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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책 한 권입니다. 글씨가 찍힌 종이를 묶은 꾸러미로 보이던 게 책인 줄 알아차리고, 이 책을 찬찬히 넘기다가 어느새 푹 빠져듭니다. '읽다'가 무엇인지 깨달으면서 삶읽기가 책읽기로 뻗고, 어느새 사람읽기와 마음읽기로 이어집니다.

아름다운 책을 하나 만났기에, 다른 아름다운 책이 더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한 권 곁에 두 권이 놓입니다. 아름다운 책 둘레에 즐거운 책이 놓입니다. 즐거운 책 언저리에 사랑스러운 책이 놓입니다. 사랑스러운 책 가까이 멋스러운 책이 놓입니다.

 겉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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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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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기자가 내게 "만약 스스로 묘비명을 쓴다면 뭐라고 쓰겠습니까?"라고 물은 적이 있다. 내 대답은 이랬다. "그는 늘 자신이 즐거운 고양이이기를 바랐다." 이 바람은 지금도 여전하다. 오후의 햇살이 비스듬히 비치는 서재에서 게으른 고양이가 책과 디브이디 사이를 거닐다 앉았다 하며 동서고금의 신기하고 이상한 일들을 생각하는 모습을. (17쪽)

장샤오위안이라는 분이 쓴 <고양이의 서재>(유유 펴냄)를 읽습니다. 책에는 딱히 고양이 이야기가 나오지 않습니다. 책 첫머리에 '빗돌에 적히고 싶은 글'로 고양이 이야기가 짧게 나올 뿐입니다.

그런데 책을 첫 줄부터 끝 줄까지 다 읽고 보니 다른 생각이 들어요. 어느 모로 본다면 고양이가 낮잠을 자고 먹이를 찾고 마실을 다니듯이 책 사이에서 홀가분하면서 호젓하게 삶을 누리고 싶다는 뜻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양이 서재"란 고양이 같은 모습이나 몸짓으로 삶을 일구었다는 뜻일 수 있어요. 책을 읽고 사랑하며 가까이한 삶은 마치 고양이가 느긋하면서 한갓지게 볕바라기를 하거나 낮잠을 자는 듯한 모습이나 몸짓이었다고 할 만해요.

역사 사건의 발생은 시간과 공간을 포함한다. 그러나 오랫동안 우리는 역사를 죽도록 암기하는 과목으로 알고 지내며 그저 시간이라는 한 축에만 주의를 기울여 왔다. (68쪽)

나는 다른 사람에게 책을 빌려주지 않는 편이다. 돌려받지 못할까 걱정하는 탓이다. 책에 대한 나의 애정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책을 빌려 가고도 신경 쓰지 않고 아무렇게나 굴리다가 책을 잃어버리면 없어졌나 하고 만다. (85쪽)

사람은 책만으로 배우지 않습니다. 사람은 삶에서 배운 이야기를 책에 담습니다. 사람은 책만 쓰거나 읽지 못합니다. 사람은 삶을 짓는 즐거움이나 기쁨이 있어서 책을 쓰거나 읽습니다.

삶을 깊이 바라보면서 책을 깊이 읽습니다. 사람을 넓게 마주하면서 책을 넓게 읽습니다. 삶을 두루 헤아리면서 책을 두루 헤아립니다. 사람을 사랑스레 얼싸안으면서 책을 사랑스레 얼싸안습니다.

<고양이의 서재>를 쓴 분은 스스로 수많은 책을 읽으며 배우는데, 책으로뿐 아니라 다른 숱한 삶자리에서도 고루 배웁니다. 그리고 이렇게 배운 이야기를 언제나 스스로 글로 옮겨 새로운 책 한 권으로 내놓습니다.

왜 좀더 참신하고 새로운 건 없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다들 어두운 미래를 그리면 왜 밝은 미래를 그리는 사람은 없나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반성이라는 관점에서 이 점을 이해하게 되었다. 밝은 미래로는 반성을 이야기하기 힘들다. (164쪽)

자기 책을 사랑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어려운 일은 자기 책이든 아니든 세상의 좋은 책을 모두 사랑하는 일이다. (188쪽)

최남선은 <삼국사기>를 정리한 사람이기도 하다. 해제는 한국어로 쓰였지만 대단히 '학술적'인 글이라 글에 한자가 많았다. 이런 분야에서 일본과 한국은 꽤 닮아서, '학술적'인 글일수록 한자가 많다. (206쪽)

앞으로 한 걸음을 내딛으면서 책을 한 권 읽습니다. 앞으로 두 걸음을 내딛으면서 책을 두 권 읽습니다. 찬찬히 내딛는 걸음마다 책을 한 권씩 곁에 둡니다. 그리고 새롭게 배우는 만큼 새로운 이야기를 손수 써서 아이나 이웃한테 남깁니다. 우리 스스로 길어올린 아름다운 삶과 살림이 글이나 그림이나 사진이라는 모습으로 책에 적힙니다.

새롭게 짓고, 새롭게 나누어요. 새삼스레 읽고, 새삼스레 써요. 아름다운 책 둘레에 즐거운 책을 놓고 싶은 마음이 자라면서 서재를 이루고 도서관이 태어납니다. 네가 쓴 책을 내가 기쁘게 읽고, 내가 쓴 책을 네가 반갑게 읽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짓는 사람이요, 우리는 모두 배우며 나누는 사람이로구나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고양이의 서재>(장샤오위안 글 / 이경민 옮김 / 유유 펴냄 / 2015.1.24. / 12000원)



고양이의 서재 - 어느 중국 책벌레의 읽는 삶, 쓰는 삶, 만드는 삶

장샤오위안 지음, 이경민 옮김, 유유(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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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말사전을 새로 쓴다. <사전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우리말 꾸러미 사전》《우리말 글쓰기 사전》《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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