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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합류한 전원책  자유한국당 조직강화특별위원회 위원으로 내정된 전원책 변호사가 4일 오후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향후 조직강화특별위원회 인선과 운영 방향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왼쪽은 김용태 사무총장.
▲ 자유한국당 합류한 전원책  자유한국당 조직강화특별위원회 위원으로 내정된 전원책 변호사가 4일 오후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향후 조직강화특별위원회 인선과 운영 방향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왼쪽은 김용태 사무총장.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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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파구를 모색하는 자유한국당의 노력이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지난 7월 노무현 정부 출신인 김병준 명예교수를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영입한 데 이어, 이번 달에는 보수 논객인 전원책 변호사를 조직강화특별위원회 외부위원으로 영입했다. 전 변호사는 외부위원이기는 하지만 조강특위를 사실상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전 변호사가 할 일은 인적 쇄신이다. 한국당의 돌파구 모색도 그 방향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 4일 국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쇄신이 사람을 쳐내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말만 들으면 인사 숙청이 될 가능성이 작을 것 같지만, 그의 또 다른 발언을 들어보면 그렇지도 않다.

그는 "목을 치기보다, 바깥에서 비바람 맞으며 자란 들꽃 같은 분들을 많이 모시고 들어오는 게 조강특위의 책무"라고 말했다. '바깥에서 자란 들꽃 같은 분들'을 영입하겠다고 했다. 제도권 바깥 인물들을 한국당 안으로 들이면, 기존 한국당 사람들은 자리를 비켜줘야 할 수도 있다. 그의 말처럼 굳이 목을 치지 않더라도, 결과적으로 인사 숙청이 될 가능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새삼 과거 발언이 주목받기도 했다. 전 변호사는 지난 2016년 1월 14일 방영된 JTBC '썰전'에서 "만약에 나에게 전권을 주고 (정치인들의) 먼지를 털라고 하면 전부 다 단두대로 보낼 자신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자유한국당의 역사는 민정당(민주정의당, 1981년 창당) 때부터 계산하면 37년에 이르고, 민자당(민주자유당, 1990년 3당 합당) 때부터 계산하면 28년이다. 한국당 계열은 이 기간의 상당 부분을 집권 여당으로 지냈다. 그리고 아직도 보수세력을 대표하고 있다. 그러므로 김병준·전원책의 실험은 한국 정치사에서 적지 않은 의의가 있을 수밖에 없다. 성패 여하에 따라 한국당은 물론이고 보수세력 전체가 상당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김병준과 전원책의 공통점이 있다. 둘 다 독자세력을 이끌 여력은 없다는 점이다. 조직력에서도 특장점을 갖고 있지 않다. 정치적 전략이나 의욕은 충만하지만 독자 조직이 없어, 전권을 부여해줄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은 오랜 옛날부터 개혁적 지식인들한테서 자주 나타나는 특성이다.

과거 '썰전'에서 전원책은 '나에게 전권이 주어지면'이라고 전제하고 말했다. 김병준 위원장도 지난 7월 17일 자유한국당 전국위원회에서 "저는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계파가 없습니다"라면서 "선거를 앞둔 시점도 아니니 공천권도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유한국당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과 지탄, 그리고 그러면서도 아무도 놓지 않고 있는 한 가닥의 희망이 저한테는 꿈입니다"라고 설명했다. 그 역시 내적으로는 충만하지만, 외적으로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내비친 것으로 볼 수 있다.

1개월 만에 구세력 숙청하는 데 성공한 신돈 
 
 공민왕과 신돈.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찍은 사진.
 공민왕과 신돈.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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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당을 오래 지낸 보수 정당에 대한 전면 수술을 맡은 김병준·전원책 두 인물한테 '로망'이 될 만한 사례들이 있다. 거의 비슷한 조건에서 인적 쇄신을 성공시킨 개혁가들이 있었다.

고려왕조 지배층이 권문세족에서 신진사대부로 바뀌던 시절이었다. 대규모 부동산과 명문 가문을 기반으로 출세한 집단에서, 중소 규모 부동산과 학문 실력으로 출세한 집단으로 권력의 헤게모니가 이동하던 때였다. 풍운의 개혁가, 신돈(?~1371년)이 등장하던 시대였다.

사찰 노비로 태어나 문맹으로 살았던 신돈은 1365년 공민왕에 의해 전격 발탁되기 전만 해도, 정치권과의 인연이 전혀 없는 무명 승려였다. 그런데도 전권을 부여받은 지 불과 1개월 만에 구세력인 권문세족을 대거 숙청하는 데 성공했다.

그렇게 생긴 공석들을 채운 세력의 상당수는 전원책의 말마따나 "바깥에서 비바람 맞으며 자란 들꽃 같은 분들"이었다. 개혁 지향적인 사대부들('학자+관료' 성향)이 그 자리를 채웠다. 이로써 권문세족이 완전 퇴출된 것은 아니지만, 신진사대부가 새로운 지배층이 되는 기반을 조성하는 데는 성공했다.

덕분에 공민왕은 몽골과 연계된 권문세족을 약화시키고, 자신을 지지하는 세력과 함께 왕권 강화를 추구할 수 있게 되었다. 목적이 어느 정도 성취되자, 공민왕은 신돈을 '팽'했다. 거기서 좀 더 나아가면 왕씨의 나라가 아니라 신씨의 나라가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신돈의 명성이 명나라에까지 알려졌을 뿐 아니라 신돈이 독자적으로 충주 천도까지 추진했기에, 공민왕은 위협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신돈은 개혁에는 성공했지만 보신에는 실패한 인물이 되고 말았다.

약점에도 강펀치 날린 조광조 

조선왕조에서 기득권층인 훈구파에 대한 사림파의 도전이 강해지던 시절이었다. 훈구파는 대토지를 보유했다는 점에서는 권문세족과 유사하지만, 명문 가문이 아닌 정변·쿠데타 승리를 기반으로 출세했다는 점에서 권문세족과 달랐다. 사림파는 신진사대부와 거의 유사했다.

신돈이 등장한 시기는 구세력이 신세력으로 바뀌는 과도기였던 데 비해, 이 시기는 신세력의 도전이 점차 강해질 뿐 두 세력이 교체되는 시기는 아니었다. 그래서 신돈 시기에 비해 구세력 퇴출이 상대적으로 힘들었다. 이런 힘든 일을 해낸 인물이 조선 중종 때 조광조(1482~1519년)다. 조광조는 신돈만큼 광범위한 숙청을 단행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강펀치를 날려 훈구파를 휘청거리게 만드는 데는 성공했다.

개혁에 필요한 권한을 받을 당시, 조광조는 과거시험에 갓 급제한 신진 관료였다. 거기다가 정치적 약점도 있었다. 과거수험생 시절에 혁명음모에 가담했다가 방면된 일이 있었다. 이때 그는 혐의는 분명했지만 명문가 자제라는 이유로 석방됐다. 이 때문에 '운동권 출신'이란 꼬리표를 달고 다녀야 했다.

조건은 불리했지만, 그는 미션을 수행해냈다. 중종으로부터 받은 권한을 십분 활용해 훈구파를 과감하게 공격하고 그들을 약화시켰다. 덕분에 그가 죽기 전에 일시적이나마 약 3, 4년간 사림파 정권이 출현할 수 있었다.

최대 수혜자는 중종이었다. 훈구파가 약해진 토대 위에서 이전보다 강한 왕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역시 목적이 성취되자 조광조를 '팽'했다. 신돈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를 좀 더 방치되면 '이씨의 나라'가 아니라 '조씨의 나라'가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조씨가 왕이 될 거라는 주초위왕(走肖爲王)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주초(走肖)는 조(趙)를 뜻했다. 조광조 또한 개혁에는 성공했지만 보신에는 실패한 인물이 되었다.
 
 조광조 등을 제사지내는 도봉서원. 서울 도봉산에 있다.
 조광조 등을 제사지내는 도봉서원. 서울 도봉산에 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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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돈과 조광조는 김병준·전원책처럼 전략도 있고 의욕도 있었다. 이에 더해 결정적인 요소를 하나 더 가지고 있었다. 그들에게 전권을 부여해줄 뿐 아니라 숙청 활동에 대한 견제나 외압을 차단해줄 리더가 있었던 점이다. 조직력·자금력에 더해 신성한 권위를 보유한 공민왕과 중종이 신돈·조광조를 뒷받침해주었기에 신·조의 인사 숙청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신돈·조광조 배후의 리더십이 든든했다는 점은, 이들의 인사 숙청이 상당 궤도에 올라 이들의 입지가 단단해지려 하자 공민왕·중종이 이들을 전격 제거한 사실에서도 역설적으로 드러난다. 전권을 부여해줄 수도 있고, 지켜줄 수도 있고, 제거할 수도 있는 리더십이 뒤에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공민왕과 중종이 자기들 손으로 인사숙청을 하지 않고 신진 인물한테 맡긴 데는 이유가 있다. 정부를 운영하고 국가를 통합해야 할 군주가 자기 손에 피를 묻히고 사람을 쳐내는 모습을 자꾸 보여주면, 전 백성의 충성을 받는 게 힘들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의욕은 강하지만 기반이 취약한 인물한테 칼자루를 쥐여준 뒤 '사냥'이 끝나면 '팽'했던 것이다. 기득권층이 지나치게 걸림돌이 되는 경우에는 왕들이 이런 전략을 구사하는 예가 많았다. 동서고금 다 마찬가지다.

최근 몇년 사이 자유한국당이 리더십 위기를 겪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형식상의 조직과 시스템은 갖추고 있지만, 당의 확고한 구심점이 될 만한 리더가 부재하다는 이야기다. 물론 지난 4일 김병준 위원장은 "(인적 쇄신에 대해) 어떤 일이 벌어지든 최종 책임은 제게 있다"고 말했지만, 지금 자유한국당의 상황은 인사 숙청에 대한 반발을 차단해주며 나아가 칼 쥔 자가 너무 세지는 것을 막을 만한 이가 없다고 볼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인사숙청 과정에서 나타나는 반발에 대응하기도 쉽지 않다. 조직·자금·카리스마 등을 단단하게 갖추지 못한 외부 인사가 자기 힘으로 당내 기득권층과 맞서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자유한국당의 인사 혁신은 그래서 만만치 않다.

물론 세상일은 아무도 알 수 없다. 객관적으로 힘든 상태에서도 의지가 탁월한 인물이 나타나면 의외의 기적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런 일이 흔치 않기도 하다. 자유한국당의 인사혁신이 성공해서 한국 보수가 기존 틀 속에서 변화하게 될지, 아니면 실패해서 한국 보수가 전혀 새로운 판으로 휩쓸려 들어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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