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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전 대통령. 사진은 지난 2004년 11월 12일(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미국의 민간 외교정책단체인 국제문제협의회(WAC)가 주최하는 오찬 당시 발언하고 있는 모습.
 노무현 전 대통령. 사진은 지난 2004년 11월 12일(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미국의 민간 외교정책단체인 국제문제협의회(WAC)가 주최하는 오찬 당시 발언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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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전 11월 13일,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이 파문을 일으켰다. 조지 부시(아들 부시) 대통령이 11월 4일의 대통령 재선 성공으로 한껏 고양돼 있을 때였다. 노 대통령은 한국 시각으로 2004년 11월 13일 LA에서 열린 국제문제협의회 연설에서 이른바 'LA 발언'을 터뜨렸다. 

그는 "북한으로서는 핵이 자기를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볼 만한 합리적 근거가 있다"라면서 "(북한에 대한) 무력행사는 협상전략으로서의 유용성도 제약받을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대화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또한 "대북 봉쇄정책도 생각해볼 수 있지만, 결코 바람직한 해결 방법이 아니다"라고도 덧붙였다.

전쟁은 물론 봉쇄도 안 된다고 강조한 것이다. 대화 외에는 방도가 없다는 것이다. 1950년 이래 계속된 미국의 대북 봉쇄를 풀고 대화의 장을 마련해주면 문제가 풀릴 수 있다고 짚은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핵문제의 원인을 북한의 도발이 아닌 미국의 압박정책에서 찾았다.

"북핵 문제는 북에 체제 안전을 보장하고 개혁·개방을 통해 지금의 곤경을 극복할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이냐 아니냐의 결단에 달렸다. 

북한한테만 도발을 그만두라고 요구할 게 아니라, 미국 자신도 대북 압박을 포기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핵문제의 원인을 북한이 아닌 미국에서 찾는 발언은 북미관계에 대한 코페르니쿠스적 인식의 전환이 없고서는 할 수 없는 것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면 특히 할 수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노무현, 그는 했다.

노무현 LA 발언을 수용한 '아들 부시'
노무현 대통령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20일 오전(한국시간 20일 밤) 산티아고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20일 오전(한국시간 20일 밤) 산티아고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 사진은 지난 2004년 11월 20일(현지 시각) 산티아고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도광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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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발언 일주일 뒤인 11월 20일에 한미 양국의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었다. 칠레 산티아고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모임에서 노무현과 조지 부시가 만나기로 돼 있었다. LA 발언은, 재선 확정으로 기분이 고양돼 있었겠지만 아직 전열을 정비하지 못했을 조지 부시에게 충격이 될 만한 것이었다. 일주일 뒤의 회담에서 조지 부시는 답변을 내놔야 했다.

11월 20일의 회담에서 부시는 LA 발언을 상당 부분 수용했다. '대화를 통해 핵문제를 해결한다'는 원칙을 확인했다. '6자회담을 통해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한다'고 합의했다. 북미 직접대화는 아니지만, 6자회담 틀 안에서라도 북한과 계속 대화하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그날 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얻은 수확이 더 있다. 노무현과 부시는 '6자회담의 틀 안에서 한국이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고 합의했다. 미국과 중국이 주도해온 6자회담에서 한국의 역할을 제고하는 데 뜻을 함께한 것이다.

한미정상회담에 앞서 열린 한중정상회담에서 후진타오 주석도 '향후 6자회담에서 한국의 건설적 역할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또 미중정상회담에서도 이 문제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이로써 6자회담에 대한 한국의 역할 제고에 대해 미중 양국의 동의를 얻게 됐다.

"우리는 동북아 균형자"

 충북 청주시 문의면의 청남대에서 찍은 사진.
 충북 청주시 문의면의 청남대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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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성과는 4개월 뒤인 2005년 3월 22일, 육군3사관학교 제40기 졸업식의 발언으로 이어졌다. 이 자리에서 노무현은 "우리는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 및 번영을 위한 균형자 역할을 해야 한다"라고 발언했다. 한국의 동북아 균형자론을 제시한 것이다.

더 이상 미국의 뒤를 따라다니지 않고, 자기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뿐 아니라 동북아 국제관계에서도 우리 입장을 관철시키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미국의 꽁무니나 추종하던 지난날을 청산하자는 의미에서 '졸업식장'을 발언의 장으로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또 그는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을 이루려면 "따질 것은 따지고 협력할 것은 협력하겠다"라고 밝혔다. 그는 한국이 그만한 자격을 갖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강력한 군대,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경제력, 민주화 실현, 평화 지향적 역사 등을 우리의 자산으로 거론했다. 이러므로 한국이 동북아 질서를 주도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게 그의 강조점이었다.

2004년 11월 3일의 LA 발언은 이렇게 2005년 3월 22일의 동북아 균형자론 주창으로 이어졌다. 핵문제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이며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는 노무현의 도전은 한반도 정세가 극한으로 치닫지 않도록 하는 데 일정 정도 기여했다. 외세열강이 한민족의 뜻을 무시하고 이 땅에서 전쟁을 벌이지 않도록 하는 데 이바지했다.

물론 조지 부시가 마음대로 전쟁을 벌이기는 힘들었다. 이라크 문제에 묶여 있었던 당시의 미국이 한반도에서 새로운 전쟁을 일으킬 여력은 없었다. 또 중국도 가만히 용인할 리 없었다. 그 외에, 미국이 한반도 전쟁에 부담을 가질 만한 심리적 요인도 있었다. 제너럴셔먼호사건(1866년), 신미양요(1871년), 한국전쟁(1950년), 푸에블로호 사건(1968년) 등에서 나타나듯, 미국은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대결 국면에서는 매번 이상하리만치 약한 모습을 보였다.

여러 요인들로 인해 조지 부시가 전쟁을 벌이기는 쉽지 않았지만, LA 발언은 전쟁을 반대한다는 한국의 입장을 명확히 밝힘으로써 미국 보수파 네오콘이 대북 강경론을 확산시키지 못하도록 제동을 거는 역할을 했다. 

물론 노무현의 대북·대미 입장이 완벽했던 것은 아니다. 한계도 많았고 비판도 많았다. LA 발언의 결과물이 끝까지 살아남지도 못했다. 하지만 수도 서울에 미군을 두고 있고, 청와대 코앞의 미국대사관 및 CIA 지부를 신경 써야 했던 2004년 당시의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그만한 용기를 내기는 결코 쉽지 않았다.

LA 발언으로 시작된 일련의 도전으로, 6자회담은 미국의 뜻대로만 움직일 수 없게 됐다. 그렇다고 북한의 뜻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된 것도 아니다. LA 발언은 동북아 정세가 한반도 평화에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되도록 하는 데 역할을 했다.

뉴질랜드에서 <평양 리포트>의 공동 편집인이자 빅토리아대학교 교수로 활동하는 팀 빌이 지은 <북한과 미국, 대결의 역사>란 책이 있다. 이 책에서 팀 빌은 노무현의 외교적 노력을 높이 평가했다. "노무현의 진보적인 행정부는 특히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기에 미국의 대북 정책을 누그러뜨리는 데 도움이 되었다"라고 말했다. LA 발언이 미국 견제와 전쟁 방지에 도움이 됐다고 본 것이다.

자주적 외교노선을 지향한다면, 트럼프도 바뀌지 않을까

 노무현·김정일 남북정상회담.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의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찍은 사진.
 노무현·김정일 남북정상회담.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의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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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 패싱(Korea passing)이라는 콩글리쉬 신조어가 있다. 코리아 패싱은 분명히 우리의 현실이다. 하지만 모든 경우에 다 그렇지는 않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들처럼 미국의 힘을 과대평가하고 거기에 의존하면, 코리아 패싱은 맞는 말이 된다. 하지만 미국의 힘을 있는 그대로 평가하고 우리 자신의 역량에 의존하면, 코리아 패싱은 문법뿐 아니라 현실에도 맞지 않는 말이 된다.

이명박·박근혜 때 대미 의존도가 심화된 것은 한미 간 국력 차이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정권의 의지가 작용하기도 했다. 미국의 힘으로 뭔가 해보려는 심리가 코리아 패싱을 한층 심화시켰다. 거기다가 현재 의혹을 받고 있는 댓글 공작, 비자금 모으기, 피부관리, 드라마 시청 등의 사안으로 인해 그들은 자주적인 나라를 만들려는 생각은 꿈도 꿀 수 없었던 것 아닐까.

한국에서는 1980년 광주항쟁 이후로 반미감정이 격화되면서, 광주 미국문화원(1980년 12월 9일), 부산 미국문화원(1982년 3월 18일), 서울 미국문화원(1985년 5월 23일)이 한국인들로부터 '불(火)의 공격'을 받았다.

미국문화원들이 연쇄적인 방화 공격을 받자, 미국은 한국 국민들의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기 시작했다. 1987년 6월항쟁 당시 제임스 릴리 미국대사가 전두환 정권의 계엄령 발포를 저지하는 데 가담한 것도 한국 국민들의 반응을 무서워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근무 경험을 담은 <중국통>이란 책에서 제임스 릴리는 "한국에 와서 나는 미국에 대해 갖는 그들의 적대적 감정이 경제적 현안에까지 미치고 있음을 알게 됐다"라고 말했다. 그런 뒤 "많은 한국인들은 이 대량학살(광주항쟁)에 대해 미국도 일부 책임이 있으며 적어도 한국군의 행동을 묵인한 잘못이 있다고 생각한다"라면서 "미국 정부가 광주 학살 이후 수년 동안 그 사건에 대해 깊이 있는 언급을 회피했던 게 미국을 괘씸하게 여기는 한국인들의 생각을 부추긴 꼴이 됐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한국 국민들을 두려워하는 심리가, 6월항쟁 당시 미국이 전두환 정권에 제동을 걸도록 만드는 요인 중 하나가 됐다. 미국이 한국 국민들을 그 정도로 의식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한국 국민들을 어려워하는 상태에서, 노무현의 LA 발언 때처럼 한국 정부가 국민들의 힘을 믿고 자주적 외교노선을 지향한다면, 지금의 도널드 트럼프도 조지 부시처럼 기가 죽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북핵을 빌미로 전쟁 분위기를 조성하며 무기를 팔고 돈이나 벌어가려는 꼼수를 더 이상 부리지 못할 것이다. 정부가 국민들의 힘을 믿고 목소리를 높인다면 미국도 별 수 없다는 것을 노무현의 LA 발언은 잘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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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M101.9 (목)11시25분경. (저서) 역사 추리 조선사, 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 못하나,발해고(4권본,역서),패권 쟁탈의 한국사,신라 왕실의 비밀,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상고사(역서),조선노비들,왕의 여자,철의제국 가야,최숙빈,한국사 인물통찰,동아시아 패권전쟁 등. www.kimjongs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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