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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낙태죄가 헌법불합치 판결이 나오자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던 여성단체 회원들이 환호를 하고 있다.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낙태죄가 헌법불합치 판결이 나오자 ‘낙태죄 페지’를 주장하던 여성단체 회원들이 환호를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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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1일, 낙태죄 헌법불합치 선고가 확정된 직후 친한 친구로부터 문자 한 통을 받았다. 낙태죄 합헌 의견을 내놓았던 헌법재판관들의 말도 안 되는 논리를 이해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나 역시 친구의 문자를 확인하자마자 또다시 분노에 휩싸였다. 낙태죄 헌법불합치 선고라는 기쁜 소식을 접하고 벅차는 감정을 만끽한 지 채 10분도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지금 우리가 자기낙태죄 조항에 대한 위헌, 합헌의 논의를 할 수 있는 것도 우리 모두 모체로부터 낙태 당하지 않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태아였다."
 
나는 이 말을 접하자마자 가장 먼저 이 질문을 던지고 싶어졌다. "여기서 말하는 '우리'는 도대체 누구인가?"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모체로부터 낙태 당하지 않고 태어'날 수 있었던 '우리'의 서사에 여성과 장애인의 자리는 없다는 점이다.

1990년대엔 여아 감별 낙태가 횡행했고, 심지어 '장려'됐다. 또, 모자보건법은 합법적인 임신 중단 사유로 '유전학적으로 질병이나 장애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 등을 든다. 이러한 역사와 법은, 생명권을 가진 주체인 태아가 여성과 장애인의 얼굴을 한 적이 없었음을 증명한다.
 
만약 낙태죄 합헌 의견을 낸 재판관들이 "태아도 소중한 생명입니다, 우리 모두는 태아였습니다"라는 주장을 정말로 끝까지 밀어붙이고자 했다면, 남아 선호 사상과 페미사이드의 역사도 비판해야 했다. 또, 장애나 질병이 가진 아이를 낳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여성들에 대해 합법적으로 임신중지를 허용하는 모자보건법을 폐지하자는 주장을 했어야 한다. 그래야 자기모순이 발생하지 않는다.

장애와 질병 없는 신체를 골라낸 국가

그렇다면 우리는 이 자기모순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걸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선 형법 제269조와 270조, 그리고 모자보건법 제14조 1항의 관계를 한국의 "실패한 인구정책"과 "우생학적 신체의 발명"이라는 역사적 맥락과 함께 생각해야 한다.
 
나는 법 이전에 '생명권'의 주체가 먼저 존재했고, 그러한 주체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사후적으로 법을 만들어진 게 아니라, "법이 주체(예컨대 '태아')를 생산"하고 '선별'했다고 본다. 또 한편으로 법이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어머니가 될 수 있는 주체를 특정한 방식으로 생산했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여성들의 '낳지 않을 권리'와 '낳을 권리'에 대한 문제제기는 사회의 규범이 승인하는 '정상적인 신체'나 인간 범주를 둘러싼 권력관계에 대한 질문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법으로 임신중지를 금하는 것이 어떤 효과를 낳는가. 단순히 누군가의 주장대로 고귀한 생명 하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하는 일도 아니고 , 또 누군가의 바람대로 국가가 인구를 토대로 발전 할 수 있게 하는 일도 아니다. 정확히 말해, 그 효과는 이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형법상 낙태죄는 특정한 몸들, 즉 출산하는 몸들을 만들어낸다. 이는 법 바깥의 건강-윤리 담론들과 결합함으로써 출산에 적합한 몸을 만들어내는 데에로 나아간다.

예컨대 흡연하거나 음주하지 않는 몸, 혹은 무작위의 파트너와 섹스하지 않는 몸을 만들어 낸다. 다시 말해, 임신중지를 처벌함으로써, 나아가 특정한 방식의 출산을 요구함으로써 한국 사회는 궁극적으로 여성을, 여성이라는 성 역할에 순응하는 주체를 생산해 낸다 (배틀그라운드, 250쪽('재생산 담론과 퀴어한 몸들'))."
 
마찬가지로, 청년들의 혼인율과 출산율이 낮아지는 것은 국가적인 걱정거리지만 결혼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결혼이탈자의 범주에 성소수자는 포함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성소수자의 몸은 '(재)생산이 불가능한 비정상적인 몸'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재생산 불가능한 몸들이 결합하고 가정을 만드는 행위'는 본 적 없거나 불가능한 일, 해서는 안되는 일로 여겨진다. 동성혼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논리에는 '정상가족', '부모 됨' 그리고 '재생산가능한 몸'이라는 규범이 확고하게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11일 저녁, 낙태죄 헌법불합치 선고를 환영하는 집회에서 가장 기억에 남고 감동적이었던 것은 낙태죄 폐지 이후의 세계를 상상하고 만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논의와 관련해서 <배틀그라운드>의 마지막 챕터('낙태죄가 폐지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의 일부가 낭독되던 순간이었다.

그동안 페미니스트들이 싸우고 고민하며 만들어 낸 언어들이 (낙태죄가 폐지될 어느 미래에 대한 이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오늘 이 순간'을 설명하고, '내일'을 제안하고 이끌어가는 위치로 현실화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2020년까지, 입법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는 특히 낙태죄 폐지 이후의 '성교육의 변화의 필요성'에 관한 이야기를 인용하고 싶다.
 
"성교육은 성과 재생산에 관련된 사안을 다룰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지만, 성교육에 대한 정치적인 관점 없이 의례히 덧붙이는 수준에 그치기도 한다. 그러나 성교육은 '무엇을 성교육이라고 할 것인가'에 대한 정의에서부터 재생산권 실현을 위해 싸워나가야 하는 장이라고 할 수 있다. 성교육의 내용에서 '성'이라는 보편은 무엇인가, 교육의 내용과 대상에서 비가시화된 존재는 누구인가, 교육이 의지하는 지식은 어떤 권위에 기반 하는가, 누구의 어떤 성적 실천에 정상성과 자유를 부과하는가에 대한 투쟁적 상상이 필요하다(같은 책, 291쪽)."
 
나는 작년 2월 말 '페미니즘 의무교육화'를 요구하는 21만여 명의 국민청원에 대한 정부의 답변이 청와대 홈페이지에 공식적으로 게시되었던 것을 기억한다. 당시 청와대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은 "성평등 교육을 포함한 체계적인 '통합 인권교육'의 토대를 마련할 것을 약속"했다.

또한, 나는 여가부, 교육부 등 정부 차원에서 2018년 "11월 중 부처합동 스쿨미투 종합대책 마련"을 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던 것을 기억한다. 당시 "여가부는 사건이 발생한 학교의 교원을 대상으로 '찾아가는 폭력 예방교육'을 실시하고, 학교문화 개선을 위한 컨설팅을 지원하기로" 발표했다.
 
즉, 낙태죄 헌법불합치 선고 이후의 입법부를 비롯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단순히 '모자보건법'을 일부 개정하여 '합법적 임신중지'의 범위를 늘리는 것만으로 불충분하다. 정부가 해야 하는 일은 그동안 페미니스트들에게 했던 약속들을 '낙태죄 폐지 이후'라는 관점에서 지켜나가는 것이다.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낙태죄가 헌법불합치 판결이 나오자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던 여성단체 회원들이 환호를 하고 있다.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낙태죄가 헌법불합치 판결이 나오자 ‘낙태죄 페지’를 주장하던 여성단체 회원들이 환호를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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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 폐지 이후, 한국사회가 '진보'하려면
 
사실, 모자보건법 개정이 낙태죄 폐지 이후의 사회를 만들어가는 페미니스트 정치가 될 수 없는 좀더 근본적인 이유는 모자보건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인공임신중지 허용 사유' 자체가 "낙태죄의 존치와 국가가 추구했던 산아제한 정책이 충돌을 일으키기 때문에 이를 해결(같은 책, 276쪽)"하고자 하는 맥락 속에서 등장한 법조항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서 살펴봤듯이 이러한 합법적 임신중지 사유에는 우생학적으로 '장애나 질병 없는' 신체를 발명하고자 하는 국가 차원의 욕망이 분명하게 작동하고 있다.
 
따라서 낙태죄 폐지 이후에 정부가 정말로 해야할 일 중 한 가지는 '정상성' 규범을 '지식'의 형태로 가르치고 실천하도록 강제해온 공교육 제도 자체에 대한 근본적 반성이라고 본다. 또 몸과 섹슈얼리티에 관해 청소년들의 각종 사회적-정치적 권리를 보장하는 정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는 작년부터 스쿨미투를 이어오고 있는 십대 여성 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를 듣고 응답하는 여성주의적 실천에 동참해야 한다.
 
덧붙여, 단순히 '진영 논리'나 모자보건법 개정 발의 여부만으로 낙태죄 폐지 이후 한국 사회의 '진보정치'를 판단할 순 없다. '낙태죄 폐지'라는 전환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의지가 있는가, 그리고 '낙태죄 폐지'를 민주주의의 긴급한 문제로 간주하는가를 두고 판단해야 한다. 이것은 정치인들이 낙태죄 폐지 운동을 여성이 자기 몸에 대한 개인의 '소유권'을 요구하는 운동으로 단순화해서 이해하면 곤란한 이유이기도 하다.

"나의 몸은 나의 것, 나의 선택(my body, my choice)"이라는 말이 틀렸다는 얘기가 아니다. 이미 모든 종류의 책임과 선택까지 극도로 개인화된 신자유주의 사회가 도래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의 몸은 나의 것'을 가능케 하는 여성 개인의 '자기결정권'을 법을 통해 보장할 때, 사회의 역할과 책임(특히 국가와 남성)은 또 다시 사라지는 것은 아닌지 물어야 한다는 얘기다.
 
"성과 재생산의 능력은 비장애인으로서, 성인으로서 부여받는 것이 아니다. 역량이 능력으로, 능력이 자격으로 전치되는 제도 속에서 소수자들의 역량은 오히려 박탈된다고 할 수 있다. 이 역량은 단지 섹스를 할 수 있는가, 없는가의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역량이 '선택'으로 수렴될 때 사회의 역할은 단지 기회의 제공인 것으로 축소된다. 하지만 이 선택의 기회는 실패의 기회를 상정하지 않는다. 선택 이후의 결과, 책임, 효과가 오롯이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문제일 때 약자와 소수자들은 결코 평등해질 수 없다(같은 책, 281)."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이 글을 쓸 수 있게 된 것은 말 그대로 '최전선'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모든 페미니스트 연구활동가들에게 빚을 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밝히고, 이 지면을 통해서라도 진심으로 존경과 감사를 전하고 싶다.

나는 나보다 먼저 살았던, 그리고 동시대를 살고 있는 수많은 이들의 투쟁의 결과물에 빚을 지고 상호의존하면서 국가와 사회를 향해 질문을 던질 수 있었다. 우리에게 "살만한 삶이란 무엇인가(주디스 버틀러, 젠더허물기)"라고 물으며 비로소 숨을 쉴 수 있었다.

낙태죄 폐지 투쟁을 멀리서, 때로는 가까이서 바라보고 연대하며 내가 가장 많이 반성했던 것은 그동안 너무도 쉽게 절망을 확신했던 과거의 내 모습이다. '여긴 안 될 거야. 망했어. 틀렸어'라고 말하며 냉소와 환멸로 무장하던 바로 그 순간에도, 누군가는 이미 행동을 통해 변화를 만들고 있었다. 단지 내가 몰랐을 뿐이다.

배틀그라운드 - 낙태죄를 둘러싼 성과 재생산의 정치

성과재생산포럼 기획, 백영경 외 지음, 후마니타스(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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