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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광장에 천막을 치고 농성중인 민주당 김재균 의원, 이종걸 의원,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
 서울광장에 천막을 치고 농성중인 민주당 김재균 의원, 이종걸 의원,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
ⓒ 임순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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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은 1973년 경기고등학교에 무난히 입학한다.

입학 동기 중에는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과 황교안(자유한국당 대표) 등이 있었다. 같은 물을 마시고도 소는 우유를 만들고, 뱀은 독을 만든다는 말이 있듯이, 동문수학을 하고도 노회찬은 노동운동의 길을 걷게 되고, 황교안은 공안검사가 되었다.

노회찬은 이종걸 등과 함께 유신쿠데타 1주년을 맞아 10월 17일 유신을 반대하는 유인물을 제작하여 교내에 배포했다. 노회찬이 시국 문제에 직접 도전하기는 이것이 처음이었다. 고등학생의 신분으로 유신반대 유인물을 만들어 배포한 경우는 흔치 않았다.
 
박정희의 10월 유신은 아무리 어용학자와 어용 언론인들을 동원하여 '한국적 민주주의'와 '민족중흥'을 떠들어도 3권분립을 기본으로 하는 민주주의 원칙을 저버리는 독재체제였다. 이제 갓 민주주의 원리를 배우는 학생들에게 쉬이 납득이 가지 않는 폭거였을 뿐이다.
 
정의감이 강하고 용기가 있었던 노회찬은 그냥 두고만 볼 수 없었다. 친하게 지내던 이종걸, 정광필 등 학우들과 의논했다. 그래서 유신체제를 비판하는 유인물을 만들어 학생들에게 배포하기로 뜻을 모았다. 글은 노회찬이 썼다. 그런데 등사기가 문제였다. 몇군데 들렀으나 내용을 읽어보고는 기겁을 하고 거절했다. 

겨우 한 군데 청타집에 사정해서 타자를 친 다음, 공범 중 한 명이 다니는 부천의 한 교회로 갔다. 전철이 없던 시절이라 완행 기차를 타고 소사역에 내려 밤중에 몰래 교회에 들어가 등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한참 등사 중일 때 목사가 불쑥 들어왔다. 밤중에 불이 켜진 것을 보고 온 것이었다.

"이제는 다 끝났구나, 신고를 당해 감방에 가고 학교에서 퇴학당하겠구나 생각했지요. 근데 목사님이 우리가 등사해 놓은 유인물을 한 장 집어 들고 죽 읽어 보더니 다시 내려놓고는 단 한 마디도 않고 나가서 문을 닫아 주는 거라. 참 고마운 목사님이었지요."

무사히 1,200장 정도를 등사한 일행은 아무도 없는 시간에 학교에 들어가 책상 속에 한 장씩 넣어 두었다.
 
읽어 본 학생들이 웅성거리며 찬동하자 학교가 뒤집어졌다. 학교 측은 학생들의 집단행동을 우려해 즉시 조기 방학을 선포하고는 모두 집에 가라고 내몰았다. 학생들이야 방학이 당겨졌으니 신이 나서 누가 뿌렸는지 몰라도 고맙다고 떠드는 것이었다. 경찰이 정문부터 학교를 빙 둘러 감싸고 있었지만, 문제가 더 확대되지는 않았다. (주석 9)


그러던 중 징집 통지가 나오고 3급 판정을 받아 방위병으로 2년을 복무한다. 고졸 학력인 데다 베이비붐 세대여서 현역병 대신 방위병으로 소집된 것이다. 1977년에 입대하여 1978년에 제대한 것이다.


주석
9> 안재성, 앞의 글.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진보의 아이콘' 노회찬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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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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