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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겠다고 떠난 여행에서 더 지쳐서 돌아오는 때가 있다. 뿌듯하긴 한데, 사실 쉰 것 같지는 않은, 미적지근한 기분이 드는 여행이다. 욕심만 잔뜩 부렸던 첫 해외여행이 딱 그랬다. 

장기여행을 계획하면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막상 여행길에 오르니 또 그게 맘처럼 되지 않았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라는 마음을 떨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성실히 걸었고, 열심히 찾아다녔다. 

그리고 지금, 3주가 넘게 반복되고 있는 나의 하루는 셋으로 정리된다. 먹고, 자고, 읽는 일이다. 사나흘에 한 번씩 지역을 옮기는 것도 관뒀다. 그저 게으르게 때가 되면 먹고, 밤이 되면 자고, 깨어 있는 시간엔 주로 책을 찾아 읽는다. 유명 관광지도, '필수' 체험도 찾지 않고 그저 단조로운 요즘이다. 하지만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내가 여행하고 있음을 느낀다.

부지런히 걷지 않아도 괜찮아

당연한 것이, 원래가 가만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여행을 갔다고 갑자기 바뀔 리 없었다. 스리랑카를 지나 처음 인도로 왔을 때 지쳤던 것도 그 이유에서였다. 스리랑카에서의 2주는 너무나도 좋았지만, 마음마저 놓을 여유는 없었다.

많이 더워진 남인도를 예정보다 빠르게 떠나 북인도에 짐을 풀면서, 나는 마음도 함께 내려놓았다. 한국에서도 차마 놓지 못했던 마음이었다.

한국에서 집을 나설 때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챙긴 문학책은 언제나 그 무게가 무색했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옆에선 다들 스펙이다 자격증이다 열심히 공부하는데 그와는 상관없는 것을 하는 건 너무 불안한 일이다. 

하지만 이곳에선 토익책을 펼치지 않아도, 시사 상식을 외지 않아도 괜찮다. 어차피 못한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한국에서 가장 하고 싶던 것을 해도 되는 셈이다. 나의 경우엔 그것이 카페며 침대에 앉아 게으르게 문학을 읽는 일이었다.

처음엔 '여기까지 와서 이래도 되나' 싶었지만 막상 이렇게 지내보니 '00가서 안 하면 후회할 탑 10' 리스트를 무시한 나를 칭찬해주고 싶어졌다. 길다고 미뤘던 장편소설 읽기, 들춰보고만 말았던 시집 읽기, 좋아하는 작가의 산문집 찾아 읽기… 나는 나의 리스트를 만들었다.
 
 인도 북부 리시케시의 한 카페. 책과 케이크, 짜이(인도의 차)면 여행지의 하루로 더할나위 없다.
 인도 북부 리시케시의 한 카페. 책과 케이크, 짜이(인도의 차)면 여행지의 하루로 더할나위 없다.
ⓒ 조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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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자기만의 방법이 있다

읽고 싶었던 책만이 아니라 내가 있는 장소, 분위기, 그날의 기분에 꼭 맞는 책을 찾는 것도 하루의 소소한 취미가 됐다. 예컨대 갠지스강 상류에 위치한 요가와 명상의 도시 '리시케시'와는 허수경 시인의 시집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가 가장 어울렸다.

최근 도착해 자리를 잡은 인도의 티베트 마을 '맥그로드 간즈'에서는 고 박완서 작가의 티베트-네팔 기행문 <모독>이 큰 울림을 준다. '00가서 꼭 봐야 할 것' 대신 '00에서 꼭 읽으면 좋을 책'을 혼자 정하곤 기뻐하는 요즘이다. 그 도시를 기억할, 그곳과 꼭 맞는 책을 찾고 발견하는 과정은 내게 또 하나의 여행이 됐다.

이쯤 되니 이번 여행에서 가장 후회되는 것이 카메라를 산 일이 되어버렸다. 중고매물을 뒤져 야심 차게 준비해 간 카메라가 자리와 무게만 차지한 채 가방에 처박힌 지도 한 달이 넘었기 때문이다. 사진을 잘 찍는 편이 아니면서도 여행을 가면 열심히 찍을 줄 알고 샀지만, 내가 나를 너무 과대평가한 듯하다.

누구에게나 여행을 기억하는 자기만의 방식이 있다. 그 방식은 노래나 사진이 될 수도 있고, 여러 관광지를 알차게 돌아보는 것일 수도, 상상도 못 한 방식일 수도 있을 테다. 그러니 다음 여행에선 자기만의 리스트를 만들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하나 더, 여행을 갔다고 사람이 하루아침에 변하는 것은 아님도 유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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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하되 날카로운 글을 쓰고 싶습니다. 지금은 여행 중에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