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우리 사회의 진보와 적폐청산에 맞선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의 행보가 주목을 끌고 있다. 지난 11일에는 적폐청산을 막고자 정치보복대책 특별위원회란 당내 기구도 결성했다. 이번 국회 국정감사에 임하는 목표 중 하나도 '적폐청산 저지'다. 이와 더불어 적폐청산을 막고자 현실과 이치에 안 맞는 어이없는 말들을 계속 쏟아내고 있다.

그는 적폐청산에 맞불을 놓을 목적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공격까지 예고하고 있다. '노무현의 자살은 이명박 때문이 아니라 부부싸움 때문'이란 글을 써서 논란을 일으킨 정진석 의원을 두고, 지난 9월 25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정진석 의원 발언을 민주당이 침소봉대해서 문제를 키우는 것은 결국 노 전 대통령의 640만 달러 뇌물 사건의 재수사나 범죄수익 환수 문제에 귀착될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한다"고 말했다.

또 29일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 때는, 문재인 대통령의 전작권(전시작전통제권) 조기 환수 발언을 두고 "코미디 같은 발상"이라며 "세계에서 자기 스스로 나라를 지킬 수 있는 나라는 중국·러시아·미국뿐"이라고 단정했다. 이 말을 따를 것 같으며,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영국·프랑스도 전작권을 미국에 넘겨야 한다. 한국군 스스로 전작권을 행사하는 것에 대한 거부 심리를 그런 식으로 합리화하고 있는 것이다. 

대선 기간이었던 5월 5일 홍준표 후보의 아들인 홍정석씨는 위키트리와의 인터뷰에서 "청년 여러분들, 돈 없고 백 없고 힘든 것 저희 아버지가 제일 잘 알고 있다"면서 "아버지가 대통령이 되시면 돈 없고 백 없는 사람들이 당당하게 대접받을 수 있는 사회, 적폐청산 없는 사회 만드실 것"이라고 말했다.

적폐청산 없이도 서민 중심 사회를 만든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지만, 홍준표의 아들은 자기 아버지가 그런 일을 해낼 수 있다고 공언했다. 어쩌면 말실수일 수도 있다. 하지만, 홍준표는 아들이 내뱉은 '대선 공약'을 잘 지키고 있다. 대통령은 되지 않았지만, 적폐청산 없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공약만큼은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 그런 열정 때문인지 현실과 이치에 맞지 않는 막말을 마구 내뱉고 있다.

홍준표의 어이없는 주장들을 듣다 보면 '저런 주장으로 어떻게 세상을 설득하려 하는 걸까?'하는 의문이 든다. 이 판국에 누가 저런 말을 들어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든 과거든 이치에 맞는 말을 하는 사람이 승리한 사례는 별로 많지 않다. 그런 사람이 승리하면 역사서에 혁명이나 개혁으로 기록된다. 혁명이나 개혁이 성공한 경우를 제외한 대부분의 시기에는, 이치에 안 맞는 말을 하는 쪽이 거의 다 승리했다. 수구세력이 가진 힘과 돈이 그것을 가능케 했다. 

그러므로 홍준표가 어이없는 말들을 내뱉는다고 그를 없이 여겨서는 안 된다. 그에게는 충분히 승산이 있는 일이다. 그런 그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줄 만한 역사적 사례가 중국 송나라에 있었다.

송나라는 고려 전기에 있었던 나라다. 북송(960~1127년)과 남송(1127~1279년)으로 나뉜다. 여진족 금나라에 밀려 남중국으로 쫓겨난 뒤의 송나라는 남송으로 불린다. 그 이전의 송나라는 북송으로 불린다.

북송에 '유사 홍준표'가 있었다. 송나라판 홍준표라 할 수 있는 이 인물은 상당한 거물급이었다. 송나라 차원에서만 거물급이 아니라 중국 역사 차원의 거물급이었다. 그런 인물이 홍준표처럼 적폐청산을 막으려고 어이없는 주장들을 내놓았다.

중국 역사상의 거물이라면서 어떻게 홍준표와 비교할 수 있느냐고 짜증을 낼지도 모른다. 물론 지금까지는 홍준표가 그 인물의 근처에도 못 간다. 하지만 그 인물은 이미 죽었고 홍준표는 아직 살아 있다. 홍준표가 촛불혁명 이후의 혁신 흐름을 뒤엎고 역사를 퇴행시킨다면, 그도 그 인물만큼의 위상을 가질 수 있다. 그러므로 홍준표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송나라판 홍준표라 할 만한 그 인물은 사마광(1019~1086년)이다. 모택동(마오쩌둥)이 대장정 기간에도 휴대하고 다니며 총 17번이나 읽었다는 <자치통감>의 저자로도 유명하다. 기원전 403년부터 서기 960년까지를 다룬 이 책은 북송 이전의 중국사를 망라하는 역사서다. 이 책의 한글 번역서는 31권으로 된 시리즈다. 그만큼 방대한 역사서다.

장개석(장제스)의 국민당 군대에 쫓겨 중국 동남부에서 서북부로 이동하는 1만5천 킬로미터의 대장정 중에도 그 방대한 <자치통감>을 열심히 탐독한 모택동도 대단하지만, 그런 방대한 시리즈를 남길 정도의 높은 지성을 가진 인물이 홍준표와 유사한 언행을 보였다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북송 시대 신종의 개혁은 왜 실패했나

 사마광 상상화. 대만(타이완)의 국립고궁박물원에 전시된 그림.
 사마광 상상화. 대만(타이완)의 국립고궁박물원에 전시된 그림.
ⓒ 위키백과

관련사진보기


사마광을 '유사 홍준표'로 만든 장본인은 일차적으로 북송 제6대 황제인 신종(재위 1067~1084년)이다. 스무 살에 등극한 이 젊은 황제는 개혁적 열정으로 가득했다. 그래서 자기 시대의 적폐를 청산하고자 신법(新法)이라 불리는 유명한 개혁을 추진했다.

신법 개혁에는 면역법·보갑법·청묘법·균수법·보마법·삼사법·시역법·농전수리법·방전균세법 등의 세부 개혁 목표가 있었다. 이 중 일부는 잠시 뒤 설명된다. 이 개혁은 국가재정을 확충하고 농민·소상인을 육성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구법당(舊法黨)이라 불리는 수구세력을 분노하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

사마광을 '유사 홍준표'로 만든 이차적 장본인은 왕안석(1021~1086년)이다. 신종이 개혁을 위해 전격 발탁한 지방관 출신이다. 신종은 왕안석을 중앙으로 발탁하여 참지정사로 임명하고 국정개혁 전반을 맡겼다. 이때가 1069년이다. 이로써 신종·왕안석 개혁 정권이 세워지고 이 정권이 적폐청산을 수행하게 되었다.

왕안석은 지방관 출신일 뿐 아니라 비주류인 남방 출신이기도 했다. 그리고 서민 경제를 항상 염려했다. 그래서 사마광을 비롯한 수구세력의 눈에 거슬렸다. 그 전까지만 해도 원로 정치인들의 보수 성향을 비판해서 '양심적 보수'에 속했던 사마광은 왕안석의 등장을 보고 심기가 뒤틀렸다. 그래서 확실한 보수로 돌아섰다.

개혁정권에 몸담을 수 없었던 사마광은 1071년 사표를 던지고 낙향했다. '청와대' 쪽은 두 번 다시 안 돌아보겠다는 심정으로 등을 돌린 것이다. 그런 다음에 열심히 집필한 게 바로 <자치통감>이다.

수구파 거물 사마광이 스스로 낙향했지만, 왕안석 역시 사정이 좋지는 않았다. 개혁이 시작하자마자 구법당의 인신공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여회라는 인물은 "왕안석은 천자에게 강론할 때 앉아서 강의한다"고 헐뜯었다. 신하일지라도 군주를 가르칠 때는 당연히 앉아서 했다. 그런데도 그런 걸로 왕안석을 헐뜯은 것이다.

당시 거리에 나붙은 <변간론>이란 괴문서에는 "왕안석이 소탈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은 바로 그가 위선자라는 증거다"라는 억지 주장도 들어 있었다. 이런 데 시달리던 왕안석은 총 7번이나 사표를 썼다가 1075년에 완전 낙향하고 말았다. 개혁은 자연히 지지부진하게 됐다.

10년 뒤인 1085년 신종이 죽고, 나이 어린 철종이 등극했다. 어린 철종이 등극하자 신종의 어머니 선인태후가 섭정이 됐다. 태후는 보수파와 손잡고 사마광을 복귀시켰다. 이때부터 사마광의 '아무 말' 행진이 시작됐다. 시들해 가는 신법 개혁을 확실히 짓밟을 목적이었다.

 조선에서 간행된 <자치통감> 해설서. 서울시 동대문구 청량리동의 세종대왕기념관에서 찍은 사진.
 조선에서 간행된 <자치통감> 해설서. 서울시 동대문구 청량리동의 세종대왕기념관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관련사진보기


사마광의 '아무말 대잔치'

어느 시대건 간에 수구세력은 진보세력보다 학력이 높고 교양이 많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무식한 말을 하지 않는다. 힘이 충분할 때는 그렇게 한다. 그럴 때는 어이없는 말로 하기보다는 공권력과 법률을 앞세워 진보세력을 쓸어버리려 한다.

그런데 신종시대와 그 직후에는 수구세력한테 그런 힘이 없었다. 그래서 스스로 체면을 깎으면서까지 어이없는 주장들을 내놓게 된 것이다. 고명한 지성인인 사마광도 그랬다. 송나라 역사서인 <송사>의 식화지(경제 파트)에 따르면, 사마광은 왕안석의 개혁을 조목조목 비판하면서 황당한 논리나 주장을 내세웠다.

신법개혁 중에 면역법이 있었다. 과중한 요역(노동력 무상제공) 부담을 덜어주고자 금전을 납부하면 요역을 면제해주는 제도다. 농민 입장에서는 1년에 최소 1개월 요역을 하느니 차라리 금전을 지불하고 면제받는 게 더 나았다. 그런데도 사마광은 면역법을 두고 "가난한 백성들을 각박하게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면역법이 백성들의 호주머니 사정을 어렵게 했다고 비판한 것이다.

신법개혁 중에 보갑법이란 것도 있었다. 농민들을 조직해서 치안 기구를 만드는 제도였다. 군사비 절감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군사비 충당을 위해 농민들한테 세금을 더 거둘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결국엔 농민들을 위한 제도였다. 그런데도 사마광은 "보갑법은 농업이 아닌 다른 일에 힘을 쏟도록 만든다"고 비판했다. 바쁜 농민들한테 엉뚱한 일을 시키는 불필요한 제도라고 비판한 것이다.

더 황당한 것은 청묘법에 대한 억지 비판이다. 청묘법은 봄이나 가을에 저리로 쌀을 빌려준 다음 가을이나 이듬해 봄에 되돌려 받는 제도다. 정부에 비축된 쌀을 빌려주는 것이므로, 정부가 내주는 쌀은 당연히 묵은 쌀일 수밖에 없었다. 농민이 수확을 마친 뒤에 쌀을 갚게 되므로 정부가 받는 쌀은 당연히 새 쌀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사마광은 이렇게 말했다.

"청묘법은 강제로 빌려주고 무겁게 거두는 제도로서, 묵은 쌀을 빌려주고 햅쌀을 받는 제도다."

이렇게 현실과 이치에 맞지 않는 주장을 내세우며 왕안석의 개혁을 뿌리채 뽑으려 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런 어이없는 주장이 결국 정치를 움직였다는 점이다.

사마광의 주장은 이치에 맞지 않기 때문에, 진보적이거나 중도적인 사람한테는 황당한 소리로 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런 황당한 소리가 개혁에 불안을 느끼는 기득권층을 자극하고 분발케 하는 역할을 했다.

수많은 사람들을 동시에 흥분시키는 것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주장이 아니라 선동적이고 감정적인 주장인 경우가 많다. 사마광의 주장은 기득권층을 상대로 그런 역할을 했다. 그들을 결속시키는 역할을 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송나라판 홍준표'의 주장은 설득력 있는 것이었다.

기득권층은 돈만 많은 게 아니라 수하에 농민들도 많았다. 먹고 살자면 지주의 말을 들어야 하는 농민들이, 자신들의 생계를 직접 책임질 수 없는 개혁세력의 논리에 귀를 기울이기는 힘들었다. 결국 세상은 사마광의 주장대로 움직였고 왕안석의 개혁은 더욱 더 철저히 짓밟혔다.

홍준표 대표의 적폐청산 주장도 사마광의 주장만큼이나 황당하고 억지스럽다. 하지만, 그의 언행을 과소평가할 수는 없다. 중도나 진보적 입장에 선 사람들한테는 우스운 소리로 들릴 수 있지만, 돈과 부동산을 가진 기득권층에게는 위험을 알리는 신호로 들릴 수도 있다. 그리고 그들을 자극하고 분발시키는 효과를 발휘할 수도 있다. 그래서 홍준표의 주장도 설득력 있는 것일 수 있다.


댓글6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000 응원글보기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