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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1일 인천 부평 부원여중학생들이 성폭력 피해에 항의하는 포스트잇 시위를 벌인 모습.
 지난해 9월 11일 인천 부평 부원여중학생들이 성폭력 피해에 항의하는 포스트잇 시위를 벌인 모습.
ⓒ 학생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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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부터 시작된 한국 '미투' 운동의 국면에서 학교 역시 예외일 수 없었다. 전 지역의 학교에서 교사들의 행동과 발언을 고발하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옛말은 성희롱을 저지른 복수의 '스승들'에 의해 스스로 부서졌다.

인천 지역 역시 12개 학교가 '스쿨미투' 대열에 동참했다. 특히 인천의 경우 학생과 학부모, 시민단체가 결합해 스쿨미투 운동을 해결하려고 힘쓴 맥락이 있다. 학생과 학부모,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인천 지역의 스쿨미투 운동을 기록했다. 책 <우리 목소리는 파도가 되어>는 현재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에서 모금을 진행 중이며 오는 6월 10일 출간 예정이다.

지난 12일 인천여성의전화 사무실에서 인천 지역 스쿨미투 운동을 주도했던 중학생 혜안씨와 대학생 박보현씨, 활동가 문지혜씨를 만났다. 책 <우리 목소리는 파도가 되어>의 저자들이기도 한 이들은 1년 동안의 이야기를 차분한 목소리로 들려주었다.

"언론인이 되려고요" 신송중 혜안씨의 이야기
   
 인천 신송중에 다니며 스쿨미투운동하고 있는 혜안(활동명) 학생.
 인천 신송중에 다니며 스쿨미투운동하고 있는 혜안(활동명) 학생.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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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신송중학교에 재학중인 3학년 학생 혜안(활동명)씨는 작년 9월 이른바 '포스트잇 고발'로 시작된 스쿨미투 운동을 보면서 같은 반 남학생으로부터 겪은 성희롱 피해를 떠올렸다. 그는 다짐하듯 말했다. "더 이상 이런 일들을 조용히 넘기고 싶지 않았다."

인천 신송중학교에 본격적으로 스쿨미투 운동이 가시화된 건 2018년 9월부터였다. 가해 교사의 언행을 지적하거나 피해 학생에 연대한다는 내용을 담은 포스트잇이 신송중 복도와 계단에 붙었다. 담임 교사가 학생을 성추행했다는 고발, "여자의 립스틱 80%는 남자가 먹는다"고 말한 교사의 발언 등이 문제시됐다.

신송중 교사와 남학생들은 이 포스트잇을 서둘러 떼어냈다. 혜안씨는 평소에 이런 일에 관심이 없을 거라고 여겼던 친구들이 이들을 향해 포스트잇을 떼지말라고 외치는 걸 보면서 힘을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뒤이어 2차 가해가 발생했다. "그 선생님은 그런 분이 아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다"면서 교사를 위한 서명 운동을 적극적으로 벌이는 남학생도 나타났다. 학교가 비록 스쿨미투대책위원회를 만들긴 했지만, 위원회에 찾아온 한 남학생은 당당하게 "여성 인권이 올라가면 남성 인권이 내려간다"고 발언했다. 남교사들은 수업 중에 말을 하다 말고 습관처럼 "이 말도 미투로 신고할 거냐"라고 물었다.

신송중의 많은 학급에서 여학생과 남학생 사이에 싸움이 일어났다. 한 번 스쿨미투에 대해 말을 꺼냈다가 동급생과 싸울 뻔한 기억이 있어 그때부터는 이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혜안씨의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포스트잇 고발이 있은 지 한 달만에 학교에서 첫 입장문을 내놓았지만 실망스럽기 그지 없었다. 해당 입장문은 "관련 교사 2명은 이번 사태로 우울증과 정신적 충격으로 병원 치료를 받고 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했다. 신송중학교 교내에는 학생들의 대자보가 붙었다. 대자보에는 가해 교사들의 사과와, 성희롱과 성추행에 대한 강력한 제재, 성교육 실시, 2차 가해를 삼가 달라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혜안씨는 교내에 대자보가 붙었던 날을 기억한다. 그는 대자보의 내용을 하나하나 읽어봤고, 대자보를 빙 둘러싸고 모인 학생을 보면서 공감받는 기분이 들었고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자보가 붙은 이후에도 2차 가해는 멈추지 않았다. 남학생들은 대자보를 앞에 두고 "학교 다니기 쪽팔린다 페미들아" "이름 까고 말해라" "니들 때문에 학교 못 다니겠다"고 욕을 한다거나 대자보에 낙서를 했다.

혜안씨는 말했다. "우리가 원했던 것은 그렇게 많지도 크지도 않았다. 단지 선생님들의 진심 어린 사과와 반성, 그리고 학교가 우리들이 안심하고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길 바랐을 뿐"이라고.

현재 가해 교사로 지목된 이들은 새 학기가 되자 사과 한마디 없이 신송중학교를 떠나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갔다. 학생들은 3월 개학식날까지 이 소식을 모르고 있었다. 학교에 남은 한 교사는 교탁에 삐딱하게 기대어 "내가 정이 많아서 그랬던 것"이라고 사과 아닌 사과를 했다. '교장선생님'이라도 사과를 할 것으로 기대했던 학생들은 크게 실망했다.

스쿨미투대책위원회에 참여했던 혜안씨는 무섭기도 했지만 뿌듯한 점이 더 크다고 말했다. 이 일을 계기로 뜻을 같이하는 새로운 친구들도 생겼고, 선생님들에게도 영향을 많이 끼친 것 같아 뿌듯하다고 한다.

혜안씨는 스쿨미투를 겪으면서 언론인을 장래희망으로 삼는 것에 더 확신이 생겼다. 혜안씨는 이전부터 사회 현상 등에 관심이 있었지만 스쿨미투 이후 '이런 일을 계속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에 가거나 사회에 진출해 비단 여성 인권만이 아니라 인권 전반에 대해 조명하는 글을 쓰고 싶다고 혜안씨는 말했다.

올해 16살이 된 그는 인천 지역의 스쿨미투를 다룬 책 <우리 목소리는 파도가 되어>를 내는 것으로 언론인으로서 한 발을 뗐다. 혜안씨의 부모님은 그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지해주며, 혜안씨와 함께 뉴스를 보고 책을 찾아 읽는 등 그의 지지자가 됐다.

"페미니즘 공부하는 대학생 됐어요" 신명여고 보현씨의 이야기
 
 스쿨미투운동한 인천 신명여고 졸업생 박보현씨.
 스쿨미투운동한 인천 신명여고 졸업생 박보현씨.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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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신명여자고등학교 졸업생인 박보현(20)씨는 올해 대학 새내기가 됐다. 그는 여중여고를 나와서 남녀가 섞인 대학에 진학해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다. 고등학교 때는 친구들끼리 대화를 하면서 여성주의를 '기본값'으로 놓았다면, 대학에서는 아무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다면서 속상해했다. "페미니즘 동아리? 저런 거 누가 해?"라는 지나가는 대학생들의 말에 흔들리는 요즘이다.

고등학생 때를 돌이켜보면 물론 힘들기도 했지만, 지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가장 충만했다는 게 보현씨의 주장이다. 보현씨는 그때가 좋았던 것 같고, 돌아가고 싶기도 하다고 말한다.

"'낙태천국 김밥천국'이라는 저급한 표현을 사용하는 선생님으로부터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년 전, 보현씨의 고등학교 3학년 5월은 한 장의 포스트잇과 함께 시작됐다. 생명윤리 교사가 한국 여성들은 낙태를 너무 많이 한다며 농담삼아 '낙태천국 김밥천국'이라는 말을 사용한 것이다.

보현씨는 누가 붙였는지 모를 그 포스트잇을 두고 친구들끼리 "우리 저기에 동의하는 글을 쓰자"고 했다. 보현은 "교단 앞, 말 한마디의 무게를 생각해주세요"라는 포스트잇을 붙였다. 그와 친구들이 포스트잇에 응답하자 여기저기서 포스트잇이 붙기 시작했다. 보현의 몸에 소름이 돋았다. '누가 붙였는지 찾아내면 어떡하지?'라는 걱정과 함께, 일단 애들이 반응을 해주는구나 싶어서 짜릿하기도 했다.

결국 교사들은 '교직원 일동'이라는 이름 아래 사과문을 작성해야 했고 이를 발표하는 자리가 이어졌다. 학교는 재발 방지를 위한 노력도 약속했다. 그리고 시작된 2학기, 보현의 눈에는 그다지 달라진 게 보이지 않았다. 수업 시간에 "너희 이걸로 또 미투할 거 아니지?"를 농담처럼 말하는 교사들, 체육시간에 체육복을 안 입고온 학생들을 상대로 "너네가 무슨 자격으로 학생 인권을 논하냐"고 혼을 내는 교사들도 있었다.

보현씨는 같은 반 학생 4명과 함께 학교에 2차 문제제기 문건을 작성해 교장과 면대면으로 면담을 신청한다. 보현은 이날을 교장 선생님 앞에서 얼굴을 다 드러내고 이야기하는 자리라 가장 떨렸던 순간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보현씨는 스스로를 '착한 아이'로 기억한다. 특히 선생님들과 친했고 교무실에도 자주 놀러가는 등 유대 관계도 깊었다. 그에게 가장 힘들었던 건, 그에게 나쁘지 않았던 선생님이었던 사람이 다른 학생들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옹호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가해 교사로 지목된 한 선생님이 그에게 전화를 걸어 사과를 할 테니 애들을 설득시켜달라고 도와달라고 이야기를 했을 때 보현은 깨달았다. 자신이 선생님에게 얼마나 만만한 존재였는지를 말이다.

그는 스쿨미투 이후 '부작용'으로 냉소적인 태도를 갖게 됐다고 고백했다. 좋은 어른이라고 생각했던 이들도 결국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런 보현에게 이제 좋은 어른은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이다.

신명여고는 스쿨미투의 성공사례로 꼽히는 학교임에도 불구하고 갈등은 여전했다. 한 교사는 학기가 끝나는 날 울면서 "지X 같은 스쿨미투 때문에 아무 말도 못하겠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다른 교사는 "교육적인 의도로 한 말"이라거나 "생각의 차이"라면서 잘못 자체를 부정했다. 그럼에도 서로 조심하는 분위기가 된 것을 보현은 긍정적으로 본다.

그런데 보현씨는 스쿨미투를 위한 SNS 계정을 계속 관리해줄 후배를 찾지 못했다. 나중에라도 이와 같은 일이 또 발생했을 때 지혜로운 대안을 모으기 위해서 활동의 연속성이 필요한데 대가 끊긴 것이다. "고등학생이고 한창 바쁠 때니 이해는 하지만"이라는 보현의 눈빛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보현씨는 대학을 가면서 미디어학부로 진학을 했다. 페미니즘을 공부하기도 이전에 먼저 스쿨미투라는 커다란 현장을 겪은 보현은 (대학에서) 페미니즘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미디어 업계 종사자가 되는 것이 보현의 현재 꿈이다. 답답함을 겪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는 일을 하고 싶다고 그는 이야기했다.

"안심 된다는 눈빛이 보여요" 인천페미액션 지혜씨의 이야기
 
 인천지역의 스쿨미투운동을 도운 인천페미액션 문지혜 활동가.
 인천지역의 스쿨미투운동을 도운 인천페미액션 문지혜 활동가.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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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스쿨미투의 과정에서 학생들과 가장 긴밀하게 소통했던 당사자 중 한 사람은 인천페미액션의 활동가 문지혜씨다. 문지혜씨는 고발자인 학생들을 응원하기 위해 등교 시간에 맞춰 학교 앞에서 '미투 위드유' 배지를 나눠주기 시작했다.

"그 당시에는 자신의 모든 걸 걸고 스쿨미투 운동을 했던 고발자 분들도 있었고 그걸 마음으로 지지하고 싶은데 티를 못 냈던 분도 있었다. 8개 학교의 교문 앞에서 한 명 한 명 배지를 나눠줬는데 눈빛에서 느껴졌다. 우리가 와줘서 너무 안심이 된다는 눈빛이 있었고, '왜 왔을까' 의문을 가지는 눈빛, '아 진짜 짜증난다'는 눈빛도 있었다. 학생 몇 천 명을 본 것 같다. 그분들의 눈빛이 생각난다."

지혜씨는 당시 학교 내부는 아직 '우리가 내부에서 알아서 할게'라는 기조가 강했다고 말한다. 몇 차례 학교 내부인과 갈등도 있었다. '왜 학교 안의 일을 학교 밖의 사람이 와서 상관하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문지혜씨를 비롯한 인천 지역의 여성단체들은 학교는 학생의 목소리를 수용할 능력이 되지 않는 곳이라고 판단했다.

그 지난한 과정 속에서 싸우는 학생들을 만났던 게 문지혜씨에게는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는 "왜 학교 내에서 가장 권력이 약하고 폭력에 취약한 여학생들이 용기를 낼 수밖에 없었을까" 화도 나는 동시에 "몇 사람의 용기 있는 고발이 이렇게 큰 파도를 만들어냈구나"라며 감탄했다.

학생들은 활동가들을 보면서 배웠고, 활동가들은 반대로 학생들을 보면서 배웠다. 지혜씨는 학생들이 "인권 투사가 돼 학교 안의 모든 혐오에 대해 실질적인 대책을 요구하는 걸 보면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과정 속에서 분명 변화한 학교가 있다고 문지혜씨는 판단했다. 그는 학생들이 보기에는 만족스럽지 않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학교가 학교 밖의 사람을 초청해 "해결책을 만들어왔으니 모니터링을 해달라"고 제안했던 사례를 들었다.

"아직 학교에는 노력하는 선생님들이 계신다는 것, 물론 혼란스럽고 불편하지만 그럼에도 해결하고자 한 선생님들이 계신다는 게 중요한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인천 스쿨미투의 더 자세한 이야기는 책 '우리 목소리는 파도가 되어'를 통해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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