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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6일, 광화문에서의 장돌뱅이 체험. 처음으로 판매자의 입장이 되어보았다.
 10월 6일, 광화문에서의 장돌뱅이 체험. 처음으로 판매자의 입장이 되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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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광화문에 항상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 가끔 광화문에서 시작해 종로와 청계천을 지나 시청까지 걷는 것을 좋아한다. 

때로는 책을 사러 혹은 전시를 보러, 가끔은 공연을 보러, 또는 직접 공연을 하기위해 광화문에 나가기도한다. 2010년 4월의 <도시이동연구 혹은 연극 '당신의 소파를 옮겨드립니다'>는 공연은 극장이 아니라 세종로 자체가 무대였다. 배우뿐만 아니라 횡단보도를 건너는 시민, 거리를 순찰중인 경찰 등 광화문의 사람모두가 자신도 모르게 극의 역할을 부여받았고 세종로 일대의 모든 빌딩과 도로가 세트였던 공연이었다. 그 극의 배우로서 나는 당연히 광화문을 극장의 무대로 여겨지도록 훈련했으므로 지금도 광화문은 내게 안방처럼 편안하다.

 광화문을 무대로 삼았던 2010년의 공연, <도시이동연구 혹은 연극 ‘당신의 소파를 옮겨드립니다’>
 광화문을 무대로 삼았던 2010년의 공연, <도시이동연구 혹은 연극 ‘당신의 소파를 옮겨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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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 전 그 광화문에 나갔다가 시민들이 판매자로 참여한 큰 장터가 열린 것을 보았다. 며칠 뒤 가을 옷을 꺼내기 위해 옷장정리를 하다가 앞으로도 다시 입을 것 같지 않은 옷들이 적지 않게 옷걸이를 차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 그 장터가 떠올랐다. 이제는 손이가지 않지만 정이 남아 섣불리 정리하지 못했던 옷가지들이 그 장터에 나가 새로운 주인을 만나게 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이었다. 대부분 당시의 필요에 의해 사놓고 몇 번 안 입은 옷들이 적지 않았다.

사실, 우리 집 식구들은 새 옷보다 헌옷에 더 익숙하다. 아빠, 엄마는 우리가 초등학교 때에도 학교의 바자회에 작아진 우리 옷들을 내놓고 1~5천 원짜리의 다른 옷을 사서 입으시곤 했다. 내가 드라마를 할 때 협찬 받았던 옷들은 나중에 이웃집이나 친척집 동생들의 차지가 되었다. 그 후에도 우리집의 재활용품은 모두 '아름다운 가게'차지가 되었고, 부모님도 '아름다운 가게'에서 옷을 사 입는 것을 자랑스러워하셨다. 특히 아빠는 장기간의 외국 여행 중에도 필요한 물건들을 현지의 Goodwill Store나 대학의 학생들 바자회에서 조달하곤 한다.

나는 직접 장돌뱅이가 되어보는 경험을 해보고 싶었다. 그 생각을 식구들에게 얘기하자 모두가 응원했다. '광화문 희망나눔장터'라는 정보를 검색해보니 아름다운가게와 협력하여 서울시에서 주최하는 재활용, 나눔 장터로 3월부터 10월까지 매주 일요일마다 개최되는 장터였다.

신청은 희망나눔장터 홈페이지에서 판매참가신청란에 간단한 신청사유를 쓰고 신청하면 된다. 초등학교 재학중인 어린이들을 위한 '어린이장터', 중학생 이상 성인을 위한 '일반시민장터', 학교, 기관, 동호회, 기업 등의 단체를 위한 '단체장터'가 있다. 

신청자는 추첨을 통해서 참가가 확정된다. 추첨이 되면 문자가 오고, 문자를 받은 사람은 물품을 챙겨서 장터로 나가면 된다. 판매물품 수량은 80점 이하로 한정되는데 내 옷을 정리하고 보니 많다고 여겼음에도 불구하고 50점 정도에 불과했다. 

10월 6일, 28인치 여행 가방에 채워 넣은 옷들과 돗자리, 작은 낚시의자까지 챙겨서 광화문으로 나갔다. 개장시간인 11시쯤에도 이미 광장은 장꾼들로 가득했다. 수많은 인파에 놀란 나는 서둘러 자리표를 받고 지정된 자리로 가서 판매물품을 펼쳐놓았다. 내 왼쪽에는 여고생 두 명이 수첩을 비롯한 작은 문구부터 블라우스까지 여러 종류의 물건을 펼쳐놓았고 오른쪽에는 아주머니께서 주로 옷을 보기 좋게 진열해서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광화문 희망나눔장터의 판매등록후 받은 자리번호
 광화문 희망나눔장터의 판매등록후 받은 자리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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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주머니와 간간히 얘기를 나누었다. 평생 동안 자신이 샀던 옷과 며느리들이 사준 옷가지들과 소품들을 몇 번에 걸쳐 재활용품수거함에 버렸다가 이 장터가 있다는 것을 알고 직접 나와서 팔고 있단다. 온 식구들의 물품을 정리하면서 광화문 장터에는 매주 신청하고 뚝섬에서 열리는 장터에도 가끔 나간다고 하셨다. 광화문은 봄부터 매주 신청하였는데 이번이 두 번째 당첨이라고. 나는 처음 신청에 처음참가라고 하자 운이 좋은 경우라고 하셨다.

 진열후 새 주인을 기다리는 내 옷들
 진열후 새 주인을 기다리는 내 옷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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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을 파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참가자들과 이렇게 수다도 나누고 구경꾼들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다고…. 아주머니는 초보인 나의 진열도 돕고 판매노하우도 알려주시고 손님이 오면 훈수로 판매를 거들어주시면서 초보 장돌뱅이를 도와주셨다.

장터는 아주머니와 아저씨, 그 부모의 손을 잡고 함께 온 아이들은 물론 젊은 연인들과 나이 지긋한 어르신 부부까지 각층의 시민들이 두루 섞였다. 부드러운 가을볕에 화창한 날씨는 구경꾼과 장꾼 모두를 소풍객으로 만들어주었다. 그날은 하이서울페스티벌까지 열리는데다 차 없는 거리의 날이라서 인파는 더욱 많았다.

 이날, 광화문은 하이서울페스티벌까지 열리는데다 차 없는 거리의 날까지 겹쳐서 인파로 넘쳤다.
 이날, 광화문은 하이서울페스티벌까지 열리는데다 차 없는 거리의 날까지 겹쳐서 인파로 넘쳤다.
ⓒ 이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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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들은 블라우스가격이 7000원이라고하면 5000원으로 2000원 티셔츠는 1000원으로 깎는 게 다반사였다. 그 모습을 보고는 아주머니께서 3000원 받고 싶은 옷은 처음에 4000원을 부르라며 코치를 해주셨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중에는 모든 옷을 일괄적으로 3000원 혹은 1000원으로 불렀다.  

캐리어에 옷을 차곡차곡 쌓아 넣을 때는 약간의 판매금액을 기대하고 있었던 내 마음이 광화문 장터 시작 두 시간 후에는 싹 사라졌다. 짐 싸서 나올 때 팔리지 않는 옷들은 아름다운 가게 기부박스에 기부하고 오자라는 생각이었다. 아직 입을 만한 옷들이 누군가 새 주인을 만나서 재활용되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가격에 연연하지 않게 되었음은 물론 누군가가 주인이 나타나며 오히려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판매후 남은 물품은 기증함으로서 다시 새로운 주인을 만날 기회를 갖게 된다.
 판매후 남은 물품은 기증함으로서 다시 새로운 주인을 만날 기회를 갖게 된다.
ⓒ 이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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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은 세련된 중년 부부가 사가시고 반바지는 아빠랑 같이 나온 중학생이, 체크무늬 남방은 새댁이 같은 무늬 같은 색을 입고 있는 남편이랑 커플로 입으시겠다고 가져가셨다. 진열된 물건도 살피고 함께 대화를 나누는 가족과 연인들의 모습에 소소한 행복이 느껴졌다.

딸내미 입히겠다며 아저씨가 사 가신 내 티셔츠 몇 장, 외국인 연인이 사간 원피스, 어린 학생이 사간 셔츠까지 내 옷들 여러 점이 이리저리 새 주인을 만나 떠났다. 물건에도 정이 깃든다고, 적게 입었던 많게 입었던 나의 정들이 묻어있던 물건들이 여러 곳으로 퍼져 누군가 입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이상하게도 내가 행복해지는 느낌이다. 

행복한 모습만 있었던 건 아니다. 일반인 장터이지만 딱 보아도 프로 장사꾼이 와서 물건을 파는 경우도 있었다. 또한 되팔기 위해 물건을 사가려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 아무래도 돈이 오고가는 장터이다 보니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듯 보였다. 내게는 즐거운 한 번의 경험이지만 어떤 이에게는 이 장터도 치열한 삶의 터전인 셈이었다.

광장처음부터 끝까지 여러 장터들이 열려있고 여러 종류의 물품들이 진열되어있다. 뒤쪽에는 농부의 시장이 열려있어 먹을거리나 특산물 등을 팔고 있다. 광장 가운데에서는 공연도 진행되었는데 어르신들이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호응이 아이돌 스타를 보러온 학생들을 뺨칠 정도였다.

 광화문 희망나눔장터에는 재활용판매부스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행사가 함께 펼쳐진다.
 광화문 희망나눔장터에는 재활용판매부스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행사가 함께 펼쳐진다.
ⓒ 이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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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터가 끝나고 처음에 받았던 기부봉투에 판매액의 일부를 기부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돌아왔다. 

내게 10월 6일, 광화문에서 5시간의 장돌뱅이 경험은 또 다른 연극의 한 장을 마친 기분을 선사했다. 그 공연은 무대에 국한된 공연이 아니라 내 삶이 끝나지 않는 한 결코 끝나지 않는 연극이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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