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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였을까. 매사에 심드렁해졌다. 세상 모든 맛은 다 먹어봤으니 안 먹어도 알 것 같은 기분이랄까. 딱 그랬다. 드라마의 이야기는 뻔하디 뻔하고 주인공들의 애달픈 사랑에 콧방귀가 나왔다. TV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가사는 들리지도 않으면서 시끄럽기만 했다.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낙엽지고 눈이 내리는 건 자연의 이치이니 당연하다 싶었다.
 
이영희 작가의 책 '365일하루한그림' 매일매일 그리는 그림이 주는 즐거움을 알려준다
▲ 이영희 작가의 책 "365일하루한그림" 매일매일 그리는 그림이 주는 즐거움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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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릴없이 페이스북을 들락거리다 이영희 작가의 '1일1그림'을 보았다. 매일 한 그림씩 하루도 빠지지 않고 꼬박꼬박 올라오는 그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왠지 모르게 편안해졌다. 키득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이다가 감탄의 탄성을 지르다가, 어느 날 나도 그리고 싶어졌다. 그냥 함께 그려보자는 그의 초대를 겁도 없이 받아들였다.

첫 날, 나뭇잎 몇 장을 그리는데만 2시간이 걸렸다. 손바닥만한 종이가 태평양보다 몇 배는 넓어보였다. '그럼 그렇지, 내 주제에 무슨 그림을 그리겠다고, 선물로 받은 물감과 스케치북은 어쩌나.' 그만 두고 싶었다. 선물을 버릴 수도 없고 스케치북 한 권은 채워보자는 심정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나뭇잎 몇장 1년전에 2시간동안 그린 나의 첫그림이다.
▲ 나뭇잎 몇장 1년전에 2시간동안 그린 나의 첫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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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그리기'는 어려웠다. 조그만 종이지만 매일 한 장씩 그리는 것은 더 힘들었다. 선긋기, 스케치, 붓질... 제대로 할 줄 아는 것은 없으니 더 그랬다. 잘 그렸는지, 못 그렸는지 무심결에 내리는 평가도 그리기를 힘들게 했다. 하지만 계속 그렸다. 이름을 불러주어야만 알아 볼 수 있는 호미와 장미를 그린 적도 있다. 그리면 그릴수록 대상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어떻게든 그리려면 잘 보아야했다.

자세히 보면 볼수록 대상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나태주 시인이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더니 정말 딱 그랬다. 시장 보러 가는 길에 문득 쳐다 본 푸른 하늘, 산책길에 발견한 풀벌레, 죽은 줄 알았던 화분에서 돋아난 새싹,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마시는 커피 한 잔, 온 가족이 모여 함께 먹는 치킨 한 조각에도 감사한 마음이 생겼다. 더불어 그림을 그리는 동안 크고 작은 시름거리를 잊을 수 있었다.
 
아플때 아프다 말할수 있는 가족이 있다는건... 지난 12월에 그린 그림.
▲ 아플때 아프다 말할수 있는 가족이 있다는건... 지난 12월에 그린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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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울에는 큰아이의 건강과 군 복무문제, 어렵게 꼬여버린 작은 아이의 입시로 분주했고 마음이 아팠다. 자책감, 후회와 자기모멸감으로 둘러싸여 울고 또 울다가 그림을 그렸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잠시나마 시름을 잊었다. 여전히 잘 되지 않는 선긋기. 스케치와 붓질로 완성된 그림을 보면 웃음이 나왔다. "이것도 그림이라고 말할 수 있나?" 얼렁뚱땅. 엉망진창, 명암이나 원근법은 싹 무시하고 그린, 그림 같지  않은 그림이 묘하게 성취감을 주고 위안이 되었다. 
 
시름을 잊게하는 그림그리기 책에서 볼수 있는 365개의 그림중 266, 267번째 그림.
▲ 시름을 잊게하는 그림그리기 책에서 볼수 있는 365개의 그림중 266, 267번째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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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시름을 잊게 하는 그림그리기'를 가르쳐준 이영희 작가의 '1일1그림'이 모여 한 권의 책이 되었다. '365일 하루 한 그림'은 어린 아이들처럼 그냥 그려보자고 말을 거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분명 힘을 빼고 그렸겠지만 나 같은 사람이 보기에는 지나치게 완성도가 높은 그림이 다소 장벽이 될 수 있겠다.

그래도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그림 그리는 기술이나 방법에 대해 일체의 언급이 없이 그림만 쓱 보여주는데도 그렇다. 시간을 쌓고 쌓아 만들어진 것이 가진 힘이리라.

매일매일 그림을 그려보자. 연필, 색연필, 펜, 물감, 사인펜, 붓펜이든 아무거나 상관없다. 선이 비뚤빼뚤하면 어떤가. 동그라미가 동그랗지 않으면 어떤가. 물감이 번지면 쓱 닦아내면 된다. 내 마음이 좋으면 되지 않나. 매일 매일 그리다보면 어느 순간 자기 자신을 위로하고 스스로를 기쁘게 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을 것이다. 이미 경험하고 느낀 사람으로서 강력하게 추천한다.

"시름을 잊게 하는 그림그리기, 백퍼 보장, 팔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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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로 세상과 소통하고 싶은 주부입니다. 교육, 문화, 책이야기에 관심있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