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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는 소설을 읽을 때 어디까지가 작가의 상상이고,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를 구분하며 읽으려 했습니다. 왠지 저는 사실에 상당히 집착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책을 읽을 때도 '이건 경험이겠지? 이건 상상일거야'라며 혼자 복잡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책의 내용속으로 온전히 몰입되기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상상과 진실을 구분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실격 책표지/다자이 오사무/김춘미 옮김/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인간실격 책표지/다자이 오사무/김춘미 옮김/민음사 세계문학전집
ⓒ 김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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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타이밍에 만난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은 저의 관념을 뒤흔드는데 충분했습니다. 문학작품을 대하는 데 있어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것은 길을 가다 스쳐가는 사람들을 보며 '이 사람의 직업은 무엇인지 분명해, 이 사람은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 게 분명해'라고 혼자 판단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은 한 인물의 삶을 여과없이 보여줍니다. 타인들이 보는 모습과 전혀 다른 본성을 가지고 있는 '요조'는 삶 자체가 고통입니다.

이전에 요조가 일반인들과 다른 부분이 있었다는 것도 설명해야겠습니다. 요조는 순수한 아이였습니다. 기차역에 있는 육교에서 놀며, 육교가 놀이터라고 생각했습니다. 철도청이 제공하는 괜찮은 서비스 중 최고라고 생각하며 육교에서 계단을 오르내렸습니다.

그림책에서 지하철을 보고도 지하에서 차를 타는 것이 별나고 재미있는 놀이니까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혼자 보고 혼자 생각하는 데 익숙했던 요조입니다. 해서 남들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것도 요조에게는 심각한 고민거리가 되곤 했습니다. 요조는 가족들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현상에 대해서도 불안해하고 힘들어했습니다.

제가 가진 행복이라는 개념과 이 세상 사람들의 행복이라는 개념이 전혀 다를지도 모른다는 불안, 저는 그 불안 때문에 밤이면 밤마다 전전하고 신음하고, 거의 발광할 뻔한 적도 있었습니다. 저는 과연 행복한 걸까요? 저는 어릴 때부터 정말이지 자주 참 행운아다, 라는 말을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저 자신은 언제나 지옥 가운데서 사는 느낌이었고, 오히려 저더러 행복하다고 하는 사람들 쪽이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훨씬 더 안락해 보였습니다.

사람들이 쉽게 말하고 별 고민없이 사는 모습을 보며 요조는 혼란스러워 합니다. 누가 강요한 고통도 아니요, 자신의 경험으로 인해 나타난 고통도 아니었습니다. 결국 요조는 사람이란 것에 대해 알수 없고 혼자만 별난 놈인 것 같다는 불안과 공포 속에서 힘겨워합니다. 무엇을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를 몰라서 사람들과 거의 대화를 나누지 못하는 그가 선택한 삶의 방법은, '익살'이라고 하는 철저한 가면을 쓰는 것이었습니다. 가면을 쓰고 타인을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요조는 상대방을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요조는 사람들과 함께 있고 같이 생활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학교에 가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선생님을 대하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아버지에게 원하는 선물을 말하는 것조차 힘들어했던 아이니 타인과의 만남이 힘듦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요조는 상대방을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상대방 눈치를 많이 보게 됩니다. 오로지 익살과 웃기는 아이로 보이기 위해,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 열심히 노력합니다.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표현한 부분이 있습니다.

학교에서 저희들은 철봉 연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일부로 될 수 있는 대로 엄숙한 얼굴로 철봉을 향해 에잇 하고 소리를 지르며 달려가서는 그대로 멀리뛰기 하는 것처럼 앞으로 날아가 모래밭에 쿵 엉덩방아를 찧었습니다. 모두 계획적인 실패였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모두 폭소를 터뜨렸고, 저도 쓴웃음을 지으면서 일어나 바지에 묻은 모래를 털고 있으려니까 언제 왔는지 다케이치가 제 등을 찌르면서 낮은 목소리로 이렇게 속삭였습니다.

"일부러 그랬지?" 

세상이 뒤집히는 것 같았습니다. 일부러 실패했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도 아닌 다케이치한테 간파당하리라곤 전혀 생각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온 세상이 일순간에 지옥의 업화에 휩싸여 불타오르는 것을 눈앞에 보는 듯하여 와하고 소리치면서 발광할 것 같은 기색을 필사적으로 억눌렀습니다. 그 때부터 계속된 나날의 불안과 공포.

요조는 삶 자체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차라리 아무도 살지 않는 무인도에 있었다면 요조는 이런 삶을 살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다자이 오사무는 요조의 삶을 통해서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인지 너무도 궁금했습니다.

'인간실격'은 1948년에 세상에 나옵니다. 그리고 그 해 다자이 오사무는 자살을 합니다. 생애 5번째였던 자살 기도가 성공하게 된 것이죠. 즉 '인간실격'은 다자이 오사무의 최후의 완성작품입니다. '굿바이'라는 유작도 있습니다. 저는 다자이 오사무가 어떤 작가인지 몰랐습니다. 솔직히 책이 얇은 편이라 부담 가지지 않고 선택하여 읽은 책입니다.

다 읽고나서 든 생각은 '암울하다'였습니다. 요조의 삶이 뭔가가 자연스럽지 않았습니다. 지방의 있는 집 가문에서 태어나 충분히 유복하고 평이하게 자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유를 알 수 없는 자신의 콤플렉스로 억울한 삶을 삽니다. 암울한 삶입니다.

다자이 오사무의 삶도 순탄하지는 않았습니다. 5번에 걸친 자살 시도, 자신의 집안이 고리대금업으로 부자가 된 졸부라는 사실을 평생 부끄러움으로 안고 살았던 다자이, 그리고 대학 시절 좌익운동 참가, 39살의 요절...다자이의 삶도 결코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실격'은 묘한 책입니다. 주인공과 다자이가 오버랩이 되며, 대충 쓴 글처럼 느껴지지만(솔직히 독자들을 별로 배려하지 않은 문체라고 생각했습니다.) 요조의 삶에 몰입하게 됩니다. 다 읽고 나서는 '인간이란 무엇일까? 삶이란 무엇인가?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나는 행복한 것인가? 다자이가 세상을 향해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150페이지가 안되는 짦은 글입니다. 하지만 150페이지 안에 지독하게 안타까웠던 한 인간의 삶이 담겨 있습니다.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는 절묘한 양으로 인간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평소같으면 2시간에 다 읽을 수 있는 분량이지만 다 읽는데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내용이 어려워서가 아니었습니다. 뭔가가 불편했고 그 불편함으로 책을 계속 읽기 어려웠습니다. 다자이가 독자들에게 불편함을 선사하고 싶었다면 그의 노력은 성공한 셈입니다.

2017년, 다자이 오사무를 알았고 '인간실격'을 읽은 것은 특별한 경험입니다.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삶을 살다간 다자이 오사무, 그와의 만남을 추천합니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김용만의 함께 사는 세상)에도 올립니다.



인간 실격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민음사(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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