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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16일 법정에서 "법치의 이름을 빌린 정치 보복은 저에게서 마침표가 찍어졌으면 한다"며 작심 발언을 했다. 재판 6개월 만의 첫 발언이었다. 구속기한 연장 결정에 맞서, 지지세력을 겨냥해 도움을 호소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발언이 나오자 유영하 변호사를 비롯한 변호인단 전원이 재판부에 사임계를 제출했다. 

한편, 국제 변호를 맡은 법률회사 MH 그룹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구치소 인권침해를 주장하는 문건을 CNN에 제출했다. CNN은 미국 시각으로 17일 이 문건을 보도했다. MH 그룹은 유엔 인권위원회 차원에서도 이를 쟁점화시킬 계획을 갖고 있다. 

국내외에서 이런 움직임이 있자, 지지세력으로부터 반응이 나왔다. 토요일인 21일 서울 종로구 마로니에공원에서 친박 단체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박근혜 대통령 석방하라", "인권유린 중단하라" 등을 외쳤다. "자유한국당 자폭하라!"란 구호도 있었다.

이런 움직임에서 드러난 박근혜 쪽의 접근법은, 박근혜를 가둔 대한민국 공권력한테는 적대적 태도를 보이고, 지지를 보내주는 친박세력한테는 적극적 어필을 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 같은 접근법은, 유사한 상황에서 정치적 부활에 성공한 이들의 사례에서는 쉽게 발견되지 않는 방식이다. 성공 사례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는 접근법을 박근혜 쪽이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성공 사례'의 주인공들은 박근혜 같은 수준의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았다. 이들은 거의 순전히 정치범이었다. 그렇지만 박근혜와 유사한 처지에 놓인 적이 있다. 그래서 박근혜를 이들과 비교하는 것이지, 박근혜가 이들과 동급 인물이라서 비교하는 것은 아니다.

 친박 집회. 사진은 2016년 12월 31일 서울 광화문광장 남쪽에서 찍은 사진.
 친박 집회. 사진은 2016년 12월 31일 서울 광화문광장 남쪽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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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은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을 존경했다. 프랑스 식민지인 코르시카섬 청년으로 식민 본국인 프랑스의 군인이 된 뒤 황제에 올랐다는 점 때문에 좋아했을 수도 있다. 식민지 조선의 청년으로서 일본 군인이 되고자 했던 박정희 입장에서는 나폴레옹이 롤모델이었을 수도 있다.

프랑스 혁명을 위해 군공을 세우다가 쿠데타에 성공한 나폴레옹은 1799년 제1통령이 되고 1804년 황제가 됐다. 하지만 혁명 이념의 전파를 꺼려한 영국·러시아·프로이센·오스트리아의 연합 공격을 막지 못해 1814년 4월 황제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런 다음, 이탈리아 서해안의 북부에 있는 엘바섬에서 그 유명한 유배 생활을 시작했다. 형식상은 엘바섬 영주로 임명됐지만, 실제로는 죄수 신분으로 갇힌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는 1년도 채 안 된 1815년 2월 엘바섬을 탈출해 파리로 진격한 뒤 다음 달 권좌에 복귀했다. 루이 18세의 프랑스 왕실뿐 아니라 유럽 전체가 감시하는 가운데, 그 같은 기적을 연출했다. 복귀 3개월 뒤인 1815년 6월 워털루 전투에서 패해 대서양의 세인트 헬레나섬으로 유배되기는 했지만, 11개월 만에 황제에 복귀한 일은 대단한 정치적 부활이었다. 

그가 엘바섬을 탈출할 수 있었던 것은 지지세력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요인도 크게 작용했다. 프랑스 왕들의 전기를 전문적으로 써서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은 조르주 보르도노브란 역사가가 있다. 그가 지은 책이 <나폴레옹 평전>이다. 이 책에는 나폴레옹이 엘바섬을 탈출한 노하우가 자세히 소개돼 있다. 이에 따르면, 나폴레옹은 엘바섬에 갇힌 동안 정치적 장래를 포기한 사람처럼 행동했다.

"전 황제 나폴레옹은 길을 닦고 광산과 염전과 어업 개발에 힘썼다. 있는 거라곤 그게 전부여서 다른 재주는 발휘할 수 없었다."

나폴레옹이 유배된 섬에서 사회간접자본 건설과 산업 개발에 힘썼으니, 그가 탈출을 계획하고 있으리라고는 누구도 쉽게 생각하기 힘들었다. 그는 섬이 아닌 감옥에 갇혔더라도 유사한 행동을 했을 것이다. 감옥을 떠날 마음이 없는 것처럼 행동했을 것이다.

좁은 감방이 아닌 넓은 섬이 주어졌다면 나도 얼마든지 나폴레옹처럼 행동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만, 감옥에서 못 버티는 사람은 섬에서도 버티기 힘들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폴레옹처럼 행동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폴레옹은 또 다른 방법으로도 자신의 야망 없음을 증명했다.  

"때때로 무도회도 열어서 거창한 칭호로 치장한 지역 인사들을 모두 초대했다. 주거지를 손질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이뿐 아니었다. 심지어는 벽에다가 '나폴레옹은 어디서나 행복하다'란 구호도 썼다. 어디든 다 사람 사는 곳이구나, 이런 삶도 해보니 재미있구나, 하는 느낌을 갖고 있음을 그런 식으로 풍긴 것이다. 이런 행동으로 인해 감시자인 영국군 캠벨 대령마저도 감쪽같이 속았다. <나폴레옹 평전>에 따르면, 캠벨 대령이 남긴 글에 이런 대목이 있다.

"나폴레옹은 ······ 섬 안에 거주지를 네 군데나 두고 그곳을 개조하거나 바꾸는 일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그의 변덕과 우유부단함 때문에 새로운 것의 매력이 사라지고 나면 금방 시들해진다. 그러면 전에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무기력한 상태에 빠진다. 벌써 며칠째 그는 방에 처박혀서 책을 읽고 있는데, 하루에도 몇 시간씩 그렇게 보낸다."

캠벨의 눈에 나폴레옹은, 무료함을 달랠 목적으로 새로운 즐거움을 찾고자 끊임없이 무언가를 추구하는 사람으로 보였다. 감시자의 눈에 그렇게 보일 정도로 철저히 위장했던 것이다. 1815년 2월 26일 나폴레옹이 엘바섬을 탈출할 수 있도록 만든 일등공신은 바로 캠벨이었다. 방심한 캠벨이 엘바섬을 비운 틈을 타서 나폴레옹이 섬을 탈출했던 것이다.

엘바섬에서 보여준 나폴레옹의 행동은 지지자들이 보기에는 실망할 만했다. 속내를 알 리 없는 지지자들로서는 나폴레옹이 재기를 포기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폴레옹은 유배 기간 동안만큼은 지지자들에 대한 어필을 포기했다.

물론 지지세력이 없으면 재기에 성공할 수 없지만, 섬을 탈출하려면 일단은 정적들을 안심시켜야 했다. 친(親)나폴레옹 세력이 프랑스 왕실 및 영국·러시아 등과 맞서 싸워 나폴레옹을 구출하기는 힘들었다. 그래서 섬에서 나가려면, 일단은 자신을 가둔 공권력들을 안심시켜야 했다. 나폴레옹은 이 방법을 선택함으로써 11개월 만에 황제 자리에 복귀할 수 있었다. 

 황제 재위 당시의 나폴레옹.
 황제 재위 당시의 나폴레옹.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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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뿐 아니라 동서고금의 수많은 인물들이 이런 방법을 썼다. 와신상담 고사로도 유명한 월나라왕 구천(재위 기원전 496~456년)도 그랬다.

문학적 과장법이 많아서 100% 믿을 수는 없지만, 중국 춘추시대 오나라·월나라의 역사서인 <오월춘추>에 따르면, 오나라왕 부차에게 패해 나라가 없어질 위기에 처한 월왕 구천은 한동안은 부차의 충실한 신하로 살았다. 오나라 왕궁에 갇힌 구천은 허름한 옷을 입고 부차의 마부 역할을 했다. 심지어는 병든 부차의 대소변까지 맛을 봤다. 부차의 환심을 사서 하루라도 빨리 본국으로 돌아갈 목적으로 그랬다.

월나라로 돌아가서는 쓸개즙을 빠는 상담(嘗膽)을 하며 복수심을 불태웠지만, 오나라에서 인질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철저한 위장으로 속내를 감추었다. 그 역시 인질생활 기간 동안, 지지세력보다는 정적한테 어필하는 방법을 택했던 것이다. 그 덕에 정치적 부활을 이룰 수 있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나폴레옹이나 구천과 정반대 길을 가고 있다. 자신을 가둔 대한민국 공권력을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상황에서 대한민국 정부 및 법원을 대놓고 비판하는 것도 모자라 국제적인 망신까지 주려 하고 있다. 동시에, 지지세력을 자극해 친박 집회까지 열리도록 만들었다.

박근혜와 친박세력의 성공 여부는 일차적으로 지도자 박근혜한테 달려 있다. 박근혜가 어떤 판단을 하고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정치적 부활의 일차적 열쇠다. 그런데 박근혜는 역사 속의 성공 사례들과 비교할 때 좀 색다른 길을 걷고 있다. 성공 가능성이 낮은 길을 골라 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친박세력의 앞날 역시 그리 밝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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