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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쌈마이웨이 중 안내데스크 장면
 드라마 쌈마이웨이 중 안내데스크 장면
ⓒ 쌈마이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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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당신이 어쩌면 한 번 쯤 봤을지도 모를 소위 말하는 '데스크 아가씨'입니다. 당신이 어떤 일로 로펌을 방문하시든 아마 좋은 일로 오셨을 리는 없을 거예요. 화가 나거나 불안하거나 아님 굉장히 억울해서 오셨을 거예요. 저는 고객님을 처음으로 맞이하는 데스크 아가씨입니다. 고작 이런 저를 인터뷰하러 오시다니 정말 고마워요. (업계의 특성상 익명요청하셨습니다.)

- 아침에 오셔서 하는 업무는 무엇인가요?

저는 가장 먼저 출근해서 먼저 잠금을 풀고 환기를 한 다음 수십 개의 축하 화환에 물을 주며 잎사귀 먼지를 닦아요. 그리고 쓰레기통을 비우고 자리를 세팅해요. 정수기 물을 갈고 비품들을 확인해요. 매일 아침마다 커피 찌꺼기를 치우고 20분 거리의 카페로 뛰어가 원두를 사와요. 갓 볶은 원두가 맛있다고 매일 새 원두를 사오라고 하셨잖아요. 갑자기 전등이 나갔다고 하네요. 저는 전기기사님을 부르고 인터넷기사님을 불러요. 또 오늘 법원에도 전화해야 하네요. 바닥 얼룩은 왜 그렇게도 안 닦이는지 치마차림에도 무릎을 꿇고 수세미로 박박 지워요. 이쯤 되면 수치스럽지도 않아요. 이제 9시가 되네요. 갑자기 누군가 들이닥쳐요.

- 갑자기 들이닥친다는 말이 인상적이에요, 어떤 일이 있었나요?

아까 그렇게 박차고 들어오신 선생님은 제게 다짜고짜 말씀하세요 보통. 변호사 불러오라고. 그럼 전 사실 좀 당황스러워요. 선생님의 성함이 뭔지, 몇 시에 약속을 잡으셨는지 어떤 변호사를 만나러 오실 건지 제가 알 수가 없잖아요. 그 때부터 저는 제 일을 합니다. 최대한 당신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며 당신이 어떻게 오셨는지 이끌어 내야 해요.

대부분은 용건을 말씀해주시지만 아닌 경우 저는 너무 무서워져요. 다짜고짜 표정부터 변하는 모습을 보거나 험상궂은 표정으로 막무가내 들어오시려고 할 때 저는 너무 달아나고 싶어요. 그 분은 그러셨죠.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느라 있는 게 변호사 아니요? 내가 상담하고 싶어서 지금 시골서 올라왔소! 얼굴만 보고 간다니까!"

선생님은 악취와 덥수룩한 머리에 때가 낀 아주 긴 손톱으로 저를 가리키며 소리지르셨어요. 한 손에는 뭘 들고 있는지 아직도 모르겠지만 신문지 뭉치를 기다랗게 돌돌 말아 쥐고 계셨죠. 제가 생각한 그게 아니길 바라요. 덜덜 떨렸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척 최대한 당신에게 설득했죠. 저희 로펌에는 국선변호사님이 계시지 않는다고요. 상담만 하시더라도 예약을 하시고, 또 상담료가 부과된다구요.

당신은 나를 아주 무섭게 노려보고는, (아직도 그 생각을 하면 오금이 저려옵니다.)
"에이 XX, X같은 X이 유세떨고 앉았네"하고 뒤 돌아섰죠. 저는 그 때 무너지듯 주저 '앉았어요.' 갑자기 쳐들어와 '간음죄'로 상담 받고 싶다던 무서운 아주머니 두 분이나, 강간범으로 협박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강간범이나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기억들이에요.

- 원래 전공은 어떤 분야였고 이 일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가장 큰 이유로는 억울하고 가여운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어서 이 일을 공부했어요. 국문과 출신이, 말도 안되는 민법형법, 소송법 실무 등을 3개월간 수료한 뒤 로펌으로 취직했어요. 그 당시 법조계에 대한 환상도 강했고 일반 사무직으로 일하고 싶었어요. 일정한 시간에 출근해서 야근 없이 똑같은 일을 하고 같은 시간에 퇴근할 수 있는 그런 변화 없는 삶이요. 아르바이트를 참 많이 오래했어요. 그래서 정착하고 싶었거든요. 사실은 일 하면서 더 공부하고 로스쿨 준비도 하고 싶었어요.

- 근무 환경이나 봉급은 어느 정도였나요? 

제 월급은 세금 제외 168만 원이었고 처음에 약속한 금액과도 달랐어요. 원래 일하던 곳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서 간 곳이었어요. 처음 간 곳은 세금제외 140만 원이었구요. 아르바이트가 더 많이 받겠다 그런 생각도 들었어요. 면접 볼 때 세금 전인지 세금 후인지 말씀을 안 해주시려고 하거나 경력이 쌓이면 자연스럽게 더 챙겨주신다, 이런 식으로 말씀을 흐리세요.

그래도 정규직이고 큰 실수하지 않는 이상 잘릴 일은 없고 사무실에서 일할 수 있단 메리트 때문에 그냥 다녔어요. 근무환경은 사무실마다 많이 다른 편이에요. 회계사 사무실, 변호사 사무실, 중소형 로펌, 회생전문사무실, 법무사 사무실 등 하는 업무도 달라요. 공통되는 부분도 있지만 다른 부분이 더 많은 것 같았어요.

저는 법무사 사무실과 변호사 사무실, 로펌에 다녀봤어요. 공통된 업무는 법원을 다녀오고 잔금 처리를 하거나 전화 업무 같은 것들이었어요. 개인이름 도장을 즉석해서 만들어 찍고, 등기부등본 뽑거나 사실확인서나 뭐 생각하면 아득해지는 것들을 했어요.

법인카드를 가지고 있으라고 하시는 분도 계시고 쓸 때마다 받아가는 경우도 있고 경리 일도 조금은 할 줄 알아야 해요. 온갖 잡일은 다 해봤던 것 같아요. 사무실 관리 같은 자질구레한 일들도 제 손을 거치지 않은 부분이 거의 없었어요. 복지환경은 잘 모르겠어요. 

- 그래도 변호사들과 같이 일한다는 게 조금 설레지 않았나요?

글쎄요. 저는 합동대표사무실에다가 신생 로펌이어서 시어머니가 네 분 계시는 기분이었어요. 이런 게 시댁생활이면 나는 '만렙' 찍을 수 있겠다 그랬구요. 거의 김장 빼고 다 해보지 않았을까요? 하하.

변호사님들은 사실 저를 그다지 대우해주시는 편은 아니었어요. 그냥 주임이라는 로봇으로 보는 기분이었어요. 변호사는 6명인데 사무원은 저 한 사람뿐이었어요. 소송장을 쓰다가도 복사를 하러 뛰어가고, 또 스타킹과 담배를 사오라는 심부름이나 때로는 모닝콜까지도 시키셨죠. 지난 밤 술 마시다가 놓고 온 지갑 핸드폰 전자기기, 외투를 찾으러 다녀온 것도 원 투 데이가 아니었구요. 별로 설레지 않아요. 이런 얘기만 해서 미안해요. 저는 제 직업에 대해서 단 한 순간도 보람을 느낀 적이 없어요.

- 퇴사하실 땐 기분이 어떠셨나요?

서초에는 침도 뱉지 않겠단 마음으로 그만뒀어요. 아직도 서초 지나갈 땐 기분이 유쾌하진 않아요. 그래서 아직도 퇴근시간 6시 전후로는 서초를 잘 지나지 않습니다. 누구도 마주치고 싶지 않거든요. 좁은 동네라 퇴근시간 대면 같은 2호선에서 사돈의 팔촌까지 만나는 일이 아주 흔합니다. 막막했어요. 아무리 이 일이 싫어도 그만둘 때 다른 곳을 갈 생각이라도 하고 퇴사하는 게 맞지만 아무 계획없이 살기 위해 나왔어요.

그 땐 퇴근 후 전화벨 소리만 울리면 심장이 벌렁거렸어요. 또 무슨 일이지 싶어서요. 그 이후로 사실 방황을 좀 했습니다. 여러 일도 다 해보고요. 너무 미안합니다. 모자라서 미안합니다. 다만 저는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으려고요. 저는 168만 원짜리 로펌 꽃순이입니다. 회계사님이 제게 그러셨지요. 네가 하는 게 뭐냐고. 방글방글 웃기라도 하라고. 그러면서 왜 제 허리를 감싸셨나요? 네, 저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겁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모두 모두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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