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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전 대통령을 살해한 김재규의 사진이 군부대에 다시 걸릴 수 있게 됐다. 관련 훈령이 개정된 것이다.

국방부는 이미 지난 2018년 8월 '국방장관 및 장성급 지휘관 사진 게시 규정 등 부대관리훈령 개정(안)'을 추진한 바 있다. 하지만 한동안 보류 상태로 남아있다가, 지난 4월 26일 개정 작업을 마무리했다.

'군의 역사를 있는 그대로 기록한다'는 취지에서 이뤄진 이번 훈령 개정에 따라, 역사적 사실을 보존할 목적으로 역대 지휘관 및 부서장 사진을 게시할 수 있는 권한이 부대 지휘관에게 부여됐다. 1979년 10.26 사건을 계기로 사라졌던 김재규 사진이 육군 3군단과 6사단 등에 다시 걸릴 수 있게 됐다.

그간 군부대에서 사라진 게 김재규 사진만은 아니었다. 1988년 12월 3일 자 <동아일보>에 따르면,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장도영·김계원·정승화의 사진도 군부대에서 사라졌다. 육사 교장을 역임한 송호성과 최덕신의 사진도 마찬가지다.

정권에 미움 산 사람들, 사진도 함께 사라졌다

월북한 송호성·최덕신을 제외하고, 나머지 장군들의 사진이 사라진 결정적 이유는 집권자와의 관계에서 찾을 수 있다. 박정희의 상관이었던 장도영은 1961년 5.16 쿠데타 때 박정희를 암묵적으로 도와 군사혁명위원회 의장으로 추대됐다가 얼마 뒤 '팽' 당했다.

정승화는 박정희가 죽은 뒤 전두환과 경쟁하다가 1979년 12.12 쿠데타로 쫓겨났다. 박정희의 비서실장이었던 김계원은 김재규와 공범으로 엮여 밀려났다. 두 사람 다 전두환 정권에 의해 단죄를 받았던 것이다.

송호성·최덕신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다들 박정희 아니면 전두환의 단죄를 받았다. 그들의 사진이 사라진 결정적 이유는 바로 거기 있다. 이번 훈령 개정으로 김재규를 포함한 이들의 사진이 다시 게시된다면, 박정희·전두환 쿠데타로 얼룩진 군의 역사를 바로잡을 길이 열리게 된다. 군의 역사를 있는 그대로 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훈령 개정을 추동한 원동력은 장도영·정승화·김계원 쪽보다는 아무래도 김재규 쪽이라고 할 수 있다. 촛불혁명을 계기로 박정희 정권 재평가에 불이 붙고, 김재규에 대해 다시 논할 수 있게 된 게 이번 개정을 낳은 동력이라고 볼 수 있다.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형성된 기존의 '김재규 패륜아' 이미지에 어느 정도 변화가 생긴 것이다.
 
 건설부장관 시절(1974~1976년)의 김재규.
 건설부장관 시절(1974~1976년)의 김재규.
ⓒ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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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4월 30일 자 <경향신문> 등에서 확인할 수 있는 바와 같이, 10.26 뒤에 실권을 잡은 전두환은 김재규를 가리켜 "아비를 죽인 자식과 다를 바 없는 패륜아"라고 말했다. 그간 한국 사회의 여론을 주도해온 사람들은 전두환의 이같은 규정에 대체로 공감을 표시했다. 이런 분위기가 김재규에 대한 평가에 영향을 미쳤다. 그의 사진이 군부대에서 사라진 것도 이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김재규를 패륜아로 바라보는 분위기가 훨씬 강하긴 하지만, 또 다른 시각도 있다. 그를 '유신의 심장을 쏜 의인'으로 보는 관점이다. 김재규 재판 과정을 담은 녹음 테이프가 있다. 17년 뒤인 1996년, 월간 <신동아>가 이를 입수해 그 내용 일부를 공개했다. 1996년 9월 19일 자 <동아일보>는 이 테이프를 근거로 1979년 12월 8일의 육군 보통군법회의 2차 공판을 이렇게 보도했다.
 
"김씨는 이에 앞서 79년 12월 8일 오후 비공개로 열린 1심 2차 공판에서는 '민주사회에서 생명은 대통령이나 국민이나 마찬가지로 존엄성을 갖기 때문에, 다수의 희생을 막기 위해 한 사람을 제거했다'며 '야수의 마음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고 토로했다."
 
김재규는 '야수의 마음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박정희의 폭정으로 민주주의가 말살됐기 때문'이라고 진술했다. 열흘 뒤인 12월 18일 최후진술 때 발언을 <동아일보>는 이렇게 소개했다.
 
"김씨는 최후진술에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5.16 혁명과 10월 유신에 의해 말살됐다', '10.26 혁명은 건국이념이자 국시인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해 결행한 혁명'이라며 10.26 사건의 성격을 혁명으로 규정했다. 김씨는 또 '우리가 대통령 각하를 잃은 것은 매우 마음 아픈 일'이라고 전제한 뒤 '그러나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최소한의 희생이 불가피했다'고 주장했다."
 
'박정희는 민주주의를 말살하는 폭군이었으므로 국민 다수의 희생을 막고자 10.26을 결행했다'는 게 김재규의 진술이다. 맹자의 폭군 방벌론으로 자신의 거사를 규정한 것이다.

공손추가 스승 맹자에게 아주 도전적인 질문을 제기했다. <맹자> 진심(盡心) 편에 따르면, "그 군주가 어질지 못하면 정말로 몰아낼 수 있는 겁니까?"라는 게 그의 질문이었다. 어질지 못한 군주를 방벌하는 게 가능하냐는 이 질문에 대해 맹자는 "이윤(伊尹)의 정신이 있다면 그럴 수 있지만, 이윤의 정신이 없다면 찬탈이 된다"고 답했다.

이윤은 은나라 재상이었다. 임금인 태갑(太甲)이 국정을 방기할 뿐 아니라 자신의 충고도 듣지 않자, 이윤은 그를 왕위에서 끌어내리고 연금시켰다. 그 뒤 태갑이 반성하자, 이윤은 그를 3년 만에 복권시켰다. 이윤처럼 군주의 불의를 배척하는 심정을 갖고서 벌인다면 폭군 방벌이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게 맹자의 말이었다.

심지어, 맹자는 '폭군은 왕이 아니므로 폭군을 죽이는 것은 평범한 필부를 죽이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까지 말했다. <맹자> 양혜왕 편에 따르면, 그 말은 제나라 선왕(宣王) 즉 제선왕과의 대화에서 나왔다.

양혜왕 편에 따르면, 맹자는 주나라 무왕(武王)이 폭군인 은나라 주왕(紂王)을 멸망시킨 일을 두고 "인(仁)을 해치는 것을 적(賊)이라 하고 의(義)를 해치는 것을 잔(殘)이라 하며 잔(殘)하고 적(賊)한 사람을 일부(一夫)라 한다"면서 "일부(一夫)인 주(紂)를 베었다는 말은 들었어도, 군주를 시해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라고 말했다. 폭정으로 군주 자격을 상실한 주왕은 일개 필부에 불과하므로 그를 죽인 것은 군주 시해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김재규에 대한 두 가지 평가
 
 10·26 사건 현장. 광화문광장 동편의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찍은 사진.
 10·26 사건 현장. 광화문광장 동편의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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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 때 김재규는 자신이 박정희를 바로잡고자 열심히 노력했다고 진술했다. 박정희에게 직선제 개헌도 건의해보고, 최순실 아버지 최태민을 제거할 것도 건의해봤다고 진술했다. 그런 충언들을 박정희가 죄다 묵살해버린 게 10.26 결행의 동기 중 하나였다고 그는 말했다.

맹자가 말한 폭군 방벌의 요건을 따른다면, 김재규는 자신의 행동이 박정희의 폭정을 해결할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야수의 마음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는 김재규의 말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같은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0.26 이후에도 박정희를 지지하는 세력이 오랫동안 권력을 장악했으므로 그의 진술이 무시되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1980년 5.18 광주항쟁, 1987년 6월항쟁, 2016년 촛불혁명을 거치면서, 박정희 지지 세력은 현저히 약해졌다. 2017년부터는 박정희 재평가에 불이 붙고 있다. 이런 분위기가 김재규에 대한 평가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박정희 재평가의 결과로 김재규 재평가의 여지가 생겼기 때문에, 그의 사진을 군부대에 다시 거는 일이 큰 저항 없이 진행된 측면도 있을 것이다.

물론 김재규의 폭군 방벌에는 문제점이 있다. 그 역시 박정희의 유신독재를 거들었다. 그도 유신독재에 책임이 있다. 그런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그는 철옹성 같은 유신 체제를 무너트리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완전한 의인으로 평가할 수는 없겠지만, 그에 대한 재평가가 불가피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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