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이 '학교에서 겪은 갑질과 부당노동행위'를 주제로 조합원 수기를 공모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 82년생 김지영 >을 쓴 조남주 작가의 심사를 거쳐 선정된 수상작을 소개합니다. 아래는 당선작인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대전지부 유치원 방과후과정 전담사의 글입니다.   [편집자말]
이제는 열 살이 된 사랑하는 딸 아이가 나에게 처음 존재를 알린 것은 지난 2010년 3월 1일, OO초등학교 병설유치원에 종일제 전담강사(현 유치원 방과후과정 전담사)로 첫 근무를 하기 하루 전 날이었다. 임신테스트기의 두 줄을 보자 덜컥 겁이 나 반가움이 아닌 두려움의 눈물을 쏟고 말았다. 그게 아이와의 첫 감정 소통이었다.

다음 날 출근해서 임신 소식을 알렸고 모두들 축하를 해주었지만 입사와 동시에 임신을 했다는 죄책감에 주눅이 들어 지독한 입덧도 숨겨가며 남 몰래 구역질 하는 생활을 이어갔다.

당시만 해도 무기계약이 아니어서 매년 공고 서류를 내며 재계약을 해야 했다. 행여나 임신 탓에 재계약 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태교는 꿈도 꾸지 못 하고, 퇴근 후 링거를 맞아가며 미련할 정도로 힘든 내색 없이 씩씩하게 열 달을 버텼다.

좋은 동료들을 만나 많은 배려를 받았으나 "예산이 없는데 산휴비를 어디서 빼야 하나. 아이들 도서는 올해 못 사겠구나..."라는 식의 지나가는 푸념들이 비수가 되어 꽂히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 때 처음 알았다. 내 인건비가 예산에 포함되어 있어 나 같은 임산부가 있으면 아이들에게 교재와 교구도 마음껏 사줄 수 없는 상황이 된다는 것을... 나는 본의 아니게 아이들에게 민폐를 끼치고 말았지만 뻔뻔하게 묵인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산휴에 들어갔고 예정일보다 하루 먼저 아이를 출산했다.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 어느새 복직을 해야 할 시기가 다가왔다. 육아휴직 따위는 꿈도 꿀 수 없는 계약직이었기에 만삭 때 미리 등록해 둔 가정어린이집에 생후 93일 된 아이를 보내고 출근을 해야 했다.

아직 밤낮도 못 가리는 아이를 겉싸개에 파묻어 낯선 곳에 맡겨야 하는 내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행여나 말 못한다고 방임하지는 않을까, 운다고 때리지는 않을까, 일어나지도 않은 오만가지 일을 상상하며 아침마다 눈물로 소매를 적셔야만 했다.

다행히도 좋은 선생님들을 만나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건강하게 자랐고 나도 차츰 적응하여 4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그 사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이 되었고, 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에도 가입했다.

같이 일했는데 정규직은 '티타임', 비정규직은 다시 근무
 
비정규직 평생 감옥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관계자들이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로공원앞에서 '학교비정규직, 정규직화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학교 비정규직의 완전 철폐"를 요구하고 있다.
▲ 비정규직 평생 감옥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관계자들이 서울 종로구 세종로공원 앞에서 "학교비정규직, 정규직화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학교 비정규직의 완전 철폐"를 요구하고 있다. 2017.6.19
ⓒ 최윤석

관련사진보기

 
유치원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3학급 병설유치원이던 곳이 2014년 7학급 단설유치원으로 바뀌면서 원장·원감 이하 새 식구가 늘어 교직원 수는 기존의 약 3배가 되었다. 작은 병설에서 서로 아우르며 지내던 내게 새로운 환경은 부담으로 다가왔고 급기야 그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단설이 되기 직전 2014년 2월에 기존의 병설유치원 교장과 2014학년도 근로계약을 미리 체결하였다. 유급휴게시간 30분을 포함한 8시간 근로를 하는 조건이었다. 단설의 새 원장은 이 계약이 상위법인 근로기준법 위반이라며 8시간 근무에 1시간 휴게시간을 포함해 총 9시간으로 다시 계약하자고 했다.

이 일로 처음으로 노조의 문을 두드렸다. 당시만 해도 대전은 단체협약이 체결되지 않은 상태였다. 노조는 지방공무원복무조례와 동일하게 적용해 8시간을 근무하는게 맞다고 했다. 이 말을 전하자 원장은 내부 일을 외부에 알렸다며 화를 냈다. 원장의 분노는 쉬이 가라앉지 않아 일 년간 매일같이 매서운 눈초리를 마주해야만 했다.

단설로 개원하고 약 한 달 뒤 개원식이 예정되어 있었다. 모든 교직원이 밤낮을 잊은 채 시간 외 근무를 했다. 밤 11시가 되어 한껏 굽은 허리를 힘겹게 펴며 퇴근하는 일이 잦았다. 똑같이 늦게까지 일했지만 교사들은 근태를 기록해 수당을 받고 나를 포함한 비정규직들은 못 받았다. 교사들의 지문인식기 퇴근 알림 인사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병설일 때는 3학급 모두 방과후과정이었고 업무 구분 없이 함께 일하는 분위기였지만 '교육과정반'과 '방과후과정반'이 혼재된 단설에서는 상황이 달랐다. 교사와 비교사를 구분 지었다. '우리'라는 범주 안에 비정규직은 빠졌다.

현장 학습을 가면서 서러움은 더 커졌다. 내 직종 명칭은 '방과후과정 전담사'지만 이상하게도 유치원은 교육과정 현장학습에 방과후과정 전담사들이 동행해주길 원한다. 오후 2시가 되어 유치원에 복귀하면 나는 본연의 업무인 방과후과정을 운영하고 교사들은 힘들었다며 티타임을 갖는다. 아침부터 함께 진 빼고 고생했는데 나는 쉬지도 못 하고 아이들을 돌봐야 하고, 교사들은 쉬고 있는 상황이 그저 개탄스러웠다.

비가 장대같이 쏟아지던 어느 여름 날 아침에는 손님 맞이를 위해 우산을 쓰고 유치원 주변의 잡초뽑기도 해야 했다. 비정규직의 업무는 학교장 재량에 따라 지정되기 때문이다. 정말 불합리한 구조가 아닐 수 없다.

이런 감정이 쌓이고 쌓여 내 안에서 화마가 이는 듯했다. 나는 병설에서 보낸 지난 4년간 내가 교사인 줄 알고 살았다. 그래서 열심히 수업도 하고, 교육계획안도 작성하고, 온갖 행사와 교사들의 공문까지 도와가며 일했다.

하지만 그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나는 아무것도 아닌 그저 비정규직 근로자일 뿐이었다. 깨달음이 기폭제가 되어 나와 현장의 갈등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다. 교육경력 불인정, 누리과정 자격 미달, 1정 연수 배제, 교직수당은커녕 방학 때는 담임 역할까지 하면서 담임 수당도 받을 수 없는 교사가 아닌 근로자. 실제 하는 업무는 교사와 동일하지만, 내 행동 하나 하나가 아이들에게는 교육이지만, 나는 교사가 아닌 근로자일 뿐이다.

정체성에 혼란이 생겼다. 나는 대체 아이들에게 어디까지 가르쳐야 하는 걸까? 교육이 아닌 그저 돌봄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아이들을 가만히 앉아 바라만 보고 있으면 되는 걸까? 직종에 대한 정의도 없고, 업무에 대한 명확한 지침도 없고, 그저 교사가 하기 싫은 모든 영역에 배치되는 '메꾸미'일 뿐이다. 정규직이 하기 싫은 일을 하는 비정규직. 그게 바로 유치원 방과후과정 전담사의 현 주소다.

방학은 또 왜 이렇게 긴지. 유치원은 초등학교보다 방학이 더 길어 1년에 15주 정도 된다. 52주 중 15주를 혼자서 아이들을 보는데 어떻게 교육을 배제한 돌봄이 가능할 수 있다는 건지 그저 우리가 요구하는 수당을 주지 않으려는 교육청의 횡포라고 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새로 온 교사 환영 입간판에 내 이름은 없었다

올해 난 9년을 몸 담았던 OO유치원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발령받았다. 생후 93일 만에 남의 손에 맡기며 그렇게 힘들 게 키운 아이가 다니고 있는 초등학교의 한 지붕 아래에서 함께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다. 너무 어릴 때부터 세심하게 보살펴주지 못 해 마음 한 편에 늘 남아 있던 미안함을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다는 기대감에 새 근무지 출근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첫 근무를 시작한 날 환영하는 입간판에 내 이름은 없었다. 전교생 앞에 영상으로 소개된 내 직종은 있지도 않는 '유치원 실무원'이었다. 비정규직이기에 가장 마지막에 소개를 받았다. 행여나 아이가 엄마가 비정규직인 것을 알고 상처를 받으면 어쩌나, 유치원 실무원이 뭔지 물어보면 어쩌나, 괜히 이 곳으로 왔나, 온갖 걱정이 들었지만 다행히 아직 3학년인 내 아이와 친구들은 나를 그저 병설유치원의 선생님으로 차별없이 받아주었다.

나는 아직까지도 내가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 아이에게 설명하지 못했다. 비정규직이란 단어가 나오면 말문이 막혀버리기 때문이다. 아이가 자랑스러워하는 엄마가 교사들의 '메꾸미' 역할인 비정규직이라는 걸 알게 됐을 때 들게 된 실망감이 얼마나 클까. 노조 사무실에 가는 날도 다른 유치원 선생님들과 회의하고 오겠다는 말로 얼버무리고 만다. 나조차도 내가 비정규직이란 사실을 잘 못 받아들이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아이에게 어떻게 현실을 대면시켜야 하는 걸까.

정말 간절히 바라고 바란다. 아이가 조금 더 자라 세상에 눈을 뜨기 전에 비정규직이 뿌리뽑히기를. 성인이 되어 직업을 선택해야 할 때 비정규직이란 단어를 역사책에서나 볼 수 있게 되기를. 차별 없이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는 세상이 되기를. 노후 걱정 없이 하고 싶은 일을 원 없이 할 수 있는 대한민국이 되기를.

퇴근 후 대의원 대회, 분과 모임, 간부 수련회, 상경투쟁, 파업 등 가정과 직장과 노조 일을 병행하느라 내 개인생활을 잃었지만 이 힘겨운 생활을 멈출 수가 없다. 간부수련회에서 들은 말처럼 구호가 아니라 진짜 비정규직 없는 세상 물려주기로 결심했기에 어제보다 오늘 더 싸운다. 투쟁!
 
 2017년 민주노총 사회적 총파업 당시 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이 연 사전 대회
 2017년 민주노총 사회적 총파업 당시 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이 연 사전 대회
ⓒ 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관련사진보기

 

댓글1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