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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국가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 옛날 왕들이 만약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처지를 관찰한다면, 쉽사리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을 것이다. 국가정보원 특활비를 포함한 나랏돈에 손을 댄 행위로 욕을 먹어야 하는 이유가 쉽게 납득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 국가에서는 왕실 같은 최대 주주 혹은 대주주가 원칙상 인정되지 않는다. 대통령은 최고경영자(CEO) 같은 존재에 불과하다. 나라의 주인이 아니라 기간제 고용인인 것이다. 그래서 나랏돈에 손을 대면 당연히 '도둑'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왕조국가에서는 군주가 나랏돈을 도둑질한다는 개념이 원칙상 성립할 수 없었다. 왕실과 군주가 나라의 주인으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재벌 총수나 그 집안이 기업의 주인으로 인식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서울 광화문광장 동편에 있었던 호조의 위치. 별표 부분이 호조 터다. 오늘날 호조 터에 조성돼 있는 게 미국대사관(오른쪽)이다.
 서울 광화문광장 동편에 있었던 호조의 위치. 별표 부분이 호조 터다. 오늘날 호조 터에 조성돼 있는 게 미국대사관(오른쪽)이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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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왕의 개인 곳간인 내탕고는 물론이고, 정부 재산 전체도 군주의 재산으로 간주됐다. 이념상으로는 물론이고 실제적으로도 상당 정도 그랬다. 정부 재정과 왕실 재정을 분리하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양자는 오래도록 명확히 구분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시대 호조(기획재정부) 같은 관청이 관리하는 정부 자금을 임금이 은밀히 썼다 해도, 지금처럼 비난의 대상이 되기는 힘들었다.

임금이 나랏돈을 함부로 쓴다는 말은 있을 수 있었다. 백성이나 귀족의 재산을 도둑질한다는 말도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자기 돈과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나랏돈을 도둑질한다는 관념은 왕조국가와는 친숙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현대 국가의 구조를 모르는 옛날 왕들의 눈에는 이명박·박근혜가 비판을 받는 모습이 이상할 수밖에 없다. 자기 돈 자기가 썼는데 왜들 저러나, 갸우뚱할 듯하다.

왕조시대에 어울리는 '이명박근혜'의 행동

이명박·박근혜·홍준표·원희룡·고진화 한나라당 대선후보 5명의 정책공약과 비전을 토론하는 마지막 토론회가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63빌딩에서 열렸다. 나란히 앉아 있던 박근혜 후보와 이명박 후보가 동시에 눈가를 만지고 있다. 이명박·박근혜·홍준표·원희룡·고진화 한나라당 대선후보 5명의 정책공약과 비전을 토론하는 마지막 토론회가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63빌딩에서 열렸다. 나란히 앉아 있던 박근혜 후보와 이명박 후보가 동시에 눈가를 만지고 있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사진은 지난 2007년 6월 28일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토론회 당시 모습.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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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이 보유한 전체 재산(A) 속에는 대통령 재직 시에 다스(DAS) 기업 등을 통해 부정 축재한 재산(B)이 포함돼 있다는 주장이 있다. A에서 B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인지는 아직 불확실하지만, A 자체가 상당한 규모인 것만큼은 분명하다. <주진우의 이명박 추격기> 제2장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내가 이명박의 재산이 30조 정도 될 거라고 말했더니, 이명박의 한 친척은 '지금까지 말한 사람 중에 가장 근사치를 말한 것 같다'라고 했다. 이명박 형제의 한 수행비서는 '다스의 재산 가치가 10조가 훨씬 넘으니 (이명박의 전체 재산은) 상당히 큰 액수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설령 이명박한테 30조 재산이 있고 그중 상당액이 나랏돈이라 해도, 옛날 왕들은 놀라지 않을 것이다. 금액이 얼마든 간에 왕이 자기 재산에 손댄 걸 두고 그렇게까지 욕 먹을 수 있겠느냐고 생각할 것이다. 사실 이명박의 행위는 왕조시대에 아주 잘 어울리는 것이다. 

박근혜 경우에는, 자신의 대통령 재임 시에 도둑질을 했을 뿐 아니라 아버지가 감춰둔 나랏돈까지 훔쳤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 있다. 한때 박근혜의 재산을 관리한 인물 중에는 조순제가 있었다. 어머니는 같지만 아버지는 다른 최순실의 오빠다. 조순제의 아들인 조용래의 진술을 토대로 한 <또 하나의 가족 - 최태민, 임선이, 그리고 박근혜>를 살펴보자.

"박정희 사후에 조순제가 한 가장 중요한 일은 박정희가 남긴 돈을 최태민 일가 쪽으로 옮기는 데 관여한 것이다. 금덩어리도 나왔고 달러와 채권 뭉치도 나왔다. 외국 은행의 비밀 계좌에서도 돈이 나왔다."

아버지가 빼낸 나랏돈을 최태민 집안으로 옮겨둔 박근혜의 행위도 옛날 왕들한테는 그다지 이상하지 않다. 암살 등으로 왕이 죽으면 대개는 왕조가 끊기므로, 부왕을 잃은 공주가 아버지 자금을 챙겨 재기를 도모하는 게 옛날에는 별로 이상하지 않았다. 지금이 왕조시대였다면, 박근혜의 나랏돈 도둑질도 그다지 문제될 게 없다. 

이처럼 이명박·박근혜의 행위가 옛날 왕들의 눈에 이상하지 않다는 것은 그들이 지금 시대와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주식회사 자금을 개인기업 자금처럼 함부로 사용하는 일부 재벌가 사람들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

만약 이명박·박근혜가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면, 이는 그들의 의식세계가 저 멀리 왕조시대에 가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 시대와 맞지 않는 구시대 사람들이 도합 9년간 대한민국을 이끌었다는 말이 된다. 그러니 대한민국이 9년간 퇴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랏돈 들고 나간 '암행어사'?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09년 2월 12일 오후 청와대에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에게 임명장을 주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09년 2월 12일 오후 청와대에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에게 임명장을 주고 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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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옛날 왕들이 이해하지 못할 부분이 하나 더 있다. '대한민국 왕'이 '자기 돈' 쓰고 욕먹는 것도 이해되지 않겠지만, 대한민국 왕이 '암행어사'를 시켜 '자루'를 들고 해외로 나가도록 한 정황이 있다는 점도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이명박의 신임을 받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재임 시절 묘한 행보를 많이 남겼다. 미국에 갔다가 단독으로 캐나다 국경을 넘은 뒤 모종의 사무를 처리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행보가 이명박 비자금과 관련돼 있다는 의혹이 퍼져 있다. 

위에 언급된 책에서 주진우 <시사IN> 기자는 "원세훈이 국정원장으로 있을 때 미국과 캐나다를 수차례 드나들면서 (검색 대상이 되지 않는) 외교행낭을 이용해 돈을 빼돌렸다는 게 의혹의 핵심"이라고 진단한다. 이 책에 따르면, 원세훈의 심복이었다가 버림을 받은 국정원 직원은 이렇게 증언했다.

"국정원장이 미국에 가면 당연히 영사·수행원이 따라 붙는데, 원세훈 원장은 다 떼놓고 혼자 움직였어요. … 꼭 미국을 갔다가 캐나다 국경을 혼자 넘어가요. 경호직원들도 다 따돌리고."

국정원 직원에 따르면, 원세훈은 재임 중에 외교행낭을 들고 10여 차례 미국·캐나다 국경을 넘었다. 그 직원은 국정원장이 그런 식으로 정보 활동을 하는 경우는 없다고 말했다. 국정원장 직무와 무관한 활동을 위해 캐나다 국경을 넘었다는 것이다.

대통령 밀명을 받은 사람이 캐나다 국경을 넘으면서부터 단독 밀행을 했다면, 옛날 왕들의 눈에 원세훈은 캐나다 국경을 넘는 순간부터 일종의 암행어사가 되는 것이었다. 암행어사는 강원도·함경도 같은 도 단위로 파견됐다. 원세훈은 쉽게 말해 '캐나도(道) 암행어사'였던 셈이다. 

옛날 왕들은 바로 이 대목에서 의문을 가질 것이다. 조선시대 왕들이 암행어사를 파견한 목적 중 하나는, 지방에 보관된 나랏돈을 사또들이 축내지 않을까 감시하는 데 있었다. 나랏돈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할 목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명박의 암행어사인 원세훈은 '캐나도'를 경유해 나랏돈을 빼돌렸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나랏돈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빼돌리기 위해서 암행어사처럼 밀행했다는 의심이다. 왕이 암행어사를 통해 자기 돈을 빼돌렸다는 의혹은 옛날 왕들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옛날 사람들의 시각에서 볼 때, 군주가 거액을 해외로 빼돌렸다면 대개는 둘 중 한 가지 상황이다. 해외로 비자금을 옮긴 뒤 나라를 버리고 망명할 생각이었거나, 아니면 그 돈으로 외국 용병부대를 끌어와 국내 정변을 진압할 생각이었거나. 둘 중 하나다. 임금이 암행어사를 시켜 자기 돈을 해외로 빼돌린다는 게 도저히 이해되지 않으므로, 옛날 왕들은 이명박이 망명을 계획했거나 용병부대를 들여오려 했을 거라고 추론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처럼, 이명박·박근혜가 나랏돈을 쓴 일로 지탄을 받는 일이나 이명박이 원세훈을 시켜 자금을 빼돌렸다는 의혹을 받는 일은 왕조시대 군주들의 눈에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현상이다. 현대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므로 대통령일지라도 나랏돈에 손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 전까지, 그들의 의혹은 풀리지 않은 채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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