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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일 육군 8군단에서 열린 38선돌파 기념식에 참석한 참전용사들이 부대를 사열하고 있다. 38선돌파 기념식은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0월1일 국군 3사단 23연대가 양양군 기사문리에서 최초로 38선을 돌파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된 것으로 육군 8군단은 2008년부터 기념식을 개최해 오고 있다. 국군의 양양지역 38선 돌파일인 10월1일은 국군의 날로 제정됐다. 2018.9.28 [육군 8군단 제공]
  28일 육군 8군단에서 열린 38선돌파 기념식에 참석한 참전용사들이 부대를 사열하고 있다. 38선돌파 기념식은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0월1일 국군 3사단 23연대가 양양군 기사문리에서 최초로 38선을 돌파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된 것으로 육군 8군단은 2008년부터 기념식을 개최해 오고 있다. 국군의 양양지역 38선 돌파일인 10월1일은 국군의 날로 제정됐다. 2018.9.28 [육군 8군단 제공]
ⓒ 연합뉴스(육군 8군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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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일이 '국군의 날'이라고 하면, 이 날이 국군의 창건일이거나 아니면 국군한테 획기적인 날일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될 수도 있다.
 
"육·해·공·해병대는 창군의 역사적 의의와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각 군별로 기념행사를 갖게 되었는데, 육군은 우리 군의 전신인 조선경비대가 경기도 태릉에서 660명의 병력으로 창설된 1946년 1월 15일을 창설 기념일로 삼아 1947년 1월 15일 '조선경비대 창설 1주년 기념식'을 거행하였고, 해군은 1945년 11월 11일 창설 요원 70여 명이 모인 가운데 '해방병단 결단식'을 거행함으로써 3군 중에서 가장 먼저 군 창설 기념행사를 거행하였고, 공군은 1949년 10월 1일 육군항공사령부에서 1600명의 병력과 20대의 연락기를 가지고 육군에서 분리되어 독립된 공군을 창설할 수 있었으며, 해병대는 1945년 4월 15일 진해 덕산비행장에서 380명의 장병이 모인 가운데 해병대 창설식을 거행하였다."
- 한국방위산업진흥회가 2002년 발행한 <국방과 기술>에 실린 '국군의 날 변천사' 중 일부.
   
10월 1일은 공군 창설 일자로는 의의가 있어도, 국군 전체를 놓고 봤을 때는 다르다. 국군 전체의 창설과 무관한 날이다. 그럼에도 1956년부터 10월 1일이 국군의 날로 기념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1956년 9월 21일 대통령령 제1173호로 제3사단 23연대 3대대가 최초로 38선을 돌파한 10월 1일을 국군의 날로 제정하여 공포하였고, 그해 10월 1일부터 현재까지 국군의 날 행사를 실시해 오고 있다."
- 위 글의 일부.
 
3.8선 돌파 기념? 국군의 역사와 정체성 담을 수 있나

한국전쟁 당시 한미연합군 일원인 육군 보병 제3사단이 강원도 양양에서 38선을 넘은 날을 국군의 날로 시행하는 것에 대해, 1993년 김영삼 정부 출범 뒤로 국군 내부에서도 이견이 제기됐다. 군대 간행물이나 군 원로 모임에서 그런 목소리가 나왔다. 정토웅 육군사관학교 교수가 쓴 '국군의 날 일자 검토'에 나오는 이야기다.
 
"1993년 10월을 전후하여 일부 신문을 비롯한 군 간행물 및 국방장관 초청 군(軍)원로 모임에서 현행 국군의 날보다는 광복군 창설이나 국군 창설일로 재설정함이 타당하다는 의견이 있어, 국방부는 여론수렴을 참작하고 국군의 날 일자를 검토 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한국군사학회가 1994년 발행한 <군사논단>에 실린 글.
 
1950년 한국전쟁 발발과 함께 낙동강 전선까지 일방적으로 밀려갔던 국군이 미군의 조력에 힘입어 38선을 회복한 1950년 10월 1일은 물론 의미 있는 날짜다. 하지만, 이 날이 국군 전체의 창건일에 준하는 획기적인 날짜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을지문덕의 살수대첩, 양만춘의 안시성 대첩, 강감찬의 귀주대첩, 이순신의 명량 대첩 정도의 역사적 의의를 1950년 10월 1일에서 발견할 수 있을까. 이러한 의문이 타당했기에, 1993년부터 군 내부에서 이견이 생겼을 것이다.

게다가 1948년 8월 15일 정부 수립 이후인 1950년 10월 1일을 국군의 날로 정하는 것은 헌법 전문(서문)의 정신을 '덜' 살리는 길이 될 수도 있다. 정부 수립 당시의 1948년 헌법에서도 그렇고 현행 1987년 헌법에서도 그렇고, 대한민국은 1919년 3·1운동에서 정통성을 찾는 나라다.

1948년 헌법 전문에서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라고 선언했고, 현행 헌법 전문에서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고 선언했다. 우리 민족이 1919년의 조직적 항일운동을 통해 일제 식민통치를 거부하고 민주공화국 체제의 독립을 지향했으므로, 1919년부터 대한민국이라는 민주공화국이 존재했다고 봐야 한다는 게 우리 헌법의 정신이다.

대한민국이 그때부터 있었다고 봐야 한다면, 대한민국 군대도 그 이후부터 있었다고 보는 게 논리적이다. 대한민국 군대의 시작을 1948년 이후에서 찾기보다는 1919년 이후에서 찾는 게 현행 헌법 정신에서 부합하는 것이다. 1919년 이후로 독립군들이 적지 않은 무장투쟁을 전개했으니, 그 이후의 어느 시점을 국군의 날로 정하는 게 헌법상으로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은 국군의 정체성을 올바로 정립되는 데도 기여할 것이다. 2005년 <민족 21>에 실린 기고문에서, 육군 정훈감 출신인 표명렬 평화재향군인회 공동상임대표가 했던 말이다.
 
"국군의 날을 10월 1일로 한 것은 우리 국군 속에 항일 무장투쟁의 빛나는 전통과 자랑스러운 민족정신이 살아나게 되면 친일분자들의 민족반역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것이 두려워 항일 독립투쟁의 부분을 지워버리기 위해 만들어낸 짓이다. 이렇게 우리 국군사를 시작부터 왜곡시켜 놓음으로써 민족의식과 민족혼이 없는, 민족정기가 죽은, 민족적 자존심과 자신감, 민족적 정체성마저 상실한 이상한 군대로 만들어온 것이다."
 
국군의 날을 올바른 날짜로 재정립하면 우리 군의 민족의식, 민족혼, 민족정기, 민족적 자존심·자신감, 민족적 정체성을 훨씬 더 강화하는 데 기여할 거라는 지적이다. 

만약 국군의 날을 1919년 3·1운동부터 1945년 분단 이전의 어느 시점에서 찾는다면, 지금 한국경제에 긴요한 한반도 평화 및 통일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 될 수 있다. 외세를 상대로 대승을 거둔 사건도 아니고 몸서리쳐지는 동족상잔의 비극 중에 벌어진 사건을 기념해 국군의 날을 정하는 것은, 우리 군이 외세가 아닌 동족과의 투쟁에 더 친숙한 군대로 만드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이것은 한반도 평화 및 통일의 시대에 대한 우리 군의 적응력을 높이는 데 기여하기 힘들 것이다.
 
 1973년 국군의 날 풍경.
 1973년 국군의 날 풍경.
ⓒ 위키백과 Baek, Jong-s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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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 이날, 총독부가 출범하고 식민지배 군대로 바뀌었다  

또 한반도를 지키는 군대 전체와 관련해서 10월 1일이란 날짜가 갖는 의미에 대해서도 좀 더 숙고할 필요가 있다. 1956년부터 대한민국 정부가 10월 1일을 국군의 날로 기념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한 일본인들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에 대한 식민지배의 기억을 여전히 생생하게 가지고 있었을 그들이 볼 때, 10월 1일 국군의 날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일제강점기에 이 땅을 지배한 기관은 조선총독부다. 그런데 대한제국이 멸망한 1910년 8월 29일에 총독부가 설치된 것은 아니다. 약 1개월의 준비기간을 거친 뒤인 그해 10월 1일, 총독부가 출범됐다.

총독부가 출범하면서, 이 땅에 있던 일본 기관들은 식민지배 기관으로 성격이 전환됐다. 청나라 군대에 이어 용산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 즉 조선주차군(조선주둔군)은 1910년 10월 1일부터 식민지배 군대로 바뀌었다. 내정간섭 군대가 10월 1일부로 식민지배 군대가 된 것이다.

1910년 10월 1일 조선총독부 출범과 함께 조선주차군은 조선총독의 지시에 따라 식민정책을 집행하는 무력기관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조선주차군이 식민지배 군대로 전환된 10월 1일, 하필이면 그날을 이승만 정권이 국군의 날로 지정했으니, 바다 건너 일본인들 중에는 의아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10월 1일을 국군의 날로 기념하는 것은 국군의 역사는 물론이고 헌법 전문의 정신, 한반도 평화 및 통일의 대의에도 제대로 부합하지 않는다. 거기다가 조선주차군이 식민지배 군대로 전환된 날이기도 하다. 국군의 날을 올바로 재정립하기 위해 우리 사회가 머리를 맞대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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