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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지는 사퇴 요구에 당당한 고영주 이사장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MBC 정상화를 위해 고 이사장과 김장겸 사장이 물러나야 한다는 여당 의원들의 지적에 당당한 표정을 짓고 있다.
▲ 쏟아지는 사퇴 요구에 당당한 고영주 이사장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MBC 정상화를 위해 고 이사장과 김장겸 사장이 물러나야 한다는 여당 의원들의 지적에 당당한 표정을 짓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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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고영주 이사장이 '문재인 공산주의자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당선 직후인 2013년 1월 4일 한국시민사회단체협의회가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주최한 신년 하례회 때도 그랬다.

2012년 9월 방문진 감사에 임명된 고 이사장은 2013년 신년 하례회 때 "좌파 정권 집권을 막아주신 여러분들께 정말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라고 말한 뒤 "저는 문재인 후보도 이거는 공산주의자이고, 이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우리나라가 적화되는 건 그야말로 시간문제다 하고 저는 확신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라고 말했다.

고 이사장은 올해 8월 31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11단독 법정에서 열린 명예훼손 1차 공판에서도 4년 전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 추종 발언과 활동을 해온 공산주의자입니다"라며 "난 허위사실 말한 적 없어요"라고 진술했다.

지난 10월 27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방문진 국감장에서는 살짝 결을 바꾸면서도 종전의 주장을 되풀이했다.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의원의 질의에 대한 답변에서 "문재인 대통령께서 평소 소신대로 했으면 적화되는 길을 갔겠죠"라고 말한 뒤 "대통령이 되면 미국보다 북한을 먼저 방문하겠다, 또 사드 배치 안 하겠다, 그런 식으로 했는데, 지금 다 바뀌고 있지 않습니까?"라며 빠져나갈 길을 살짝 열어놓았다.

문 대통령이 평소 소신과 달리 공산주의자 길을 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 취임 후에는 정반대 노선을 걷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재인의 평소 소신대로라면 적화로 갔을 것'이란 말을 함으로써 2013년 1월 4일의 주장을 여전히 고수했다.  

지난 18일자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핵추진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호 등의 참여 하에 한반도 주변 해역에서 전개된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맹렬히 비판하면서, 트럼프 정권과 문재인 정권을 '미국과 괴뢰패당'으로 엮어 규정했다. 이처럼 북에서 좋아하지 않는 문재인 정권을, 고 이사장은 미국이 아닌 북한과 같은 부류로 묶고 있다.

국감장에서 박홍근 의원이 또 다른 질문인 "그 직에 계시면서 국정원장을 만났습니까, 안 만났습니까?"를 던지자, 고 이사장은 "국정원장은 전에도 애국 활동을 하시던 분이라 잘 알고 있었습니다"라는 동문서답으로 피해 나갔다. 박 의원이 "세상을 애국과 매국으로 구분하고, 본인의 뜻과 맞지 않으면 다 매국하는 사람들입니까?"라고 되묻자, 여기에는 답변하지 않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구속됐고, 보수정당 지지율도 25%가 안 된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집계한 10월 4주차 자료에 따르면, 자유한국당 지지율은 18.9%, 바른정당 지지율은 4.7%다. 합계 23.6%다. 이런 상황이라, 고 이사장의 발언은 무너진 세력의 푸념처럼 들릴 수도 있다. 현실로 이어지기 힘든 발언으로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무시해버리기엔 좀 위험하다. 촛불혁명 직후라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사회과학 혹은 정치학적 의미의 혁명이 발생한 것은 아니다. 국민들이 국회 및 행정부를 통한 간접 민주정치의 틀을 깨고 광장과 거리로 직접 나가 정권을 무너뜨렸다는 의미에서 혁명이라고 하는 것이지, 불의한 구체제를 밑바닥에서부터 무너뜨렸다는 의미에서 혁명이라고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한자 혁명(革命)은 '천명을 바꾸다'란 뜻이다. 천명은 지금 식으로 말하면 국민의 명령이다. 그런 중차대한 명령을 바꾸고 나라를 새롭게 세우는 게 동아시아 역사 속의 혁명이다.

'바꾸다'에 해당하는 혁(革)의 원래 의미와 관련하여, 중국 후한(後漢) 왕조의 허신(30~124년)이 편찬한 한자사전 <설문해자>에서는 "동물 가죽에서 털을 벗겨내고 새롭게 하는 것"이고 말했다. 이렇게 가죽의 털을 완전히 개변할 정도의 변화가 있어야 천명을 바꾸는 동아시아적 혁명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수준의 혁명이 2017년 대한민국에서는 발생하지 않았다. 바뀐 것은 정권이지 체제가 아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때의 보수세력은 여전히 경제적·사회적 권력을 쥐고 있다. 정치권력만 잃었을 뿐이다. 돈을 가장 많이 가진 사람들이 여전히 어느 정당을 지지하는지를 생각해보면, 답은 간명하다.

그래서 고 이사장의 발언은 그냥 흘려 넘길 수 없다. 레드 콤플렉스를 자극하는 발언이 지금까지 수구세력을 결집하고 기득권을 수호하는 데 결정적 기능을 해왔기 때문이다.

고 이사장 발언, 그냥 흘려 넘길 수 없는 이유

1948년에도 고 이사장 같은 사람들이 한몫 단단히 했다. 그때도 수구세력이 중대 위기에 직면했다. 적폐청산보다 무서운 친일청산이 추진됐기 때문이다. 반민특위로 상징되는 그 시절의 적폐청산이 구세력한테 공포심을 심어준 것이다.

 반민특위 재판 풍경.
 반민특위 재판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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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4281년인 그 해 7월 17일 만들어진 대한민국 헌법의 제101조는 "단기 4278년 8월 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고 규정함으로써 친일파 처벌을 위한 헌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이에 따라 8월 5일에는 국회에서 반민족행위처벌법(반민법) 기초특별위원회가 구성됐다. 일본제국주의에 빌붙어 서민대중을 착취한 수구세력을 응징할 수 있는 법적 토대가 구축될 움직임이 시작된 것이다. 

이때만 해도 수구세력은 사태를 관망했다. 그 누구도 함부로 반대할 수 없는 친일청산이란 대명제 앞에서, 일단은 몸을 움츠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오래가지 않았다.

8월 17일, 국회 본회의에 반민족행위처벌법안이 상정됐다. 20일에는 김인식 의원이 정부 내 친일파를 숙청하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1948년판 적폐청산이 구체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자 고영주 이사장처럼 당시의 수구세력도 입을 떼기 시작했다. 

국민 대다수가 친일청산을 찬성했지만, 수구세력은 반대했고 대통령 이승만은 사실상 반대했다. 수구세력 입장에서는, 대통령이 사실상 같은 편이라 하여 마음 놓고 있을 수 없었다. 국민적 열기 속에 친일청산이 추진되면, 대통령도 그 기운에 눌릴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예방하자면 이쯤에서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는 게 수구세력의 판단이었다. 

이때 수구세력이 사용한 전략 중 하나는, 친일청산을 공산주의로 매도하는 목소리를 확산시키는 것이었다. 이들은 국회의원 숙소를 포함한 시내 곳곳에 '행동대원 일동' 명의의 8월 23일자 삐라를 대량 살포됐다. 1948년 8월 27일자 <경향신문>에 따르면, 삐라 속에는 "반민족자를 처단한다는 자는 공산당 주구다"란 문구가 들어 있었다.

8월 27일에는 국회 방청석에서까지 삐라가 살포됐다. 이신태·차양보 두 사람이 뿌린 삐라에는 "국회에서 친일파를 엄단하라고 주장하는 자들은 빨갱이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하지만 반민법 제정은 예정대로 진행됐다. 9월 7일, 이 법은 국회를 통과했다. 그러자 친일청산 반대운동의 전면에 나선 인물이 있다. 고영주 이사장처럼 언론기관에 종사하는 인물이었다. <대한일보> 사장 이종형이었다. 이종형은 <대한일보>을 통해 반민법에 대한 비판을 확산시켰다. 반민법을 만든 국회는 공산당의 주구이며 매국노라는 선전을 퍼트렸다.

 이종형.
 이종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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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형은 반공 국민대회라는 명목으로 반민법 반대집회도 열었다. 9월 23일 서울운동장에서 열린 이 행사 시작 전에, 이종형의 추종자들은 서울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오늘 서울운동장에 나오지 않으면 빨갱이요 좌익이며 공산당이다"라며 시민들을 협박했다.

이종형 추종자들은 대회 현장에서 삐라를 대량 살포했다. 삐라에는 '친일 청산은 공산당 프락치의 소행이므로 국회 내의 김일성 앞잡이를 숙청해야 한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들이 채택한 대회 결의문에도, 반민법 지지자들을 공산매국노 혹은 공산매국분자로 매도하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세상을 애국과 매국으로 이분하고 상대편은 매국으로 몰아세우는 고 이사장의 논리가 이때도 힘을 발휘했던 것이다. 

이렇게 언론사 사장 이종형을 포함한 수구세력이 반민법 제정을 공산당 소행으로 몰아붙이는 속에서, 수구세력은 수세적 자세에서 벗어나 친일 청산 반대를 위해 뭉칠 수 있었다. 이종형 등이 유포한 억지 논리가 수구세력을 결집시키는 기능을 한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대통령 이승만은 친일 청산을 저지하고 폭력적 방법으로 반민특위를 제압했다. 경찰 병력이 반민특위를 습격하는 일까지 있었다. 전 민족의 열렬한 지지 속에 추진된 친일청산은 그렇게 무산됐다. 이치에 안 맞고 억지 같은 이종형 류의 발언이 그 시절의 적폐청산을 무산시킨 것이다.

고영주 이사장의 발언을 그냥 흘러 넘길 수 없는 이유가 그것이다. 그런 발언들이 쌓이다 보면 수구세력이 자극을 받고, 그러다 보면 그들이 결집을 시도하게 된다. 그래서 고영주의 발언은 위험하고 위협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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