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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자신의 자택 인근에서 대법원장 재임 시절 법원행정처의 ‘(박근혜 청와대와) 재판 거래 의혹' 등 사법행정권 남용 논란에 대해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 6월 1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자신의 자택 인근에서 대법원장 재임 시절 법원행정처의 ‘(박근혜 청와대와) 재판 거래 의혹' 등 사법행정권 남용 논란에 대해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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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대법원장(재임 2011~2017년) 시절의 사법농단을 증명하는 문서 파일 196건이 7월 31일 법원행정처에 의해 추가 공개됐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때의 대법원이 사법권을 얼마나 남용했는지가 좀더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아래 문건은,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이 상고법원 반대론자인 하창우 당시 대한변협 회장과 관련해 작성한 '대한변협에 대한 대응방안 검토'라는 문서다. 상고법원 설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숙원 사업이었다.

 ‘대한변협에 대한 대응방안 검토.’
 ‘대한변협에 대한 대응방안 검토.’
ⓒ 법원행정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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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건에서는 대한변협 회장을 고립시켜야 한다고 했다. 독재정권 시절의 중앙정보부나 안기부를 떠오르게 하는 표현이다. 또 미국 변호사협회의 사법부 존중 사례를 부각시켜야 한다고 했다. 미국 변호사들이 연방 판사들의 봉급 인상을 의회에 촉구한 사실 등을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고 했다. 변협을 대법원장의 정치적 도구로 삼고자 했던 욕망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상고법원은 대법원이 담당할 3심 사건 중에서 비교적 단순한 사건을 맡는 기구다. 대법원의 과중한 재판 업무를 덜어주고자 '대법관 증원 방안'과 함께 제기되는 방안이다. 이 방안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은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다. 장철준 단국대 법대 교수의 논문 '민주주의 헌법과 대법원- 상고법원 설치 논의에 부쳐'에 나오는 대목이다.
"변호사협회의 진단에 의하면, 물리적으로 이러한 효과(재판부담 감소)를 발생시키기 위해서는 많게는 100명의 상고법원 판사가 필요하다고 한다. 전원 차관급 인사로 구성될 이들 조직을 창설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예산이 소요될 것이다.

현 관료사법 시스템으로 볼 때, 이들에 대한 인사 권한은 모두 대법원장이 가지게 될 가능성이 크다. 대법원장의 헌법상 권한이 엄청나게 확대될 수 있는 소지를 말해주는 것이다." - 2016년 12월 <헌법판례연구>에 실린 논문.


사법부를 양적으로 비대하게 만들 소지가 있는 상고법원 설치 대신, 1심 법원에 대한 제도적 지원을 강화해서 소송 관계자들이 1심 판결에 만족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게 위 논문의 제언이다. 이처럼 대안이 없지 않는데도, 양승태 시절의 대법원은 '공룡 사법부'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는 상고법원에 과도하게 집착했다. 그러니 반발이 없을 수 없었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의 '사법농단' 보여주는 문서들

다음은 '상고법원 입법을 위한 대(對)국회 전략'이란 문건이다. 18쪽 하단에 아래와 같은 문구가 있다. 상고법원을 반대하는 국회의원들에 대한 대응 방안이다.

 ‘상고법원 입법을 위한 대(對)국회 전략.’
 ‘상고법원 입법을 위한 대(對)국회 전략.’
ⓒ 법원행정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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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고법원을 열렬히 반대하는 의원들에 대해서는 철저한 무시 및 고립화 전략을 펴자고 했다. 정당 지도부도 쉽게 시도하기 힘든 방안을 양승태 대법원이 시도하려 했던 것이다.

다음은 박근혜 당시 대통령에 대한 대응 전략을 담은 'BH로부터의 상고법원 입법 추진동력 확보방안 검토'라는 문건이다. BH는 청와대(Blue House)의 약칭이다.
 BH로부터의 상고법원 입법 추진동력 확보방안 검토.’
 BH로부터의 상고법원 입법 추진동력 확보방안 검토.’
ⓒ 법원행정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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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를 '설득의 객체'가 아닌 '입법 추진의 주체'로 만들자고 했다. 청와대가 설득을 당한다는 느낌을 갖지 않도록 만들자고 했다. 청와대 스스로가 자발적으로 상고법원을 추진하는 것 같은 느낌을 갖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청와대가 입법 의견을 내도록 유도하자고 했다. 대한변협과 국회는 물론이고 청와대까지 조종할 생각을 품었던 것이다.

우리 사회가 사법부 독립을 염원하던 때가 있었다. 그리 멀지 않은 때의 일이다. 사법부가 대통령과 행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고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헌법 제102조 제3항)할 수 있는 때가 오기를 간절히 염원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정반대의 문제에 봉착해 있다. 대법원의 사법권 남용 혹은 사법 농단 때문에 충격을 받고 있다. 사법부가 행정부의 눈치를 살피느라 소신껏 일하지 못할까봐 걱정하는 게 아니라, 대한변협은 물론이고 국회와 청와대까지 조종하려 했다는 사실에 당혹과 충격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어느새 사법부가 무서울 정도로 강해져 있었던 것이다. 뽕나무밭이 푸른 바다로 변할 정도로 세상이 크게 뒤바뀌었음을 의미하는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사자성어를 연상케 하는 격세지감이다.

1987년 6월항쟁 시기까지만 해도 사법부는 군부정권의 눈치를 살폈다. 정치현안과 관련된 재판인 경우에는 청와대의 구체적 지시까지 받았다. 그렇게 사법부가 정권의 시녀 역할을 하던 시절에는, 대통령과 행정부 앞에 당당한 사법부를 국민들이 꿈꿀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국민들은 6월항쟁 승리를 계기로 법치주의 개혁에 힘을 실어줬다. 이 개혁은 항쟁 6년 뒤인 1993년 출범한 김영삼 정권 때부터 본격 추진됐다. 청와대의 입김에 의해서가 아니라 법률 규정에 의해 작동되는 나라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이 그렇게 분출된 것이다. 신평 경북대 법대 교수의 논문 '한국 사법개혁작업의 평가'에 이런 대목이 있다.
"사법개혁은 권위주의 정권이 해체되며 그 후 나타난 정권들의 단골 정책 메뉴가 되어왔다. 김영삼 정권이 들어서고 나서 1993년 대법원에 사법제도발전위원회가 설치되었다. ······ 이어 김대중 정권이 들어선 뒤인 1999년, 대통령 소속으로 사법개혁추진위원회가 설립되어 다시 사법개혁작업을 추진하였다. ······ 이어서 노무현 정권이 참여정부를 표방하며 들어서자, 사법개혁에 대한 필요성이 다시 대두되었다." - <세계헌법연구> 제14권 제5호에 실린 논문.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사법부는 행정부에 밀리지 않는 독자적 위상을 구축해 나갔다. 사법권 독립을 위한 법관인사위원회나 판사회의 같은 기구도 이런 상황의 산물이다. 외형상으론 정치와 전혀 맞지 않을 것 같던 이회창 대법관이 국민적 스타로 떠오르며 국무총리에 이어 대통령후보까지 될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라고 볼 수 있다. 사법개혁이 강조되는 동안에는 대쪽처럼 법을 준수하는 인물이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법치주의 개혁에 힘입어 법원뿐 아니라 검찰도 강해졌다. 김의겸·금태섭·이정렬·김선수와의 대담집인 <권력과 검찰- 괴물의 탄생과 진화>에서 최강욱 변호사는 이렇게 말했다.
"이런 식으로 분석하는 사람들도 있었거든요. '보안사가 안기부보다 더 세던 군부독재 시절에는 검찰이 힘을 못 가지다가, 형식적인 민주화가 진행되니까 겉으로는 형식적인 법치가 이루어졌다. 그 과정에서 검찰이 전면에 나서게 되고 힘도 갖게 되었다'라고요."

6월항쟁 이후로 법치가 강조되고 검찰이 강해지는 속에서 스타 검사로 떠오른 인물이 홍준표 검사다. 그는 항쟁 이후의 사회 분위기를 활용해, 때로는 검찰 상부의 지시를 무시해가며 전두환 친인척, 노태우 측근, 조폭들을 수사해 국민적 인기를 얻었다.

국민들이 실어준 힘 악용해 '거대 사법부' 꿈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체제에서 법원행정처가 대법원 판결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정문의 모습.
 양승태 전 대법원장 체제에서 법원행정처가 대법원 판결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정문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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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부터의 법치주의 사법개혁으로 법원은 '권력의 시녀'라는 불명예스런 꼬리표를 떼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상당한 독립성도 확보했다.

하지만, 부작용도 없지 않다. 이제까지 국민들은 정권은 견제해도 법원은 견제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사법부 독립을 위한 사법개혁 속에서 법원이 지나치게 강해지는 결과를 초래한 측면도 없지 않다. 법원을 강화시킬 고민만 해오다 보니, 적절히 견제해야 할 필요성에는 둔감해졌던 것이다. 그래서 사법권 독립이 아니라 사법권 남용을 걱정해야 할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이명박·박근혜 두 정권의 책임도 크다. 두 정권은 이전 정권들의 사법개혁을 계승하기는커녕 사법부를 정치적 목적에 끌어들이려 했다. 이것은 양승태 대법원이 그간의 사법개혁을 악용해 사법농단을 저지를 수 있도록 멍석을 깔아주는 역할을 했다.

양승태 대법원은 한걸음 더 나아가, 자신을 이용하려는 행정부를 도리어 역이용하려는 의도까지 드러냈다. 청와대가 상고법원 입법 의견을 내도록 유도하자는 기획안까지 만들었다. 사법부가 외압을 받지 말라고 국민들이 실어준 힘을 악용해 거대 사법부를 꿈꿨던 것이다. 신평 교수의 논문은 "외부적 간섭을 배제한 사법부로의 과도한 힘의 응집이 다름 아닌 사법 독재의 결과를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는다"고 말했다.

양승태 대법원이 저지른 일들은 6월항쟁 이후의 사법개혁이 잘못됐음을 의미하는 징표가 아니다. 그것은 사법개혁의 방향을 이제는 전환해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우리 사회에 경고하고 있다. 사법부에 힘을 실어주던 방식의 개혁에서, 사법부를 올바른 위치로 되돌려놓는 방식의 개혁을 고민해야 할 때가 왔음을 웅변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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