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인도 북부의 작은 마을 맥그로드 간즈, 이곳엔 여행자들이 한 번쯤은 꼭 들러 감탄을 하고 가는 명물이 있다. 여행자를 위한 중고상점(Traveler's secondhand shop) '더티 런더리'(dirty laundry)다.

올해로 8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 가게의 주인은 다름 아닌 한국인이다. 서른 중반의 최진석(가명)씨는 11년 전 여행차 인도에 왔다가 이곳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손상되지 않은 것이면 무엇이든 괜찮아요"

이곳의 규칙은 독특하다. 상품당 세 개의 가격이 차례로 쓰여 있는데, 중고물품을 하나 가져오면 처음 가격에서 할인된 두 번째 가격에, 중고물품 두 개를 가져오면 더 할인된 세 번째 가격에 원하는 물건을 얻을 수 있다. 옷을 사려면 옷을 가져와야 하냐고? 최씨의 답변은 명쾌하다.

"Anything is OK unless damaged!(손상되지 않은 것이면 무엇이든 괜찮아요!)"

인도뿐 아니라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규칙 덕에 처음 가게를 찾은 손님들은 낯설어한다. 그러나 가격표의 의미를 듣곤 모두 "신기하다" "좋은 아이디어다" "이런 건 처음 본다"라며 감탄한다. 
 
 상품에 붙어 있는 세 개의 가격. 자신에게 필요없는 물건을 하나 가져오면 두 번째 가격에, 두 개를 가져오면 처음 가격에서 최소 절반 이상이 할인된 가격에 원하는 물건을 가져갈 수 있다.
 상품에 붙어 있는 세 개의 가격. 자신에게 필요없는 물건을 하나 가져오면 두 번째 가격에, 두 개를 가져오면 처음 가격에서 최소 절반 이상이 할인된 가격에 원하는 물건을 가져갈 수 있다.
ⓒ 조윤진

관련사진보기

 
오늘날 자본주의 시장에서 상품의 가치는 상품 자체의 효용(사용가치)이 아닌 거래 가격(시장가치)에 따라 결정된다. 무엇이든 '그래서 그게 얼마나 돈이 되는데'로 환산되는 사회에서 상품의 고유한 가치는 뒷전이 되기 일쑤다. 하지만 이 가게의 규칙은 조금 다르다. 이곳에서 중요한 것은 '교환하려면 동등한 시장가치를 가져야 한다'가 아니라, '사용가치에 만족하면 그만'이다.

예컨대 좋은 바지를 할인 받아 사고자 한다면, 교환 물품이 공짜로 얻은 일회용 마스크든, 한 번밖에 입지 않은 가디건이든, 할인율은 다르지 않다. 이 거래에서 중요한 것은 '내겐 더 이상 필요(사용가치)가 없는 물건으로 내게 이제 필요한 물건을 싸게 샀다'에서 오는 사용자의 만족감에 있다.

물론 시장의 입장에서 보면 거의 새것이나 다름없어서 비싸게 팔 수 있는 바지와 기껏해야 몇백 원에 팔 수 있을 일회용 마스크 간의 교환은 수지가 안 맞는 장사다. 이에 최씨는 "그래도 우리 가게가 잃는 것은 없어요, 판매한 상품 역시도 돈으로 산 게 아니니까요"라고 말했다.

인도 여행하다 그대로 정착… 벌써 11년 전

그렇다면 최씨는 왜 돌연 인도에서 이 사업을 시작하게 된 것일까? 11년 전, 최씨는 45일간의 인도 여행 후 이직하기로 한 직장이 있었다. 그런데 여행이 끝나갈 무렵, 그는 돌연 한국행 비행기 표를 취소했다.

최씨는 "여행을 하다 보니 이곳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리고 한국에서의 나를 떠올리며 내 모습에 거품이 씌워져 보이는 것 같단 생각이 들었죠"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그때는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얼마나 있을지 몰랐고 최소한의 계획도 없었지만, 미래에 어떤 결과를 맞더라도 최소한 스스로 덜 실망스러운 내가 되어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어요"라며 당시를 회상하기도 했다.

물론 힌디어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한국인이 인도에 자리를 잡고 적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돌연 시비가 걸리는 경우도 허다했고, 1년여를 장사하던 곳에서 하루아침에 쫓겨나기도 했다.

인도 이곳저곳에서 장사하다 8년 전 처음 맥그로드 간즈에 왔을 땐 최씨가 대체 무얼 하는 사람인지 아는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독특하고 꾸준한 컨셉 탓일까, 이제 최씨의 더티 런더리는 여행자들뿐 아니라 의류 재사용 문화에 낯선 인도인들까지 찾아오는 곳이 됐다.
 
 "인도에 온 지는 11년, 이곳에 가게를 차린 건 이제 8년이 됐죠" - 인도 북부 맥그로드 간즈에서 여행자를 위한 중고상점을 운영하고 있는 최 씨의 모습이다.
 "인도에 온 지는 11년, 이곳에 가게를 차린 건 이제 8년이 됐죠" - 인도 북부 맥그로드 간즈에서 여행자를 위한 중고상점을 운영하고 있는 최 씨의 모습이다.
ⓒ 조윤진

관련사진보기

 
그렇게 11년, 그저 돈을 마련하기 위해 처음 길거리에서 17벌의 옷으로 시작한 장사가 이젠 어엿한 상점이 됐다.

"anything is OK(뭐든 좋다)"라는 규칙답게, 이젠 그 종류도 모자, 신발, 귀걸이 등 의류/장신구뿐 아니라, 마우스, DVD, 담배까지 없는 게 없을 정도다.

한편 최씨는 종종 세상의 모든 가게가 이와 같다면, 하는 상상을 한다. 물건의 가치가 돈으로 계산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가진 고유한 가치에 초점을 맞추는 사회 말이다.

이때 가게명인 '더티 런더리'는 "당신의 가방에 있는 더러운 빨랫감(당신에게 필요 없는 물건), 그게 바로 내가 필요한 것이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그야말로 이 가게와 최씨의 생각에 가장 어울리는 이름이 아닐까. 최씨는 그 상상이 불가능하지 않다고 믿는다.

댓글9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따뜻하되 날카로운 글을 쓰고 싶습니다. 지금은 여행 중에 있습니다 :)

'좋은 사람'이 '좋은 기자'가 된다고 믿습니다. 오마이뉴스 지역네트워크부에서 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