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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불참 선서식 1963년 민주공화당 창당식 다음날 같은 장소에서 <민정불참선서식>까지 했지만 그는 민주공화당 후보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 민정불참 선서식 1963년 민주공화당 창당식 다음날 같은 장소에서 <민정불참선서식>까지 했지만 그는 민주공화당 후보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 히스토리채널 방송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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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찬탈한 박정희는 언제까지나 군정을 계속하기는 어려웠다. 국민의 눈과 국제사회의 여론 때문이다.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몇 차례의 '반혁명음모사건'으로 반대파 숙청을 거듭한 끝에 명실상부한 실력자로 등장하여 본격적으로 민정참여의 전략을 세우기 시작했다.

박정희는 63년 2월 18일 이른바 민정불참을 선언한 바 있었다. 그는 이날 시국수습을 위한 9개 방안을 각 정당이 수락한다면 자신은 민정에 참여하지 않을 것임을 천명한 것이다.

이 9개 항목 중에는 5ㆍ16의 정당성과 정치보복의 금지, 한일문제의 초당적 협조 등이 들어 있었다. 이에 따라 2월 27일에는 12개 정당대표와 7개 사회단체 대표 및 27명의 재야인사가 개인자격으로 참가한 가운데 소위 민정불참 선서식이 거행되었다.

그러나 박정희는 1주일 만에 민정불참 선서에 부정적인 의사를 표명하고, 3월 16일 "현시국은 과도적 군정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4년간 군정연장을 국민투표에 부치겠다며, 민정불참 선언을 번복했다.

이에 야권에서는 3월 22일 군정연장 규탄대회를 열어 군정세력과 맞대결에 나섰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박정희의 4ㆍ8성명이 나오게 되어 그의 민정참여는 기정사실로 굳어졌다. 결국 혁명공약을 뒤짚은 것이다.

군사정부는 62년 11월 박정희의 민정 참여를 위한 헌법개정안을 만들어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의결한 후, 12월 17일 국민투표를 통해 이를 확정했다.

우리 나라 헌정사상 처음으로 국민투표에 회부되어 투표자 1,508만 5,998명(투표율 85.28%) 가운데 833만 9.333명(78.78%)의 찬성을 얻어 확정된 이 헌법은 전문을 비롯하여 내용이 제2공화국의 내각제 헌법을 전면적으로 개정하였다는 점에서 실질적으로는 헌법의 제정에 가까웠다.

새 헌법의 주요 내용은 △대통령중심제 채택 △국회의원 소선거구제 채택 △국회의 단원제와 국회활동 약화 △법원에 위헌법률 심사권 부여 △헌법개정에 대한 국민투표제 채택 △경제과학심의회의, 국가안정보장회의 설치 등이다.

박정희는 최고회의에서 개헌안 확정투표를 앞둔 62년 12월 6일 새벽 0시를 기해 1년 6개월 만에 경비계엄을 해제하면서 "혁명 후 오늘까지 국가존망의 위기를 만회하며 쌓이고 쌓인 갖가지 적폐를 일소하고 혼란했던 사회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계엄령 시행이 불가피했음은 국민 모두가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라고 강변했다.

국민투표를 거쳐 확정된 개헌안은 62년 12월 12일 최고회의 제28차 본회의에서 공식으로 선포되었으며, 12월 26일 시민회관에서 공포식이 거행되어 제3공화국의 새 헌법으로 확정되었다.

5ㆍ16쿠데타 이후 금지되었던 정치활동이 1년 7개월 만인 63년 1월 1일부터 재개되었다. 군사정부는 62년 12월 31일 군사혁명 포고령 제4호로 되어 있던 정당ㆍ사회단체의 정치활동 금지조항을 폐기하고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는 등 규제 방안을 마련하고, 정치활동 재개의 길을 터놓았다.

이로써 정쟁법에 의해 여전히 묶인 핵심적인 구정치인들을 제외하고는 누구든지 정치활동을 전개할 수 있게 되었다. 중앙정보부가 공화당을 사전조직한 데 이어 야권도 여기에 맞서는 정당을 창당할 목표로 서서히 활동에 나섰다.

윤보선ㆍ김도연 등이 범야당 결성에 원칙적인 합의를 보고, 김병로ㆍ이인ㆍ전진한 등도 여기에 적극적으로 호응했다. 한편 최고회의는 정치활동 재개와 더불어 전 민의원의장 곽상훈 등 171명을 1차로 해제했다. 해제된 정치인은 자유당계 76명, 민주당계 31명, 신민당계 38명, 무소속 26명이었다. 

일련의 진통 끝에 정치활동이 재개되자 야당연합을 목표로 삼아 창당작업을 추진 중이던 민정당(民正黨)은 각 정파 사이에 타협이 이루어져 대통령후보 윤보선, 당대표 김병로를 각각 옹립하고, 집단지도체제를 채택하기로 결정했다. 

민정당은 재야정당으로는 처음으로 63년 5월 14일 서울 시민회관에서 창당대회를 열었다. 대표최고위원 김병로, 최고위원 김도연ㆍ백남훈ㆍ이인ㆍ전진한ㆍ김법린ㆍ서정귀 등을 선임했다. 대통령후보에는 예정대로 윤보선이 선출되었다.

민정당은 창당대회에서 채택한 강령을 통해, ①우리는 진정한 자유민주주의에 입각한 새시대 창조의 선두주자가 된다. ②우리는 모든 형태의 독재와 독선을 배격하고 자유와 평등의 원칙 하에 모든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한다 ③우리는 국민자본주의에 입각한 자유경제체제를 확립하고 안정기조 위에 경제성장의 증대를 도모하고 자유경제의 터전을 마련한다 ④우리는 민족정기의 앙양, 도의심의 함양 및 과학기술의 향상을 기하고 교육의 민주화를 실현하여 세계문화 창조에 기여한다는 등 7개항을 선언했다.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이 공화당의 사전조직을 도맡았다. 4대 의혹사건 등으로 엄청난 정치자금을 조달한 중앙정보부는 5ㆍ16주체세력을 중심으로 '혁명이념의 계승과 민족적 민주주의 구현'을 표방하면서 창당준비를 서둘렀다.

이들은 정치활동이 재개된 63년 1월 10일, 가칭 재건당이란 명칭 아래 첫 발기인대회를 갖고, 1월 18일 민주공화당이란 당명으로 김종필을 창당준비위원장으로 하는 발기선언대회를 열었다. 

군사정부 안에는 김종필 라인과 이에 맞서 유원식ㆍ김동하 최고위원 등의 반발세력이 주축이 된 반김 라인이 형성돼 일촉즉발의 대치상태로 발전했다. 결국 김종필이 4대 의혹사건과 간첩 황태성의 지침으로 공화당의 창당준비 과정에서 2원화 조직을 도입했다는 비판을 받아 모든 공직에서 떠나 제1차 외유길에 올랐다. 

공화당은 창당주역 김종필이 반대파에 밀려서 외유길에 오르게 되자, 재야 법조계의 원로 정구영을 총재로 영입하여 창당대회를 갖고 공식 출범했다. 공화당에는 쿠데타 주체들뿐만 아니라 윤치영ㆍ이효상ㆍ박준규ㆍ민관식ㆍ백남억 등 구야권 인사와 학계인사들도 다수 참여했다. 창당대회에서 공화당은 다음과 같은 '강령'을 채택했다. 

 ①우리는 3ㆍ1정신을 받들어 5ㆍ16혁명의 이념을 계승하고 민주적 주체성을 확립하며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의 확립을 기한다.
 ②우리는 자유경제체제의 원칙 아래 합리적인 경제계획으로 조속히 후진성을 극복하고 민생고를 해결하여 국민생활수준의 향상을 기한다. 
 ③우리는 민주적 인간성을 함양하고 사회복지제도를 확충함으로써 청신하고 명랑한 사회 건설을 기한다.
 ④우리는 교육의 발전, 언론의 창달 및 민족문화의 보호육성과 과학기술의 진흥으로써 문화수준의 향상을 기한다. 
 ⑤ 우리는 모든 영역에 걸쳐 승공을 위한 국력을 배양하여 민족적 숙원인 국토통일을 기한다.
 ⑥우리는 유엔헌장을 비롯한 국제협약을 준수하여 국제사회와의 유대를 강화하며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안전에 기여한다.

쿠데타 세력은 정치활동 재개를 앞두고 62년 3월 16일 민간정치인들의 활동을 규제하는 특별법을 제정했었다. 국가재건비상조치법에 의거, 박정희ㆍ김종필 등 군사정부의 핵심세력이 구정치인 및 군내 반대파의 정치활동을 막기 위해 제정한 정치활동정화법으로 무려 4,374명이 정치활동이 봉쇄되었다.

한편 윤보선 대통령은 5ㆍ16쿠데타가 일어난 3일 후인 5월 19일 쿠데타에 대한 책임을  지고 하야를 천명했으나, 국가의 법통을 수호해야 한다는 여론에 따라 하야를 철회했다가 국가재건최고회의가 정치정화법을 제정하여 많은 구정치인의 공민권을 제한하자 전격적으로 사임을 발표했다. 최고회의는 이를 받아들이면서 박정희 의장이 대통령의 권한까지 대행토록 하였다.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현대사 100년의 혈사와 통사']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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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