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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결혼을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는 참 잘 지은 제목이다. 너무 추상적이어서 책의 내용을 짐작할 수 없는 것도 아니고, 너무 가벼워서 속이 보이지도 않고, 너무 직선적이어서 상술이 보이는 것도 아니다. 제목도 그렇고, 표지에 있는 '시집가라는 잔소리 때문에 제 영혼이 아주 너덜 너들 합니다'라는 말풍선만 보아도 굳이 읽지 않아도 무슨 내용의 책인지 짐작이 된다. 나와 혈연관계가 아닌 성인이 결혼을 하건 이혼을 하건 관심도 없고 한 마디도 보탤 생각이 없다. 타인의 출산 문제는 더욱 그렇다. 

결혼이나 페미니즘 또는 성별의 역할과 관련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라든가 '나 혼자 잘 산다'는 류의 책을 읽지 않는다. 그런 책을 쓴 사람이 선택하고 좋아하는 삶을 존중하지만 관심도 없기 때문이다. 간혹 배타적인 원망이나 조소가 담겨 있는 것으로 예상되는 책은 더욱 기겁하는 편이다. 타협이나 대화의 여지가 없는 주의나 화자를 멀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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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빛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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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결혼을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는 제목은 배타적인 주장이나 불특정 다수에 대한 반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독자로 하여금 어떤 '속사정'이 있는 것인지 호기심을 자아낸다. 제목 그대로 결혼 제도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대를 주장하지는 않는다. 제목을 보자마자 바로 주문을 해서 도착한 책을 단숨에 읽었다.

직접 확인한 저자가 결혼을 하지 않는 속사정은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결혼을 해서 남들처럼 살고 싶지만 결혼하고 싶었던 남자들이 나와 결혼을 하지 않았을 뿐'이란다.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렇다고 연애 실패담과 그동안 겪었던 '찌질이 열전'을 부모에게 구술할 수는 없잖은가? 아무리 부모자식관계라도 말 못할 속사정이 있는 법이다.

우리 부부는 무남독녀인 딸아이를 고등학교 3년 동안 학교에 데려다 주고 마치면 데리러 갔었다. 학교 정문이 아닌 학교와 붙어 있는 성당 앞에 내려다 주고 데려왔었다. 그쪽이 좀 더 편리했기 때문이다. 그 성당은 학교 안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어서 딸아이도 그게 편하다고 했다. 아침엔 딸아이의 뒷모습을 보면서 안쓰러워했고 밤에 데리러 갈 때는 반가웠고 함께 아이스크림을 사 먹는 것이 지금 생각해보니 큰 즐거움이었다. 

딸아이의 졸업식에 우리 부부는 나란히 성당으로 갔다. 딸아이가 우리 눈에서 매일 사라지던 그 성당 길을 걸어서 학교 안으로 들어가려했다. 성당 입구 쪽으로 걸어가는데 순간 당황했다. 성당에서 지그재그 형태로 아주 좁은 길이 나 있었고 그 길을 따라 한참을 걸어야 겨우 교정에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길은 우리 부부가 매일 딸아이의 뒷모습과 앞모습을 보았던 성당 앞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순간 눈물이 왈칵 나오려는 것이었다. 3년 동안 딸아이는 우리 부부가 모르는 또 다른 좁은 길을 걸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우리 부부가 학교에 도착했다고 생각한 그 시간에 딸아이는 그 좁은 길을 눈을 맞으며 걸었을 터이고, 바람을 이기며 걸었을 터이고, 매서운 추위에 옷을 여미며 걸었을 터였다. 입시 결과가 발표되면서 초반에 여러 대학에 잇달아 불합격하면서 학교에 가기 싫다던 딸아이는 그 길을 혼자 걸으면서 얼마나 괴로웠을까를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졌다.

고등학교 시절 자주 방 안에 틀어박혀 말도 하지 않고, 짜증을 자주 냈을 때 우리 부부는 내심 섭섭했더랬다.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는데 딸아이는 고등학교 2학년 시절에 이미 학업 엄청난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고 한다. 우리 부부는 그런 속사정도 모르고 그저 짜증을 내는 딸아이를 걱정하고 적당히 눈치만 보았었다. 

이제 겨우 20살이 된 딸아이도 부모가 모르는 속사정이 많은데 30대를 넘긴 이주윤 저자는 오죽하겠는가? 역시 기대한 대로 이 책에는 저자의 재미난 연애담 뿐만 아니라 세상을 보는 따뜻한 시선이 가득했다. 애초에 그녀의 남다른 속사정과 진솔한 에피소드를 기대하고 <제가 결혼을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를 들었지만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이 숨어 있었다.
사과문
나를 만났던, 나를 만나는, 나를 만날 남자들에게 
깊은 사죄의 말씀을 전합니다.
지랄 맞은 성격에 지쳤던, 지친, 지칠 당신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합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아실런지요.
당신들은 나와 헤어지면 그만이지만
나는 이런 나와 평생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요.
이주윤은 겸손하며 유머스럽고 따뜻하다. 
사람들 참 귀엽다. 안 그래도 먹고 살기 바빠 죽겠는데, 발걸음을 멈추어 이 작은 가계에 굳이 들어와, 온갖 수모를 겪어가며 피땀 흘려 번 돈으로, 사랑하는 누군가를 기쁘게 해주려 초콜릿을 사 가지고서, 총총거리며 그이를 향해 걸어가는 모습이라니,
세상을 이토록 따뜻하게 보는 사람이 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모처럼 글을 읽고 가슴이 따뜻해지는 경험을 한다. 모처럼 내가 읽은 책을 아내에게 건네줄 생각이다. 책을 읽고 나서 저자가 잘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된다. 

제가 결혼을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

이주윤 (지은이), 한빛비즈(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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