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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전경 소나무 군락지에서 바라본 개평리 마을의 봄 풍경
▲ 마을 전경 소나무 군락지에서 바라본 개평리 마을의 봄 풍경
ⓒ 임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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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하순 경남 함양군 지곡면에 있는 개평마을을 찾았다. 남도의 대표적 전통 한옥마을이자 선비마을이다. 함양은 "좌안동 우함양"이라 불릴 만큼 산세가 좋아 유학자를 많이 배출한 선비들의 세거지였다.

개평마을은 조선 성종 때 성리학의 대가였던 일두 정여창 선생과 청백리로 이름난 옥계 노진 선생이 살았던 곳이다. 지금도 그의 후손인 하동 정씨와 풍천 노씨가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다. 마을에는 일두 선생의 고택을 중심으로 60여 채의 고택이 잘 보존되어 있다.

개평마을은 백두대간인 남덕유산의 정기가 남으로 흘러내리다 다시 솟은 대봉산 아래에 자리하고 있다. 남덕유산 자락에서 발원한 두 계류가 마을을 감싸 흐르고 있어 마치 배의 형상을 띠고 있다. "개평"이라는 지명은 두 개울이 하나로 합쳐지는 지점에 마을이 "낄개 介" 자의 모양을 하고 있다 하여 유래되었다고 한다.

개평 마을은 일두 선생의 조부께서 14세기 말(고려말)에 이곳에 터를 잡은 후 후손들이 지금까지 계속 살고 있다. 600년이 넘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마을이다. 마을 곳곳에 비스듬히 누워 있는 노송들이 마을의 역사를 짐작케 한다.

그 중 일두 선생이 살던 고택과 산책길에 비스듬히 누워 있는 늙은 소나무가 으뜸이다. 또 마을 앞 야산에는 능선을 따라 소나무 100여 주가 심어져 있다. 수령이 300년은 돼 보인다. 서편으로부터 엄습하는 나쁜 기운을 차단하고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조성한 숲이라 한다.

오백년이 넘는 긴 세월 속에 많은 전란과 변란에도 불구하고 고택과 마을이 온전히 보존될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나라가 전란 등으로 어지럽게 되면 지주를 비롯한 지배층은 억압받고 힘들게 살아왔던 백성들의 분풀이 대상이 되는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이다. 마을에 거주하는 하동정씨 후손에게 그 이유를 들어 보았다.

"우리 가문은 흉년과 전쟁 등으로 백성들이 어려워지면 곳간을 활짝 열어 구휼미를 나누어 주는데 전혀 주저하지 않았다고 해요. 오히려 구휼미를 꼭 필요한 사람에게 어떻게 나누어 줄 것이지 적극적으로 고민을 했다고 합니다."
"주변 마을에 가보면 조상님들의 공덕비가 많이 있어요. 마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세운 거랍니다."


하동 정씨 가문은 이웃들과 함께 살아가는 삶의 지혜를 알았던 것이다. 그렇다. "인심은 먹는데서 나온다"고 했다. 혼자만 배불리 먹고 다른 사람에게 배고픈 설움을 주게 된다면 깊은 원한만을 사게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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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평마을 고래등 같은 전통 고택들이 잘 보존되었다.
▲ 개평마을 고래등 같은 전통 고택들이 잘 보존되었다.
ⓒ 임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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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평마을로 들어서는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오른편)는 일두 고택으로 들어서는 것이고 다른 하나(왼편)는 정일품명가(한양객주)로 들어가는 길이다. 길은 차가 교행 할 만큼 넓다.

돌담과 개울을 따라 길은 고택으로 이어지고 지붕 끝을 살짝 들어 올린 한옥들이 멋스럽게 다가온다. 마을 안에는 주차장이 있고 고풍스런 고택의 찻집도 있다. 담장너머로 슬쩍 내민 백 매화는 새댁처럼 활짝 웃는 얼굴로 맞아준다. 품격과 정갈함이 한껏 느껴진다. 노란 산수유가 담장에 피어 있어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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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택 골목 일두 고택으로 들어서는 골목길에 판석이 깔려 있다.
▲ 고택 골목 일두 고택으로 들어서는 골목길에 판석이 깔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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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중심에 있는 정여창 선생의 고택으로 들어섰다. 고택으로 가는 골목길에 매화가 활짝 피어 밝고 깨끗함이 넘친다. 골목이 꺾어지는 일두 선생 고택 앞에는 솔송주 문화관이 자리하고 있다.

솔송주는 제천 현감을 지낸 눌제 정제범 공의 집안에서 송순, 솔잎, 찹쌀을 재료로 빚기 시작하여 오백년 동안 맥을 이어온 가양주다. 솔송주는 2015년 "우리 술 품평회"에서 "리큐류 부문" 대상을 받았다 한다. 역사적 중요성과 보존가치를 인정받아 솔송주기능보유자인 박흥선씨는 2012년 무형문화재 35호로 지정되었다.

문화관 옆으로는 정여창 고택의 솟을 대문이 열려 있다. 정여창 고택으로 향하는 골목길은 판석이 깔려 있다. 예전에 말을 타고 지나가면 흙이 파헤쳐지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해 깔았다고 한다.

대문으로 들어서자 높은 돌 축 위에 사랑채가 위엄 있게 앉아 있다. 누마루 앞으로는 잘 생긴 소나무는 담장에 기대어 서서 주인행세를 한다. 매일 찾아오는 손님을 오랫동안 맞은 듯 연륜과 경륜이 느껴진다. 소나무는 늙어야 더 멋있는 것 같다.

안채로 들어가 보았다. 사랑채에서 일각문과 중문을 지나야 들어 갈 수 있다. 안채는 일자형태로 가운데에 대청마루가 있고 마당에는 우물이 있다. 안채 뒤로는 넓은 텃밭도 있다. 텃밭에서 담장 너머로 바라보는 풍경이 참 시원스럽다. 남덕유산 자락인 대봉산이 막힘없이 다가온다. 고택을 나와 일두 선생의 산책길을 걸어보았다.
 
일두고택 정여창 선생의 고택 사랑채에 노송이 담장에 누워 주인행세를 하고 있다.
▲ 일두고택 정여창 선생의 고택 사랑채에 노송이 담장에 누워 주인행세를 하고 있다.
ⓒ 임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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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에 놓인 다리를 건너자 마을객주(일명 한양객주)로 가는 언덕길에 소나무가 마을을 향해  비스듬히 누워 있다. 수형과 연륜이 예사롭지 않다. 허리가 꺾이고 또 구부러져 기이한 형태를 하고 있다. 소나무가 누워 머리를 향하는 곳을 바라보았다.

정여창 선생 고택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일두 고택은 경남지방의 대표적인 건축물이자 문화유산이다. TV드라마 <토지>의 촬영장소로 이용되면서 널리 알려졌다. 안채, 사랑채, 대문채로 구성된 건축물로 상량문의 기록을 볼 때 1664년에 건축된 것으로 보인다.

개평마을에는 일두고택 외에 오담고택, 풍천노씨 대종가, 노참판댁 고가등 고래 등 같은 고택이 즐비하다. 일두고택 외에는 후손들이 실제 거주하고 있다. 마을 제일 높은 언덕에는 숙식이 가능한 마을객주(한양객주)가 있다. 청국장 한정식과 화덕 바베큐가 주 메뉴다. 마을 내 고택에서도 비빔밥과 국수를 팔고 있다. 온라인으로 예약하면 고택에서 한옥스테이가 가능하다.

함양은 남덕유산과 지리산으로 둘러싸인 산세가 수려한 곳이다. 농경지 또한 넓어 생활이 풍족하고 햇볕이 잘 드는 밝은 땅이다. 예전에 선비들이 한양 길에 왜 이곳에 머물며 벗들과 학문을 논하며 쉬어갔는지 이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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