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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김홍일 전 민주당 의원의 빈소를 찾은 조문객들이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2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김홍일 전 민주당 의원의 빈소를 찾은 조문객들이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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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일 전 의원이 20일 오후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별세했다. 지병인 파킨슨병을 앓아왔던 그는 토요일인 20일 오후 4시 8분 서교동 자택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다. 119 구급차에 실려 세브란스병원으로 이송돼 응급조치를 받았지만, 5시 4분 사망 판정을 받았다.

김 전 의원은 해방 3년 뒤인 1948년 1월 전남 목포에서 당시 목포해운공사 사장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그는 정치가가 된 아버지의 길을 따라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었다. 이로 인해 경희대 재학 시절인 1971년(23세)에는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으로 수감 생활을 했고, 32세 때인 1980년에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구속돼 극심한 고문을 받았다.

이런 고난은 일평생 따라다닐 고통스런 후유증을 안겨줬다. 2000년을 넘은 뒤에는 50대 나이로 파킨슨병에 걸려 보행에 불편을 겪을 정도로 고통의 나날을 보냈다.

그는 아버지가 대통령이 되기 1년 반 전인 1996년(48세) 15대 총선 때 목포·신안갑에 출마해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16·17대 총선에서도 연달아 당선됐다. 하지만 인사청탁 대가로 1억5천만 원을 받은 혐의가 인정돼, 대법원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2년 및 추징금 1억5천만 원을 선고받고 의원직을 상실했다. 그 뒤 투병 생활을 이어오다가 4월 20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71세.

"오로지 아버지가 김대중이라서 두들겨 맞았다"
 
 구속되기 약 2개월 전에 발행된 1980년 3월 27일자 <동아일보> 속의 김대중.
 구속되기 약 2개월 전에 발행된 1980년 3월 27일자 <동아일보> 속의 김대중.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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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한테 김홍일 전 의원은 특별히 가슴 아픈 아들이었다. 다른 아들들도 아버지로 인해 시련을 겪었지만, 장남 김홍일은 고문 후유증으로 신체적 불편까지 감내해야 할 정도였다. 그래서 장남을 대하는 아버지의 마음은 한층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김대중 자서전> 2권에 이런 글이 있다.
 
"돌아보면 나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세월을 고통스럽게 살아야 했는가. 홍일이는 수 차례 정보부에 끌려가 고문을 당했다. 오로지 아버지가 김대중이라서 두들겨 맞았다. 나 하나면 됐지, 차라리 나를 더 때리지 ······.

나의 세 아들 모두는 몸과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았다. 특히 홍일이는 고문 후유증이 악화되어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그런 아들을 보고 있으면 뼛속까지 아팠다. 그러나 내색을 할 수 없었다. 나는 자식들에게 늘 미안했다."

전두환과 신군부가 조작한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수감돼 있을 때도, 큰아들에 대한 김대중의 안타까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1980년 5월 17일 동교동 자택에서 체포된 지 11개월이 지난 1981년 4월 어느 날 큰아들의 편지를 받은 김대중의 반응에서 그런 마음이 절로 묻어난다.

김대중은 1980년 9월 17일 보통군법회의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 2심인 고등군법회의가 항소를 기각한 데 이어 3심인 대법원도 1981년 1월 23일 상고를 기각함에 따라, 1심 사형선고가 그대로 확정됐다. 하지만 대법원의 상고기각결정 1시간 뒤, 국무회의는 형량을 무기징역으로 감형했다.

그런 상태로 육군교도소에서 청주교도소로 이감돼 수감 생활을 하던 4월 어느 날, 김대중은 그 편지를 받게 됐다. 수감된 뒤 처음 받아보는 장남의 편지였다. <김대중 자서전> 1권은 이렇게 말한다.
 
"봄기운이 조금씩 스며들던 4월의 어느 날, 큰아들 홍일에게서 편지가 왔다. 발신지는 대전교도소였다. 작년 5·17 이후 헤어진 뒤로 오늘까지 거의 1년을 아무 소식을 못 듣고 있다가 편지를 받으니 가슴이 너무도 떨렸다."
 
어찌나 떨리는지, 편지를 뜯을 수 없을 정도였다. 잠시 동안이 아니라 몇 시간 동안이나 그랬다. 편지를 그냥 손에 든 채, 보고만 있었던 것이다.
 
"편지 겉봉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미어졌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몇 시간을 어루만지기만 했다. 밤이 돼서야 이불 속에서 편지를 읽었다. 글씨가 안 보여 몇 번이나 눈물을 닦아야 했다."
 
아버지가 떨리는 마음으로 몇 시간 동안 편지를 붙들고 있었던 것에 비하면, 아들의 편지 내용은 비교적 담담한 편이었다. 그 내용 중 일부는 아래와 같다.
 
"꿈속에서도 간절히 만나 뵙고 싶어 애를 쓰던 아버지께 편지를 쓴다고 생각하니 먼저 눈시울이 뜨거워지는군요. (중략) 너무도 아버지를 그리워한 탓인지, 저희 형제가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뒤 아버지 손을 양쪽에서 잡고 남산 팔각정에 올라가 사진을 찍는 등 여러 가지로 아버지께 사랑을 받던 생각이 나곤 합니다.

어머니, 홍업, 홍걸, 제 처를 통해 아버지 면회와 편지에 대해서 전해 듣고 있습니다만, 아버지 건강이 좋지 않으심이 무척이나 가슴이 아프군요. (중략) 아이들이 식사 때와 잠잘 때 '할아버지와 아빠가 건강하게 지내고 빨리 우리들한테 돌아오게 해달라'고 기도한다더군요. 아이들의 기도가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입니다."
 
아버지는 "한 자, 한 자 뚫어지게, 읽고 또 읽었다"고 한다. "아버지 때문에 청춘을 감옥에서 보내야 하는 내 아들 홍일이. 한없이 슬프고 한없이 미안했다"고 한다.

아들은 편지가 아버지한테 전달되지 못할 가능성을 염두에 뒀다. 그래서 편지 봉투가 아닌 편지지 맨 끝에 이런 추신을 달아놓았다. 위 자서전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 편지를 취급하시는 분들게 - 이 편지를 아버지께서 받아보실 수 있도록 선처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아내여 서러워 마라 이 자식들이 있잖소"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남 김홍일 전 민주당 의원이 20일 오후 5시께 별세했다. 향년 71세. 사진은 1970년대 초 무렵 고 김대중 전 대통령 가족의 모습. 오른쪽 두 번째가 김 전 의원.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남 김홍일 전 민주당 의원이 20일 오후 5시께 별세했다. 향년 71세. 사진은 1970년대 초 무렵 고 김대중 전 대통령 가족의 모습. 오른쪽 두 번째가 김 전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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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들로 인한 울컥함은 김대중의 58회 생일인 1982년 1월 6일에도 있었다. 이날 김홍일은 동생 홍업·홍걸과 함께 면회실 유리창 너머로 아버지께 인사를 올렸다. 김홍일은 1981년 5월 10일 특별사면을 받고 석방돼 있었다.

당시 김대중은 다른 수감자들에 비해 터무니없는 차별을 받고 있었다. 법적 근거도 없이 면회 횟수가 제한되는가 하면 면회 시간이 제약된 적도 있었다. 그뿐 아니라 면회인의 얼굴을 식별하기 곤란한 방에서 면회를 해야 했다.
 
"말이 면회지 가족들의 얼굴을 한 번도 또렷하게 볼 수가 없었다. 면회 장소를 특별히 개조하여 나와 면회객 사이에 넓고 두꺼운 유리를 설치했기 때문이다. 대화의 내용은 물론 녹음되고 기록되었다. 인터폰으로 가족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대화를 하다가도 시간이 되면 인터폰이 끊어졌다."
 
그런 면회실에서 김홍일과 두 형제가 아버지의 58회 생일을 축하했다. 그날의 생일잔치 느낌을 아버지는 이렇게 회고했다.
 
"아들들이 찾아와서 무릎을 꿇고 큰절을 했다. 유리창 너머로 그 모습을 바라봤다. 가슴으로 형용할 수 없는 뜨거움이 느껴졌다."
 
감방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감격을 이기지 못하고 장문의 시조를 써내려갔다. 그중 1개 연은 이렇다.
 
면회실 마루 위에 세 자식이 큰절하며
새해와 생일 하례 보는 이 애끓는다
아내여 서러워 마라 이 자식들이 있잖소
 
다른 자녀들도 마찬가지였겠지만, 아버지와 비슷한 고난을 겪은 장남 김홍일을 김대중은 항상 안쓰러워 했다. 김홍일은 자기 인생을 살았다기보다는 김대중 아들로서 더 많이 살았던 아들이다. '살았다'기보다는 고통을 당한 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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