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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혼 차별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은 지 1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지만, 비혼에 대한 제도적 차별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너 나이 마흔까지 싱글이면 나랑 결혼하자." 대학생 시절 나와 친한 사이였던 누나는 나에게 이런 말을 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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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나이 마흔까지 싱글이면 나랑 결혼하자."

대학생 시절 나와 친한 사이였던 누나는 나에게 이런 말을 하곤 했다. 물론 농담이었다. 게이인 나와 이성애자인 누나가 어떻게 부부가 되겠는가. 단지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1인 가구 생활을 하는 적적함에 나온 이야기였다. 하지만 약속된 때(?)가 10년 남짓 남은 지금, 그 농담은 현실적인 고민이 되었다. 긴 시간의 홀로 살기는 우리에게 무한한 자유라는 큰 선물을 주었지만 그만한 불편함을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가사를 분담할 사람이 없으니 두 사람이면 일찌감치 끝낼 일을 온종일 붙들고 있기도 했고, 등기 우편물이라도 오는 날에는 집에 아무도 없냐는 배달원의 볼멘소리를 듣기도 했다. 가장 난처한 때는 아플 때와 다쳤을 때. 가벼운 병이야 혼자 이겨내면 그만이지만 조력이 없으면 병원도 갈 수 없을 정도로 앓을 때는 아찔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욕실에서 미끄러져 크게 넘어졌다. 엉금엉금 기어 이불 속으로 들어간 나는 오래전에 사두어 효과는 있는지 의심스러운 파스를 허리에 붙이곤 끙끙 앓았다. 그리고 며칠 뒤, 나는 누나와 술을 마시다 그때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이렇게 허무하게 혼자 죽는 건 아닌지 무서웠다고 펑펑 울었다. 그러자 누나 역시도 문이 고장나 갇힐까 무서워 늘 화장실에 갈 때는 휴대폰을 들고 간다고 말했다.

결국 우리는 농담처럼 이야기하던 동거 계획을 다시 꺼냈다. 분명 장점이 있긴 했다. 자잘한 생활의 불편은 물론이고 응급 상황 또한 해결이 가능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도 있었다. 만약 둘 중 한 사람이 급하게 큰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하지만 우리는 같이 살고 서로를 돌본다고 해도 법적인 보호자가 아니기에 수술 동의서에 서명할 수 없다.

 TBS 일본 드라마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TBS 일본 드라마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드라마의 남녀 주인공은 지극히 경제적이고 현실적인 이유로 위장결혼을 감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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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사각 지대에 선 가구들

수술뿐일까. 우리는 함께 살아도 법적으로 인정된 가족들이 받는 제도적 지원은 하나도 받을 수 없다. 둘이 살 집을 구하는 것도 문제다. 아마 우리는 공공 임대 주택 신청을 해도 결혼한 사람들에게 밀려 후순위가 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렇다고 정말 누나와 이름뿐인 혼인 신고를 하자니 그것도 내키지 않았다.

당장 사람들에게 우리의 관계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결혼은 했지만 부부는 아니다? 이게 무슨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와 같은 소리일까. 누나는 그랬다간 둘 다 평생 연애는 못 한다며 손사래를 쳤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성애자 여성과 결혼한 동성애자 남성이라니, 이 무슨 코미디 같은 상황인가.

최근 동성 결혼의 인정이 세계적인 추세로 부상하면서 한국에서도 관련 논의들이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 사람들은 동성 결혼을 가족 관계의 최후의 사각 지대를 사라지게 할 제도처럼 여기곤 한다. 하지만 완벽하게 그런 것은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혼인을 계기로 생활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마음이 맞는 친구와 함께 사는 사람들도 있고 하우스 메이트로 만났지만 식구처럼 가까워진 이들도 있다. 애정이 아니다뿐이지 이들도 깊은 신뢰를 기반으로 관계를 형성했으며 생활을 공유하고 서로를 돌본다. 말하자면 사실상 가족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하지만 '동거'를 제외하곤 이 관계를 설명할 언어가 없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든 법률적·제도적 보호틀도 존재하지 않는다.

 청와대 '국민청원' 페이지에 올라간 '생활동반자 등록법 '청원. 11월 1일 기준 약 2만 8천 명이 서명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페이지에 올라간 '생활동반자 등록법 '청원. 11월 1일 기준 약 2만 8천 명이 서명했다.
ⓒ 국민청원 홈페이지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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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동반자법'이란 무엇인가

이런 상황에서 최근 청와대 홈페이지에 흥미로운 청원이 등록되었다. 바로 동반자 등록법을 촉구한다는 청원이다. 지난 10월 20일에 등록된 이 청원에는 11월 1일 기준 2만 8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서명했다. 아마 많은 사람들에게 동반자 등록법은 낯선 단어겠지만 이 법률의 입법 시도는 이전부터 있었다.

2014년 더불어민주당의 진선미 의원은 '생활동반자 관계에 관한 법률안(약칭 생활동반자법)'을 발의했다. 법안의 주요 내용은 혈연과 혼인 관계로 구성되지 않은 동거 가구 역시도 법률적 가족과 마찬가지의 제도적 보호를 받도록 하는 것이다. 권리뿐만 아니라 부양의 의무도 부여되며 가사로 인해 발생한 채무의 연대 책임도 발생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한 마디로 생활동반자들의 안정적인 사회적 존립 기반을 형성하는 법인 것이다.

이 같은 시민 결합 제도는 한국에서 이제야 입법 시도가 등장했지만 외국을 살펴보면 많은 선례가 있다. 그리스, 헝가리, 영국과 같이 아예 국가적 시스템으로 형성된 나라도 있고 미국과 일본처럼 지역에 따라 부분적으로 생활동반자 관계를 인정한 국가들도 존재한다.

아마 가장 유명한 사례는 프랑스의 시민연대계약(PACS)일 것이다. 프랑스는 이 법안을 1999년에 통과시켰고 현재까지 많은 사람들이 이 제도를 이용 중이다. 하지만 입법의 과정이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시민연대계약이 동성애를 인정하고 정당화한다는 보수 우파의 반대가 있었으며 동거 문화의 확산으로 전통적인 결혼이 쇠퇴할 것이라는 반발도 있었다.

 전체 가구의 1/4이 비혼 1인 가구인 현실이다. 이들의 삶이 법적으로 배제된다면 우리는 결혼이라는 단 하나의 선택지만을 강요받을 수밖에 없다. 다양한 가족구성권이 인정받는 사회가 비혼뿐 아니라 모두에게 좋지 않을까?
 다양한 가족의 평등한 권리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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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가족의 평등한 권리를 위하여

한국의 상황도 비슷하다. 바른성문화를위한국민연합 같은 보수 단체들은 프랑스의 경우와 같은 이유로 생활동반자법의 입법을 반대하고 있다. 이 법안이 동성혼 허용의 전 단계라는 주장은 일고의 대응할 가치도 없으나(동반자법과는 별개로 동성 결혼은 당연히 인정되어야 한다) 전통적인 가족이 파괴된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할 말이 있다. 설령 그렇게 된다고 해도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가족의 형태는 많은 변화를 거쳐왔다. 한국만 따져도 여러 세대가 함께 사는 대가족에서 한 세대가 함께하는 핵가족으로, 그리고 홀로 사는 1인 가구로의 변화가 급격하게 이루어져 왔다. 그리고 문제는 새로운 형태의 생활 공동체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이들에 대한 제도적 준비를 충분히 하지 않은 국가 탓에 발생해왔다.

말하자면 생활동반자법 때문에 가족의 형태가 변화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제도의 도입에 반대하는 것은 이미 탄생한 새로운 형태의 가구들을 방치하자는 주장이나 다름없다. 즉 혈연과 혼인으로 이루어진 가족을 제외한 생활 공동체를 차별하고 배제하는 입장인 것이다. 얻어지는 것도 없고 여러 사람만 괴로울 뿐이다.

낸시 폴브레의 책 <보이지 않는 가슴>에 따르면 돌봄은 사실상 완벽한 외주화가 불가능한 분야다. 죽을 때까지 1인 가구로 사는 것도 가능하지만 누군가와 함께 살며 서로의 보살핌에 의존해야 하는 사람도 분명 등장한다. 이런 관계를 오직 혼인으로만 한정하고 다른 형태의 가족들의 형성과 유지를 어렵게 만드는 것은 어쩌면 크나큰 사회적 손실이 아닐까.

물론 돌봄을 온전히 개인의 책임으로 넘기자고 주장하고 싶은 건 아니다. 보살핌 노동에 탄탄한 복지 시스템으로도 채울 수 없는 영역이 있다면, 이 부분을 다양한 생활 공동체 내에서 해소가 가능하도록 제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그리고 이런 식의 가족 내 돌봄은 지금처럼 일방적인 성 역할이 아니라 상호적이고 평등한 것이 되어야만 한다). 아니면 하다못해 권리의 불평등과 법적 배제라는 문제라도 해결해야 한다.

결혼은 부담스럽지만 혼자서 살고 싶지는 않은 사람이 어디 나뿐이랴. 생활동반자법의 빠른 통과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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