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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에서 살펴본 바 이제 평지는 거의 끝났다. 이 말은 이제 지루함도 거의 다 끝났다는 뜻이다. 자전거 타는 사람들에게 끝도 없이 긴 평지는 인기가 없다. 너무 지루하기 때문이다. 기어를 조정할 일도 별로 없고 속도도 고만고만하다. 지금까지 우리가 달린 속도는 시간 당 최저 15킬로미터에서 최고 30킬로미터 정도로 도로의 질에 따라 조금씩 달라졌을 뿐이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장준하 일행이 넘어간 높디높은 파촉령을 넘어가야 한다. 파촉령을 넘는 길은 하도 높아 예전엔 없다가 중국의 국민당 정부가 일본군에 쫓겨 충칭(重慶)으로 수도를 옮겨가면서 군사적 필요에 의해 생겼다고 한다. 이 길은 당시 전방과 후방을 연결하는 유일한 길이였다. 그들은 산을 걸어 올라갔지만 우리는 자전거를 타고 넘을 것이다.

억! 저 변소를 이용하라고?

장준하 일행이 추운 겨울에 출발한 것과 달리 우리는 한참 더운 6월 30일 라오허커우를 떠났다. 호텔에서부터 35킬로미터까지는 평지가 계속 이어졌다. 본격적으로 산을 오르기 전에 초입에 있는 슈퍼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마실 물을 준비하기 위해 멈추었다. 화장실을 물어보자 슈퍼 주인이 앞을 가리킨다.

슈퍼 바로 건너 길가에 지붕도 없고 문짝도 달아난 무엇이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변소는 맞는데 변이 꼭대기까지 차 올랐고, 구더기가 득실득실했다. 거기에서 큰일을 본다면 아마 타고 올라올 것 같았다. 어릴 적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변소에 갈 때마다 항상 아래에서 고물고물 기어가는 하얀 구더기 떼, 아마 나중에 파리가 되어서 날아간다지! 그래서인지 그 당시 집에는 파리가 참 많이 날아다녔다.

인간의 시작과 함께 생겼을 화장실이 개선되지 않고 지금 21세기에도 왜 이렇게 지저분한 장소가 되었을까? 수천 년을 인간과 더불어 함께 한 화장실을 인간이 생각만 제대로 했다면 비록 수세식으로 하지는 않았을지라도 깨끗한 장소로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옛날에 인분은 버리는 것이 아니었다. 퇴비로 다시 재활용 되어 채소를 키웠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당시 농촌에서는 어른들이 마실을 다니다가도 일을 보고 싶으면 되돌아와서 자기 집 뒷간이나 밭에 일을 보고 갈 정도였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나 밖으로 배출되는 것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일인데, 어찌 배출되는 곳은 이리도 지저분하게 해 놓았을까? 산으로 올라가면서 길가에 간간히 공동화장실이 보인다. 새로 짓는 화장실은 그나마 시멘트로 말끔하게 해 놓긴 했다. 남녀가 사용하는 칸도 분리되었다. 그러나 문짝은 물론 없다.

오르막의 완벽한 희망, 내리막

오르기 시작하는 데 끝이 없다. 한 고비 넘으면 또 한 고비 계속 오르막이 이어진다. 자전거를 탈 때마다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오르막의 좋은 점은 내리막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언덕을 오를 때는 '내리막이 좀 있으면 나온다'라는 확실한 희망을 갖고 오르기 때문에 기운을 낼 수 있다. 또한 내리막에서는 속도감을 즐기며 무아지경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자전거 타는 사람들은 대체로 평지보다는 언덕을 좋아한다. 좀 자전거를 탄다는 사람들은 언덕을 오를 때 힘에 부치면 쉬기는 할지언정 끌고 가지는 않는다. 차가 올라갈 수 있는 곳은 어디나 자전거도 올라간다. 타고 올라가도 지그재그 식으로 올라가지 않고 자동차처럼 똑바로 올라간다. 자전거를 좀 탄다는 사람들의 자존심이라 할까?

 희망을 갖고 달린다. 오르막이 있으면 반드시 내리막이 있다.
 희망을 갖고 달린다. 오르막이 있으면 반드시 내리막이 있다.
ⓒ 이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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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간에게도 이러한 확실한 희망이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비록 지금의 삶이 힘들어도 곧 찾아올 그 행복을 기다리며 꾸준히 노력하고 기다릴 것이다. 지금의 나의 삶은 힘들어도 자라나는 자식들이 잘 살 수 있다는 확실한 희망을 갖고 기다린다면 그 부모의 삶은 행복할 것이다. 그러나 날이 가면 갈수록 현실은 점점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내가 어렸을 적에는 공부만 잘하면 얼마든지 원하는 대학도 갈 수 있었고 좋은 직장도 구할 수 있었다. 즉 경제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신분을 상승시킬 수 있었다. 그래서 부모들은 갖고 있는 논밭이나 소를 팔아서라도 자식들을 공부시켰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한국전쟁이라는 참혹한 현실을 극복하고 많은 개발도상국이 부러워하는 지금의 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자본 위주의 신자유주의가 판치면서 공동체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협동보다는 오직 상대를 누르고 올라가기 위한 경쟁이 주가 되면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려 했고 결과적으로 이웃을 돌보지 않게 되었다. 그 결과 한 순간 뒤처진 대다수는 아무리 노력해도 앞날의 성공을 내다보기 힘들게 되었다. 미래의 행복이 전혀 안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 한때는 희망을 가졌던 세대들도 이제는 사회가 경쟁 위주로 완전히 굳어져 자신의 노력만으로는 생활을 향상시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얼마나 갑갑한 세상인가?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는 사회야말로 건전한 사회인 것이다.

펑크 날 일 없는 깨끗한 도로

도시에 있는 도로와는 달리 산에 놓여 있는 도로는 너무도 깨끗했다. 라오허커우에서 바둥까지 가는 모든 길의 도로가 정말 깨끗했다. 도로의 중심은 물론 도롯가에 반드시 있는 자잘한 돌가루조차 보이지 않았다. 우리나라 같으면 길가에 자잘한 돌가루가 많이 모여 있어 굽은 길에서 내려 달리다가 거기를 밟았다가는 미끄러지기 십상이다.

한 번은 아들들과 함께 대전에서 호남으로 자전거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전라남도 땅끝에 가면 주변에서 가장 높은 언덕 위에 호텔이 하나 서 있다. 여기서 숙박하고 다음 날 해남으로 언덕을 내려가는데 나를 따라오던 아들들이 한참 지나도 오지 않더니 전화가 왔다. 막내가 내리막에서 넘어졌다는 것이다. 현장에 가보니 심하게 굽은 길의 길가에 있는 자잘한 돌가루를 밟아 미끄러져 길가에 차량의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 서있는 보호막 아래 빈 공간으로 미끄러져 나가 떨어져 있었다. 내가 왜 내려올 때 조심하란 말을 안 했는지, 왜 좀 천천히 내려오지 않았는지 지금도 후회가 된다.

도로가 깨끗한 이유가 있었다. 매일 같이 청소원들이 쓸기 때문이다. 그 길고 긴 모든 길을 구간별로 정해 항상 쓰는 것이었다. 인구가 많아서일까? 물론 임금이 적겠지만 이것도 훌륭한 실업자 구제책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도 노인들 실업 구제를 위해 많은 비용을 지출을 하고 있다. 나라 돈이 쌈지 돈이라 하던가? 먼저 먹는 놈이 임자다. 비록 많은 임금은 받지 않겠지만 얼마나 성실히 맡은 일을 하는지 한 번 지켜보시라. 매일 같이 하루에도 여러 번 도로를 쓸고 있는 청소원들을 수도 없이 많이 봤다. 정말이지 펑크 날 일이 없다. 고마우이! 성실한 중국 청소원 인민들이여!

 구간별로 도로를 매일같이 쓸고 있는 중국 청소원
 구간별로 도로를 매일같이 쓸고 있는 중국 청소원
ⓒ 이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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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왜 우리보고 서류를 작성하래?

계곡이 끊임없이 이어지는데 그 아름다운 계곡 위로 고속도로 공사가 한창이다. 환경 영향 평가나 제대로 받았는지 모르겠다. 민주주의 국가임을 자처하는 우리나라도 객관성 없이 정책에 따라 환경영향 평가가 달라지는 판이니 공산 독재국가인 중국이야 정부 시책에 대항하는 평가를 내릴 수 있겠는가? 한참 오르니 고속도로는 터널로 이어지고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아름다운 계곡 위로 다리를 높게 세우는 고속도로 공사가 한창이다
 아름다운 계곡 위로 다리를 높게 세우는 고속도로 공사가 한창이다
ⓒ 이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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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만 근 80여킬로미터를 달렸다. 오르내리기를 여러 번. 1500미터 정도 되는 정상을 넘으면서 내려갔다. 이어 평지가 나오더니 높은 굴뚝에서 검은 연기가 나오는 공장이 우리를 맞이해준다. 이날의 목적지인 바오캉(保康)의 한 호텔에 오후 다섯 시쯤 도착했다.

그런데 이 호텔은 다른 곳과 달리 프론트 직원이 여권을 받을 생각은 안 하고 우리 보고 직접 쓰라며 서류를 내민다. '아니 자기가 할 일을 왜 우리한테 맡겨?' 어쩌겠는가? 쓰라면 써야지. 하지만 내 이름은 절대 한자로 적지 않는다. 가는 곳마다 자기네 나라 문자로 이름을 적으라고 하면 적을 수 있는가? 영어는 만국공용어이니 할 수 없지만.

호텔 주변을 살폈지만 괜찮은 식당을 찾기가 힘들었다. 지나가는 두 여자 분에게 물었더니 가던 길을 되돌아 친절하게 식당 앞까지 안내해 주고 자기들 갈 길을 간다. 이 길은 결코 걷기에 아주 짧은 거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은 쾌히 우리를 그곳까지 안내해 주었다.

덧붙이는 글 | 한국문화신문 얼레빗에도 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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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을 통해 사회를 분석한 <수학의 창을 통해 보다>, 역사가 담긴 자전거기행문 <미안해요! 베트남>, <체게바를 따라 무작정 쿠바횡단>, <장준하 구국장정6천리 따라 자전거기행> 출간. 현 배재대 교수이며 전 대전환경운동연합 의장. 피리와 클라리넷 연주자로 활동