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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내면의 자유를 박탈하는 악의 기만'

지난해 '월드 커뮤니케이션 데이' 기념 메시지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가짜뉴스(fake news)'를 두고 한 말이다. 별생각 없이 꾸며내고, 전달한 말들이 돌고 돌아 과장되고, 누군가의 삶을 파괴하고, 사회갈등을 조장하는 일이 부쩍 많아지고 있다.

이제는 어떤 뉴스나 SNS에서 공유되는 정보가 과연 진실인지 먼저 의심하고, 복수의 매체를 확인한 후에 대강의 얼개를 그리는 기이한 뉴스 소비 행태가 일상화됐다. 언론 매체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고, SNS, 유튜브와 같은 대안 채널이 인기를 끌고 있지만, 오히려 허위정보로 인한 사회문제와 갈등은 더욱 심각하다.

언론 환경과 가짜뉴스

언론 환경의 변화는 가짜뉴스가 만들어지고, 유통되는 현상에 기여한 바가 크다. TV, 라디오와 신문을 통해 뉴스가 전달되던 시대에서 인터넷, SNS를 활용한 방송, 기사 콘텐츠를 만들어야 하는 시대로 넘어왔다. 요즘은 기사 제공의 원천도 다양해지고, 한 이슈가 채널 내에 머무르는 시간도 매우 짧다.

이런 언론 환경의 변화는 노출 빈도에 따라 광고 수익이 달라지는 시장 여건과 맞물리면서 좀 더 새롭고, 자극적인 뉴스 생산의 압박을 가져왔다. 직접 현장을 발로 뛰고, 취재원을 만나 사실 확인을 한 후 기사를 작성하던 방식을 멀리하고, 다른 매체에 인용된 신빙성이 떨어지는 정보나 SNS에서 흘러 다니는 말들을 취합해서 신속하게 기사를 생산하기도 한다.

가짜뉴스가 지금처럼 심각한 사회문제로 등장하지 않았을 때 언론의 잘못된 기사는 오보로 처리되고, 해당 매체의 사과와 정정 보도로 사태가 일단락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이제는 언론의 오보가 거기서 멈추지 않고, SNS를 타고 급속도로 퍼지고, 확대 재생산되면서 새로운 가짜뉴스로 탄생하게 된다.

이 지경에 이르면 처음 오보를 낸 언론사는 책임을 질 수 없게 되고, 가짜뉴스로 피해를 본 사람의 상처는 SNS에서 공유된 수만큼, 아니 그보다 몇 배 깊이 남게 된다. 언론의 실수로 인한 오보 때문인지, 계획적인 가짜뉴스 때문인지는 알 길이 없으나,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로이터 저널리즘 연구소가 발간한 '디지털 뉴스 리포트 2018'에서 한국의 뉴스 신뢰도는 조사 대상 37개국 중 2년 연속 최하위를 기록했다.

인터넷 알고리즘과 가짜뉴스

포털사이트, SNS, 유튜브 등 인터넷을 활용한 플랫폼이 소비자 방문과 사용 시간을 늘리기 위해 가동하는 알고리즘도 가짜뉴스 확대에 한몫하고 있다. '필터버블(filter bubble)'의 어두운 면이다. 필터버블은 미국의 시민단체 '무브온'의 이사장인 엘리 프레이저가 처음 제시한 개념으로, 인터넷 정보제공자가 이용자의 개인적 성향, 사용 패턴, 검색 기록 등의 데이터를 수집·분석하여 알고리즘을 통해 선별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엘리 프레이저는 저서 <생각 조종자들>에서 알고리즘에 정치적 혹은 상업적 논리가 개입되면, 정보 이용자들은 정보 편식을 하게 되고, 그로 인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가치관 왜곡이 일어날 수 있음을 우려한다.

인터넷 알고리즘의 힘은 인지오류의 일종인 확증편향이 작용하면서 더욱 강해진다.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확증편향은 기존에 형성된 편견과 선입관을 강화하는 정보를 선택적으로 수용하게 된다. 논리적이고 객관적인 자료와 정보를 찾아 정보의 진위를 따지기보다는 자기의 생각과 신념을 뒷받침하는 정보제공자를 찾는다.

요즘처럼 누구나 뉴스 생산자가 되고, 정보가 넘치는 시대에 이런 확증편향은 더욱 견고해지고, 한번 빠지면 헤어나오기 어렵게 됐다. 유튜브를 선점한 보수 진영에서 운영하는 채널을 맹신하고, 자신들과 견해가 다른 뉴스를 가짜뉴스로 치부하는 사람들이나 특정 성별, 계층, 지역을 근거로 비난하고, 혐오하는 인터넷 사이트 이용자들이 보이는 행태에서 확증편향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

정치권과 가짜뉴스

가짜뉴스의 문제를 살피면서 정치권의 공로(?)를 빼놓을 수 없다. 누구보다 사실에 입각해서 발언하고, 검증된 정보와 자료를 근거로 주장해야 할 정치인들이 가짜뉴스를 생산하고, 때로는 가짜뉴스의 소비, 유통에 앞장서기도 한다. 지금까지 가짜뉴스를 정쟁의 소재로 삼는 경우를 수없이 목격했다.

특히, 선거 국면에서는 상대 후보를 비방하고, 허위정보를 퍼트려 자신에게 유리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가짜뉴스에 손대고 싶은 유혹이 강해진다. 정책 대결보다는 인신공격으로 승부를 내려는 미성숙한 선거문화의 발현이다.

정치권에서 사용되는 가짜뉴스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재촉한다. 사실과 근거를 기반으로 합리적 토론이 이뤄질 때 성숙한 정치 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인데, 가짜뉴스는 이를 역행하고,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가짜뉴스를 빌미로 서로 싸우는 정치인들의 모습에 국민은 더욱 눈살을 찌푸린다. 국민을 대표하는 정치인들이 가짜뉴스의 생산과 소비, 유통망에 동참한다면 우리 정치의 신뢰 회복은 멀어지고, 민주주의의 뿌리는 약해질 것이다.

어제 국무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가짜뉴스에 대해서는 정부가 단호한 의지로 대처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국무회의에서는 이낙연 총리가 가짜뉴스를 공동체 파괴범, 민주주의 교란범으로 규정하고, 엄정 대처를 주문하기도 했다. 정부는 가짜뉴스를 방치하는 SNS 기업에 최대 600억 원의 벌금을 부과하는 독일 등 해외 사례에 견주어 법적인 처벌을 강화할 수 있다.

그러나 인터넷에 접속하는 모든 사람이 뉴스 생산자가 될 수 있는 이 시대에 관계 기관의 단속과 처벌은 한계가 분명하다. 무심코 인터넷 뉴스 기사를 클릭하고, SNS에 공유하고, '좋아요'를 누르는 이용자들이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지 한 번쯤 돌아보는 기회를 가졌으면 한다. 요즘 같은 시대에도 결국은 시민의식이고, 시민의식이 민주주의를 지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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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공무원노동조합 정책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정부와 사회 이슈, 사람의 먹고 사는 문제에 관심 많은 시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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