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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감 흐르는 국정원  (서울=연합뉴스) 신준희 기자 =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이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서류조작 관련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한 15일 오전 서울 내곡동 국가정보원에서 한 관계자가 출입문을 지나고 있다. 2014.4.15
▲ 긴장감 흐르는 국정원  (서울=연합뉴스) 신준희 기자 =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이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서류조작 관련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한 15일 오전 서울 내곡동 국가정보원에서 한 관계자가 출입문을 지나고 있다. 2014.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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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ㆍ박근혜 정권의 각종 불법ㆍ비리ㆍ적폐의 본산은 국가정보원이다.

다시 '국민의 원부'로 부각된 '국정원의 뿌리'는 중앙정보부였다. 군사정권 시절에 인권탄압과 정보정치의 대명사처럼 불린 중앙정보부는 61년 6월 10일 법률 제619호로 '중앙정보부법'이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제정ㆍ공포됨으로써 창설을 보게 되었다.

국가재건최고회의 직속기관으로 발족된 중정은 "국가안전보장에 관련된 국내외 정보사항 및 범죄수사와 군을 포함한 정부 각 부서의 정보ㆍ수사활동을 감독"하며, "국가의 타기관 소속 직원을 지휘ㆍ감독"하는 막강한 권한을 갖고 태어났다. 

중정은 쿠데타에 성공한 박정희 세력이 군내부의 반혁명 기도나 민간정치인들의 저항을 효과적으로 분쇄ㆍ저지하기 위해 비밀리에 조직되었다.

쿠데타의 2인자 김종필이 군부 내 첩보부대ㆍ방첩부대ㆍ헌병대ㆍ육군본부 정보국, 총리 직속의 중앙정보위원회 요원 등 3천 여 명을 중심으로 중정을 조직하면서 대통령(당시는 최고회의 의장) 직속의 최고권력기관으로 군림하게 만들었다. 중앙정보부는 미국의 CIA의 명칭을 따오고 CIA교법으로 요원들을 교육시켰다.  

선발된 요원들 중에는 총독부 치하에서 검사ㆍ경찰ㆍ형사ㆍ밀정노릇을 했던 자들도 다수 참가했다. 따라서 중정은 각종 정보ㆍ수사기관 뿐만 아니라 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기관의 활동을 지휘ㆍ감독할 수 있는 명실공히 최고권력기관으로 군림하면서 현역 군인의 직접적인 관여를 통해 군부를 완벽하게 장악할 수 있었다. 

육사8기 정보 방첩 첩보장교들이 주축이 된 이들은 수사에는 경험이 없었다. 이들은 정보부 창설 요원들을 육군 정보국ㆍ방첩대(CIC)ㆍ첩보부(HID)와 헌병대(CID), 경찰 수사기관에서 정보 업무 유경험자를 뽑아왔다.

특히 중앙정보부의 수사국은 헌병, 범죄수사대, 방첩대, 경찰에서 뽑아온 사람들로 구성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군 소속으로 하와이에서 미군 암호를 해석했던 통신요원을 채용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일제 강점기의 사상경찰인 특고형사 출신으로서 광복 후에는 경찰과 특무대에서 국내 정치 사건을 다루면서 고문과 조작을 감행했던 문제있는 수사관들도 상당수 묻어왔다. 이와 같은 인적 구성은 중앙정보부가 권력 남용과 인권 탄압으로 원성을 사게 되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김당, <시크릿파워 국정원>)

군사정권은 중앙정보부를 통해 정부기관ㆍ군부에 그치지 않고 사회의 모든 분야에 대한 실질적인 통치력을 발휘하고 감시와 통제활동을 벌여서 국민에 대한 정보통치를 구체화시켰다. 중정은 미국CIA를 본뜨고 역할은 소련 정보기관인 KGB를 닮았다. 
  
 중앙정보부장 시절.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의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에서 찍은 사진.
 중앙정보부장 시절.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의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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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정보부는 쿠데타 직후에 발생한 이른바 장도영 장군의 반혁명사건을 비롯하여 권력내부의 반대세력의 제거에 크게 기여함으로써 박정희의 신뢰를 받고 막강한 권부의 실세로 등장했다. 

64년에는 중정 요원의 수가 37만 명에 이르게 되었다. 거번 맥코맥의 <한국과 일본 : 관계정상화 10년>이란 책에 따르면 남한 인구의 약 10% 정도가 중앙정보부와 직간접으로 관계를 맺고 음지에서 활동하고 있었다는 놀라운 사실이 실려 있다. 

이같이 방대한 인원에 달하는 중앙정보부 요원들 중 상당수는 민간인들로 채워졌는데, 이들은 정보요원이라는 자기 신분을 숨긴 채 통상적인 직업에 종사하면서 주변 동태를 감시하고 그 결과를 기관에 보고하는 역할을 맡았다. 또한 이들은 암암리에 정부의 시책을 홍보하고 그럼으로써 주위의 여론을 정부에게 유리하도록 조성하는 등 다방면에서 권력의 말초신경 역할을 수행했다.

군사정부는 이처럼 요소요소에 정보요원과 프락치를 심어놓음으로써 국민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한편, 보다 상급의 전문적인 요원들은(이들 중에는 민간인 복장을 한 현역군인 상당수가 포함되었다) 학원, 야당, 언론사 편집국, 노조, 각종 문화단체 등 사회적으로 영향력있는 비정부 기관에 공개적으로 드나들면서 회유하거나 협박했다. 

중앙정보부 요원의 개입활동은 여기에 머무르지 않고 사실상 사회의 모든 영역에 걸쳐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다. 하다못해 도시의 다방과 술집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손길이 미쳤었다 (김정원, <분단한국사>).

중앙정보부는 공화당 사전조직, 4대 의혹사건을 비롯하여 정치활동규제법 제정, 각종 선거와 야당 전당대회에 이르기까지 개입하지 않는 부분이 없을 정도였다. 특히 인혁당사건을 비롯한, 김대중 납치사건 등 대형 정치사건과 숱한 용공조작 사건을 만들어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었고 투옥하였다. 학생ㆍ민주인사들을 끌어다 고문하는 일은 다반사였다.

중앙정보부는 초법적인 위치에서 엄청난 예산과 인력을 동원하여 독재정권의 전위역할을 수행했다. 이를 법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 바로 61년 7월 3일에 제정ㆍ공포된 이른바 반공법이다. 이 법은 반공이라는 명분 아래 국민의 모든 권리를 억압하고 탄압하는 것을 조항으로 갖고 있었다.

반공법은 야당ㆍ학생ㆍ언론인ㆍ종교인ㆍ노동자 등 모든 비판세력의 활동을 규제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가히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드물 만큼 지독한 악법인 이 반공법은 흔히 말하는 대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권력의 입장에 반대되는 모든 행위들을 처벌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남북협상이나 평화통일론은 말할 것도 없고 단순한 서신교환 등 낮은 차원의 남북교류 주장도 반국가단체인 북한과 회합ㆍ통신하는 것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반공법의 저촉대상이 되었다.

이를 근거로 5ㆍ16쿠데타 이전에 중립화통일론이나, 남북학생회담 추진 등 평화적 민족통일을 위한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가 체포ㆍ구속된 인사들 모두에게 반공법이 소급 적용되었다. 이중에는 오직 "남북한의 경제ㆍ문화적 교류를 지지했다"는 이유만으로 폐간조치 당했던 〈민족일보〉 사장 조용수와 간부들도 포함되었다.

또한 단순히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시나 수필, 소설조차도 반국가단체의 주장에 동조했거나 적을 이롭게 했다는 이유로 처벌의 대상으로 삼았다. 특히 언론탄압에 광범위하게 악용되었다. 
  
 지난 1963년 1월 7일 당시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훈장을 받고 있는 김종필 당시 중앙정보부장.
 지난 1963년 1월 7일 당시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훈장을 받고 있는 김종필 당시 중앙정보부장.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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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ㆍ16쿠데타 무렵 주한 미대사관 문정관이었던 그레고리 헨더슨의 중정에 관한 기술이다. 

중앙정보부는 고전적인 모호성을 현대적인 비밀로 대체했고, 국내외에서 조사, 체포, 테러, 검열, 대대적 신원조사, 그리고 수천 명의 요원, 밀고자, 스파이 등을 추가했다.(중략) 한국 역사상…어처구니없을 정도로 그 기능이 팽창된 시기에 중앙정보부는 폭넓게 감시하고 숱한 정부 기획을 입안했으며, 신임 정부 기관 요원들을 모집하고 일본과의 관계를 고무했으며, 기업체를 후원하고 기업들한테 돈을 빼앗았으며, 학생들을 감시하고 조작했으며(…) 극단, 무용단, 관현악단 및 워커힐 같은 대규모 관광센터를 후원했다.(<브루스커밍스의 한국현대사>).

여기에는 빠져 있지만, 박정희에게 미녀들을 뽑아 바치는 채홍사 노릇까지 했던 중앙정보부는 마침내 부메랑이 되어 수장이 주군을 암살하는 사태로 번지면서, 18년 만에 또 다른 정보기관에 명칭과 기능을 넘기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현대사 100년의 혈사와 통사']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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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