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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6월 19일은 다자이 오사무의 39번째 생일이자, 강물에 뛰어든 그의 시신을 건져 올린 날이다. 그의 다섯 번째 자살 시도였다. "태어나서 미안합니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다. 일본에서는 해마다 6월 19일이 되면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그의 묘지에 새겨진 그의 이름에 앵두를 박고, 술을 병째 부으며 그의 넋을 기린다.
 
 <인간 실격>,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민음사(2004)
 <인간 실격>,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민음사(2004)
ⓒ 박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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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이 눈부신 6월,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을 읽는다.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소설을 읽으며 끝없이 침잠하는 그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극적으로 각색되기는 했지만, 소설 속 요조는 작가 자신이다. 그러니까 <인간실격>은 작가 자신의 슬픈 자화상이자, 고통스럽게 써 내려간 그의 유서다.        
다자이 오사무는 1909년 일본 아오모리 현 쓰가루군 가네기시에서 가네기 은행 소유주이자 귀족원 의원인 대지주의 11남매 중 10번째, 6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혜택받은 자로서 못 가진 자에 대한 죄의식 내지는 부채의식을 평행 짊어졌던 작가다.

그가 태어나 자란 일본 동북 지방은 일본 내에서도 기근이 많은 가난한 지역이었다. 먹고살기에도 급급한 이웃 가운데서 대지주의 아들로 어디서 건 특별 대접을 받던 그가 지니게 된 죄의식은 천성적으로 섬세하고 예민한 감수성 때문에 타인에 대한 시선을 놓친 적이 없는 그로 하여금 남다른 도정을 걷게 만든 요인이 되었다.
 
실용적인 괴로움, 그저 밥만 먹을 수 있으면 그것으로 해결되는 괴로움, 그러나 그 괴로움이야말로 제일 지독한 고통이며, 제가 지니고 있는 재난 따위는 상대도 안 될 만큼 처참한 아비지옥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것치고는 자살도 하지 않고 미치지도 않고 정치를 논하며 절망도 하지 않고 좌절하지도 않고 살기 위한 투쟁을 잘도 계속하고 있다. 괴롭지 않은 게 아닐까? 철저한 이기주의자가 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확신하고 한 번도 자기 자신에게 회의를 느낀 적이 없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편하겠지. 하긴 인간이란 전부 다 그런 거고 또 그러면 만점인 게 아닐까. (16~17쪽)

소설 속 주인공 요조는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아이였지만, 가부장적이고 엄한 아버지는 그의 예민함을 인정해 주지 않고 계속 강하고 쾌활한 남자아이의 모습만을 강요한다. 어린 요조는 그런 아버지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억지로 익살을 부려 가족들을 웃게 하지만 속으로는 괴로움에 몸부림친다.

아버지에게 끊임없이 자신의 진짜 모습을 부정당하면서 자신의 고뇌와 우울함과 긴장감을 숨기고 그저 익살스러운 가면을 쓴 채 거짓 웃음을 지으며 살아가는 요조를 보며 동시에 나의 어릴 적 모습을 본다.

가난한 집에 첫째 딸로 태어난 나는,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자연적으로 내가 원하는 것, 갖고 싶은 것을 부모님에게 말하면 안 된다는 것을 스스로 깨쳤다. 삶이 팍팍했던 나의 어린 부모는 내가 하는 말을 채 듣지 않고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라고 내 말을 잘라버리기 일쑤였다.

그렇게 나의 의견을 부정당하면서도 나는 엄마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내 생각은 감춰둔 채 엄마가 좋아할 만한 말을 적당히 골라 말하기만 하면 엄마는 나에게 웃어주었다. 나는 엄마의 웃는 얼굴을 보는 게 좋았다.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면 엄마를 웃게 할 수 없었으므로, 기꺼이 엄마 앞에서는 어른스러운 큰딸, 양보할 줄 아는 큰딸, 사고 치지 않고 얌전히 말 잘 듣는 큰딸 역할을 맡아 지친 기색도 없이 가면 놀이를 했다. 

연극이 오래 갈수록 나는 나의 의견을 말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말할 줄 모르고, 나의 의견이라는 것이 없는 바보가 되어버린 나 자신을 마주한 채 망연자실했다. 밖에서는 사람들을 만나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하며 적당히 가볍게 깔깔대며 사람들과 섞여 지냈다. 그러다 집에 돌아와 얼굴을 씻고 캄캄한 방에 누워 나는 베개에 얼굴을 묻고 소리도 내지 못하고 울었다. 뜨겁게 부은 눈을 감고 이대로 내일 같은 건 없었으면 좋겠다, 생각하며 잠들었다.
 
죽고 싶다. 숫제 죽고 싶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어. 무슨 짓을 해도. 무얼 해도 잘못될 뿐이다. 창피에 창피를 더할 뿐이다. 그저 추잡한 죄에 한심한 죄가 겹쳐지고, 고뇌가 증폭하고 격렬해질 뿐이야. 죽고 싶어. 죽지 않으면 안 돼.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죄의 씨앗이야,라는 등 외곬으로 생각하면서도 여전히 집과 약국 사이를 반미치광이처럼 왕복할 뿐이었습니다. (128쪽)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려 애를 써봐도 내 능력으로는 역부족이었고, 부모님을 실망시켰다는 자책감과 더는 이렇게 부모님의 생각대로 살고 싶지는 않다는 반항심이 엉망으로 뒤엉켜 나를 무자비하게 괴롭혔다. 

그냥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적당히 연극을 하며 살자, 생각했다. 나름대로 견디며 살 방법을 고민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내키지 않는 날에는 도서관을 찾았다. 소설이 꽂혀있는 서가에서 아무 책이나 뽑으면 거기에는 나처럼, 또는 나보다 더 처참한 인간들이 있었다. 그렇게 소설 속 인물들의 삶을 읽다 보면 하루가 저물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견뎌냈다.   
 
불행. 이 세상에는 갖가지 불행한 사람이, 아니 불행한 사람만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겠죠. 그러나 그 사람들의 불행은 소위 세상이라는 것에 당당하게 항의할 수 있는 것이고, 또 '세상'도 그 사람들의 항의를 쉽게 이해하고 동정해 줍니다.

그러나 제 불행은 모두 제 죄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아무에게도 항의할 수 없었고, 또 우물쭈물 한마디라도 항의 비슷한 얘기를 하려 하면 세상 사람들 전부가, 잘도 뻔뻔스럽게 그런 말을 하는군 하고 어이없어할 것이 뻔했습니다.

저는 도대체 세상에서 말하는 '방자한 놈'인 건지 아니면 반대로 마음이 너무 약한 놈인 건지 저 자신도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죄악 덩어리였던 듯, 끝도 없이 점점 더 불행해지기만 할 뿐 막을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은 없었던 것입니다. (123쪽)

소설 속 요조도 사람들에게 보이는 가면의 얼굴과 그 안에 감춰진 자신의 진짜 얼굴 사이의 간극 안에서 정신없이 방황하며 삶의 의지를 놓아버린 채 방탕한 생활을 이어간다. 몇 번이나 죽으려 했으나, 질긴 목숨은 그때마다 끊어지지 않고 요조를 더 극심한 고통 속으로 몰아넣는다. 그는 자기가 보기에도 형편없는 인간인 호리키와 어울리며 공산주의 비밀 모임에 가담해 쫓기면서도 술과 여자에 빠져 미친 사람처럼 살다가 결국 폐병을 얻고 약물에 중독되어 정신병원에 끌려가는 신세가 된다.
 
신에게 묻겠습니다. 무저항은 죄입니까? 호리키의 그 이상하고도 아름다운 미소에 저는 울었고, 판단하는 것도 저항하는 것도 잊어버렸고, 자동차를 탔고, 여기에 끌려와서 정신 이상자가 되었습니다. 이제 여기에서 나가도 저는 여전히 광인, 아니 폐인이라는 낙인이 이마에 찍혀 있겠죠. 인간 실격. 이제 저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131쪽)

차마 똑바로 쳐다보기 힘들 만큼 처참하게 고통에 점철된 인생을 살았던 <인간실격> 속 주인공 요조의 이야기를 읽으며, 자기 자신을 요조라는 인물에 투영해 소설을 써 내려간 작가를 이해하고 싶었다. 그의 산문을 모아 엮은 <나의 소소한 일상>에서는 다자이 오사무의 보다 내밀한 글들을 읽을 수 있었다. 일기 같은 그의 글 속에는 유머가 있었고, 희미하지만 자기애도 있었다. 무엇보다 그에게는 글을 쓸 수 있는 재능이 있었다.

어두운 내면을 글로 풀어쓰면서 그는 스스로를 치유할 수는 없었던 걸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던 걸까. 그가 쓴 <인간 실격>을 읽으며  나는 젊은 날의 나 자신을 다시 마주하며 잘 버텼다고, 잘 살아냈다고 위로해본다. 그리고 지금 여기 혼란스럽고 위선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흔들리며 방황하는 청춘들의 삶을 감히 조용히 응원해본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 자살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 전화하면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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