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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운(山韻)으로 더 유명해진 판화가
 
 엉겅퀴-2
 엉겅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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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목판문화연구소장 김준권은 전업 판화가다. 1990년대 초 타의에 의해 교단을 떠나 시골로 내려간다. 그런데 그것이 오히려 그를 진정한 예술가로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때 예술적 관심의 대상이 인간에서 자연으로, 도시에서 시골로 옮겨간다. 그와 함께 예술이 메시지에서 이미지로, 정치성에서 순수성으로 옮겨간다. 그리고 서정성을 더해간다. 그때 대중들로부터 가장 사랑받은 작품이 '엉겅퀴-2'(1991)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 기억이 김준권 예술세계에 깊은 영향을 준다.

대중성도 예술에서 중요한 요소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실제로 이 작품에서 차용한 예술적인 방법들은 지금까지 줄곧 김준권 판화세계의 핵심적 내용이 되고 있다"고 미술평론가 유홍준은 말한다.

그리고 2000년대 들어 그의 관심사는 자연과 마을에서 산하(山河)로 옮겨간다. 그리고 그 산하가 조금씩 단순화되기 시작한다. 구체적인 대상이 사라지고 산과 강 그리고 나무들이 첩첩이 이어진 산줄기의 윤곽만이 좌우로 펼쳐진다. 그 중 <산> 시리즈가 가장 유명하다.
 
 <이산~ 저산~>
 <이산~ 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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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시리즈 중에는 <산에서> 연작이 가장 많고, <오름>이 있고, <산운>이 있다. 그리고 2017년 <이산~ 저산~>과 <사계>까지 이어진다. 그 중 가장 주목을 받은 작품이 <산운>이다. <산운>은 2009년 제작되어 2018년 4월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유명해졌다. 김준권 작가는 말한다.

"작품 중 특별히 주목을 받는 것이 있다. 그것은 꼭 미술전시관에서만은 아니다. <산운>이 그런 작품이다."

<산운>은 판문점 평화의 집 1층 로비 서명용 책상 뒤에 걸려 있었다. 김정은 위원장이 이 책상에 앉아 방명록에 서명할 때 이 작품이 크게 부각되었다. 청와대는 "수묵으로 그린 음영 짙은 산이 안정적인 구도를 연출하는 그림"으로 <산운>을 소개했다. 산줄기가 단순하면서 유장하게 표현되어 편안하면서도 평화롭다. 회담의 주제와도 잘 맞아 떨어진 것 같다.
 
 산운(山韻)
 산운(山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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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쪽의 산줄기는 검은 색이다. 세 번째 네 번째 겹쳐진 산줄기까지는 나무로 이루어진 윤곽을 확인할 수 있고, 그 뒤로는 실루엣만 존재한다. 그 실루엣이 점점 밝아진다. 그리고 산 위 절반은 여백이다. 왼쪽 위로 세 마리의 새가 하늘을 날아간다. 결과론적이지만 한국과 북한 그리고 미국의 정상들을 상징하는 것 같다. 이 작품은 가로 4m 세로 1.6m의 대작이다.

민중미술 이야기
 
 학교에서-1
 학교에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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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권은 민중미술 작가로 이 세상에 나온다. 당시 보수적인 화단에 반기를 든 젊은 예술가들이 추구한 미술운동이 민중미술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김준권이 보여준 작품세계를 세 가지로 주제로 나눠 설명할 수 있다. 첫째가 미술교사로서 학생에 대한 관심이다. 참교육, 교사, 학생, 학교가 소재가 되었다. <학교에서> 연작은 체벌과 억압으로 고통 받는 학생들의 모습을 표현했다. 교사는 민주교육과 민족교육 그리고 참교육을 원한다.

둘째가 전통문화의 현대적 계승이다. 김준권은 이 강산을 표현하고, 십장생을 재현하고, 통일을 염원한다. <새야 새야>를 통해 전봉준을 불러내고, <대동천지굿>을 통해 함께 잘 사는 염원을 표현한다. 유홍준은 <대동천지굿>이 80년대 판화운동의 기념비적 역작이라고 말한다. 1987년작 <통일대원도>에는 남북이 뒤엉켜 하나 되는 강렬한 통일 메시지가 들어 있다. 그리고 그 가능성이 꽃처럼 피어난다.

 
 봉천동에서
 봉천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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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가 산동네를 표현한 집들이다. 위의 두 경향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메시지가 직설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 작품에서는 정치보다는 사회문제가 은근하게 드러난다. 다닥다닥 붙은 집을 통해 말 못하는 서민들의 어려움을 표현했다. 대표적인 곳이 봉천동이다. 이 세 번째 경향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표현의 대상이 사람 중심에서 집과 같은 사물 중심으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이제는 우리의 산하다 
 
 읍으로 가는 길(1992)
 읍으로 가는 길(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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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들어 그의 관심은 도시를 벗어나 시골의 산하와 자연으로 옮겨간다. 그것은 그의 낙향과 관련이 있다. 진천군 백곡면에 새로운 거처를 마련하고, 예술에서도 새로운 경향을 선보이게 시작한다. 산과 들 그리고 시골집, 숲과 나무, 꽃과 풀이라는 주제들이 나타난다. 그런데 그 작품들이 다 다른 모습이다. 나무 하나 풀 한 포기에도 개성이 있다.

이게 김준권의 힘이다. 전통적으로 예술가를 평가할 때 필력이라는 말을 쓰는데, 판화가인 그에게는 새기는 힘과 찍어내는 힘이 있다. 그는 이들 작품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시험해보는 것 같다. 늘 새로운 시도를 하기 때문이다. 예술가가 새로운 시도 없이 늘 똑같은 모습을 보여준다면 그는 죽은 거나 마찬가지다.
 
 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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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들어 그의 관심은 산하로 조금 더 단순화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산이라는 주제에 더 많은 관심을 보여준다. 그것이 앞에서 언급한 <산> 시리즈다. 미술평론가 김진하는 이때 작품이 단순한 조형미와 여백의 미학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수묵농담의 변화를 통해 한 폭의 산수화를 우려냈다"고 말한다. 조선 후기 진경산수를 그려낸 정선의 조형미와 대동여지도를 만들어낸 김정호와 판각기술을 계승했다면 지나친 찬양일까?

그런데 <산> 시리즈에서 나타나는 모노톤이 2010년대 들어서면 채색으로 바뀐다. 그리고 첩첩산이 화면의 더 많은 부분을 채운다. 여백의 미학에 채색의 미학이 더해진다. 그리고 관심이 바다와 섬으로 넓어진다. 울릉도, 독도, 제주도, 증도, 임하도 등이 나타난다. 그 중 독도에 대한 관심이 가장 많아 보인다. 그런데 2012년부터 갑자기 <대나무> 연작이 나온다. 대나무 이미지에서는 서정이나 단순성보다는 서사나 복잡성이 나타난다.

 
 청보리밭에서(2005)
 청보리밭에서(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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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경향이 2016년부터 나타나는 망초꽃과 보리밭이다. 보리밭은 2005년 이미 시도한 바 있다. <불망초>라는 제목으로 망초를 화면 가득히 채웠는데, 찍어낼 때 색을 달리 했다. 회색, 빨간색, 푸른색, 녹색이다. 영어로 Gray, Red, Blue, Green이라고 적었다. 같은 판본을 다른 색으로 찍어내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보리밭> 연작도 있는데, 색깔도 다르고 판본도 다르다. 색깔은 Gray, Red, Green이다.

북녘 땅 더 나가 북방 시베리아로
 
 화우(花雨)
 화우(花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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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김준권은 미술행동가로 잠깐 돌아온다. 망가진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기 위한 시민혁명에 동참하기 위해 광화문으로 나간다. 그는 "부정한 정권의 국정농단을 처단하는 정치적 저항을 넘어 새로운 나라로 가는 길을 여는 시민혁명에 다 함께 참여하자"고 외친다. 이때 생겨난 이름이 <광화문 미술행동>이다. 그리고 이들이 주도한 프로젝트가 《차벽공략. Over the Wall》이다.

김준권은 <광화문 미술행동>의 대표로 프로젝트를 연출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 즈음해 차벽 부착용 현수막에 들어간 작품이 '꽃비' 또는 '화우(花雨)'다. 2011년부터 2015년까지 만들어진 작품으로, 부제가 청춘, 그리움, 첫사랑이다. 초록의 대지 위에 붉은색 꽃이 만개한 작품으로, 촛불이 꺼지지 않는데 기여했다. 그리고 꽃비가 발전된 작품이 '촛불 2017 꽃비'다.
 
 자작나무 아래-가을
 자작나무 아래-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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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탄핵 인용 후 그는 행동가에서 다시 판화가로 돌아온다. 이때 나온 작품이 <자작나무> 연작이다. 자작나무 숲의 여름날 초록과 가을날 단풍을 표현했다. 자작나무는 시베리아가 원산으로 우리나라에는 고산지대나 위도가 높은 지역에 분포한다. 그리고 <변경-가을>이 있다. 이들 작품을 통해 김준권이 북녘과 북방을 지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김준권은 북녘의 산하를 보기 위해 두만강을 찾았고, 백두산을 올랐을 것이다.

그래선지 2018년 9월에 완성한 작품이 <평화, 새로운 미래>다. 백두산에 오른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두 손을 잡아 들어 올리고 있다. 부인들이 이 모습을 바라보며 박수를 치고 미소를 짓는다. 그들 뒤로는 한반도 지도와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모습이 보인다. 그는 이처럼 시의적절하게 사회현상에 대해 반응한다. 이 작품에는 평화통일에 대한 염원이 직설적으로 나타난다.
 
 <평화, 새로운 미래>
 <평화, 새로운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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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예술적 사회적 관심의 폭은 끝도 없이 넓어 보인다. 다음은 우리 민족의 시원을 찾아서 시베리아 바이칼로 향할지도 모르겠다. 그곳에 자작나무 숲이 끝없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또한 그가 산하에서 표현한 소나무와 유사한 시베리아 소나무들이 많다. 그의 예술적 지평이 북녘을 넘어 북방까지 넓어지길 희망한다. 그를 통해 새로운 기교와 새로운 의식의 작품이 나오길 기대한다. 그는 늘 새로운 이념을 지향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예술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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