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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은 25.6명(2016년 기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 자살률 12.1명을 곱절로 상회한다. 한국은 이 분야 1위다.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한 정부의 관심이 최근 들어 부쩍 높아지고 있다. 사상 처음으로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확산'을 국정과제에 포함시키기도 했다.

지난 10일 신년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2022년까지 자살예방, 교통안전, 산업안전 등 '3대 분야 사망 절반 줄이기'를 목표로 '국민생명 지키기 3대 프로젝트'를 집중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22일의 청와대 수석비서관·보좌관 회의에서는 '2022년까지 연간 자살자 수를 1만 명 이내,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을 20명 이내로 축소시키겠다'는 목표가 제시됐다. 뒤이어 23일에는 보건복지부가 관계부처 합동 명의로<자살예방 국가 행동계획>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서는, 우리나라 자살이 경기변동 및 소득 불평등과 높은 상관관계를 보인다고 지적한다. 보고서에 제시된 그래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과 빈부 격차가 심해지는 것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실업률에 비례하는 자살률. <자살예방 국가행동계획>에 나오는 그래프.
 실업률에 비례하는 자살률. <자살예방 국가행동계획>에 나오는 그래프.
ⓒ 관계부처 합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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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득불평등에 비례하는 자살률. <자살예방 국가행동계획>에 나오는 그래프.
 소득불평등에 비례하는 자살률. <자살예방 국가행동계획>에 나오는 그래프.
ⓒ 관계부처 합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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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는 사회구조나 문화적 여건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한다. 우울증에 의한 극단적 선택도 사실은 사회 문제라는 것이다.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도록 만드는 사회문화로 인해, 우울증 치료를 받으면 정신질환자 대우를 받을까 봐 치료의 적기를 놓치는 일이 많다고 보고서는 지적한다. 

보고서에서 강조됐다시피 자살은 경제문제와 가장 크게 직결된다. 먹고사는 게 힘들어지면 극단적 행동의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진다. 서양의 자살 문제를 정리한 프랑스 역사학자 조르주 미누아의 <자살의 역사>에 이런 대목이 있다.

"중세 이후로 변한 것은 없었다. 가난, 신체와 정신의 쇠락은 여전히 시골 평민들이 자살을 택하는 주된 이유였다."

가난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 끊는 사람들을 정신이 나약한 자로 몰아붙이는 것은 너무 폭력적인 태도다. 조르주 미누아가 말한 '가난 때문에 자살한 시골 평민들'은 나약하거나 무능해서 빈곤해진 게 아니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국가와 가진 자한테 수확물의 상당 부분을 넘길 수밖에 없어서 가난해진 것이었다. 따라서 그들의 죽음은 실은 타살이었다.

19세기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도 사회적 관점에서 자살을 연구했다. <자살론>에서 그는 이 문제를 사회현상으로 규정했다. 그에 따르면, 자살은 경제위기 때처럼 개인에 대한 사회의 구속력이 너무 약해도 일어나기 쉽고(이기적 자살), 국가윤리나 집단주의를 지나치게 강조할 때처럼 사회의 구속력이 너무 강해도 일어나기 쉽고(이타적 자살, 순교·순국 등), 개인이 사회변화에 적응하지 못할 때도 일어나기 쉽다(아노미성 자살).

자살이 실은 타살이라는 점은 조선 시대 자살 중에서 109건을 다룬 송병우의 논문 '조선 시대 개인의 자살, 사회적 타살'에서도 강조된다. 2015년에 <동양한문학연구> 제40집에 실린 이 논문에 따르면, 109건 중에서 절반 이상은 명백히 타살에 포함시킬 수 있는 것들이다.

<태조실록>부터 <철종실록>까지의 조선왕조실록에서 논문 저자가 찾아낸 109건의 사례를 분석한 이 논문에 따르면, 그중 27건의 원인은 분노·절망, 15건은 충절, 8건은 정절, 5건은 억울함이다. 이들을 합하면 과반수인 55건이다.

분노·절망·억울함은 주로 타인이나 사회 혹은 국가 때문에 생긴다. 충절·정절도 국가윤리나 사회윤리를 전제로 한다. 충절·정절을 지키기 위한 극단 행동은 뒤르켐이 말한 이타적 자살에 가깝다. 따라서 그 55건은 사회적 타살로 분류될 수 있다. 

논문에 소개된 평민 이상좌는 외형상으로는 빈곤 때문에 벌금을 낼 수 없어 목숨을 끊었다. 겉으로 보면 개인적 문제 때문에 생긴 일처럼 보인다. 하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그를 죽인 것은 그 자신이 아니라 실은 국가였다.

음력으로 세종 7년 8월 23일 자(양력 1425년 10월 4일 자) <세종실록>에 따르면, 이상좌는 가죽신 제조업자였다. 그가 손님에게 가죽신 1켤레를 쌀 1말 5되에 판매한 게 문제가 되었다. 이 당시엔 쌀이나 포목이 화폐처럼 사용됐다. 그래서 쌀을 받고 가죽신을 팔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행위는 법에 저촉됐다. 화폐 사용을 권장할 목적으로 현물거래를 규제하던 정부정책을 어기는 일이었다. 현실과 동떨어진 탓에 이 법은 잘 지켜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정부는 시행을 밀어붙였고, 힘없는 이상좌는 시장 감독기구인 경시서에 체포됐다.

 경시서 터.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정문 근처.
 경시서 터.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정문 근처.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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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시서는 원칙대로라면 곤장형을 가하거나 아니면 군대 입대를 명령했어야 한다. 하지만 이상좌가 너무 연로했다. 그래서 벌금 8관(貫)을 부과했다. 이상좌한테는 너무 큰돈이었다. 남한테서 돈을 꿨지만 1관밖에 안 됐다. 그것만 납부했더니 경시서는 완납을 재촉했다. 압박에 시달리다 못한 이상좌는 결국 집 앞 나무에다가 스스로 목을 맸다. 

민간이 현물로 거래하는 것보다는 국가가 찍어낸 화폐로 거래하는 게 당연한 말이지만 국가한테 유리하다. 국가의 이익을 위해 화폐 사용을 강제하고 위반자에게 처벌을 부과한 국가의 행위가 이상좌를 극단적 선택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이상좌가 끝내 벌금을 내지 못했다면, 국가는 곤장형을 가하거나 아니면 군대에 보냈을 것이다. 그랬다면 곤장을 맞고 죽었거나 아니면 군역을 이기지 못해 병들거나 죽었을 수도 있다. 이상좌가 정상적으로 살아가기 힘든 상황이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국가가 그를 죽음으로 내몬 셈이 된다. 

이상좌의 죽음에는 가난이란 요인도 함께 작용했다. 이 역시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사회적 문제다. 서민들이 법과 제도를 성실히 지키면 부자가 되기 힘든 사실에서 느낄 수 있듯이, 법과 제도 속에는 급격한 재산 증식과 재산 증식을 통한 신분이동을 견제하는 기능이 있다.

법과 제도의 목적 중 하나는, 특권층의 관점에서 사회를 안정시키는 것이다. 사회를 움직이는 힘인 돈이 이리저리 쉽게 이동하고, 가난했던 사람이 단기간에 부자가 되고 지위가 높아지면, 특권층 처지에서는 사회를 뜻대로 움직이기 힘들어진다.

그래서 고대 이래로 특권층은 부를 통한 신분 이동을 줄일 목적으로 법과 제도를 이용했다. 이런 구조적 요인으로 인해 가난에서 헤어나기 힘들었던 이상좌는 벌금을 감당할 수 없게 되자 극단적인 벼랑으로 내몰리고 말았다.

위 논문에 소개된 함경도 북청부 강씨의 극단적 선택은 자세히 뜯어보면 국가와 사회의 폭력이 낳은 결과물이다. 강씨의 선택은 보수적 유학자들의 눈에는 칭찬받을 만한 일이었다. 남편을 위해 스스로 결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정조 13년 7월 14일 자(1789년 9월 3일 자) <정조실록>에 따르면, 강씨한테는 과거시험에 급제하지 못한 남편이 있었다. 그는 남편에 대한 공경심이 대단했다. 그런데 남편이 위독해졌다. 나을 가망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 하늘에 대고 열심히 빌었다. 남편 대신 자기가 죽게 해달라고 간구했다.

강씨는 점쟁이들을 찾아다녔다. 어떻게 해야 남편을 살릴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어떤 점쟁이가 "남편 대신 죽으면 길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강씨는 스스로 목을 매었다. 그런 뒤에 남편의 병이 나았다. 예조(교육·문화 담당)에서는 정조에게 표창을 건의했다.

강씨가 다른 이유로도 그랬을 수도 있지만,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직접적 계기는 '남편을 위해 죽으면 좋다'는 점괘였다. 강씨가 점괘를 쉽게 받아들인 것은 사회 분위기와 관련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남편 중심의 가정윤리를 확산시키는 유교 국가의 이념이 점쟁이의 말에 힘을 실어주었다고 볼 수 있다. 이 같은 이념의 폭력이 강씨를 뒤르켐이 말한 이타적 자살로 유도했다고 볼 수 있다.

 조선시대 여성. 경기도 용인시 한국민속촌에서 찍은 사진.
 조선시대 여성. 경기도 용인시 한국민속촌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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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어느 시대, 어느 나라건 간에 자살은 개인 문제라기보다는 사회문제에 가깝다. 그러므로 한국이 OECD 회원국 중에서 자살률 1위라는 사실은, OECD 내에서 한국의 사회구조가 사람 살기에 가장 부적합하다는 뜻이 될 수도 있다. 삶의 환경이 열악한 나라라는 뜻일 수도 있는 것이다. 

삶의 환경을 위협하는 사회 구조적 문제로 소득 불평등을 우선적으로 들 수 있다. 위의 관계부처 합동 보고서에서도 경제위기와 소득 불평등이 자살을 양산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를 좀더 직설적으로 표현한 글이 정치학자 최용섭의 <재벌을 위해 당신이 희생한 15가지>에 나온다. 이런 대목이 있다.

"1983년부터 2010년까지의 자살률 추이를 보면, 1990년대 초반까지는 특별한 증가세를 보이지 않다가 1990년대 중반에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상승하기 시작했고, 1998년 경제위기의 여파로 자살하는 사람들이 급격히 많아졌다. 이후 2001년까지는 다시 감소하기 시작했으나, 2002년을 기점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이는 출산률이 2002년을 기점으로 급격히 감소한 것과 시기적으로 일치한다."

2002년경부터 자살률이 급증한 이유에 관해 이 책은 이렇게 말한다.

"이 시기는 한국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 상당히 진전된 시점으로 노동의 유연화라는 명목으로 비정규직 근로자가 급격히 확대되어 갔으며, 또한 과거부터 있었던 대기업의 하청업체 착취가 보다 심해진 때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부의 재벌통제가 실질적으로 중단된 시점이기도 하다."

구조조정, 비정규직 확대, 하청업체 착취 증가, 재벌 통제 약화 등으로 인해 일자리가 불안해지고 소득 불평등이 심화한 게 자살률 증가의 원인이란 지적이다.

소득이 소수 재벌한테 한층 더 편중되면서 다수 대중의 삶이 더욱더 위협을 받고 이것이 자살률 증가로 이어졌다면, 재벌 개혁이 자살 억제의 도구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재벌 개혁으로 소득의 공정분배를 실현하고 보다 많은 사람이 마음 편하게 살 수 있도록 한다면, 자살의 벼랑으로 내몰리는 사람들의 숫자가 그만큼 줄어들 거라는 말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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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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