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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아

 사리아 골목. 태극기가 보인다.
 사리아 골목. 태극기가 보인다.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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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스(Samos)에서 11km 지점에 있는 사리아(Sarria)는 켈트 족 문화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중세에 이르러 순례자들의 중심지가 되었다. 지금도, 현대의 순례자들에게 '아주' 중요한 장소이기도 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100km 이상 걸어야 순례자 완주 증서를 주는데, 사리아(Sarria)가 최소한의 거리 요건이 되는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많지 않지만 카미노 순례 여행을 간절히 열망하는 이들이 주로 이곳 사리아를 출발 지점으로 삼는다.

유난히 알베르게와 바가 많다. 내가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주경 말에 의하면) 장애인 단체 순례객을 이끄는 사람이 순례자 여권을 한꺼번에 걷어 도장을 찍어가기도 하고 대절한 버스에서 노인들이 무더기로 내리기도 했다고 한다.

내가 마주친 이들은 한국에서 온 모 청년 단체였다. 남녀가 섞인 20명 정도의 청년들은 바에서 늦은 아침을 먹고 산뜻한 향기를 풍기며 사리아에서부터 걷기 시작했다. 대부분 가방을 다음 알베르게까지 보냈는지 몸은 한없이 가뿐해 보였다. 그들은 이른 아침부터 11km를 걷고 있는 나를, 아주 상큼하게 따돌리고 앞서갔다.

 사리아(Sarria) 도심을 빠져 나오면 아스페라 다리(Ponte Aspera)를 건너야 한다. '울퉁불퉁한 다리'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사리아(Sarria) 도심을 빠져 나오면 아스페라 다리(Ponte Aspera)를 건너야 한다. '울퉁불퉁한 다리'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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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고 온 책자에 이런 글귀가 있다.

…여기서부터 출발할 경우, 순례자 증서를 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요건인 100km 정도만을 걸으면 된다. 버스와 기차를 타고 순례자들이 끊임없이 들어오기 때문에 사리아부터는 카미노가 내내 북적인다. 많은 호스텔이 짐 이동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리고 바로 아래에 'Looking Point' 란에 이런 말을 덧붙였다.)

카미노를 침범 당한 것에 대한 분노를 경계하라. 순례자들 대부분이 순례 여행을 앞두고 예민한 상태일 테고, 여행 선배들의 텃세를 경험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을 것이다. 사랑을 아는 순례자는 길 위에서 만나는 모든 이들을 환영하는 법이다. - 존 브리얼리의 《산티아고 가이드북》, 넥서스BOOKS, p. 349


길 위의 선물들

상큼한 순례자들 사이에서 지칠 만하면 떡, 하니 길 위의 천사가 내게 선물을 주었다. 나는 오늘 세 가지 선물을 받았다.

첫째는 폰프리아(Fonfria)에서 머무를 때 한국인 현희(50대 중반 즈음 되어 보이나 외국에서 오래 살아서 이름만 불러도 실례가 되지 않을 것이다)와 그의 오랜 파트너 영국 출신 J를 만난 거였다.

양말을 벗고 발에 땀을 식히고 있을 때 J가 와서는 내 상태를 보자고 했다. 그리고 내 발을 보더니 물집용 패치(Cosmopor E)를 주고 갔다. 한 개만 필요하다고 했는데 그가 한 개만 가지고 몽땅 내게 건넸다. 일반 밴드 세배 정도 비싼 가격이다. 실은 물집이 아니라 발목 때문에 걸음이 늦어진 것인데, 그의 성의를 무시할 수 없었다.
 들꽃과 스페인 어르신
 들꽃과 스페인 어르신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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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는 스페인 시골 어르신이 들꽃을 꺾어 내게 주었다. 걸음이 느려지고 지칠 무렵 뜻하지 않은 선물이었다. 들꽃을 기념하기 위해 사진을 찍자 그 어르신이 자기와 같이 찍자며 카메라 앞에 섰다. 한적한 시골에서, 순례자들을 보는 것이 시골 어르신의 즐거움일까? 들꽃을 선물 받은 순례자 또한 즐겁긴 마찬가지였다.

셋째는 목적지 2km를 남겨 두고 길가에서 들은 Gaita(스페인 백파이프) 연주이다. 발목 통증이 다시 시작되어 또 다시 걸음이 느려질 때였다. 모퉁이 그늘에서 연주음이 들려왔다. 길거리 연주는 무조건 들으면서 쉬기로 했던 터라 배낭과 신발을 벗고 자리를 잡았다.

그는 한곡이 끝나자 내게 질문을 던졌다(연속 연주하기에는 엄청난 폐활량이 필요한 듯했다). 나는 악기 이름을 물어보았고 그는 어디에서 왔냐고 물었다. 그는 맞은편 언덕 위에 산다면서 자기도 순례길에 오른 적이 있다고 말했다.
 가이타를 연주하는 남자
 가이타를 연주하는 남자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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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유니폼을 입고 말을 탄, 남자 세 명이 나타났다. 말을 타고 가는 순례자가 있긴 했지만 유니폼이 셋 다 똑같았다. 나는 저들이 누구냐고 물었다. 가이타 연주자는 시민 경찰이라면서 사리아에서 출발해서 어느 구간까지 돌면서 보안을 책임진다고 했다. 그러더니 그들이 대단히 거칠다(wild), 라고 했다. 거친 그들이 나보고 괜찮냐고 물었다. 나는 괜찮지 않다고 했는데도 그들은 웃으면서 어슬렁거리며 지나갔다.

신발을 신고 출발하려고 하자 그가 한곡 더 연주한다고 했다. 그때 청소년 단체객들이 왔고 선생님 지도 아래 멈춰 서서 음악을 들었다. 그 틈을 타 나는 순례자 여권에 도장을 찍고(가끔 기부하고는 도장을 받기도 한다) 호주머니 동전을 악기 케이스에 넣고 일어났다.
 페나. 빨래를 하고 난 뒤가 제일 평화롭다.
 페나. 빨래를 하고 난 뒤가 제일 평화롭다.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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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아(Sarria)부터 사람이 많다는 것을 실감했다. 원래 목적지가 페레이로스(Ferreiros)였다. 그곳 사설 알베르게가 꽉 차서 1km를 더 걸어 페나(Pena)까지 가야 했다. 늑장을 부렸다면 노숙할 뻔 했다.

길가에 있는 아주 작은 페나 알베르게에서 네덜란드 출신 마틴을 만났다. 그와 함께 같은 방에서 잤는데 또 새벽에 사라져버렸다. 누군가가 코를 곤 듯했다. 나는 새벽 일찍 일어나서 길 떠날 준비를 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길 위의 인생이 가로등처럼 밝아오고 있었고 나는 내 몫의 수고로움을 기꺼이 등에 짊어졌다.  

 페나(Pena) 알베르게에서 발바닥 해바라기를 하고 있을 때 담장 너머로 소 행렬이 지나갔다.
 페나(Pena) 알베르게에서 발바닥 해바라기를 하고 있을 때 담장 너머로 소 행렬이 지나갔다.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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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길’은 2017년 6월 13일에 걷기 시작해서 7월 12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했습니다. 30일만의 완주였습니다. 그 다음 날, ‘세상의 끝’이라는 피니스테레와 묵시아까지(100km)까지 내처 걸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34일 동안 900km 여정을 마쳤습니다. 몇 십 년 인생이라는 길 위에서, 34일의 여정은 짧을 수 있으나 걸으면서 느꼈던 것들은 제게 인생의 축소판처럼 다가왔습니다. 움츠린 어깨를 펴게 하고 긍정적인 미래를 내다보게 했습니다. 이곳에서 34일 간의 힘들었지만 행복했던 시간들을 도란도란 풀어놓으면서 함께 공유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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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차노휘는 소설가이다. 2016년부터 도보 여행을 하면서 ‘길 위의 인생’을 실천하고 있다. 2009년 광주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얼굴을 보다〉가 당선되었고 저서로는 소설집 《기차가 달린다》와 소설 창작론 《소설창작 방법론과 실제》, 여행 에세이 《쉼표가 있는 두 도시 이야기》 와 《자유로운 영혼을 위한 시간들》, 장편소설 《죽음의 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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