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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판촉물 사이트에서 컵을 100개 주문했다. 컵 겉면에는 남편 형의 말을 넣었다.
 몇십 년을 함께 살았는데 왜 아직도 우린 종종 먹통이 될까.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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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난 아무 잘못도 없었다. 그런데도 아내는 무슨 심통이 났는지 쌀쌀 맞게 굴었다. 도대체 그 이유가 뭔지 알 도리가 없었다. 시골 부모님께 갔다 막 돌아온 참이었다.

"허리가 아프고 뼈 마디가 쑤시는 것 같아."
"나도 온몸이 쑤셔 죽겠어, 병원에 갈까?"
"내가 아프다 하면 당신도 꼭 아프더라?"


되받는 아내의 낯빛이 못마땅한 듯 심상치가 않다. 사실 난 온몸이 지끈지끈해서 사실대로 말한 것뿐인데, 그게 무슨 잘못이란 말인가? 자기는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면서, 나는 아프다는 말도 못하면서 살란 말인가? 몇십 년을 같이 살아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가르치려 하지 말고 그냥 그렇게 좀 해"

최근에 읽은 책, <당신이 옳다>(정혜신)는 이런 때를 위해 씌어진 듯했다. 바로 나 같은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보물들로 가득했다. 식사를 하면서 아내에게 그 책에 대해서 내 생각을 곁들여서 들려주었다.

"모든 인간은 계속 살아 있으려 하고 또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려고 하는 '내면의 욕구'를 갖고 있대. '드러난 마음'은 이런 욕구가 충족된 정도를 보여주는 신호래. 반면 '생각'은 그런 욕구를 채우기 위해 주로 외부 환경으로부터 후천적으로 습득한 것이래.

그러니까 드러난 마음은 속마음 즉 '내면의 욕구'를 살짝 보여주는 신호란 거야. 그 신호가 무얼 뜻하는지를 잘 모르겠으면 궁금증을 갖고 물어보는 게 상책이래.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러는 거냐?'라고 드러난 마음에 초점을 맞추고 그냥 물어보면 된대. 

신호를 갖고 잘잘못을 따지려 해선 안 된대.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귀담아 들어주고 이해해 줘야 한대. 그러면 꼭꼭 숨겨둔 속내를 털어놓게 되고, 드디어 속마음을 만날 수 있게 된다는 거야. 그 속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주면, 살아갈 힘을 얻게 되고, 곪아터질 수도 있었던 마음의 병이 치유되곤 한대. 마음에는 마음으로 대해야지, 마음에 생각으로, 감정에 이성으로 반응하면 낙제래."


열심히 듣던 아내는 대뜸 자기를 가르치려 하지 말고 그냥 그렇게 좀 해달라고 했다. 생각해보니 이야기하기는 쉬운데 행동하기는 만만치가 않을 듯했다. 몸에 벤 습관이 하루아침에 쉬이 바뀔 리가 없다. 두꺼운 책 한 권을 일일이 기억하기도 어렵고, 그대로 실행하기는 더욱 어려운 법이다. 그래서 난 딱 네 줄로 간단하게 정리해서 마음에 새겨두기로 했다.

"눈에는 눈을 맞춰야 정이 오가고
입술엔 입술을 대야 짜릿하고
마음에는 마음을 포개야 공감을 얻고
생각에는 생각을 나눠야 새로운 생각이 솟아난다."​


아내의 속마음을 알 수 없다면, 드러난 마음을 실마리로 먼저 묻고, 귀담아 듣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했다. 그런데 아내를 위한답시고 늘 뭔가 해답을 가르쳐주려 한 것이 문제를 일으켰던 듯하다. 아프다 하면 "병원에 가봐라" 힘들다 하면 "좀 쉬어라" 늘 이런 식의 대증요법이었다. 아픈 까닭이 뭔지, 힘든 이유가 뭔지 물어보고 들어보고 이해하는 과정을 건너뛰곤 했다. 그러니 눈을 감고 화살을 쏘는 격이다. 과녁에 맞을 리가 없다. 아내가 냉랭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허리가 아프고 뼈 마디가 쑤시는 것 같아"라는 건 아내의 내면에서 흘러나온 신호다. 설사 신호가 사라진다고 해도 그 원인이 그대로인 한, 아무것도 해결된 게 아니다. 그건 신호 보내길 아예 포기해 버렸거나, 고장 난 것일 뿐이다. 신호가 흘러나온 속마음 즉 "내면의 욕구"를 들여다봐야 비로소 과녁을 맞출 수 있다. 그러므로 이렇게 따뜻하게 물어봤어야 했다.

"많이 아파? 힘들었지?"

그러면 그간의 사정과 속마음을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해 줄 테니, 관심을 가지고 귀담아 들어주면 될 일이었다. 그리고 "그래 그랬었구나. 고생했어, 여보"라면서 온 마음을 실어 어루만져 주면 가슴 속 응어리가 눈 녹듯 사라졌을 것이다.​

'충조평판'이 문제다

​금성에서 온 여자가 마음을 슬며시 털어놓으면, 화성에서 온 남자는 위해준답시고 "올바른 말"로 가르쳐주려 하고, 그 말에 여자는 상처만 받고, 남자는 자신의 올바른 말에 무슨 올바르지 못한 게 있는지를 몰라 당황하게 되는가 보다. 이른바 이 "올바른 말"이란 게 "충조평판"이라 일컬어지는 충고, 조언, 평가, 판단인데, 욕설보다 만 배는 더 자주, 더 심하게 상처를 준다고 한다. 늘상 평조평판을 일삼으면서도 난 아내를 위해준다고 착각했으니, 그 동안 같이 살아도 헛살았다. 이제는 좀 나아지려나?

언젠가부터 우리 식탁이 좀 단조로워졌다. 반찬도 그렇고 대화도 그랬다. 아들들이 직장 근처로 나가 살고부터인 듯하다. 그런데 그날 따라 아내는 어쩐 일인지 열심히 뭔가를 장만하고 있었다. 맛있는 냄새를 풍기더니 드디어 식탁이 차려졌다. 준비한 반찬들을 올려놓기가 무섭게 아내는 눈을 반짝이며 흥분된 목소리로 "여보, 이 된장찌개 맛이 어때?"라고 했다.

젠장 급하기는, 맛도 보기 전에 맛을 묻다니! "아직 숟갈도 안 대봤다고. 눈으로 맛을 알 수야 없지." 아내는 "입은 뒀다 뭐해?"라고 삐죽대며 쏘아붙인다. 갑자기 우린 서로 먹통이 된 듯했다. 수십 년을 같이 살았어도 이렇게 종종 먹통이 된다. 이런 사소한 일이 하루의 분위기를 좌우할 때도 있다. "아! 맛있겠다. 먹어봐야지" 그리고 얼른 맛을 본 후엔 "바로 이 맛! 당신 쵝오!" 라고 했어야 했다. 그랬으면 아마 키스 세례를 받았을 것이다. 먹통이 아니라 짜릿한 소통을 맛 보았을 것이다. 

그때 아내는 맛을 알고 싶은 게 아니었다. 자신도 의식하지 못했을지 모르겠지만 사랑받고 칭찬받고 싶은 속마음을 그런 신호로 발신한 것이리라. 그러니 그 신호를 실마리로 속마음을 읽어내고, 그에 적절한 말이 툭 튀어나왔어야 했다. 그러나 그렇게 지레 짐작했다간 과녁을 빗나가기 십상이다. 차라리 "무슨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는 거야?"라고 슬쩍 묻어보는 편이 훨씬 나을 것이다. 어쩌면 아내도 이야기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할지도 모른다. 장단을 맞춰주고, 맞장구를 쳐주면 신이 나서 내막을 속속들이 다 이야기를 할 것이다.

"아직 숟갈도 안 대봤다고" 했던 내 대꾸는 너무나 생뚱맞고 과녁에서 동떨어졌다. 의도치 않았다곤 해도 어쩌면 가슴을 멍들게 한 비수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곰곰이 생각하면 뻔할 것 같지만, 실제 상황에서는 그게 그렇게 간단치가 않다. 안다고 해서 저절로 될 리도 만무하다. 그래도 먹통을 몰아낼 길을 안 것만도 다행이다. 드러난 마음만 보고 충조평판을 늘어놓기 보다는, 속마음을 자상스레 살펴보고 내 마음을 따뜻하게 포개기만 하면 된다. 물론 아는 것과 되는 것 사이에는 엄청나게 먼 길이 있다. 그래도 가다 보면 못 갈 길도 아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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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하고 싶어도 이런저런 이유로 못했던 것들이 참 많았는데, 이제 은퇴하고 시간이 넉넉하니 이것저것 하게 됩니다. 책도 읽고, 글도 쓰고, 라인덴스도 배우고, 클라리넷도 불면서 새로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에 기자회원이 될 수도 있다니, 힘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