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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회, 고기, 술, 건배사... 연말 하면 떠오르는 것들입니다. 기름과 숙취에 찌들지 않고 한 해를 마무리할 순 없을까요? 좀 더 색다르고 재밌게 연말을 나는 법을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놀 곳이 필요했다. 7명의 '여자'들 모임. 레지던스를 빌려 풍선을 띄울까. 호텔 관련 해시태그를 검색해 볼까. 나이 대는 대체로 30대 초중반이다. 아마도 서로 적당한 호의를 가지고 있을 것 같은데 가만가만 둘씩 연결해 보면 어느 둘은 건너 건너 아는 사이이고, 어느 둘은 아주 오래된 친구, 또 어느 둘은 한두 번 정도 마주친 적 있는 서먹서먹한 사람들이다.

청취율 낮은 팟캐스트 진행자들이 주최한 모임에 함께 듣는 이들이 초대됐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모임이어서 소소한 인터넷 동호회 번개 같은 느낌이 강했는데, 애초에 다들 이 적당한 어색함을 감수하고 오기로 한 터라 별 걱정은 없었다.

저녁 만찬을 즐기는 데 있어 '잘 모르는 사이여도 괜찮다'는 불확실성, 이런 어정쩡한 무드를 즐기는 사람들. 나와 얼마나 같고 다른지 가늠하는 배타적인 친밀성을 넘어 아직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그저 여러 사람이 공동의 자격을 가지고 '함께 한다'는 '공(共)'의 감각에 별 거부감이 없는 사람들.  

얼마 전 일로 만난 젊은 건축비평가의 글에서 '공간'과 '공간성'의 구분에 대해 읽은 적이 있다. 사면이 막혀 있는 어느 공간을 규정짓는 건 사실상 그 안을 채우는 사람들과 이들의 행동반경이 빚어내는 사건, 문화라는 맥락이었다. 

그래서, 라는 말이 맞을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우리는 공유주방을 선택했다. 크게 고민하고 정한 건 아니었지만 "요즘, 유행하는 공유주방에 갈까요?"라는 제안에 '앗 거기다. 거기가 우리에게 맞다'라는 교감이 한순간에 우릴 휩쓸었던 것 같다.

전문 요리사인 '푸드 메이커'들이 주방을 같이 쓰며 각자의 '음식 사업'을 펼치는 생산수단으로서의 공유주방이 아니라, 주방 일에 조예가 없는 나 같은 사람들이 친구들과 소소하게 빵을 함께 굽거나 케이크 파티를 하거나 원데이 쿠킹 클래스를 하거나 전골 요리를 조리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임대용 '공유주방'이다.

카페보다는 프라이빗하고 호텔보다는 오픈된
 
 7명의 '여자'들 모임으로 '작당'한 곳은 주방이었다.
 7명의 "여자"들 모임으로 "작당"한 곳은 주방이었다.
ⓒ 박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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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간을 기획한 소유주의 입장에서 '공유'가 어떤 뜻인지 잠시 생각해 보면, 이전 사용객들이 남기고 간 식재료를 '공유'한다는 의미도 있고 동네 시장 상인들이 빚어내는 망원동 특유의 로컬 스타일을 '공유'한다는 의미가 있는 건가, 싶다. 인증샷 하나를 멋스럽게 남길 수 있고, 개념 있고, 가볍지만은 않게 놀고 싶은 요즘 사람들을 겨냥한 브랜딩 용어에 불과한가 싶기도 하고.

아무튼 이곳은 주방 하나와 널찍한 6인용 테이블 하나가 있는 정겨운 방 한 칸을 일정 시간 동안 빌려 쓰는 식인데 브런치 카페보다는 프라이빗하고 호텔이나 레지던스보다는 오픈됐다.  

공간 사용료는 토요일 기준 3시간 기본요금 4만 5000원, 인원이 늘어 추가비용 3만2000원이 합쳐지면서 총 7만 7000원이 들었다. 샤브샤브를 하기로 했고 문 열고 스무 걸음이면 도착하는 바로 옆 망원시장에서 장을 봤다. 1인당 참가비 2만 원 정도면 충분했다.

이 6평 남짓한 공유주방은 쑥색의 벽지가 세련되게 발라져 있었다. 바로 옆집에는 최근 몇 년 동안 망원동에 유난히 많아진 소담한 음식집 하나가 있었다. 작은 식탁이 4개 정도 놓인, 주인장의 뚜렷한 취향으로 꾸며진 가게. 우리가 빌린 공유주방처럼 가게 한 면이 통유리로 되어 있어 골목을 지나는 사람들은 이 가게와 공유주방 안 우리를 번갈아가며 흘깃거렸다.

밖에서 보면 두 곳은 한 가게처럼 보이기도 했는데, 통유리로 인해 안과 밖의 경계가 거의 없어 우리의 웃고 떠드는 모습들이 길을 걷는 동네 사람들이 내는 소리와 인기척에 뒤섞였다. 알게 모르게 서로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공유'라는 감각은 여기에도 있었다. 우리는 우리의 공유주방과 꼭 닮은 옆집 가게에서 의자 하나를 빌렸다. "한 명은 서 있죠 뭐, 이 정도야" 했지만, 남다른 실천력을 가진 참가자 언니 한 명이 또릿또릿한 눈망울로 호기롭게 쓱 빌려 왔다. "이제 모두 앉을 수 있어요."

'같이 있다'는 감각
 
 공유주방은 충분히 친밀한 사람들의 '우리만의' 추억을 위한 공간이 되었다.
 공유주방은 충분히 친밀한 사람들의 "우리만의" 추억을 위한 공간이 되었다.
ⓒ 박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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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 주방, 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은 이 공유 주방에는 써 보고 싶었던 오븐과 귀여운 주방장갑, 북유럽풍 디자인의 그릇과 뒤집개 같은 주방 용품들이 각자의 세련됨을 뽐내며 디스플레이 되어 있었다. 모서리의 굴곡이 매끈하게 생긴 네모난 식칼은 너무 잘 들어서 샤브샤브 채수를 낼 무를 자를 때도 신이 났다.

"이 칼 좀 봐봐요…"
"너무 잘 잘린다."


감미로운 색감의 널찍한 파스타 그릇을 보니 면을 삶고 싶어졌다. 잡지 킨포크에나 나올 것 같은 예쁜 나무 도마를 보니 큼직한 통밀 빵을 놓고 톱날같은 날로 자르고 싶어졌다… 어차피 결혼하면 매일 할 거라며 살림을 가르치는 일에 열을 내지 않았던 엄마의 옹색한 부엌과는 달랐다. 우리끼리 놀고 싶은, 여고 시절 교복에 앞치마를 두른 서로가 웃겨 연신 사진을 찍어댔던, 가정 수업 시간 추억을 소환하고 싶은, 그런 분위기였다.

아마 그때도 별로 친하지 않은 친구들끼리 한순간, 아주 깊이, 즐거웠던 것 같다. '같이 있다'는 감각은 그 관계성에서 도태되는 누군가에겐 폭력과 상처로 남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그저 그것만으로도 위무가 될 때가 있다.

멍하니 공유 주방의 소품들이 자극하는 공상에 빠져 있는 나와 달리 일찍 도착한 '언니' 둘은 착착착 이 부엌을 접수해 나가기 시작했다. 능란하게 같이 망원시장에서 장을 봐온 야채들을 흐르는 물에 씻고, 이전 사용자들이 사용한 식기들을 그대로 써도 되는지 점검했다.

몇몇 접시에서는 기름기가 묻어 나와서 다시 꼼꼼히 닦아 써야 했다. 냉장고 안에는 바로 전 사용자들이 쓰다 남긴 식재료, 꽤 싱싱한 야채도 조금 있었고, 양념류 중에서는 통후추와 가루후추, 바질, 케첩 등이 넉넉하게 남아 있었다.

이윽고 7명이 다 모였고, 간이 애매한 샤브샤브를 가운데 두고 한참 수다를 떨다가 국간장을 듬뿍 붓고 나선 더 맛있게 먹었다. 애초에 간이 맞고 맞지 않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옥수수에 통후추와 치즈를 뿌려 오븐에 구웠고 망원시장에서 사온 청포묵을 썰어내고 무화과에 치즈를 얹었다.

"너무 맛있다."
"이렇게 먹을 수도 있구나."
"국간장을 더 넣으니까 낫다."


감탄사, 그리고 또 감탄사
 
 옥수수에 통후추와 치즈를 뿌려 오븐에 구웠다.
 옥수수에 통후추와 치즈를 뿌려 오븐에 구웠다.
ⓒ 박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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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유주방에서의 먹부림.
 공유주방에서의 먹부림.
ⓒ 박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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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대화는 대체로 감탄사였다. 소셜 다이닝의 분위기가 대체로 이럴까. 7명에 대한 느낌적 느낌이지만 아마도 적당히 삐딱하고 적당히 조용조용하게 살아온 보통의 80년대생 여자들일 것이다.

도시 야경이 보이는 호텔 라운지에서 철저한 단독자의 하루를 보내는 것도 좋아하지만, 다소 허름하고 손때 묻은 책장, 혹은 정원에 사연 있는 나무가 심긴 도미토리에서 모르는 사람의 코고는 소리에 하루쯤 잠을 설쳐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적당히 깍쟁이 같고 적당히 털털한 우리는 계속해서 단순한 대화를 나눴다.

회사 일이 힘들고, 돈은 안 벌리고, 남편은 귀엽고, 취업은 아직이고. 그런 이야기들이 나왔는데 싸울 일도 없었지만 부러 갈등을 피하기도 했던 것 같다. 무풍지대처럼, 평화수역처럼.

"양파를 오븐에 구워볼까요?"
"국간장을 넣으니까 좀 낫다."


위선과 위악 없이 당장 이곳에서 느낀 말들을 건넸다. 한 공간에 평화롭게 모여 있기 위해서. 물론 이게 모든 이의 라이프스타일에서 절대적 가치가 될 순 없겠지만 그날 나는 그저 좋았다.

이 곳을 물색하다가 본 인터넷 리뷰에는 생일파티를 하는 친구들, 파스타 요리를 해주는 연인들의 사진들이 있었다. 충분히 친밀한 사람들의 '우리만의' 추억을 위한 공간.

사실 이곳은 공간 소유주에게 특정 시간대의 사용료를 지불함으로써 배타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곳이기에 엄밀한 의미의 '공유'는 아니지 싶다. 하지만 '공유'라는 언어 자체가 우리에게 환기시키는 무엇, 그리고 '우리'를 확장시키는 '공'에 대한 감각을 일깨우는 이벤트 속에서, 공간의 성격을 규정짓는 건 그 안의 사람들이 빚어내는 '공간성'이라는 그 이야기가 또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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