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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의 청와대 업무추진비 내역을 공개했다. 심 의원은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업무추진비를 원칙상 사용할 수 없는 시간대인 밤 11시 이후 및 주말·공휴일에 청와대가 이 돈을 사용한 사례가 많다고 주장했다. 술집에서 지출된 예도 있다고 덧붙였다.

청와대는 이 같은 주장에 대해 반박하고 있지만, 업무추진비 지출이 100% 적법했다는 사실을 모두 입증하려면, 상당히 많은 부담을 지지 않을 수 없을 듯하다. 혹 그간의 비용 지출에 부당한 면이 있었다면 당연히 밝혀내고, 이번 일을 계기로 보다 투명한 자금관리 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몫 역시 청와대가 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심 의원이 자료를 공개한 목적이 국가재정의 투명성 강화에만 있는 것이 맞냐를 두고는 의견들이 엇갈린다. 그런 목적으로 공개했다고 말하려면, 전제조건을 갖추었어야 한다. 청와대의 자금 사용이 불법적이라는 증거를 갖고 있거나 아니면 확신이라도 갖고 있었어야 한다.

심야·주말·공휴일에도 국가는 계속 돌아간다. 자금도 계속 사용된다. 부득이한 경우에는 술집에서도 자금이 사용될 수 있다. 심 의원 역시 심야·주말·공휴일에 지출하는 게 반드시 불법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가 배포한 보도자료에도 이 점이 나타난다.

그는 보도자료 제1항에서 "정부의 '예산 및 기금운용계획 집행지침'에서는 비정상시간대(23시 이후 심야시간대 등)와 법정공휴일 및 토·일요일에는 원칙적으로 업무추진비를 사용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원칙적으로"라는 표현을 통해 그는 청와대가 적법하게 사용했을지도 모른다는 여지를 남겨두었다. 그 시간대에 원칙적으로 사용할 수 없을 뿐이고, 필요하고 부득이하면 사용할 수도 있다는 점을 그도 알고 있는 것이다.

불법이란 확신이 없으면, 자료 공개를 신중히 해야 한다. 그런데도 과감하게 공개했다. 불법적 자금 사용일 거라는 뉘앙스까지 풍기면서 그렇게 했다. 입증 자료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성급히 공개한 것을 두고 일각에서 다른 어떤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조선왕조실록을 들여다보면 오랜 옛날부터 이런 일은 수도 없이 많았다. 양반 귀족들이 임금을 견제하거나 길들일 목적으로 이런 문제를 거론한 사례가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임금들의 업무추진비 '내탕금'
 
 임금과 신하들.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의 ‘다산(정약용) 유적지’에서 찍은 사진.
 임금과 신하들.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의 ‘다산(정약용) 유적지’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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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왕들도 지금의 정치인들처럼 돈을 지출하는 방법으로 신하나 귀족들의 환심과 충성심을 확보하곤 했다. 양반 귀족들이 임금의 돈 문제를 공격한 것은, 자금 사용에 대한 압박을 통해 왕권을 약화시키기 위해서였다.

조선시대 임금들한테도 내탕금(內帑金)이라는 업무추진비가 있었다. 임금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돈이었다. 하지만 양반 귀족들은 여당이든 야당이든 간에 이 돈의 용처를 따지고 들곤 했다. 임금의 기를 꺾을 목적이었던 것이다.

그런 사례 중 하나를, 음력으로 인조 3년 3월 4일자(양력 1625년 4월 10일자) <인조실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날 인조는 신하들과 함께 경연(세미나)에 참석했다. 즉위한 지 얼마 안 되는 이 임금을 향해 정경세란 신하가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는 인조의 할아버지인 선조(재위 1567~1608년) 때 일을 거론하며 이렇게 말했다.
 
"선조대왕께서 즉위하신 해에 내탕금을 사용해 서재를 지으시자 옥당(홍문관 고관들)이 차자(간이 상소문)를 올려 충언을 했지만, 선조께서 듣지 않으셨습니다."
 
갓 즉위한 선조가 내탕금으로 서재를 지으려 하자, 홍문관 관원들이 "하지 마시라"며 말렸다는 것이다. 선조가 사용한 자금은 순전히 임금 개인용이었다. 그런 돈으로 서재를 짓는 일에까지 양반 귀족들이 왈가왈부했던 것이다.

선조의 업무추진비 사용을 막고자, 신하들은 "전하께서는 지혜가 모자랍니다"느니 "전하께서는 거짓말을 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느니 하는 말들을 극히 완곡한 어법으로 포장해서 내뱉었다. 불법적인 자금 지출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쏘아붙인 것은, 임금의 자금 사용을 견제해야 한다는 정치적 목적에 과도하게 집착한 결과였을 것이다.

하지만 선조는 개의치 않았다. "선조께서는 듣지 않으셨습니다"라는 정경세의 말처럼, 선조는 업무추진비 집행을 강행했다. 신하들이 비판을 가하는 목적이 재정 절검이 아니라 왕권 견제에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지기 싫었는지도 모른다.

정경세가 인조 앞에서 옛날 일을 거론한 이유가 있다. 인조의 내탕금 문제를 거론할 목적에서였다. 선조처럼 고집을 피우면 안 된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였다.

임금의 내탕금 사용과 이를 막았던 신하들
 
 <화정>의 정명공주(이연희 분).
 <화정>의 정명공주(이연희 분).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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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왕실은 인조의 고모인 정명공주의 집을 짓기 위해 비용을 지출했다. 정명공주는 인목대비와 선조의 딸이자 광해군의 이복누이다. 광해군 정권 때 고초를 많이 겪은 인물이다. 2015년에 방영된 MBC 드라마 <화정>에서 배우 이연희가 정명공주를 연기했다.

정경세와의 대화가 있기 2년 전인 1623년, 인조는 선조의 후처인 인목대비한테 단단히 신세를 졌다. 쿠데타나 정변으로 임금이 공석이 되면 대비가 비상대권을 행사했다. 새로운 임금을 승인하는 것도 대비의 권한이었다. 광해군 정권을 전복시킨 직후에 인조는 인목대비의 승인을 받아 왕위에 올랐다.

정명공주의 어머니한테 신세를 진 데다가, 광해군 정권에서 고초를 겪은 정명공주를 우대하면 반(反)광해군 세력의 민심을 끌 수 있었기 때문에 인조 입장에서는 고모의 집을 지어주는 게 여러 모로 이익이었다.

인종의 자금 지출은 법적인 문제가 없었지만, 신하들은 가만 두지 않았다. 흉년 등을 이유로 자금 집행을 반대했다. 경제가 불황인데 아무리 개인 돈이라도 그런 데 쓸 수 있겠냐는 식으로 공격했다.

신하들의 진짜 의도는 재정 절검에 있지 않았다. 공금을 사용하지 않고 개인 돈을 사용한 인조의 행위는 재정 절검에 기여하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자금 지출을 비판한 것은 인조를 견제하고 길들이기 위해서였다고밖에 해석할 수 없다. 결국 왕실은 이 건축을 정지시켰다.
 
 <화정>의 인조(김재원 분).
 <화정>의 인조(김재원 분).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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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조국가에서는 왕족의 집을 나라에서 지어주는 게 당연했다. 만약 인조가 나랏돈으로 공사를 했다면, 신하들이 가만히 있었을지도 모른다. 왕실의 개인 돈으로 하는 공사였기에 일부러 시비를 건 측면도 없지 않다. 임금이 개인자금 사용을 통해 영향력을 팽창할까봐 두려워서 그렇게 했던 측면도 배제할 수 없다.

조선시대든 고려시대든 귀족 신하들은 항상 왕을 견제했다. 임금의 개인 자금에까지 간섭한 사례가 많았다. 임금이 다른 편인 경우에도 그랬고 같은 편인 경우에도 그랬다. 위의 두 사례는 예외적이 아니라 흔한 일이었다.

심재철 의원의 자료 공개는, 청와대가 업무추진비를 보다 투명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청와대 역시 잘못된 관행은 고쳐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심 의원의 공개는 나쁘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는 청와대의 비용 지출이 불법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도 그는 대담하게 공개했다. 이번 사태를 보고 있자니 내탕금에 대한 지나친 간섭을 통해 왕권을 견제했던 양반 귀족들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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