횟감으로 전락한 물고기의 처지는 현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슬프고 비참한 것이다. 꿈인지 생시인지 스스로 꼬집어 봐야 할 만큼 극적이다. 현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비현실적인 상황이다. 이건 차라리 꿈이라고 치부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너무한 참혹한 상황인지라 현실로 받아들일 수는 없어 이건 꿈이라고 현실을 도피하는 모양새로 읽어도 좋을 법하다. 역설적으로 내가 갇혀 있고 죽어간다는 사실, 슬프고 비참한 실존을 눈을 감지 않고 직시한다는 것은 꿈과 같지만 자신의 현실이라는 통절한 자기 인식이라 할 수도 있다.

죽음이라는 수족관에 갇힌 존재

이 디카시는 생의 거품을 모두 걷어낸 비극적인 실존을 정면 응시하는 것이다. 인간은 낙원에서 추방되어 죽음이라는 수족관에 갇힌 존재로 태어난다. 죽음이라는 수족관에서 설령 꿈을 꾼다 해도 아무도 벗어날 수가 없다.

그럼 우리는 누구에게 무릎을 꿇어야 하는가?

덧붙이는 글 | 디카시는 필자가 2004년 처음 사용한 신조어로, 디지털카메라로 자연이나 사물에서 시적 형상을 포착하여 찍은 영상과 함께 문자를 한 덩어리의 시로 표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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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디카시연구소 대표로서 계간 '디카시' 발행인 겸 편집인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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