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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낀 하산 길

1330m 고지(포이오 고개)에서 600m까지 내려와야 했다.
 폰프리아(Fonfria) Bar에서 바라본 풍경
 폰프리아(Fonfria) Bar에서 바라본 풍경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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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바에서 저녁 식사를 할 때 창문 너머로 자욱하게 안개 낀 거리가 보였다. 일시적인 현상이었지만 작은 동네를 삼켜버린 안개에 넋을 잃었다. 안개가 사라지자 거대한 황소 무리가 어슬렁거리면서 줄 맞추어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나는 밖으로 나가서 그 광경을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집채만 한 황소가 잘 훈련된 걸음으로 한쪽 길로 줄지어 걸어갔다. 주인인 듯한 농부가 맨 뒤에서 걸어가는 것으로 행렬은 곧, 꼬리를 감추었다.

안개와 황소라.

갈리시아(Galicia) 주는 날씨 변덕이 심하다고 들었다. 특히 비가 많이 내린다고 했다. 나는 매일 다음날 날씨를 확인했다. 오후에 조금 비가 올 거라고 했다. 비가 오면 뭔가 번거롭기 마련이다. 일어나서 다시 확인하니 내내 화창하다고 했다. 다행이었다.
 포이오 고개(1,330m)에서 내려오는 길. 안개바다가 등 뒤로 펼쳐져 있다.
 포이오 고개(1,330m)에서 내려오는 길. 안개바다가 등 뒤로 펼쳐져 있다.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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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하는 길에서 내려다 본 풍광은, 온통 안개 바다였다. 안개는 깊은 계곡을 감싸고는 산동네까지 삼켜버렸다. 그 신비스런 광경에 함께 걸었던 마리아호세와 나는 감탄사를 연발했다.

내 입에서의 감탄사는 두 가지 의미였다. 그야말로 환호성과 통증을 참아내는 신음이었다. 빌어먹을, 누가 하산길이 더 힘들다고 했던가. 발목이 걸을 때마다 유리 조각이 살을 파고드는 듯했다. 눈물이 찔끔거렸지만 혼자 감내해야 할 고통이었다.
 포이오 고개에서 내려오는 길
 포이오 고개에서 내려오는 길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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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속에서도 눈앞에 펼쳐진 풍광에 잠시 걸음을 멈춰 사진을 찍었다. 내가 선택한 길이었기에 한발 한발 내딛는 순간이 소중했다. 다시 움직일 때는 주문을 외웠다. 아프지 않다, 아프지 않다, 라고. 잠깐 동안의 효과가 있었다. 효과가 사라질 때 즈음 노래를 불렀다. '학교 종이땡땡땡…' 하다가 '송아지송아지누런송아지…'로 이어졌다.

(며칠 뒤 마리아호세와 만나게 된다. 그녀가 내게 물었다. "너는 걸을 때 노래 부르는 걸 참 좋아했어." 나는 그녀의 말에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잠깐 망설였다. 그때는 어느 정도 통증이 가신 뒤라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실은 말이야, 너무 아파서, 내게 최면을 걸기 위해서 불렀던 거야.") 

54세 스페인 노처녀 마리아호세는 조용한 성격에 배려심이 많았다. 심리학을 전공해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그녀는 라깡 이론을 바탕으로 아동심리를 파악해 테라피 효과로 승화시키는 박사논문을 쓰고 싶다고 했다.

그녀는 고지대 길가에 핀 야생화에 관심이 많았고 고목이 보일 때마다 나무와 대화하려는 것처럼 두 팔을 벌려 안았다. 가방을 다음 목적지에 보내 버린 그녀의 몸짓은 나비처럼 가뿐해 보였다. 사리아(Sarria)까지 간다고 했다. 폰프리아(Fonfria)에서 28km 정도 떨어진 곳이다.
 나무와 교감하는 마리아호세
 나무와 교감하는 마리아호세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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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최고 고지인 오세브레이로(O'cebreiro)에서 잠을 자고는 21km 정도 되는(800m) 트리아카스텔라(Triacastela)까지 간다. 두 곳은 순례자들에게 중요 지점(Main point)이다. 트리아카스텔라를 벗어날 즈음 갈림길과 마주하게 된다.

오른쪽과 왼쪽.
 트리아카스텔라(Triacastela)를 벗어날 즈음에 있는 갈래길. 왼쪽 루트 색깔을 지워버렸다. 가지 말라는 뜻인가.
 트리아카스텔라(Triacastela)를 벗어날 즈음에 있는 갈래길. 왼쪽 루트 색깔을 지워버렸다. 가지 말라는 뜻인가.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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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길 다, 대부분의 순례자들이 다음 목적지로 삼는 사리아(Sarria)까지 이어진다. 하지만 오른쪽이 6.5km 단축된다. 내가 가지고 온 안내서에는 좀 돌아가더라도 왼쪽 길을 선택하라고 쓰여 있었다. 나는 왼쪽 길, 돌아가는 길 중간 지점에 있는 사모스(Samos)에서 자고 싶었다.

사모스에는 6세기에 지어진 수도원이 있다. 그곳은 스페인에서 가장 넓은 부지에 세워진, 서구 세계를 통틀어 가장 역사 깊은 수도원이다. 사모스로 이어지는 길은 오르비오 강을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된 흙길이다. 최종 목적지인 산티아고(Santiago de Compostela)에 조금 늦게 도착하더라도 보고 싶은 곳은 봐야 했다.

걷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닌가.

하지만 발목 통증은 나를 변덕쟁이로 만들었다. 이렇게 아픈데, 돌아가는 여유를 즐긴다는 것은 사치가 아닐까. 통증이 심해지면 완주하기 전에 멈춰버릴 것 같은 불안도 작용했다. 갈팡질팡 하는 마음이 싫어서, 10km를 걷는 동안 최종적으로 결정하기로 했다.

이런 갈등은, 트리아카스텔라 바에서 콜라 한 잔 시켜놓고 발을 쉴 때에야 끝났다. 우연히 만난 한국인 주경 때문이었다.

주경은 이번이 네 번째 순례길이었다. 북적대는 것이 싫어 메인 포인트를 지나치거나 못 미처 알베르게를 정한다고 했다. 알베르게 고르는 기준이 나와 같아서 일단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사모스는 겨울에 들러본 곳이지만 꼭 다시 가보고 싶었단다. 그도 그곳을 오늘 최종 목적지로 정했단다. 무엇보다 그를 신뢰할 수 있었던 것은 다른 한국인과 달리 서두르지 않는다는 거였다. 
 무인 산딸기 판매대(1유로)
 무인 산딸기 판매대(1유로)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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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앞으로 남은 일정 중에 쉴만한 알베르게를 추천받았다. 시종일관 미소를 잃지 않은 그는 내가 궁금하게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 답변해 주었다. 그가 일어나면서 뭔가를 내밀었다. '신신파스'였다.

"주경, 고마워. 우리 사모스에서 만나자!"

나는 그를 먼저 보냈다. 내 느린 걸음걸이로 상대방에게 부담을 주기도 그것으로 나를 자책하며 구속하기도 싫었다. 나는 어느 사이 혼자 걷는 것에 익숙해졌고 그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에게 유쾌하게 말할 수 있었다.

누가, 한국 사람은 한국 약이 잘 받는다고 했던가. 놀랍게도 파스를 붙이고 사모스로 향하는 길은 가뿐했다. 내가 확신했던 것에 대한 불안을 그가 없애준 심리적인 결과일 수도 있었지만 나는 점점 걷는 것에 프로가 되어가고 있었다.

사모스 가는 길

길은, 시골 마을과 시골 마을을 연결하며 사모스까지 이어졌다. 두 사람이 나란히 지나갈 정도의 넓이였고 부드러운 흙길이었다. 양옆으로 오래된 나무가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 왼쪽으로는 맑은 오르비오 강물이 흘렀다. 강물이지만 계곡물처럼 유수의 흐름이 빠르고 맑았다. 계곡을 끼고 산책하는 기분이었다.
 사모스 가는 길
 사모스 가는 길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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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루트가 아니어선지 마을을 통과해도 제대로 된 바가 없었다. 화사하게 단장한 건물이 아니라 칙칙한 건물들이 더 많았지만 되레 순수하게 보여서 좋았다. 민낯과 같은 그 길을 내내 혼자 걸었다. 앞서거나 뒤따라오는 사람이 없었다. 다들, 오른쪽 길로 방향을 튼 듯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웅장하고 오래된 수도원 건물이 턱, 하니 내 시야에 들어왔다. 그렇게 보고 싶었던 사모스가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오랫동안 나를 찾아다녔다는 듯이 반갑게 웃으면서.

 사모스 수도원과 수도원 옆으로 흐르는 강
 사모스 수도원과 수도원 옆으로 흐르는 강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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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스 수도원을 봤을 때에야 비로소 갈리시아는 물질적으로 빈곤하지만 영적인 풍요로움을 간직하고 있다는 말에 실감했다. 다른 지역에 비해 갈리시아는 땅이 척박했다. 하지만 어느 지역보다 더 평화롭고 오래된 건물들을 잘 보존하고 있었다. 이것은 그들의 신앙심에서 비롯되었다.

나는 얼마 전에 읽었던 책 구절을 떠올렸다. 삼십오 년째 폐지를 압축하고 있는, 지하실에 감금된 몽상가이자 정신적인 인간인 '한탸'의 중얼거림이 새삼스럽게 사모스에서 되살아났다.

갈리시아의 경건파 유대인들은 밝고 선명한 색깔의 허리띠를 착용해 자신들의 몸이 둘로 뚜렷이 구분되게 했다지. 심장과 폐와 간과 머리는 가장 아름다운 부분이고, 그 밖의 장과 성기는 그저 감내해야 하는 대수롭지 않은 부분이었다……

이 구분선을 가톨릭 신부들은 더 높이, 목까지 끌어올렸다. 그들의 로만칼라는 머리가 우위임을, 하느님 자신이 거기에 직접 손가락을 담갔음을 말해주는 표징에 불과하다. - 보후밀 흐라발 <너무 시끄러운 고독>, 문학동네, p.123


 종탑과 묘탑의 교묘한 조화
 종탑과 묘탑의 교묘한 조화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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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길’은 2017년 6월 13일에 걷기 시작해서 7월 12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했습니다. 30일만의 완주였습니다. 그 다음 날, ‘세상의 끝’이라는 피니스테레와 묵시아까지(100km)까지 내처 걸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34일 동안 900km 여정을 마쳤습니다. 몇 십 년 인생이라는 길 위에서, 34일의 여정은 짧을 수 있으나 걸으면서 느꼈던 것들은 제게 인생의 축소판처럼 다가왔습니다. 움츠린 어깨를 펴게 하고 긍정적인 미래를 내다보게 했습니다. 이곳에서 34일 간의 힘들었지만 행복했던 시간들을 도란도란 풀어놓으면서 함께 공유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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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차노휘는 소설가이다. 2016년부터 도보 여행을 하면서 ‘길 위의 인생’을 실천하고 있다. 2009년 광주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얼굴을 보다〉가 당선되었고 저서로는 소설집 《기차가 달린다》와 소설 창작론 《소설창작 방법론과 실제》, 여행 에세이 《쉼표가 있는 두 도시 이야기》 와 《자유로운 영혼을 위한 시간들》, 장편소설 《죽음의 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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